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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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여긴 어디지?’
나는 뻑뻑한 눈을 굴렸다.
화려한 색감의 천장만 봐도 내 방은 전혀 아니었고…… 도련님 방도 아니었다.
이번엔…… 뭐 천국이라도 온 건가 싶었는데, 옆으로 눈을 굴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도련님, 이름을 부르려고 했는데 목이 쩍쩍 갈라지려 했다.
그런데 듣지도 않았는데 도련님이 나에게 물을 주었다.
“마셔.”
밤을 새웠는지 눈가는 수척했고, 마지막으로 봤던 것과 똑같은 옷엔 피가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입술 아래 피딱지도 여전했다.
혹시 다치신 건 아닌가……. 아니면 내가 정신을 잃고 난 뒤 도련님도 납치당했던 건 아닐까…….
정신없는 와중에도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그가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당분간 여기서 쉬어. 옷이랑 약은…… 여기 다 있고.”
손 닿는 탁자에 여분의 옷과 약, 붕대, 약물, 물병까지 다 있었다.
그 말을 마치고서도 한동안 나를 들여다보던 도련님이 서서히 방에서 나갔다. 다른 말은 없었다.
나는 닫힌 문을 멍하니 봤다.
납치범이나 화재에 대해 충분히 물어볼 수도 있는데 나를 배려한 것 같았다.
어쩌면…… 사냥제 참가자였던 도련님은 나 이상으로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고…….
‘……내가 경솔했어. 주변을 잘 살폈어야 하는데.’
반성하다가 안도의 한숨도 쉬었다.
어쨌거나 살았고…… 몰래 도망갈 계획까진 들키진 않은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살긴 했네. 내가 은근히 명줄이 길긴 길다니까.’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사실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그 위험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것 같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죽음의 공포는 몇 번이나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도련님을 따라간 선택을 후회하진 않아.’
본래 지금쯤이면 고통스럽게 죽었어야 할 나를 살려준 사람이 도련님이다. 그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무엇 하나라도 해주고 싶었다.
나는 담담히 생각했다. 설령 이 일로 죽었다 해도 후회하진 않았을 것이다.
도련님은 이미 나를 그 아픔 속에서 몇 번이고 살려줬으니까.
‘……날씨는 정말 좋네.’
그런 난리가 있었는데도 창밖은 참 평화로웠다.
하늘은 높디높았으며 햇살은 따사로웠다.
게다가 침대 옆 창문 너머로 보이는 신전 정경은 하얗게 반짝여서 보기만 해도 내 불안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그 덕인지 몸에 굳어있던 긴장이 조금씩 녹았다.
‘……지금은 무엇보다 몸이 우선이야.’
나는 일단 회복하기 위해 휴식부터 취했다.
한나절쯤 지나자 얼추 일어날 수 있어서 거울을 보며 약을 발랐다.
들끓는 소독약을 들이부은 것처럼 아팠지만, 효과는 좋았다. 통증은 금방 가셨다.
알고 보니 이곳은 황성 중앙의 신전 방이었고, 회복에 좋은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했다.
그 사실은 황녀 전하께서 친히 알려주셨다.
“나도 어릴 때 배탈이 났는데 여기에 머물렀어.”
요새 병문안이라고 계속 찾아오는 황녀 전하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나으면 황성을 구경하게 해주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었고.
다른 사람들은 내 안정을 위해 출입을 금하지만, 황녀 전하는 막을 수 없었다고 본인이 직접 자랑스럽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황녀 전하. 저 같은 천것을 여기에 머무르게 해주시고…….”
“아니, 아니! 아니이!! 내가 그러고 싶었는데!!!”
“……?”
“공자가 멋대로 덴카르트 후계자의 인장을 써서 대신전에 머물렀어!”
어쩐지 분한 얼굴의 딜라일라 황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내게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클란트 백작 수업에서 듣기로 덴카르트에서 그걸 마지막으로 쓴 건…… 거의 백 년 전이었다.
그 정도로 덴카르트는 황가에 책잡힐 일을 하지 않았다. 조용히 황성을 오갈 뿐이었다.
“걱정하지 마, 벨. 다음에 다치면, 그땐 내 권한으로 대신전에 일 년은 머무르게 해줄게.”
“……저는 하루도 머무를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요. 다신 다치고 싶지 않아요.”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진심으로 덧붙였다.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거든요.”
병문안을 온 사람은 황녀만이 아니었다. 사냥제를 벌써 마쳤는지, 마넬라노까지 찾아왔다.
그날은 하필 아침부터 몸살이 난 바람에 제대로 인사하지도 못하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좀 쉬게 내버려 두지.’
어쨌거나 저번에 반갑게 인사하는데, 대놓고 무시한 것도 미안하고…….
찾아온 손님을 내쫓을 수도 없어서 억지로 친절한 투를 짜내어 말했다.
“도련님은 요새 바빠서 못 오세요.”
“알아.”
……막 사냥제를 마치고 온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알지.
‘이거 혹시 우리 도련님 뒷조사라도 하는 거 아니야?’
의심스럽게 바라보자 마넬라노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의자 하나를 대충 침대로 가까이 끌고는 거기에 거만하게 앉으며 말했다.
“누굴 바보로 봐. 공자가 그 난리를 치고 있는데 내가 모르겠어?”
* * *
에드릭이 덴카르트의 권한으로 로벨을 대신전에 머무르게 한 것은 회복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안전 때문이었다.
출입할 시에 검과 독극물이 제한되는 신성 영역이며 성기사들이 보호하는 신전이라면, 적어도 위험한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로벨이 쉬는 동안 처리할 것들이 있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덴카르트 공작부인의 친정도 마찬가지였다.
에드릭은 그녀의 친정이 덴카르트의 은혜를 입던 것들을 모조리 다 취소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간 공작부인의 가문들과 얽힌 비리들을 모조리 적발하여 공작에게 고발하기까지 했다.
“마님의 가문과 척지면…….”
“클란트 백작, 그 시종의 소지품에서 독이 나왔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
진정으로 분노한 에드릭 앞에서 클란트 백작은 반박하지 못했다.
에드릭은 사냥제에서 활동한 시종을 모조리 잡았는데, 어찌나 감이 좋은지 그중에서 방화를 저지른 시종을 바로 찾아냈다.
처음엔 모두가 반신반의했으나, 심문 과정에서 증거가 될 수 있는 수면제와 독약 따위가 파묻힌 장소까지 찾아냈다.
그런데 정체를 확인하니 그는 마님의 외가와 깊은 관계를 맺은 남작가 후계자의 시종이었다.
가신들도 곤혹스러웠다. 에드릭이 만약 문제 삼는다면, 일은 더 커질 테니.
하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당장 일을 키우진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선 물러서는 게 최선이었다.
“비켜. 사냥제 폐막식에 참석해야 한다.”
그 말에 클란트 백작은 물러났다. 그가 우승자이니 폐막식에는 응당 참석해야 했다.
폐막식에 도착한 에드릭은 고개를 올렸다. 정면의 단상에는 그가 잡은 은사슴이 놓여 있었다.
정확히 목 중앙을 꿰뚫었던 것도 표시가 안 날 정도로 핏물도 지워지고 털의 손질도 말끔했다.
모두가 귀하디귀한 은사슴을 보며 감탄했다.
하지만 에드릭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로벨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은 사냥감을 신전에 들일 수 없다는 게 이 사냥제의 규정이었다. 아무리 대귀족이라도 참가자인 에드릭은 그걸 깰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눈을 내리깔며 다짐했다. 다음번에야말로 로벨에게 은사슴을 꼭 보여주리라고…….
황제가 폐막사를 진행하는 동안 에드릭은 벌써 내년 사냥제를 머릿속으로 계획했다.
그런데 상석의 황제 곁에 앉은 다른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국적인 생김새와 치렁치렁한 의복을 입은, 타국의 귀족들이었다.
‘……저자들은.’
문득 저 왕국 변두리의 전통이 생각났다.
사내들은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여장을 했고, 어느 곳에선 여자들이 팔려 간다고 딸을 숨기기 위해 남장을 하기도 했었다.
그 사실을 상기하자, 로벨도 어쩌면 그러한 이유로 사내로 위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로지 안위를 위해서 시종으로 살았다기엔 석연치 않아.’
로벨이라면 생계를 위해선 시종이 아닌, 다른 대안을 마련할 능력이 충분히 있다.
게다가 사리분별력이 강한 로벨이 어떠한 이유도 없이 귀족가에 쳐들어올 리는 없었다.
분명히 걸렸을 때의 위험이나 다른 것들도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로벨은 왜 굳이…… 그러한 위험을 감수한 것일까…….
“에드릭 덴카르트.”
황제의 호명에 생각을 멈춘 에드릭이 일어섰다.
그를 비웃었던 소년들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몸을 파르르 떨었다. 분해서 이를 가는 놈들도 있었다.
하지만 에드릭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아름다운 곡선을 띤 백색 단검을 받으며 로벨만을 생각했다.
혼란스러워도, 이유가 무엇이든, 로벨이 어떤 성별이든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로벨은 로벨일 뿐이니까.
‘……그래도 그 이유를 확인할 필요는 있어.’
단검을 쥔 흰 손등에 거미줄 같은 핏줄이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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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마넬라노는 수도 소식을 틈틈이 전해줬다.
특히 마님의 외친척이 몰락의 길을 걷는 이유가 도련님 때문이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날 납치했던 시종이 그쪽과 관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예상은 했지만, 공작부인의 소행인 듯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자비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자더군.”
그러면서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게, 도련님이 그리 냉정하게 구는 이유가 나 때문임을 짐작한다는 눈치였다.
나는 도련님께 그러한 것들을 묻고 싶었으나, 그는 보이질 않았다.
‘……많이 바쁘신가 보네.’
사실 처음엔 의원에게 몸을 보이고 붕대를 풀어야 하는 일이 생길까 염려했는데 그런 걱정이 무의미했다.
괜히 호들갑을 떨면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한 게 조금 머쓱하기도 하고, 매일 찾아오지 않는 도련님께 서운하기도 하고…….
밤마다 도련님이 걱정되기도 했으며…… 어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봐도 이해되지 않는, 뒤죽박죽 섞인 감정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