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774
773화 뭐긴 뭐야
[99층에 진입합니다.]알림과 함께 시야가 환해진다.
익숙한 공간.
99층에 돌아왔다.
“하이덴! 하이덴 이 망할 놈이!”
쿵! 쿵!
땅을 두드렸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역시 이래서 혼돈의 파편은 믿을 수 없다.
간악한 계략을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게그극.”
덕춘이가 혀를 찬다.
그러다 찰싹.
뺨을 때려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으니.
“아오. 턱이야. 좀 살살 쳐 주지.”
“궤에에.”
얼얼한 턱을 문지르며 화를 가라앉혔다.
괘씸하기는 하지만 녀석이 건 공약은 효과적이기는 했다.
무한 코인.
그것은 내가 100층으로 향하게 만든 원흉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보험이기도 했으니까.’
힘들면 죽어도 된다.
상대가 강하면 목숨을 대가로 약점을 찾아낼 때까지 도전해도 된다.
이미 무한 코인을 이용해 그런 적이 있지 않던가.
나도 모르게 조금은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거치고 최근에는 몇 번 안 죽은 거 같은데.’
살짝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어쩌겠나.
이미 상황은 이렇게 되었는데.
“이미 준비할 건 다 끝냈다.”
냉정히 말하면 하이덴이 한 말은 틀리지 않았다.
죽어서 아래로 내려가 봤자 지금까지 했던 것 이상으로 준비를 할 수는 없었다.
굳이 더 한다고 해 봤자 개념 무구를 몇 점 추가하는 거겠지.
죽을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니다.
개념 무구야 숭배자 놈들을 잡고 노획해도 그만이니.
‘오히려 마지막에 해 준 말이 중요해.’
놈의 부끄러움은 숨는 것.
그렇기에 자신의 근처에 무언가 있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죽여서 없애고 모습을 감추고 다른 존재의 시야를 가렸다.
그게 녀석이 살아온 삶이었고 본인이 생각한 부끄러움의 표현이다.
반면에 나는 어떤가?
나 자신을 숨기는 것보다는 내가 해 왔던 것을 숨기는 것에 보다 열중했다.
일말의 실마리를 찾은 것.
거기다 놈도 말하지 않았던가.
“당장 발동되지 않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아.”
필요할 때 제대로 발동한다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상시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 이미 2개나 있지 않던가.
남들이 가지지 못한 비장의 수가 생긴 거나 다를 바 없었다.
“움직이자.”
생각이 정리되자 미련이 사라졌다.
우선 위치부터 확인해 봤다.
탐사대에서 받은 지도.
“거리가 좀 떨어져 있긴 하군.”
동부 지역에 더 가까운 위치.
왕 없는 왕국의 수도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아, 이제는 왕 없는 왕국이 아니던가.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 한 장.
건국 기념일이라는 이름의 글에는.
[경축! 냥펀 월드 건국!] [초대 건국왕, 냥냥펀치 왕위에 즉위하다!]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등반가 모두가 모여, NPC들과 함께 찍은 사진.
내가 준 마그나로크의 왕관에다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모피 망토, 황금 지팡이까지 들고 있다.
기분 제대로 냈네.
“닉네임 센스하고는.”
냥펀이 왕.
다른 이들도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노블 나이트야 교단이고, 밖으로 나가 개념을 수집할 탈모맨은 특임대장.
“탑 밖에 있을 때도 특임대더니 여기서도 그렇게 됐고.”
핥짝이는 호위대장이 되었으며 스마일캡은 기사단장.
박재경이야 왕궁 요리사고, 찌리리 요정은 천문관, 마그마 요정은 공작이 되었다.
나름 자기만의 자리를 잡은 것.
섹시가이는.
“왕실 공인 광대…….”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 얘는 이게 맞다.
아무리 허울뿐인 왕국이라지만 체면이 있잖아.
애초에 직책이나 직위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왕국 자체가 숭배자의 왕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당장 왕국 내실을 다지는 기관과 인원이 없는 것만 봐도 그렇다.
구조도를 슥 살피자 빈칸이 하나 보였다.
-독립 기사단장, 이블아이(예정)
-기사단장 없이 기사단원만 있음.
내 것도 만들어 뒀네.
심지어 인원도 배치해 놨다.
익숙한 이름들.
마일러, 레베카, 츠므라.
그리고.
“켈런.”
죽은 줄 알았다.
숭배자의 왕이 녀석의 팔을 잘라 내게 보냈었으니까.
아마 스마일캡이 놈들과 싸울 때 탈출한 모양.
“팔 한 짝 정도는 어떻게 재생했겠지.”
오필리아도 있고 여차하면 상급 포션이나 엘릭서를 쓰면 된다.
고개를 끄덕이며 커뮤니티를 껐다.
왕국이 건립된 건 확인했고.
“흐음.”
하늘을 올려다봤다.
뭐랄까.
“혼돈이 좀 줄어든 느낌이군.”
혼돈뿐만 아니라 허공에 떠돌아다니던 개념도 줄었다.
하이덴과 수행하며 보다 예민해졌기에 확실하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워서 그런가?
그것도 아니면.
‘숭배자의 왕이 몸을 회복하느라 혼돈과 개념을 빨아들인 걸지도 모르겠어.’
놈도 왕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죽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타격을 받았으니.
이미 육체라기보다는 개념과 혼돈 덩어리에 가까운 몸이니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아니면 뭐, 죽은 숭배자들을 대신할 괴이체를 여럿 만들었거나.
봐 보면 알겠지.
더 이상 괴이체는 두렵지 않다.
놈들이 사용하는 힘 자체를 찍어 누를 자신이 있었으니.
아직 실전에서 활용해 본 적은 없다만.
“그거야 연습하면 그만이지.”
지도를 펼쳤다.
숙달을 위해서는 자꾸 써 봐야 하는 법.
다행히 괴이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고.
-파앙!
지도에 나타난 녀석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급 괴이체가 둘.
그보다 떨어진 곳에 중급 괴이체 하나.
“헤이!”
“꾸륵?”
나무 기둥, 그 옆에 자라난 버섯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말이 버섯이지 어지간한 곰만큼 커다란 녀석.
하급 괴이체, 황혼 버섯이 나를 향해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일대를 완전히 태워 버려 멀리서 바라보면 황혼이 내려앉은 것처럼 보인다 했던가.
태울 것도 없건만 급격히 덩치를 불리는 불길.
한번 붙으면 꺼지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었으나.
-푸쉬시.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개념, 반골이 불을 후후 붑니다.]몸에 달라붙었던 불길이 사그라들었고 난 천천히 녀석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걸 느낀 버섯이 세차게 요동치고.
-쑤욱!
밑동에서 기다란 다리가 솟아올랐다.
폴짝 나무에서 뛰어내리더니 도망치는 녀석.
“묘하게 징그럽네, 저거.”
“그에에.”
쫓지 않고 그대로 참격을 날렸다.
검강이 쭉 뻗어 나가며 녀석의 몸을 갈랐다.
“꾸르르륵!”
단말마 비명을 끝으로 사라진다.
이걸로 한 마리는 잡았고.
-콰앙!
발을 박차 놈이 도망치려던 방향으로 돌진했다.
화들짝 놀라 움직이는 무언가.
‘하급 괴이체, 숯불갈비.’
화재 현장에서 발견되는 놈으로 숯덩이로 위장하다 다가오는 사람을 산 채로 지져 버리는 놈이다.
닿는 순간 숯처럼 변해 말도 못 하고 산 채로 익어 버린다 했던가.
불을 내뿜는 황혼 버섯 주변에서 자주 발견되는 놈이었고.
-덥썩.
팔뚝만 한 숯덩이를 잡았다.
기회라고 생각한 걸까, 녀석이 힘을 부렸으니.
“오호. 이런 건가.”
손을 시작으로 체내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식으로 작동하나 궁금해서 구경했지만 딱 거기까지.
-퍼석.
그대로 움켜잡아 부스러트렸다.
손에 묻은 재를 털어 내고 나아갔다.
확실히.
“이제 하급 괴이체는 별 느낌도 안 오는군.”
몸풀기도 안 된다고 해야 하나.
하이덴과 수련하며 일주일 동안 휴식을 취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는 가뿐하다.
중급 괴이체까지만 잡고 쉴 생각.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싸우는 것도 좋은 훈련이 될 것이었고.
“찾았다.”
“뭐, 뭐냐!”
오래지 않아 지도에 나온 중급 괴이체를 찾을 수 있었다.
* * *
99층으로 돌아온 지 나흘.
여전히 난 멤버들과 합류하지 않고 있다.
이유가 몇 가지 있기는 하다.
일단 몸 컨디션을 되살리는 게 중요했고 감각을 익히는 것도 필요했으니.
“하급 14객체, 중급 4개.”
그동안 잡은 괴이체의 숫자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등급 상관없이 기존에는 없던 괴이체가 여럿 생겼다는 것.
지금까지 잡은 놈들 중 탐사대의 가이드북에 나와 있던 녀석은 고작해야 5마리였다.
나머지는 모두 신규 괴이체라는 뜻.
필드에 뿌려진 개념과 혼돈은 줄었지만 괴이체는 훨씬 늘었다.
보통 사람이 많은 곳에 주로 나타나는 놈들을 쉴 새 없이 만난 것도 이 때문.
“상황을 봤을 때, 상급 괴이체도 늘었을 거야.”
가볍게 손을 두드렸다.
숭배자의 왕국에서 뭔가를 준비하는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이렇게 괴이체를 뿌려 놨지.
다들 어느 정도 눈치챘을 거다.
“드디어 도착인가.”
그동안 단순히 괴이체 사냥만 한 건 아니다.
부지런히 냥펀 월드를 향해 가고 있었지.
오면서 새롭게 개척된 곳들도 봤다.
서로 대립하는 사이 영역을 넓힌 모양.
“음? 이블아이? 이블아이가 왔다!”
수도의 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NPC가 나를 알아봤는지 바로 서신을 올렸다.
가볍게 인사하며 안으로 진입하자.
“오. 잘 꾸며 놨네.”
이전에 봤을 때보다 발전된 수도를 볼 수 있었다.
즉위식도 있고 하니 부지런히 구색을 갖춘 거 같았다.
왕성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내 쪽으로 다가오는 무리.
“이 몸을 보러 왔느냥! 나의 훌륭한 종아!”
왕관을 쓴 냥펀을 필두로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탈모맨은 보이지 않았다.
“예히. 여왕님. 제가 왔습니다요.”
일단 적당히 맞장구쳐 줬다.
신사답게 허리를 굽히며 예를 취했고.
“어허! 함부로 정수리를 보이다니! 핥짝형에 취해지고 싶은 게냐!”
“아니이. 그런게 어딨냐고.”
“멀쩡히 돌아왔네.”
냥펀과 핥짝이가 환영해 준다.
“다시 올라올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오필리아 또한 반가움을 표현했다.
노블 나이트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는?”
“스마일캡은 토벌 나갔고, 요정 클럽은 탐사대랑 좌표 찍으러 다니고 있엉. 나중에 원격으로 벼락 떨구려구.”
잠깐의 소강상태.
왕국이 건설된 이상 이제부터는 진짜 전면전이다.
준비할 수 있는 건 모두 준비해야 할 타이밍.
“탈모맨도 안 보이는데.”
“탈모맨은 제 부탁으로 필드에 나가 있어요. 섹시가이와 함께요.”
그 부탁이 뭔지는 안다.
오필리아가 계승한 존재, 벨루악이 남긴 마지막 개념을 찾아 달라고 했었지.
나와 오필리아를 제외하면 개념을 가지고 있는 건 탈모맨과 섹시가이뿐이니 당연한 구성이다.
‘오필리아가 원하는 개념을 아직도 못 찾았을 줄은 몰랐지만.’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벨루악이 가지고 있던 개념 아니던가.
숭배자의 왕이 이미 챙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건 그거고.
“선물.”
중급 괴이체를 잡으며 얻은 개념 2개를 건넸다.
어디든 쓰면 좋은 거니까.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괴이체의 발생을 줄일 수도 있고.’
싱긋 웃은 오필리아가 개념을 챙긴다.
그러고는 핥짝이에게 시선을 돌렸으니.
“이블아이도 왔으니 시작해도 될 거 같군요, 핥짝 님.”
“자리 비워 두기 뭐했는데 괜찮겠네.”
무슨 대화일까.
“개념 한번 받아 보려고.”
별거 아니라는 듯 툭 내뱉는 핥짝이.
그 말은 설마.
“다른 애들도 가지고 있는데 나만 없을 수는 없지.”
개념 주입을 시도하겠다는 뜻이다.
핥짝이뿐만이 아니다.
“이블아이가 없는 동안 후회의 돌을 모았어요. 총 5개. 이후 순차적으로 시도할 거예요.”
다른 등반가들도 개념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한다면 전력이 늘어날 터.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뭐로 하게?”
궁금하긴 하다.
핥짝이가 고른 개념이 뭘지.
자신이 원하는 게 아니라 가장 적합성이 맞는 개념을 선택하는 게 중요한 만큼 스스로의 판단에 더불어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종합해서 선택했다는데.
“뭐긴 뭐야.”
-씨익.
입꼬리를 올린 핥짝이가 품에서 길쭉한 돌을 꺼낸다.
“애들 줘 패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