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97)
97
나는 마차 밖을 구경하다가 의아한 눈을 깜빡였다.
‘이상하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마차들이 많지?’
무슨 날인지 정문 진입조차 난관이었다.
황성 정문에서 검문을 기다리는 마차들이 수두룩했다. 마치 과거 사냥제를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아니, 어째 그때보다도 마차 수가 많은 것 같은데?’
게다가 대부분 휘황찬란한 문양을 자랑하는 귀족가의 마차들이었다.
앞선 마차들이 빼곡하게 정체되어 우리가 탄 마차가 좀처럼 황성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제국의 특별한 기념일도 아닌데…….’
그래서 함께 마차에 탄 림슨 형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맞은편의 그는 일찌감치 곯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무슨 전쟁터에 출전하는 병사처럼 짐을 꾸리고, 비장한 표정으로 마차에 오르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깨울까 말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동안 거기서 마음 편히 눈도 붙이지 못했을 텐데.
나는 잠꼬대를 하는 그에게 내 몫의 담요를 더 덮어주다가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미치겠네.
‘당장 내일 도련님이 복귀하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다니…….’
설령 오늘 못 가면 내일 새벽에라도 꼭 저택에 당도하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꿈에 그리던 재회가 내일로 다가와서 그런지, 도련님 생각이 머릿속에 하나둘 차기 시작했다.
‘우리 도련님이 어떻게 자라셨으려나.
아이에서 성년까지의 기간이면 외적이나 내적으로 변화가 클 테니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
뭐, 아무리 체술과 검술을 익히셨다 해도 메인수니, 외모는 큰 변화가 없겠다 싶긴 했다.
소설에서 묘사되다시피 청순한 용모와 달리 신경질적이면서 호리호리한 미남 정도로 추측이 되었다.
그리고 천성이 올바르고 곧은 아이이니 내면은 당연히 바르게 자랐을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자랐어도 내가 아끼던 도련님이긴 하지만 말이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떨리는 마음을 다잡는 사이에 마차가 당도했다.
나는 침까지 흘리며 자던 림슨 형을 흔들어 깨워 마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성안으로 들어오니, 바깥 풍경보다 더 이상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저게 왜 벌써 걸려 있어?’
어째서인지 황가와 덴카르트를 상징하는 깃발이 곳곳마다 나란히 장식되어 있었다.
이상했다.
도련님의 활약으로 덴카르트의 번영과 황가의 위신이 절로 살아서 대우해주긴 한다만, 이건 좀 과했다.
환영식 당일이라면 모를까, 벌써부터 이런 분위기라니 영 석연치 않았다.
그 묘한 직감은 황성 회랑을 걸어갈수록 더 진해졌다. 아무리 봐도 주변을 지나는 귀족들의 수나 차림새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영애들은 평상시 입는 드레스가 아닌, 어느 대연회에서나 볼 법한 과한 장식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바닥마다 뿌려진 저 연분홍색 꽃잎은 전장을 정복한 영웅이나, 큰 공을 세운 충신의 귀환을 환영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쯤 되자…… 한 가지 확신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옆에서 황실 시종을 뒤따르는 형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
형님은 그 작은 동작으로도 지나치게 움찔거렸다.
마치 내게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그게 내 불안을 확신으로 굳혔다.
나는 천천히 올라오는 울화를 참으며, 림슨 형님만 들릴 정도로 작게 물었다.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해요.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그게…… 휴, 미안하다, 로벨아.”
형님은 사과하면서도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숨길 걸 숨겨야지. 도련님의 환영식을 숨기면 어쩌자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는 거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데……!!’
당장 따지고 싶은 말이 무수히 많았지만, 입술을 깨물어 참았다.
우리가 덴카르트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주시하는 이들이 많았으니까.
소란을 일으킨다면 도련님 위신을 떨어트릴지도 모른다.
그 사실에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은 나는 림슨 형에게 다시 침착하게 물었다.
“그럼 도련님 복귀가 당겨져서 이쪽으로 바로 오시는 거예요?”
“아마 그럴……걸?”
그럴걸? 이걸 지금 말이라고 해??
그 무책임한 반응에 탄식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 불참하여 황제를 물 먹였다간,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황제의 성격상 나중에 도련님께 보복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또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 또한 공작이 모를 리 없었다.
분명히 림슨 형님 혼자서 단독으로 친 사고는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공작이 해독제를 준비한다고 했었고.
‘공작에게 무슨 숨겨진 뜻이 있었을 거야.’
어쩌자고 이런 무모한 일을 덜컥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실수할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믿으며 불안을 참고 걷자 곧 대연회장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주인공들이 재회하는 장소에 걸맞게 연회장은 극도로 화려하며 눈이 부셨다.
세상의 온갖 화려하고 귀한 것들을 잔뜩 모아 치장한 듯 보였다.
물론 그런다고 황제에게 조금도 고맙진 않았다.
오랜 세월 고생해서 돌아오는 도련님께 제대로 쉴 틈도 안 주는 그를 향한 원망만 솟구칠 뿐이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황제랑 황태자의 성향이 완벽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원작대로라면 곧 제위에서 물러날 것이고……. 빨리 좀 물러나라.’
그런 확실한 미래를 위안 삼아 조용히 벽에 붙어 섰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어도, 내 일은 제대로 해내야 했다.
품 안의 안경을 꺼내어 낀 후, 귀족들을 하나둘 살폈다.
혹시 수상쩍은 인물이나, 우리 도련님에게 위협이 될 만한 자가 있나 유심히 봐야 했다.
대귀족가의 시종 짬밥 11년 차답게 이젠 아는 얼굴들이 슬슬 보였다. 전에 봤던 귀족들이며 덴카르트 측 가신들도 많았다.
그런데 의외의 얼굴들이 있었다.
마넬라노와 이보였다.
‘……저 두 사람도 왔네?’
둘 다 귀족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는데도 훌쩍 큰 키와 준수한 외모답게 눈에 가장 잘 띄었다.
두 사람 모두 바쁜 것으로 따지자면 빼놓을 수 없는 자들인데.
특히 이보 같은 경우엔 더 그랬다.
호넷 상단주 자리를 원작보다도 훨씬 빨리 물려받았고, 덴카르트 상단과 도련님이 보내는 자원을 가공하느라 미친 듯이 바빴다.
‘그런 와중에도 과거의 인연 덕분인지 이보가 내 부탁을 들어주고 있긴 하지만…….’
그때 시선을 느꼈는지, 이보가 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그의 낯에 반가움이 반짝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찰나에 불과했다.
언제 동요했냐는 듯이 능숙하게 표정을 가다듬은 이보가 다시 주변 귀족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역시 대단한 수완가.
연회장이 거의 찰 때쯤 황제와 황태자도 홀에 입장했다. 이제 주요 인사들은 다 참석한 모양이었다. 수상한 사람도 없고.
그렇게 얼추 다 살폈는데, 시야가 흐려졌다.
‘아…… 이거 너무 시린데.’
잠시 안경을 벗고서 눈을 비볐다.
지하에서만 작업을 오래 하던 터라 이렇게 낮에 활동하면 눈이 흐려지고 아팠다.
그런데 별안간 종전까지 떠들썩하던 연회장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쉴 틈 없이 연주하던 악사들마저 손을 놓은 듯이 어떤 음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며 고개를 올렸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일제히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나도 눈길을 옮기자, 입구를 등진 채 걸어오는 한 사내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아…….”
도련님이었다.
그리고 나와 동시에 그를 발견한 주변 영애들 사이에선 앓는 듯한 감탄사가 흘렀다. 반가움에 탄식을 뱉은 나와는 다른 의미였다.
그간 귀족들 사이에선 도련님의 활약과 별개로 온갖 낭설이 떠돌았다.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심한 부상 때문에 수도행을 미루고 있다, 오염된 토양의 영향으로 피부가 썩어 들어갔다는 불유쾌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도련님은 그 소문이 전부 잘못되었음을 직접 증명했다.
멀리서 봐도 그의 피부는 화사하니 빛났으며 뺨엔 은은한 장밋빛까지 돌고 있는 것 같았다.
반쯤 뒤로 넘긴 금색 머리카락 아래 눈썹은 귀족적으로 우아했고, 녹색 눈동자는 무르익은 여름의 상징처럼 선명했다.
한껏 치장한 귀족들 사이에서도 전장에서 막 복귀한 그보다 눈에 띄는 자는 없었다.
“에, 에드릭 덴카르트 공자가 입장하였습니다.”
절도 있는 걸음마다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게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도련님의 입가엔 여유로운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곁의 림슨 형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왜, 왜 그랬어요. 왜 그동안 말 안 했어요? 우리 도련님, 너무너무 잘 컸잖아요…….”
그런데 림슨 형님은 아까부터 사색이 되어 자꾸만 왜 저러시냐며 이상하다고, 무섭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잠꼬대 같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도련님이라서 그냥 무시해버렸다.
도련님이 곧 황제가 앉은 높디높은 계단 아래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황제 알현이라…….
아무리 저주를 풀 단서를 찾았다 해도 아직은 해결이 안 되었으니 긴장되는 순간일 수밖에 없었다.
“여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에드릭 덴카르트. 존귀한 테루아의 명을 수행하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 텐데도 도련님은 긴장하지 않았다. 한 손으로 어깨를 짚으며 침착하게 예를 갖추었다.
야만인들 사이에서 검을 휘두르느라 간단한 예법조차 까먹었으리라 수군거렸던 귀족들이 얼굴을 붉힐 정도로 완벽한 동작이었다.
그 광경에 넋을 놓거나 감탄하지 않은 것은 도련님처럼 이 자리의 주역인 황태자뿐이었다.
그는 청량한 웃음을 흘리더니 황제에게 무언가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놀란 눈으로 도련님을 주시하고 있던 황제가 말문을 뗐다.
“덴카르트 공자, 드디어 복귀하였구나. 무탈히 귀환하여 다행으로 여긴다. 내 지난 세월 동안 태자보다도 공자의 안위를 걱정하였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와 공을 치하하는 인사를 몇 번 뱉던 황제는 준비한 연회를 마음껏 즐기라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더니 황태자와 무슨 귓속말을 또 나누었다. 두 사람의 표정을 봐선 다행히 나쁜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원작이나 지금이나 황태자가 비열하게 행동하는 자는 아니었다. 저주에 대해서도 모르는 눈치였고.
부디 황태자가 황제에게 우리 도련님 좀 그만 괴롭히라고 말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이윽고 도련님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와 림슨 형은 함께 그에게 향했다.
이렇게 예고 없이 하루 더 일찍 재회하고 인사를 나누리란 건 예상치 못했지만…… 아까 느꼈던 막막함이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좋기만 했다.
너무 반가워서 속이 자꾸만 먹먹해질 정도였다. 어서 가서 인사하고 싶었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보다 한발 먼저 황태자가 도련님 앞에 섰기 때문이다.
간발의 차이로 도련님도 뒤의 우리를 못 보았는지, 황태자만 응시했다.
황태자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이야,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