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prison guard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드라이어드의 마을 (1)
다그닥!
다그닥!
마차를 타고 얼마나 움직였을까.
마부석에 있는 마부가 침묵을 깼다.
“마을이 보입니다.”
하품을 내쉬며 기지개를 켠 뒤, 커튼을 치우고 작은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언덕 위에 있는 거대한 나무.
그 밑에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사는 마을이 있었다. 주변엔 숲을 태워 만든 넓은 밭이 있었다.
제페토 마을.
게임에서 봤던 일러스트와 똑같았다.
마차가 마을 초입에 도착했고, 마부에게 돈을 건넨 뒤 마차에서 내렸다.
“수고하셨습니다.”
가끔씩 텔레포터를 이용해서 이동할 수 없는 지역이 있는데, 제페토 마을도 그중의 한 곳이었다.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 마차를 타고 올 수밖에 없었다.
“으으!”
피톤치드 향기를 맡으며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켰다. 잠들어 있던 몸과 머리를 깨우며 주위를 둘러봤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
거리를 오고 가는 모험가들.
외진 곳에 있는 마을치곤 사람이 많았다. 북적거리는 거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누군가가 다가왔다.
검은 수염이 인상적인 중년 남성.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제페토 마을을 이끄는 촌장이란 건 알고 있었다.
“의뢰를 받고 오신 분입니까?”
“예.”
“저 길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촌장이 가리킨 손끝에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인 후,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정면에 보이는 언덕.
그 위에 보이는 거대한 나무.
-저 나무를 베어 주시는 분께 이 포상금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촌장은 저 나무를 없애고 싶어 했다.
“베른 대륙의 10대 미스터리 중 하나였지?”
일명 ‘베이지 않는 나무 퀘스트’.
제페토 마을에 도착하면 주어지는 기본 퀘스트지만, 저 나무를 베는 데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도끼를 낀 상태에서 평타로만 나무를 쳐야 하는데, 체력이 얼마인지 알려 주지 않다 보니.
대부분 금새 포기를 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가장 오랜 시간 도전했던 사람이 1년 동안 쉬지 않고 나무를 쳤던 기억이 났다. 물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한참 뒤에 시간이 흐르고.
게임사의 공식 설정집을 통해 저 나무가 이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 나무 같은 존재이자, 실제로 드라이어드의 영혼이 깃들어져 있는 나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베이지 않는 나무 퀘스트를 도전했지만.
끝끝내 아무도 성공하지 못하면서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그런 미스터리를 내 손으로 풀 줄은…….”
버닝헬 패치 후, 다크니스 세븐에 관련된 히든 퀘스트를 깨다가 이곳에 다시 온 적이 있었다.
필드 보스 몬스터.
타락한 드라이어드의 여왕.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이 퀘스트였고, 그 과정에서 저 나무를 베어 낼 방법을 알게 됐다.
그리고 저 나무를 베게 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아이템.
내겐 그게 필요했다.
“일단…… 재료부터 구해 볼까.”
언덕을 따라가던 길에서 왼쪽에 있는 숲으로 방향을 꺾었다.
* * *
재료를 구하다 보니 해가 금방 저물었다.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잠시 자리에 앉아 재료들을 집어 들었다.
달빛을 머금은 돌.
천 년 된 고목의 나뭇가지.
잿빛 덩굴줄기로 만든 끈.
제페토 마을 근처에 있는 특별한 장소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
문라이트를 꺼내 돌에 구멍을 내고, 한쪽 면을 날카롭게 다듬었다. 그다음 나무를 구멍에 끼운 뒤.
끈으로 돌돌 감았다.
[띠링!] [아이템을 제작하셨습니다.] [정령의 힘이 담긴 도끼]-드라이어드의 영혼이 깃든 나무를 벨 수 있다.
“됐다.”
이 특수 도끼가 있다면 언덕 위에 있던 거대한 나무도 벨 수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도끼를 챙겼다.
유난히 높게 솟아오른 나무 덕분에 길을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걸음을 옮겨 나무가 있는 언덕을 올랐다.
하늘에 뜬 찬란한 달빛.
나무를 베기 위해 언덕을 올랐던 용병들은 전부 잠을 자러 갔을 시간.
언덕에는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가 고고하게 서 있었다. 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자 나무가 자세히 보였다.
몸통 곳곳에 있는 도끼 자국.
바닥엔 도끼질에 떨어진 나무껍질이 쌓여 있었다.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무에서 슬픔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후우.”
왼손을 뻗어 나무에 가져다 댔다.
‘죽여 주세요.’
게임에서 보았던 타락한 드라이어드 여왕은 자신을 죽여 주길 바랐다.
그 누구보다 인간을 사랑했던 여왕.
그녀는 인간이 이 터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언덕 아래에 있는 숲을 내주었고, 숲에 있는 과일을 양식으로 내주었다.
하지만.
여왕은 인간에게 배신을 당했다.
‘피노키오…….’
울분에 찬 목소리로 내뱉었던 이름.
다크니스 세븐 소속의 한 명으로 거짓의 저주를 가지고 있는 자였다.
내가 가지려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선.
그 녀석도 잡아야 했다.
“이번엔 내가 복수해 주지.”
오른손에 쥔 도끼를 들어 올려 나무를 향해 휘두르려고 하는 찰나.
-그 도끼는 어디서 난 거죠?
맑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차가운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익숙한 목소리.
“여왕인가?”
-좋은 목적으로 온 것 같아 보이진 않군요.
나무 주위로 작은 돌풍이 일어났다.
바닥에 있던 나무껍질이 바람을 따라 나무 주위를 맴돌았다.
일순간 바람이 사라지고.
분홍색 머리카락과 나무껍질로 만들어진 옷을 입은 작은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라이어드를 이끄는 여왕.
“매화.”
“제 이름까지 알고 있다니…….”
매화가 눈살을 찌푸리며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대로 있으면 불가피한 충돌이 일어날 터.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고 양손을 들었다.
이 도끼를 만든 건 어디까지나 여왕을 불러내기 위함이지, 정말 나무를 쓰러트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거래를 하고 싶은데.”
“당신의 정체부터 밝히시죠.”
이럴 때 써먹기 좋은 게 있다.
정화의 힘을 끌어 올려 불사조의 선택을 받았다는 걸 보여 주었다.
“이러면 신원은 보장된 건가?”
“아니요. 아직 부족해요. 정령의 도끼를 만드는 법은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드루이드 출신 가문의 비고에서 발견했어.”
드루이드.
드라이어드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직업으로, 동물을 조종하거나 식물이나 나무를 성장시키는 힘을 사용했다.
“드루이드들은 멸망했을 텐데요?”
마신교의 전쟁에서 몰살당한 드루이드.
그렇다고 그들의 기록까지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남긴 오래된 고서에 적혀 있던 내용을 읽었어.”
의심스러운 눈빛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매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슨 거래를 원하죠?”
“당신의 고민을 해결해 줄게.”
매화가 코웃음을 쳤다.
“제가 무슨 고민을 가지고 있는 줄 알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뭘 원하는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것까지 얘기하면 오해만 더 깊어질 것 같았다.
“이 마을은 드라이어드의 여왕의 보호 아래 커 왔는데, 지금 그 여왕의 목을 치려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나?”
매화가 슬픈 눈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요?”
“어차피 넌 못 움직이잖아.”
언덕 주위에 펼쳐져 있는 결계.
누가 설치한 건지 모르겠지만, 거기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감옥을 만들어 여왕을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그럼 결계를 없애 주세요.”
“없애는 방법은?”
“숲 안쪽에 돌로 만들어진 나무 석상이 있을 거예요. 저주로 물든 나무 석상. 그걸 부수면 결계를 부술 수 있을 거예요.”
“좋아.”
“그런데 쉽지 않을 거예요. 저주 때문에 타락한 드라이어드들이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 테니까.”
“괜찮아. 그만한 대가만 준다면.”
“무슨 대가를 원하는데요.”
“결백의 나뭇가지.”
매화의 몸이 두둥실 떠올라 메마른 나무 꼭대기 위로 올라갔다. 꽃봉오리가 달려 있는 유일한 나뭇가지.
뚝!
그걸 꺾어서 밑으로 내려왔다.
“결계를 처리해 준다면, 당신이 원하는 이 나뭇가지를 드리죠.”
“좋아.”
“단, 조건이 있어요.”
“뭐지?”
“드라이어드를 최대한 많이 살려 주세요.”
“좋아. 그럼 나도 조건이 있어.”
드라이어드 여왕에게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스킬.
자연 친화력을 극도로 올려 주는 힘.
“드라이어드의 축복. 그걸 줘.”
“그렇게 하죠.”
다시 한번 바람이 일어나며 매화가 모습을 감췄다.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챙겨서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목적지는 숲 깊은 곳에 있는 나무 석상.
여왕의 의뢰를 받고 움직이는 건 처음이라 임무의 난이도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 남을 거다.
“가 볼까.”
숲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기척이 느껴졌다. 갑자기 나타난 걸 보면 마법사가 분명했다.
텔레포트 마법.
감각을 끌어 올리고 아라키스의 눈을 발동시켰다. 붉은색으로 변하지 않는 걸 보면 위험한 녀석은 아니라는 뜻.
감각을 끌어 올리며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자세를 잡았다.
부스럭!
뒤에 있는 누군가가 발걸음을 내딛는 소리와 함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았다. 동시에 그림자의 분신을 이용해 상대의 뒤를 잡았다.
찰랑거리는 긴 머리.
달빛에 비친 황금빛 머리카락.
목을 제압하고 검을 등에 겨누었다.
“누구지?”
“그럼 넌 누구지?”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는 찰나. 상대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후끈.
급하게 거리를 벌렸다.
내가 있던 자리가 붉게 타올랐다.
“오. 실력은 좀 있나 봐?”
묘하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천천히 몸을 돌리는 상대. 몸 주위에 퍼트려져 있던 불들이 손에 모이면서 얼굴이 드러났다.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다.
레샤 왕국에서 만난 인연.
매지티아 범죄 단속반 출신.
이자벨.
환상의 숲에서 흑랑을 타락시킨 자를 쫓아다녀야 할 녀석이 왜 이곳에 나타난 거지?
정체를 숨겨야 하나.
아니면 알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뭐?”
이자벨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미간을 팍 찌푸렸다.
“저게 레딘이라고? 구라 치지 마.”
쯧.
이자벨과 계약한 적미호.
그 녀석이 내 몸에 있는 불사조의 기운을 읽어 낸 모양이다.
정체를 숨긴 의미가 없어졌다.
변신을 풀고 원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다.”
“뭐야! 진짜네?”
이자벨이 다가와 내 등을 열심히 후려치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여기서 보니까 진짜 반갑네. 잘 지냈냐? 네 소문은 잘 들었다. 이번에 마그네스 수장을 잡았다며?”
“넌, 흑랑을 타락시킨 놈 잡았어?”
“그 녀석 잡으러 여기 온 거야.”
“범인이 이곳에 있어?”
“어. 피노키오라고. 다크니스 세븐 소속인 것 같은데, 추적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돼서 이 일대를 뒤지던 중이야.”
피노키오?
그 녀석이 지금 여기 있다고?
원래라면 이곳에서 결백의 나뭇가지를 얻고, 피노키오를 찾아 그 녀석이 가지고 있는 저주를 얻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일이 간단해졌다.
피노키오도 잡고, 결계도 해결하고.
“나도 할 일이 있는데, 오랜만에 힘 좀 합쳐 볼까?”
내 제안에 이자벨이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내밀었다.
“오토 콜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