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bartender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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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방(九釀幇)을 지워야 한다.
단호하게 나온 내 말에 석가장은 하나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양방과의 일을 전 무림에 내걸고 그들을 공적으로 선언함은 기본.
더불어 그들과 끝없는 항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누구는 물을 수 있다. 그런 건 조용히 처리해야 할 일은 아니냐고.
흔적을 지워가며 자취를 감춘 적에게 뒤를 쫓는다는 걸 알려주는 게 좋은 일은 아닐 테니까.
허나, 우리는 구양방과 다르다. 기습에 기습으로 돌려주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가치를 지키는 것.
거기서부터 석가장과 흑도의 차이는 시작일 것이다.
‘또···’
딱히 상관이 없다는 점도 없진 않을 거다. 저들이 뒤를 쫓는 암빙대가 있다는 걸 모르는 상황이 지금.
저들은 그저 뒤늦게 석가장이 체면치레나 하기 위해 이런 기치를 내건 것이라 믿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렇게 자만하는 사이. 우리의 추격대가 자신들을 따라붙는 것도 모르며 말이다.
“남직예 방면으로 도망친 이들은 남궁가가 암빙대 대원에게 인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석가장의 타격대가 곧 도착할 겁니다.”
“강서 방면에는 화산의 속가들이 지원해줘 이미 석가장이 저들을 제압했다는 소식입니다.”
“소주 부근에서 구양방의 간부 여섯이 모두 잡혔습니다. 소하상가의 정보 덕분입니다.”
또한, 이번 일을 전 중원에 공론화하니, 일이란 게 더욱 쉬워졌다.
석가장이야 이곳저곳 관계를 맺어둔 곳이 많은 곳. 가장 가까운 소주의 소하상가부터 남직예의 남궁과 저멀리 화산까지.
모두가 발을 벗고 나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무림에서는 명분이라는 게 생각보다 중요한 법.
기치를 내걸 때는 명분을 이렇게 앞으로 내세우며 도움을 암묵적으로 구하는 것.
석가장과, 또 나와. 알게 모르게 관계를 맺어온 이들은 손을 내미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저멀리서 당문마저 해독에 좋은 배합을 급서로 날렸을 정도였으니.
전 무림이 석가장 편에 선 기분이 들 정도였다.
“바닷길로 나섰던 이들은 선원들에게 잡혀 그대로 항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밀항선을 탄 이들이 말씀입니까? 어찌요?”
“그···, 풍화도 해군들이 구양방의 잔당을 태운 배는 앞으로 바닷길에서 가만두지 않겠노라, 천명한 덕분이겠지요.”
“···허허. 이런 일이 다 있군요.”
풍화도의 도움은 제법 의외였다. 부도주가 중태에 빠져 대세를 잡은 무길이 풍화도를 7할 정도 정복한 지금.
제해권이야 원래 그의 손 아래에 있었고 지금은 말해서 뭣하겠나.
그는 그런 자신의 세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석가장에 이런 도움을 보내온다.
솔직히 뱃길로 도망친 놈들이야 암빙대도 잡을 방법도 없어 보였는데.
이들 덕분에 말 그대로 일망타진이 가능해진 셈이다.
‘그래도···.’
아직은 만족할 수 없다.
대부분의 잔당이 잡히고 명부에 이름을 올린 구양방의 간부들 역시 연달아 잡혀 오고 있는 지금.
난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눈빛으로 집무실에 앉아 잡힌 이들의 목록을 살폈다.
제일 상단을 장식하는 두 개의 이름.
하나는 구양방의 방주이자, 무공으로 제법 이름을 날렸다는 사화룡이란 이름이다.
무공으로 이름이야 날렸다지만, 진효풍이나 홍구보단 아래일 터이니 그다지 상관은 없는 일.
또한, 내가 이토록 불만족스러운 이유 역시 그의 이름에 아직 붉은 줄이 그어지지 않아서는 아니다.
난 조금 더 아래. 그의 이름 아래에 적힌 한 애매한 이름에 시선을 던졌다.
내가 잡아야 하는 이는 바로 그 자였다.
– 하, 학사! 학사가 있습니다! 구, 구양방의 계략은 대부분 그자의 머리에서 나왔습니다! 비, 비겁하고 머리는 좋은 그런 놈···! 그놈이 모두 꾸민 일입니다!
삼검혈(三劍血) 장초는 두 눈과 손가락 몇 개를 잃은 후 하나도 빠짐없이 구양방의 계보를 우리에게 읊어왔다.
그러던 그의 입에서 나온 제법 영양가 있어 보이는 정보.
이번 일을 꾸민 게 한 학사의 머리에서 나온 일이란다. 구양방이야 본디 그리 대담한 곳은 아니었다는 게 그의 증언.
학사가 온 뒤 밀주 사업이 더 번성했고, 이번 일까지 이어진 거란 그의 말에서 난 요주의 인물이 그 학사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장초 역시 그가 핵심이라며 목숨을 구걸해올 정도였으니. 나 역시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였다.
‘중요한 건···.’
항주제일가라 불리는 석가장을 건드렸다는 사실이 아니다. 구양방 정도의 규모라면, 도모하지 못할 크기는 아니니까.
대신, 지금 주목해야 할 건 그런 석가장에도 비대칭 전력이 하나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진효풍.’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화산검협, 진효풍.
그가 지금 식객으로 머무는 곳이 석가장이란 곳이다.
중요한 건 그런 그가 머무는 석가장 마저 도모했다는 것. 이건 생각보다 용기가 큰 인물이란 걸 말할 것이다.
이런 용기를 가진 인물이라면, 언제고 다시금 훗날을 도모할 거라건, 불 보듯 빤한 일이다.
그렇기에 난 그 용기와 이번 일의 원흉인 학사란 놈을 그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 없다.
노려야 할 건 용기가 이어져 완성된 그의 만용. 그는 완벽히 숨었다고 여길 거다.
자신이 낸 용기에 이런 후속 장치까지 포함이었을 거니까.
‘오냐. 끝까지 도망쳐 봐라.’
반드시 잡아줄 터이니.
– 탁.
명부를 접으며, 난 다시금 이를 다짐했다.
***
혈풍(血風)이 불었던 경원에서 멀지 않은 절강성 남쪽 안랑산(顔狼山) 부근.
한 무리의 사내들이 삿갓과 함께 살벌한 병장기를 허리에 차고는 산자락을 오르고 있었다.
어둠이 살짝 찾아오려던 시간에 맞춰 걸음을 재촉하는 사내들. 이들이 산자락 끝에 자리한 마을을 지나칠 때쯤.
붉어지는 하늘 아래에서 잔뜩 나무를 짊어진 초자(樵子) 한 명이 길가에서 우물쭈물하며 이들을 맞이한다.
“그저 지나가는 길이니, 놀라지 마시지요. 잠시 물러서 있으면, 별일이 없을 겁니다.”
“···예, 나리.”
“혹, 이 부근에 못 보던 산채가 생기진 않았습니까? 아님, 학사의 복장을 한 수상한 이를 봤다거나.”
사내들 중 가운데에 서 있던 한 명의 사내가 그에게 던지듯 말을 물었다.
오가며 칼 찬 이를 보면 겁을 먹는 이들이 많은 게 이 시대의 진리.
초자는 적당히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며 사내의 눈을 피한 채 답을 들려줬다.
“모···모릅니다요···.”
긴장한 탓인지, 짧게만 나오는 그의 답이었다.
“음. 실례했습니다. 가던 길, 가시지요. 앞쪽 삼나무 부근 비탈에 길이 험하니, 조심하시고.”
“가, 감사합니다···요.”
무사의 마지막 말이 따뜻해서일까. 초자는 어색한 웃음으로 고개까지 꾸벅 숙이고는 자신의 길을 나선다.
무사들을 뒤로하며 안도의 한숨도 작게나마 들려오는 기분. 하지만.
– 처억.
“멈추거라.”
이내 그에게 충고를 건넸던 무사의 검집에, 초자의 걸음이 막히고 만다.
“어, 어찌···?”
잔뜩 얼굴에 당황을 묻히며 뒤를 돌아보는 초자. 그는 앞에서 살기가 가득한 눈빛을 뽐내는 무사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무사는 씨익. 하며 살벌하게 웃더니.
“찾았다.”
!!
하는 간단한 말만을 들려줬다. 그의 손이 곧장.
– 꽈악.
사내의 멱살을 잡고는 뒤에 자리한 커다란 나무로 향했다.
– 쿠웅!
“왜, 왜 이러십니까요! 저, 전 평범한···!”
“구양방에서 탈출했을 때는 그게 끝인 줄 알았겠지? 이렇게 불린다더군, 서 학사. 라고.”
“···마, 말도 안 되는···!”
“이러면 조금 말이 되겠나?”
– 쩌저저정!
사내는 이리저리 발버둥을 치는 초자를 잡은 손에서 쩌저정! 소리를 내는 차가운 기운을 뿜기 시작했다.
초자의 눈이 더욱 커지며, 발버둥이 줄어들었다.
“하, 한···기?”
“이제야 날 알아보겠나? 좋은 별명을 주셨더군. 술 단지라고.”
초자가 어찌 단방에 한기를 알아볼까. 그의 말은 제법 많은 걸 사내에게 흘려준 듯 보였다.
사내는 짙었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며 살벌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오, 오해가···!”
“오해라? 앞에는 비탈도 없고 이 산에는 삼나무도 자라지 않는다. 서 학사. 네놈의 등에 찬 나무 역시 삼나무구나. 이 산에서는 자라지도 않는.”
“······.”
– 와르르르륵.
사내의 말이 뱉어지자, 가만히 서 있던 다른 삿갓의 사내가 곧장 초자의 지게를 풀어 버린다.
삼나무만이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 앞선 사내의 말이 옳음을 증명해 보였다.
“딱 보름이 걸렸구나.”
오늘은 항주의 석가장, 그리고 그 석가장의 주루인 석호루가 습격당하고 보름째 되던 날.
늦지 않게. 또 적당히. 암빙대의 대원들이 이 학사란 이를 찾아낸 참이다.
“···쯧.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포기한 걸까.
초자는 잔뜩 힘을 줬던 몸을 일시에 힘을 풀고 축 늘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잔잔한 달관만이 그의 얼굴을 가득 채웠다.
“허나, 후회는 없다. 흥. 보름이나 걸렸다는 말을 하거라. 무공 하나 익히지 못한 학사 하나 잡는 것에.”
“뻔뻔한···! 최소한 잘못했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하는 게 아니더냐?”
“하면? 그런 말을 하면, 살려는 주고?”
– 꾸욱.
초자, 아니. 학사가 뱉은 말에 그의 멱살을 잡은 사내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떨리는 사내의 손을 보고는 학사는 비릿하게 웃어가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 그의 입이다.
“네놈 탓이니라. 네놈의 이름이 유명해진 탓! 그 이름으로 온갖 술을 세상에 내어놓은 탓! 그 탓에 네놈은 이름을 얻고 주변인은 목숨을 잃은 것이다!”
발악이다. 가는 길, 마지막에 뭐라도 뿌려보자는 하나의 발악. 사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것과 감정은 늘 다른 법. 혹시나 흥분하는 건 아닐까.
아니. 뒤에선 모든 이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라고. 잔잔하게 뿜어지는 한기가.
사내의 심법이 작용하며 냉철함이 자리했음을 천천히 표하고 있었다.
현천한빙심공이라 불리는 심법은 유독 격해지는 감정이 찾아오면 이리도 냉철하게, 한기를 뿜게만 만든다.
“나 역시 그 이름 몇 글자 세상에 새겨보고자 한 일이니라! 원래 세상이 그렇지 않더냐?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다! 어찌, 그 일을 억울해하리! 내 가더라도 무림사에 굵은 발자국 하나 남기니! 화산이 자랑하는 초절정의 무인 진효풍을 움직여 남건삼흉을 죽이고 개방을 속였다! 후회는 없느니라! 크하하하하하!”
그걸 모르는 이는, 학사라 불리는 초자밖에 없었을 뿐이다.
“네놈의 이름 따위 누가 기억할까.”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네놈도 잊지 못할 거고! 구양방의 군사였던 나, 서···시···!”
– 서겅! 슷!
그의 말이 몇 번이나 더 이어지던 중. 정환의 뒤에 선 한 무사의 검이 빛을 뿜는다.
그대로 핏줄기를 허공에 뿌리는 한 무사의 검. 검이 검집으로 돌아오자, 정환의 삿갓에는 핏빛 난이 그려져 있다.
정환은 그저 고개만을 끄덕이며 무사에게 잘했다는 의사를 전했다.
석호루 습격에서 목숨을 잃은 한 호위 무사의 형제라던 다른 무사의 일검이 멋들어지게 빛을 뿜은 참이다.
서 학사라 불리던 이는 자신의 이름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만다.
– 파닥! 파닥!
“읍···! 윽···! 읍!”
무사의 검이 부족했던 걸까. 바닥에서 파닥이는 서 학사는 생각보다 깊게 붙은 명줄로 눈을 움직였다.
이건 검이 부족한 게 아닌 멋들어지게 들어간 것. 정확히 소리를 내는 부분만을 베어낸 결과가 이렇게 보여진다.
정환은 그 무사에게 눈빛을 보내 하나의 의사를 더 전달한다. 무사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학사의 목소리를 앗아간 검을 다시금 뽑아 들었다.
그대로 그의 사지 힘줄을 모두 잘라버린 무사였다.
“읍!!!!읍!!!!으···읍!”
“평생 병신으로 살거라. 눈으로 보거라. 귀로 듣거라. 네 이름이 전 중원 어디에도 남겨지지 않는걸. 넌 말로도 붓으로도 네 이름 석 자 어디에도 남기지 못할 것이니.”
“으으으읍!!!”
다시는 붓도, 아니 그 무엇도 손에 쥐지 못할 거다. 이게 석가장이, 정환이, 또 쓰러진 누군가의 가족이 주는 형벌.
다시는 그 이름도. 마지막까지 비릿하게 웃어가며 만족했던 그 일도.
학사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할 거다. 정환과 개방, 석가장이 이 역시 지워 버릴 테니까.
그는 역사 속에서 묻혀가는 패배자인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마주해야 할 거다.
그것도 아주 비참하게.
정환은 그제야 뒤로 돌아서 학사에게 자신의 넓은 등을 보여준다.
제법 따르는 이들이 많은 정환의 모습. 삿갓을 눌러쓴 모습이 유쾌해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돌아갑시다. 항주로.”
맺었던 모든 걸 풀어낸 이의 모습이 가볍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