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839)
839화
미친 분신은 한심하다는 듯이 제자를 쳐다보았다.
원래 마법사가 마법을 개발할 때 자신의 삶에서 의미 있었던 상징들을 넣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마법사가 새로이 만들어 낸 마법은 어떤 음유시인의 노래보다도 더 길고 뚜렷하게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 흔적에 조금 더 의미 있는 상징을 담는 건 마법사로서 당연한 일이리라.
‘딱히 마법이 음유시인의 노래보다 더 길고 뚜렷하게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 것 같은데.’
옛 노래 대부분이 사라졌다지만 그건 마법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었다.
아주 인기 좋은 노래는 현 제국 시절까지 흘러오고 있고…
‘내 생각에, >에인로가드 너무 좋다네> 노래는 향후 천 년을 넘어서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한은 현실을 지적하는 대신 아첨을 준비했다.
이미 미친 분신이 한심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데 더 도발해서 좋을 게 없었다.
“아하. 그런 거였군요. 몰랐습니다. 좋은 나무였던 모양이네요.”
왕족이 아직 앳되었을 때부터 좋은 친우였지.
가이난도라면 ‘나무가 어떻게 친구에요’라고 했겠지만, 이한은 이해했다.
가끔 움직이지 않은 존재들이 움직이는 존재보다 더 좋은 친구일 때가 있는 법 아니겠는가.
이한에게 제국 금화가 그렇듯 미친 분신에게는 저 덴드로비움이란 나무가 그랬으리라.
‘놀랍다. 해골 교장에게도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단 말인가?’
어쩌면 나무여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나무는 최소한 멍청한 소리는 하지 않을 테니까.
“혹시 지금 그 나무가 남아있습니까?”
이한은 만약 에인로가드에 나무가 남아 있다면 찾아가서 메아리의 돌로 보여줄까 싶었다.
아무리 미친 분신이라도 어렸을 때 친구를 보면 좀 기분이 나아지지 않겠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천것. 나무는 불타버렸으니.
아첨하다가 졸지에 역린을 건드린 이한은 기겁했다.
“…죄송합니다.”
천것 네가 불태웠나? 필요 없는 사과는 하지 말도록.
다행히 미친 분신은 무례한 질문을 했다고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갑자기 생각에 잠긴 것처럼 묵묵히 어딘가를 응시했다.
“괜찮으십니까?”
그래. 옛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기묘한 일이군. 원래 잘 떠올리지 않는데.
상대가 기묘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원래 해골 교장 본인 자체도 살아있지 않은 리치인데다가 미친 분신은 거기서 또 갈라져 나온, 일종의 사념체 같은 존재 아닌가.
피와 살과 뼈에 깃든 영혼과 욕망으로 움직이는 생명체가 아닌 법칙과 원리로 움직이는 존재니 과거를 떠올릴 일 자체가 드물었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원래 늙으면 옛 생각이 많아진다고 들었다.’
분명 용들에게 마법을 배웠는데. 흐음… 용들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군. 혹시 천것 네가 아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상상치도 못한 해골 교장의 마법 스승에 이한은 경악하며 대답했다.
용들의 이름도 모른단 말이냐? 하나도? 아무리 야만스러워도 그렇지.
“요즘은 그… 용 보기가 힘듭니다. 대부분의 용들이 떠나버렸다고 들었습니다.”
이한이 드래곤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용들이 급격한 감소 추세에 있는 멸종위기종이란 건 잘 알았다.
수십 마리가 넘게 날아다니던 고대 시절과 달리 요즘은 제국 황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야 한 마리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것이다.
그리고 당장 그 한 마리도 비열하고 사악한 마법사들만 아니었다면 바로 육신을 벗어던지고 다른 차원으로 훌훌 떠나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정말 놀랍군. 설마 용들에게 마법을 배웠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해골 교장이 젊은 시절부터 비범한 대마법사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마법의 사문이나 스승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워낙 오래되고 신화적인 인물이라 그냥 하늘에서 해골인 채로 뚝 떨어졌다고 해도 이한은 ‘역시 그렇군’하고 납득했을지도 몰랐다.
이한은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해골 교장은 대체 어떤 과거를 가졌길래 저런 비틀린 괴물이 되었단 말인가?
생각해보니 미친 분신은 해골 교장의 과거에 대해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증인이었다.
데스 나이트들 중 가장 늙은 기사 상대로도 과거를 조작할 수 있는 해골 교장이었지만, 미친 분신 상대로는 그게 불가능했다.
‘좋아.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만약 해골 교장의 과거 내용 중에 약점이라도 있다면 올해 겪을 고난에 대한 소소한 보상이 되리라.
“원래 스승님 시절에는 용들에게 마법을 배우는 게 일반적이었습니까?”
미친 소리 같았지만 원래 풍습은 시대마다 다르지 않은가.
지금 제국 마법사들이 에인로가드에서 배운다면 고대 마법사들은 용의 소굴에서 배웠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용의 소굴에서 먹이로 지내면서 배웠거나…
그럴 리가. 원래 용들은 필멸자들에게 마법을 전수해주지 않는다.
“그럼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배우신 겁니까?”
자격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지.
“아, 예.”
심심하면 자신이 얼마나 고귀한 핏줄이고 명예로운지 지저귀는 미친 분신인 만큼 이한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용들이 좀 속은 것 같다. 저런 사람한테 마법을 전수하다니.’
가이난도나 유 모 선배, 아 모 동급생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황족이나 왕족이라고 해서 딱히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면 다른 왕족들은 마법을 배웠습니까?”
천것. 자격이라고 했지 왕족의 핏줄이라고 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렇게 아둔하고 저능하면 어쩌자는 거냐.
” 예? 그러면 어떤 자격입니까?”
말 그대로 명예롭게 마법을 쓸 자격이지. 이게 어렵나?
“아닙니다. 이해했습니다.”
전혀 이해하지 못했군.
“!”
속마음을 들킨 이한은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미친 분신은 답답한 제자에게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천것. 네가 일국(一國)의 왕자라고 생각해봐라. 작고 작은 왕국의.
“예.”
인접한 타국의 군대는 막강하다. 마갑(魔甲)과 마창(魔槍)으로 무장한 중갑병 군단, 마탑에 반신을 가두고 그 힘을 사용하는 전투 마법사 부대… 너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삼왕국 시절 이야기인가?’
이한은 제국 역사책에 적힌 옛이야기들을 떠올렸다.
길고 긴 대륙의 역사 중에는 기록되지 않고 소실된 시대도 있고, 기록으로 남아 있는 시대도 있었다.
그 중 삼왕국 시절은 이런 시대들 중에서도 꽤나 까마득한 고대에 속했다.
사실 삼왕국 시대라고 해서 정말로 왕국이 세 개만 있진 않았다.
시대의 최후까지 살아남은 강국이 세 개라는 거지, 기록도 남지 않은 수많은 군소 왕국들이 즐비했다고 책에 적혀 있었다.
“열심히 마법을 익히고 그 힘으로 왕국의 방어를 강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침략해야 한다는 것보단 낫지만 틀렸다. 그래서야 용들에게는 배울 수 없겠군.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 혹시 먼저 쳐야 한다는 겁니까?”
‘역시 해골 교장이군.’
생각해보니 해골 교장에게 딱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미친 분신은 더더욱 경멸 섞인 시선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아니오.”
왕족은 반드시 마법의 극의를 깨우쳐 대륙의 유혈과 상흔을 없애버리겠다고 말했다. 용들은 그 맹세로 자격을 인정해줬고…
“…!”
예상치 못한 대답에 이한은 정말로 크게 놀랐다.
생각해보니 고나달테스의 영락 때 이미 한번 들었는데도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답을 알고 있었는데도 상상하지 못하다니?’
그만큼 평소 해골 교장이나 미친 분신과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용들을 속인 건가?’
혹시라도 용들을 속였다고 생각하진 마라. 용들은 속지 않는다. 천것.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무엄한 생각을 하겠습니까?”
뜨끔한 이한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스승님. 마법이 아무리 지극한 경지에 도달하더라도 그런 게 가능합니까?”
당장 고나달테스의 영락도 결국 실패한 연구라고 들었다.
그리고 만약 다른 시도가 성공했다면 지금 대륙이 이런 모습일 리 없었다. 특히 에인로가드는 진작에 사라졌어야 했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
‘힘든 게 맞군.’
원래 미친 분신의 성격이라면 무조건 가능하다고 말했을 텐데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반쯤 힘들다고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역시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난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 이야기에서 중요하지 않다. 왕족은 용들 앞에서 맹세했고, 용들은 그 맹세로 말미암은 자격을 존중했지. 덕분에 마법을 배울 수 있었다… 왕국은 멸망했지만…
“과연…예?”
?
“방금 뭐가 멸망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왕국이 멸망했다고 했다. 저번부터 생각한 거지만, 천것 너는 귀에 문제가…
“아니 제대로 들었는데 이해를 못 한 겁니다.”
뇌에 문제가…
“왕국이 왜 멸망합니까? 용들의
마법을 익혔잖습니까.”
왕국의 방어를 위해 마법을 배우겠다고 했나, 대륙의 유혈과 상흔을 없애기 위해 배우겠다고 했다. 천것. 대체 언제쯤 영리해질 생각이냐?
‘이건 내 지능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상대의 이야기가 너무 터무니없어서 그렇지 이한의 이해력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이한은 최대한 침착하기 위해 노력하며 정리했다.
“그러니까 스승님께서는 용들 앞에서 맹세하고 마법을 배웠고, 그 때문에 왕국이 멸망하는 데도 쓰지 않으신 겁니까?”
조금 틀렸군. 마법을 배우고 돌아왔을 때 왕국은 이미 멸망해있었다.
미친 분신은 담담하게 설명했다.
대륙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용들을 찾아가 마법을 배우고 돌아왔을 때, 왕국은 이미 멸망한 뒤였다.
동쪽의 적대국을 신경 쓰느라 남쪽의 우호국의 기습을 받아 순식간에 멸망한 것이다.
남은 건 잿더미가 된 왕궁터와 노목(老木)의 잔해뿐.
“설마 복수도 안 하셨습니까?”
하지 않았지.
“어째서 말입니까??”
복수한다고 멸망한 왕국이 부활하진 않으니까!
“……”
이한은 미친 분신이 지랄하던 때보다 더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괴팍한 마법사처럼 마법을 전수받으라고 사악하게 구는 게 더 인간적이지, 저건 너무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니. 사람이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한이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만약 마법 배우고 돌아왔는데 자기 왕국이 멸망했고 앞에 적국의 군대가 있다면 어떤 짓을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왕족의 왕국도 여러 왕국을 멸망시켰다. 왕족의 왕국을 멸망시킨 왕국도 곧 멸망했지. 마법사라면 그런 의미 없는 굴레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건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천것.
“그 건설적인 선택이 대체?”
말했듯이 마법의 극의를 깨우쳐 대륙의 유혈과 상흔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왕족은 실패했지만, 천것 네가 훌륭한 제자가 된다면… 그리고 천것 네가 그보다 더 훌륭한 제자를 둔다면. 우린 언젠가 도달할 수 있겠지.
“…그냥 5서클 10개 익히면 안 됩니까?”
고대 대마법사의 터무니없는 기대에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헛소리를 내뱉었다.
* * *
‘안 되면 안 된다고 할 것이지.’
이한은 투덜대며 발걸음을 옮겼다.
미친 분신은 이한의 헛소리에 극대노해서 한 시간 동안 온갖 핀잔을 퍼부었다.
차라리 그냥 욕을 하지!
“앗. 가르시아 교수님.”
“이한 학생. 어서 와요. 그런데 라게사 님은? 이한 학생 뒤를 따라다니시면서 강의를 구경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이 혼자 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교수들 사이에서 늙은 해적이 워다나즈를 따라다니며 강의를 구경하고 있다고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라게사가 올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해놨는데?
“…급한 일이 생기셨다고 하셨습니다.”
“…설마 제 강의는 재미없다고 빠지신 거 아니죠?”
깜짝 놀란 제자의 눈빛에 가르시아 교수는 깊게 상처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