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169)
5
초봄의 데뷔탕트에 덴카르트 부인이 참석한다는 소식이 수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번 데뷔탕트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던 캐시디의 차녀 로즈가 그 얘길 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소식에 로즈는 너무 속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덴카르트……. 우리 언니를 실망시킨 것도 모자라서 이젠 나를 들러리로 만들어 버리다니!……,’
사실 이번 데뷔탕트의 주인공은 로즈 캐시디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주인공인데, 가문도, 외적인 조건도 모두 갖춘 내가!
‘아무것도 모를 거야. 촌구석 상단 출신이니까. 기껏해야 돈 세는 것밖에 모르겠지.’
아니면 굽신거리는 게 몸에 배어서 웃음을 살지도 몰랐다.
한 번 인사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하는 자리이니, 귀족들의 예리한 눈을 피해가긴 어려울 것이다.
허술한 티가 날 것이다.
‘첫 댄스 순서도 놓치긴 했지만…… 어디 한번 두고 보라고. 내가 품격 있는 자태로 모두의 눈에 가장 띌 테니까!’
그러기 위해선 기본이 첫 번째 드레스와 중간에 갈아입는 두 번째 드레스였다.
최고급 중에서도 최고급이라 불리는 옷감을 유명 살롱에 맡겼고 액세서리며 작은 보석 귀걸이 하나까지도 전문가들과 함께 엄선했다.
무엇보다 동방에서 유명하다는 진흙을 가져와 얼굴에 빈틈없이 덕지덕지 발랐다.
시녀들은 부작용이라도 나면 어쩌냐고 발을 동동 굴렀지만, 로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소란에 어머니께서 방에 찾아오셨다.
그러나 어머니를 누구보다 잘 아는 로즈는 응원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들뜨지 마라. 덴카르트 공작님께서도 참석하신다니 예의를 갖춰 완벽히 인사하거라.”
“…….”
“그분들께 무례한 짓을 하면 결코 안 된다. 혹여 경거망동한 일이 벌어지거든 엄한 벌을 내릴 것이야.”
귀 아프게 듣는 소리.
캐시디는 은혜를 잊지 않는다, 또 그런 말씀이나 하시겠지.
아니나 다를까.
“캐시디는 은혜를 잊지 않는다.”
어머니는 로즈의 예상대로 케케묵은 말씀이나 해대셨다.
로즈는 한숨을 참으며 얘기를 흘려들으려 했다.
“우리는 덴카르트가 아니었다면 이미 무너져도 한참 전에 무너졌다. 치장보단 고마움을 알아야 어엿한 레이디란다.”
하지만 도무지 이번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다른 날도 아니고, 하필이면 데뷔탕트에서까지 은혜에 감사하라니…….
“……그래서 언니도 집안의 가보급인 그 마법 바위 석판을 공자에게 홀라당 줬잖아요! 우리가 대체 어디까지 더 해야 하는 건데요?”
“얘!”
“됐어요. 이번 데뷔탕트로 훌륭한 신랑감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전 제 몫의 최선을 다할 거예요.”
“……이만 쉬거라.”
덴카르트에 대한 충심과 별개로 어머니는 딸을 사랑했다.
마음이 약해진 어머니가 나가자 로즈는 씩씩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어머니께 괜히 언성을 높이고 화풀이했어……. 속상해.’
하지만 이미 팩이 굳어서 얼굴 근육을 크게 움직이면 안 되었다.
게다가 눈이 부을까 봐 염려되어 울진 않았다. 고작 이런 일로 손해를 볼 수는 없었다.
‘내가 나쁜 짓을 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공작부인을 제치고 가장 눈에 띄면 되잖아.’
그런 각오로 데뷔탕트에 임했다.
데뷔탕트가 열리는 황성 홀의 뒤에는 수많은 대기실이 딸려 있었는데, 로즈가 머무르는 곳은 가장 넓은 곳이었다.
테루아 전통상 가장 높은 가문이 맨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터라 로즈 캐시디는 아직 나가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그동안 꾸민 모습 중에 가장 밝지만, 낯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이건 미리 정해진 것이라 바꾸지 않은 모양이지.’
그녀는 대기실에 오기 전까지 마주쳤던 소녀들을 떠올렸다. 백색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들의 낯은 다들 긴장으로 굳어져 있었다.
다 어린 소녀들이었다.
혼인 후에 데뷔탕트를 치르는 자들도 있었으나, 극히 예외적이었다.
다들 그 예외에 속하는 덴카르트 공작부인이 신경 쓰이는지 미묘하게 굳은 얼굴들이었다.
‘……흥. 분명 주인공이랍시고 가장 늦게 오겠지.’
로즈는 마음을 가다듬으려 해도 속이 배배 꼬이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지금은 한 명씩 차례대로 소개되어 카발리에의 에스코트를 받고 왔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잠깐이라도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주목받을 시점이 있는 것이다. 지금만큼은 다들 소개되는 영애에게 집중을 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로벨리아 덴카르트 공작부인께서 입장하십니다.”
“……?”
로즈는 순간, 자신이 순서를 잊고 나가지 않았었나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대기하는 시녀들의 얼굴에도 당혹감과 의아함이 묻어났다.
이윽고 그녀가 잘 아는 영애들의 이름이 들리고, 마지막으로 캐시디는 제 이름을 들었다.
“로즈 캐시디 영애께서 입장하십니다!”
……어째서?
부모님께서…… 혹시 무슨 수를 쓰셨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분들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럴 분들이 아니었다.
로즈는 당황했으나 이내 곧 표정을 갈무리했다.
생에 한 번뿐인 데뷔탕트이니 남의 생각으로 망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녀답지 않은 실수를 벌이고 말았다.
나가는데 너무 긴장하고 놀라기도 해서 걸음이 꼬여 넘어질 뻔했다.
‘아, 안 돼!’
창백해진 안색으로 휘청거리는데, 무언가가 지탱해주는 것처럼 정자세로 설 수 있었다.
로즈는 안도하기 무섭게 저 멀리서 무언가 번쩍 빛나는 광경을 목격했다.
‘……덴카르트 부인?’
계승식에는 부모님만 참석하였으나, 이미 초상화로 봤던 터라 기억을 했다.
보랏빛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온화하게 휘어지고 있었다. 어둑한 와중에도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마치 괜찮다고, 잘했다고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것만 같았다.
“로즈?”
오늘 그녀가 카발리에로 삼은 셰크먼 공자가 다가와 반응하지 않는 그녀를 불렀다.
눈시울을 붉혔던 로즈는 곧 제 이름처럼 화사하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다음 공식 순서인 오프닝 댄스도 그녀와 셰크먼 공자의 몫이었다.
자고로 테루아 사교계의 전통으로 가장 고귀한 신분이 마지막에 입장하여 맨 처음 오프닝 댄스를 장식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덴카르트 공작부인이 그걸 마다하다니…… 아니면 모르는 건가? 드러나지 않은 다른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사교계 첫 데뷔의 장소는 그 무게감이나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덴카르트 공작부인의 돌발 행동에 가뜩이나 복잡하던 로즈의 머릿속은 터질 것만 같았다.
‘왜…… 이번에도 먼저 춤을 추지 않은 거지? 설마 공작부인이 아직 사교댄스를 모르나??’
로즈는 내내 공작부인이 신경 쓰였으나,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번의 차례가 지나자 덴카르트 공작부인과 공작이 무대에 섰다.
이윽고 두 사람의 춤은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다.
‘와…… 완벽해!’
흠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춤은 군더더기 없이 완벽했다.
공작부인은 키가 상당히 컸지만, 그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긴 팔다리에 어울리게 깔끔하고 유연히 움직였다.
공작의 춤도 무척 우아했으며 아내를 향한 눈빛이 그렇게 달콤하고 다정할 수가 없었다.
“와아…….”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모습에 소녀들이 동경하거나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딸, 동생들의 데뷔탕트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귀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저 공작님 아팠다더니……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잖아?!!’
그들을 흘끔흘끔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전에도 몇 차례는 그녀를 본 사람도 있고, 아닌 자도 있지만 이렇게 공식 석상에서 보는 일은 처음이라 다들 관심을 가졌다.
특히 생각 외로 유순해 보이는 그 미소에 왠지 모르게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 옆의 남자였다.
체격도 위압적인 데다, 무표정인데 눈빛도 싸늘했다.
‘……무서워!!!’
언니는 왜 저런 사람한테 반한 거람?
아무리 생각해도 외모 외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 화사한 금발이며 우아한 이목구비, 도자기보다도 매끈한 피부…….
로즈는 연이어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도대체 평소에 피부에 무얼 발랐길래 흠결 하나 없이 광채가 나는 거람?…….’
평소 피부 관리를 위해 기를 쓰고, 오늘은 곱게 간 진주 가루를 뿌린 로즈의 얼굴엔 패배감이 역력했다.
그래, 아무래도 외모가 전부인 것 같았다.
그리고 로즈는 공작이 어째서 부인에게 반했는지, 전대 공작이 왜 평민을 허락했는지는 더욱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로벨리아 덴카르트입니다.”
어려운 장소에서도 활짝 웃는 저 얼굴을 본다면 언제고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
지금까지 적대적인 생각을 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공작부인은 호감 가는 사람이었다.
멀리서 봐도 선량한 인품으로 보여서 친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실행은 어렵고 마음뿐이었다.
‘……저 사람이 너무 무서워서 가까이 갈 수가 없잖아!!!!’
로즈는 차마 다가서질 못하고 멀리서 흘끔거리기만 했다.
눈에서 흉흉한 기색을 뿜어내는 덴카르트의 공작은 가녀린 귀족 영애가 다가서면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것만 같았다.
이곳 규정상 검이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그런 착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용기 있게 다가섰다.
“저, 덴카르트 공작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