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26)
26
올리버와 대화를 마친 후 복도.
나는 창밖의 요란한 벼락을 보다가 걱정에 잠겼다.
‘우리 도련님 오늘 밤새워야겠네…….’
그에게는 이렇게 천둥이 치거나 폭풍우가 심한 날의 트라우마가 있다.
원작에도 이와 관련된 과거 에피소드가 나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없을 때 집의 창문이 깨졌는데, 그가 제대로 치우지 못해 심한 감기에 시달린 것이다.
‘그때 에드릭은 거의 죽을 뻔했었지…….’
그 후로 에드릭은 비 오는 날, 특히 이렇게 천둥이 치는 날을 두려워했다.
그렇다면, 혼자 둘 수 없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도련님의 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도착한 문 앞에서 나와 교대한 시종 형과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오랜만에 이불에 파묻힌 도련님이 보였다.
웅크린 채 떨고 있나……. 이불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평소보다 큰 보폭으로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가라앉은 목에 힘을 주었다.
“도련님, 저 왔어요.”
바스락, 그를 덮은 이불이 내려가더니 겁에 질린 얼굴이 드러났다.
도련님은 나를 보고도 믿기 어려운지 두어 번 눈을 깜빡이다 물었다.
“……로벨?”
“예, 저예요.”
“……교대 시간이잖아. 어쩐 일이야?”
반가운 얼굴을 하고서 도련님이 물었다. 내 짐작대로 그의 목소리는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울상을 지은 나는 양팔을 교차하여 어깨를 잡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저, 지금 천둥 쳐서 너무너무 무서워요. 오늘 밤만 도련님이랑 같이 자면 안 돼요?”
“……?”
그는 직전보다 더 충격에 빠진 얼굴로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네가 무서워하는 것도 있어? 아니, 그보다 이상한데……라고 의심하는 것 같았다.
“……네 방엔 다른 사람들도 많잖아.”
“다른 침대잖아요. 전 무서울 때 누가 꼬옥 안아줘야 해요. 그래야 진정이 된다고요.”
도련님이 무어라 말을 하기 전에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그런데 그 형들은 안고 잘 수 없어요. 더럽잖아요. 도련님도 알잖아요? 삼 대째 무좀 있는 형이 제 바로 옆 침대예요.”
그 말에 도련님은 바로 수긍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와 안고 자는 것은 싫은지 영 망설였다. 볼도 붉어지고, 시선도 못 마주치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물러설 순 없지.
“그럼 손만 잡고 자면 안 돼요?”
“…….”
“딱 손만요. 네?”
“…….”
“도련님, 저 믿죠? 네에?”
저 로벨이잖아요, 라고 몇 번이나 질척거린 후에야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시선은 여전히 대각선으로 내려진 상태였다.
그게 상당히 곤란해 보이지만, 모른 척했다. 혼자 두면 그가 더 곤란하고 힘들어질 테니까.
다행히 도련님이 오늘은 내게 당해주었다.
“그럼…… 오늘만.”
“예!”
나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냉큼 침대에 올라갔다.
도련님이 난감한 기색으로 나를 보더니 팔걸음을 이용해서 옆으로 움직였다.
이윽고 마주 누워서 도련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꼼지락거리던 그의 손이 내 손 위에 천천히 놓였다.
“헤헤.”
나는 그걸 꽉 맞잡고 웃었다.
그의 고개는 여전히 창가로 향해 있었다. 그래서 표정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떨림은 완전히 멈춘 상태였다.
더불어 내 상태도 더 좋아졌다. 몸에 좋은 피가 쭉쭉 흐르는 기분이다. 오늘은 딱히 이걸 노린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 잠깐. 그럼 겨울엔 두유워너빌더스노우맨을 한번 외쳐봐야 하나?
눈사람이라도 만들면 핑계 삼아 손 한 번이라도 더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마넬라노가 있는 북쪽에서나 눈이 내리지. 여긴 안 되지…….’
아쉬움에 잠기는데, 갑자기 도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로벨.”
언제부터였는지, 모로 누운 도련님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과 달리 겁을 먹거나 부끄러운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내 손에 깍지를 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넬라노 그놈한테 가서 눈사람 만들고 싶은 거 아니지?”
……제가 또 입 밖으로 말했나요?
* * *
그날 밤, 올리버는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4년도 더 지난 이 신문을 누가 왜, 자신에게 보냈단 말인가.
과거에는 때때로 그에게 그 사건에 대해 혹시 아는 것이 있느냐며 떠보는 호사가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다 옛일이다.
벌레 한 마리가 몸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는 듯이 꺼림칙했다.
그러나 참았다.
‘곧 떠나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그런데 그 후로 더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문틈으로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 나는 네가 레잔다르 가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 알려지길 원치 않으면 네 발로 나가라.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오늘도 똑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혹여 복도의 다른 이가 볼까 봐 품 안에 종이를 급히 쑤셔 넣었다. 방으로 들어와서 다시 구겨진 편지를 꺼내 폈다.
조금 전까지 지겹게 보고 있던 공자의 악필과는 사뭇 다른 필체, 분명 자신만큼이나 높은 교육을 받은 자가 분명했다.
누굴까.
‘대체 뭘 바라고서 이런 짓을……. 그리고 내가 한 일들은 어떻게 안 거지?’
혹시 공작부인이 자신의 입막음을 하기 위해 벌인 수작은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공자와 관련된 일 외에는 대외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위인이니 덴카르트에 오명이 남을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의문이 더 깊어진 다음 날에도 편지는 있었다.
올리버는 일 년 전 간신히 끊은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찾아야만 했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젠 눈을 마주치는 사용인들이 모두 그를 의심하는 것 같다.
‘이 중에 누가 그자인 거지?…….’
목이 졸릴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헐떡였다.
도대체 왜? 어떻게 그날 일을 알아챈 거지? 증거는 남기지 않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답은 없었다.
범죄 동기는 대부분 원한이라고 하지만, 이곳은 죄다 처음 보는 자들만 있었다.
혼란과 심신의 쇠약이 심해지는데 알 수 없는 자의 협박도 더 강해졌다. 이젠 약통의 약도 모두 떨어졌다.
더 버틸 재간은 없었다.
* * *
올리버가 저택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죄송하다는 서신 한 장만을 남긴 채.
그 바람에 도련님은 온갖 유언비어에 휩싸였다.
덴카르트 후계자 중에서 이런 식으로 스승이 도망친 경우는 없었다.
심지어 그가 그간 물건을 던지기도 했기 때문에 모든 원인이 도련님한테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오갔다.
뭐, 그중에는 수업 태도가 지나치게 불량했다든가, 스승에게 손찌검했다든가 하는 이상한 소리도 섞여 있었다.
전통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덴카르트답게 도련님은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후계자 수업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스승이 지병으로 은퇴하거나 불미스러운 사고를 당하는 것 외엔 어떠한 예외도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찮냐?”
그 소식을 들은 림슨 형이 따로 나를 뒤뜰로 불러냈다.
“형님. 차라리 도련님한테 직접 위로해드리지 그래요. 도련님 안 그런 척해도 되게 좋아할 텐데.”
“그…… 네가…… 도련님을 더 걱정하니까 그러지.”
이번 일을 벌인 당사자인 나로선 과분한 염려라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동안 나는 원작에서 올리버 튜더에 대한 찜찜한 구절이 있던 것 같기도 하단 생각을 떠올렸었다.
머리를 끙끙 싸매다가, 집사님을 찾아갔다. 혹시 올리버 튜더에 대해서 건질 게 있는지.
[ 그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레잔다르의 두 공자를 훌륭히 가르치신 분이지. ] [ ……레잔다르요? ]그래……. 레잔다르…….
내가 왜 그 중대한 가문을 바로 떠올리지 못했을까.
나는 곧장 제국의 신문을 보관하는 일을 담당하는 하인 형을 찾아갔다.
일전에 오며 가며 인사하던 그는 내게 흔쾌히 신문을 읽으라 했다.
그는 심지어 마님도 이 보관실에 오진 않는다며 반가워했다. 그녀는 늘 아침마다 새로 배포되는 신문만 보기 때문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보관 중인 신문을 본 사람은 돌아가신 선대 덴카르트 공작이라며 그는 씁쓸해했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기억과 기록이 합쳐졌다. 다음 일들도 일사천리로 물꼬가 텄고.
“본인보다도……. 도련님은 사실 그런 건 그동안 별로 상관없어 하지 않았냐. 너만…… 걱정하지…….”
사실 그놈 제가 협박해서 내보낸 건데요, 라고 말할 수도 없고. 참.
계속 걱정받기엔 양심이 찔려서 형을 다독였다.
“저라면 걱정하지 말아요.”
“……후우. 아무리 하나뿐인 적통 후계자라도 전통을 무시할 순 없는데…….”
“그것도 제가 알아서 할게요.”
형은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형이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거다. 도련님 모시고 어디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지을 수도 있겠구나…….”
눈시울이 붉어진 형이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길래 무시하고 갔다.
뒤에서 형이 불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도련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