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881)
881화
의아했지만 이한은 일단 수긍했다.
아무래도 미친 분신이 거인에 대해 더 잘 알지 않겠는가.
이한이 거인에 대해 아는 건 에인로가드에 들어와서 만난 게 전부였고, 미친 분신은 생전 수많은 거인들을 만나왔을 테니…
“가시지요.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공방 안에서 준비를 마친, 달카드 가문의 선조이자 옛 삼왕국 시절의 귀족인 인타렌달스가 걸어 나왔다.
그 뒤에는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들이 여럿 대기하고 있었다. 거인들에게 내줄 협상 대가인 모양이었다.
조우린도 갈래!
“고귀한 혈통의 후예시여. 거인들은 거칠고 사나운 자들입니다.”
그럼 이한은 왜 가는 거야?
“…제자라면 이 정도는 해낼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골 교장이 본인 앞에 나타나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거만한 태도를 유지하는 미친 분신이 이렇게 쩔쩔매는 것도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한은 인타렌달스를 따라서 걸어나가려다가 멈추고 구경했다. 이런 걸 또 언제 보겠는가.
“뭐하고 있나?”
“수레의 물건을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이한은 재빨리 변명했다. 그 변명에 인타렌달스가 흐뭇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역시 고나달테스가 제자로 고른 마법사답게 보통 세심한 게 아니었다.
조우린도 갈래! 조우린도 갈래! 조우린도 갈래!!
“출발해라.”
조우린이 좌우 롤링 동작을 준비하자 미친 분신은 서둘러 제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에안두르데가 슬쩍 물었다.
“저도 따라가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안 돼. 위험해.”
“……”
에안두르데는 어이가 없었다.
그럼 본인은 왜 순순히 간단 말인가?
* * *
“거인들이 그렇게 위험합니까?”
“아. 거인들… 아무래도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인타렌달스는 옛 기억이 떠올랐는지 탄식을 내뱉었다.
삼왕국 시절, 거인들은 파괴와 약탈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났던 용병 종족이었다.
어제는 공성 측에 붙어 성벽을 박살냈던 거인들이 오늘은 수성 측에 붙어 공성 병기를 박살냈다.
황금만 주면 거인들은 어떤 의뢰도 충실히 해냈고 가끔은 이 전쟁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산맥의 거인들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한은 생각보다 살벌했던 거인들의 과거에 당황했다.
물론 그 때 거인들은 지금 산맥 거인들 선조의 선조의 선조 정도는 되겠지만, 그래도 충격적인 건 충격적인 거였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왕국도 쇠락하고 영웅도 노쇠하듯 모든 것이 바뀌기 마련이지요. 거인들의 분노가 조금 길들여졌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잊으시면 안 됩니다. 거인들의 가슴 속에는 불씨가 잠들어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 불씨가 맹렬하게 피어오르는 순간, 거인들은…”
-우리 찾았나?
“!”
봉우리 뒤쪽에서 커다란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거인들이었다.
인타렌달스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손짓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수레들을 덮은 천이 흩어지고, 거인들에게 바칠 눈부신 황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한은 그 황금이 뿜어내는 빛을 홀린 듯 쳐다보았다.
‘아니. 대체 달카드 가문이 유산을 얼마나 잃어버린 거지?’
미친 분신이 그 사이 재산을 확보했을 리는 없을 테고 오직 인타렌달스가 갖고 온 황금일 터.
달카드 가문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할 것이다.
가문의 선조가 후손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대신 이상한 고대 대마법사에게 투자하고 있었으니…
-이게 뭐냐?
“?!”
그러나 거인들은 심드렁했다. 산맥파괴양의 젖으로 만든 치즈를 한 입 베어 물더니 거인들이 말했다.
-마법사들 반짝이는 금 좋아한다. 우린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아니…!”
인타렌달스는 옛날과 너무 달라진 거인들의 반응에 당황했다.
황금에 시큰둥해하는 거인들이라니?
마치 인간을 속이는 대신 인간에게 속아서 하인이 된 악마들처럼 비현실적이고 믿기 힘든 모습이었다.
-워다나즈!
퉁명스럽게 이방인을 쫓아내려던 거인들은 이한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나!
-보고 싶었다! 마법사 놈들이 가둬놓은 줄 알았다!
거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웃으며 이한을 반겼다.
-워다나즈 납치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마법사들 형편없다.
-우리들 강하다. 기르는 양도 납치당하게 안 둔다.
“납치당한 적이 있으십니까?”
인타렌달스는 믿기 힘들다는 목소리로 이한에게 말했다. 이한은 어이없다는 듯이 상대를 쳐다보았다.
인타렌달스가 모시는 주인이 아니면 누가 이한을 납치했겠는가!
“…그보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만.”
-따라와라! 안내해준다.
-마침 식사 시간이었다.
“저 식사하고 와서 배부릅니다.”
거인들의 음식을 아는 이한은 즉시 대답했다. 그러자 거인들은 매우 기뻐했다.
-역시 워다나즈, 예절 바르다!
-제일 미운 마법사, 와서 먹을 거 달라고 한다! 따라와라!
거인들이 쿵쿵거리며 앞장서자 인타렌달스는 그제야 충격에서 회복됐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거인들이 실로 많이 바뀌었군요… 아무리 시간이 만물을 바꾼다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흠. 그렇습니까?”
이야기를 듣던 이한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혹시 옛날에는 악마가 더 사악했습니까?”
“더 사악했다니요?”
“그러니까… 제가 아는 악마들은 상당수가 계약에 속아서 영지의 노예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서를 보면 훨씬 사악한 느낌이 강해서…”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저도 에인로가드를 방문했을 때 크게 놀랐었지요.”
인타렌달스는 이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 건 왕국과 거인들만이 아니었다. 악마들도 많이 달라져있었다.
삼왕국 시절 악마들은 그야말로 공포와 재액의 상징이었다.
한 번 악마가 나타나면 그걸 토벌한다고 끝나지 않았다. 악마에게 속아서 넘어간 악마숭배자들과, 그 악마숭배자들에게 포섭된 하수인들까지.
지역 자체가 오염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에인로가드를 포함해 대륙의 마법사들은 생각보다 쉽게 악마들을 역으로 공략해 부려먹고 있었다.
삼왕국 시절 악마들에게 당한 희생자들이 봤다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으리라.
“시간은 왕국을 쇠락시키고 영웅을 노쇠하게 만들지만 그 지혜는 축적시키기 마련인가 봅니다. 악마들을 이렇게 다루는 걸 보니.”
“혹시 교장 선생님이 비법을 퍼뜨린 거 아닙니까?”
이한은 조심스럽게 의문을 던졌다.
가설이긴 했지만 꽤 설득력 있는 가설이었다. 해골 교장처럼 옛날부터 살아온 사람이 드물 뿐더러, 그런 사람 중에 저렇게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사람은 더더욱 적지 않겠는가.
‘그리고 악마 부리는 걸로 최대 이득을 보고 있는 당사자기도 하지.’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악마 노예를 수십 수백 부리고 있는 걸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해골 교장이 조금 수상했다.
물론 인타렌달스는 미친 분신을 주인으로 모시고 해골 교장 본인을 부정하는 입장인 만큼 이런 질문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찬양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흐음…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물론 현 에인로가드의 영주가 주제넘게 주인님을 참칭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주인님의 분신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실로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겠군요…”
“예? 수백 악마들을 부리는 게 말입니까?”
“아닙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그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대륙에 악마들을 상대하는 비법을 퍼뜨린 걸 말하는 거지요.”
“아.”
이한은 살짝 머쓱해졌다.
‘하긴 그건… 업적이긴 하군…’
불치병의 치료법을 개발해서 퍼뜨린 것처럼, 악마들을 속이는 비법을 잘 정리해서 퍼뜨린 것도 높은 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수백 악마를 거느리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거인도 그렇고 악마도 그렇고 참 많이 변하는군. 당연한 일이지만.’
이한은 새삼 해골 교장 같은 고대의 인물들이 말하는 옛날과 현재의 차이점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도 아직 꾸준히 심술을 부리는 해골 교장의 끈기도 새삼…
“참. 인타렌달스 님. 한 가지만 더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아르나란 별이 그렇게 위험한 별입니까?”
기본적으로 마법사의 계약은 접근성이 좋은 정령으로 시작해서 악마나 다른 차원의 종족들 정도에서 끝나지 별까지는 잘 가지 않았다.
당장 예지 마법 학파 쪽에서도 난이도가 높고 위험해서 한정적으로만 다루는데, 굳이 별과 억지로라도 계약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천상 마법은 비교적 책의 숫자도 적고 이한도 미리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왜 아르나란 이름만 들어도 저러는지 파악이 힘들었다.
“아르나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인타렌달스는 아까 이한과 미친 분신의 대화를 못 들었는지 이유를 물었다.
“…우연히 이름을 들어서 말입니다.”
이한은 괜히 계약했단 말을 했다가 아까와 비슷한 반응이 나올까봐 둘러댔다.
“흐음. 우연히 들을 이름은 아닙니다만… 일단 객성 아르나는 위험한 별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광의 별이지요.”
“앗. 그렇습니까?”
이한은 반색했다.
계약 이후 자꾸 부정적인 반응만 나와서(미친 분신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긴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마음이 불편했는데, 처음으로 좋은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예. 왕국을 파괴하고 왕관을 녹이는, 개혁자의 별입니다.”
“……”
이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짧은 순간 제국 신문에 커다란 글자로 박힐 기사 제목이 떠오른 것이다.
…워다나즈 가문의 후예, 제국내란죄 혐의로 ‘충격’… 새 황조를 꿈꾼 것으로 밝혀져…
…황족들을 교묘하게 속인 야심가, 본색을 드러내다!…
“이게 어떻게 위험한 별이 아닙니까???”
“예? 주인님도 계약하신 별입니다. 위험한 별이 아니라 영광의 별이죠.”
인타렌달스는 진심으로 놀라서 말했다.
고대 점성술과 천상 마법의 개념으로 보면 객성 아르나는 대륙이 혼란스럽고 비통에 빠졌을 때 영웅을 위해 나타나는 별이었다.
가장 강렬하게 타오르는 빛으로 영웅의 앞길을 돕는 별!
선택을 받은 영웅 또한 그 별처럼 찬란하게 타오르며 대륙을 위해 일신을 던졌다. 별의 선택을 배신하지 않은 것이다.
“……”
이한의 얼굴은 더 이상 굳어질 수 없을 만큼 굳어졌다. 석화 마법을 걸어도 이 정도로 굳어지지는 못할 것 같았다.
“…대륙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데 저런 별이 나타나서 계약하면 그 사람은 뭡니까?”
“흐음. 글쎄, 그건 어려운 가정입니다. 하지만…”
인타렌달스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최대한 가정해보려고 노력했다.
별과의 계약이란 게 워낙 여러 해석이 가능하고, 결과가 나온 뒤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았기에 전문가가 아닌 인타렌달스에게는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그래도 주인의 제자가 이렇게 질문하니 부족한 재주라도 짜내봐야 했다.
“지금은 두 가지 정도가 떠오르는군요.”
“부디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일단 하나는 대륙에 커다란 위기가 곧 닥치고 그 위기를 막기 위해 한 몸 바쳐 희생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만.”
“…다른 하나는요?”
“대륙이 안정적이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천천히 썩어 들어가고 있으니, 자신이 직접 황제가 되려는 찬탈자일수도 있겠습니다.”
“……”
이한은 갑자기 길옆으로 달려가 깊은 골짜기 아래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모여서 이한을 기다리고 있던 거인들은 깜짝 놀라서 달려 나왔다. 그리고는 인타렌달스에게 삿대질했다.
-워다나즈한테 무슨 소리를 한 거냐! 저 착한 워다나즈가 저렇게 욕설을 하다니!
-근데 야차왕이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