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3)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3화(13/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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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꼬마 녀석들 2
“11 곱하기 11은?”
“그걸 어떻게 외워?”
“맞아. 계산기 있잖아. 왜 외워야하는데?”
“…”
결국 구구단부터 다시 가르쳤다.
그나마 낫다는 제이콥도 7단부터는 헷갈려 한다.
이곳도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구구단을 가르친다.
우리나라처럼 ‘무조건 외워!’가 아니라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천천히, 단계적으로 가르친다.
그러다보니 속도가 늦고, 그걸 만회하기 위해 스피드 퀴즈로 ‘1분에 25개 구구단 문제 풀기’ 같은 쪽지시험을 자주 본다.
개인적으로 이 경우엔 덮어놓고 외우게 하는 우리나라 방법이 낫다고 생각한다.
인도애들은 ‘19X19’단까지 외우던데.
그리고 3학년이 되면 계산기를 나눠준다.
말로는 수업시간에만 쓰고 숙제할 때는 직접 계산을 하라고 하는데 그게 쉽나.
한번 문명을 맛봤는데.
그래서 이 동네 애들은 간단한 사칙연산조차 시켜보면 아주 느리다.
한달동안 애들을 들들 볶아서 기어코 구구단을 외우게 했다.
이제는 툭- 치면 탁-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포타임즈포(4X4)는?”
“씩스틴(16)!”
“굿잡! 게임시간 1분!”
“예스예스예스!”
주먹을 불끈 쥐고 좋아하는 마크.
아이들을 조종하는데 비디오게임만 한 게 없지.
‘닌XX 게임기’
삼촌에게 커서 돈 벌면 꼭 갚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해 갖다 바친 후 얻은 것이다.
아직 비디오 게임에 때 묻지 않은 어린 아이들을 농락하기에는 충분했다.
처음엔 하루이틀 하다 말 것이라 생각했던 어른들이 어느 순간부터 먹을 것들을 조공했다.
아무리 애들 공부에 관심 없다는 부모라도 내 애가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슬슬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희망이란 걸 가지게 된 달까?
이제 우리 동네 녀석들은 아침에 눈뜨면 밥을 먹고, 9시가 되면 우리 집에 모여서 책을 읽고, 문제집 3장을 푼다.
점심을 먹은 후 2시간 정도 게임을 한 후 자전거를 타고 숲으로 간다.
거기서 한바탕 뛰어놀고,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시간.
텔레비전을 보든, 만화책을 읽든 뒹굴뒹굴 거리다가 9시가 되면 모두 잠을 잔다.
금요일 밤은 예외다.
비가 오지 않는 금요일 밤에는 이 동네에서 가장 큰 야드를 가진 마크네 집에 모닥불이 피어오른다.
그러면 저녁을 먹은 동네 사람들이 슬슬 각자 마실 맥주를 1-2캔 들고서 나타난다.
칩(Chip)이나 마시멜로 같은 걸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고, 가끔 소시지 같은 걸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딱 자기 먹을 것만 들고 왔다가 그게 떨어지면 돌아간다.
부담 없이 와서 놀다 가는 거다.
그 시간 나는 애들과 뛰어놀거나 체스를 두기도 하고, K 댄스를 가르치기도 하고, 구구단 놀이를 하면서 애들을 갈구기도 한다.
혼자 불구경이나 하며 사색하고 싶지만 이 동네 녀석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9월에 4학년이 되는 나는 동네 아이들 중 중간 나이쯤에 속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아이들의 리더격이다.
원해서 그런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제이콥에게 프리알지브라(Pre-Algebra, 1차방정식 전 단계로 기초대수학이라고도 한다.)를 맛보기로 가르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진짜 별거 없었다.
반올림하는 거, 분수끼리 더하는 거, 소수점에서 어떤 게 큰 수인지 알아맞히는 거 등등.
그럼에도 수학천재라는 소리까지 들어야했다.
한국에서 이 정도 하는 4학년짜리들은 수도 없이 널려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선행학습이란 거 자체를 전혀 하지 않는 이 동네 사람들에겐 내가 기인이사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는 거니?”
“그냥 칸 아카데미랑 너튜브 같은 거 보면 나와요.”
“그걸 왜 찾아보는데?”
“그. 그냥 심심해서요?”
“안되겠다. 너 너드(Nerd, 공부벌레)로 클 확률이 99.99퍼센트야. 나가서 놀아야한단다.”
“…네.”
너드.
예전엔 비쩍 마른 몰골로 뱅뱅이 안경 쓰고, 어디서나 책을 끼고 사는 사회성 제로의 공부벌레들을 조롱하는 단어로 많이 쓰였다.
하지만 요즘엔 공부도 잘하고, 진지하며, 학교 클럽에서 리더도 하는 등 매사에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말로 많이 바뀌었다.
공부만 잘하던 찐따들이 결국 의사도 되고, IT 업계 거물도 되는 등 사회에서 성공하는 걸 체화한 이들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너드를 쿨하다 여기는 이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미국 시골동네 아저씨는 그런 거 모른다.
자신 어렸을 때 보았던 너드가 아직도 너드인 거다.
‘세상은 결국 너드들이 바꾸는 거라고.’
나는 너드란 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동네 꼬마 녀석들을 모두 너드로 탈바꿈시키는게 목표가 되었다.
왜?
심심하니까.
미국의 중동부 시골 동네는 정말이지 드럽게 심심하다.
***
아무튼 그건 그거고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다.
금요일 밤이지만 일단 마크네 뒷 야드가 아닌 우리 집 앞의 작은 공터로 모이고 있다.
얼마 전 집 앞에 있던 커다란 나무에 벼락이 떨어져 나무가 반으로 쪼개졌다.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커다란 그늘이 사라져 아쉬웠지만 다른 한편으론 나무에 가려졌던 시야가 뻥 뚫려 오히려 전망은 더 좋아졌다.
저기 멀리 다운타운의 높은 빌딩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동네 사람들이 각자 의자를 하나씩 들고 나타났다.
마크네 아버지가 나무로 불붙이는 오래된 그릴을 덜컹거리며 끌고 오자 이집 저집에서 음료수부터 물, 옥수수, 버섯, 소시지 등을 가져오고, 마지막으로 리암 삼촌이 아이스박스에 팩으로 포장되어 있는 소고기를 잔뜩 넣어왔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이집 저집 아저씨들이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건네준다.
평소엔 잘 못 보던 50불짜리 지폐까지 등장했다.
암.
고기는 갹출이지.
– 화르르륵.
숯불을 살 필요는 없다.
여기저기 널린 게 나무다.
나무 타는 냄새가 올라오는 듯 하더니, 잠시 후 고기가 그릴에 올라간다.
언제나 자국민이 우선인 미국시장에서, 직접 사먹는 소고기는 맛은 일품이다.
30개월 이상, 위험물질 어쩌고는 어차피 수출용이다.
미쿡 사는 1인으로 맛있게 먹을 뿐.
– 지지지지직.
고기가 맛있게 익어갈 즈음, 하늘에서 난리가 났다.
– 펑! 뿌지지직.
– 파파팡! 뿌지지직.
– 파파팟! 뿌지지지지.
– 우와! 멋있다.
– 여기 대빵 잘 보인다!
– 돗자리 들고 멀리 안가도 되니 너무 좋네요. 호호호.
– 술도 있고, 고기도 있고, 하늘은 예쁘고. 이것이 인생이로다.
.
.
.
동네 사람들이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는다.
7월 4일.
Independence Day.
오늘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날.
처음엔 미국도 지금처럼 50개 주(State)가 아니었다.
United에 가입하는 주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해당연도 독립기념일에 국기에 별 하나씩을 추가했다고.
51번째 주(State)로 몇 군데 후보지가 있다지만 오늘도 미국 국기에 박힌 별의 수는 50개일 뿐이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저어기 멀리 있는 동네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까지 다 보인다.
온 세상이 뿌지직 거린다.
그 중 압권은 다운타운.
9시 30분부터 10시까지 마치 한을 풀 듯 쏟아내는 폭죽들은 한마디로 전쟁터 폭격수준이다.
이렇게 멀리 있는데도 귀가 멍멍하다.
이 짓은 7월 1일부터, 혹은 그 전부터도 시작된다.
온 나라가 폭죽에 미쳐 돌아가지고 집집마다 시도 때도 없이 뻥뻥- 폭죽을 쏘아 올리는 거다.
아침 9시부터 쏘아 올리는 미친놈들도 있었다.
곧장 신고가 들어가서 얼마 후 잠잠해지긴 했지만.
며칠을 시달렸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그 절정의 순간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예쁘긴 하다.
그리고 이 순간들이 재미있기도 하고.
하지만 딱 이 순간만 하고 끝내면 얼마나 좋겠냐고.
하필이면 금요일이다.
아마 이번 주 일요일까지 저 지랄들을 할 것이다.
소음은 둘째 치고, 공기 오염은 어쩔 거냐고.
놀기 좋아하는 미국인들이 오래 기다린 날인 건 안다.
보통 학교가 8월 말에 개학을 하면 곧바로 할로윈데이, 좀 있음 추수감사절, 그 다음 크리스마스, 새해 첫날이 있고, 좀 지나면 밸런타인데이, 부활절을 거쳐 어머니날, 아버지날이 차례로 지난다.
하지만 사실 새해 첫날 1월 1일 이후의 행사들은 이렇게 단체로 미치지는 않는다.
일단 부활절, 어머니, 아버지날은 행사일이 모두 일요일이다.
어머니날은 ‘5월 둘째 주 일요일’ 뭐 이런 식인 거다.
정해진 날짜가 아니라 몇 월의 몇째 일요일 개념이라 크게 쉰다는 느낌이 없다.
밸런타인데이는 날짜로 정해져 있지만 빨간 날은 아니다.
기념하고 싶은 사람만 기념하면 된다.
중간에 참전 군인들을 추모하는 메모리얼데이가 5월 마지막 주의 월요일에 있다.
여기저기서 행사를 많이 하지만 독립기념일에 비한다면 새 발의 피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에서 요일이 아닌 날짜가 정해진 휴일은 1월 1일, 크리스마스, 독립기념일.
이 3개 기념일뿐이다.
그 중 여름 행사는 독립기념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다들 미쳐서 난리인 거지.
– 뿌우-뿌뿌뿌-뿌우뿌뿌뿌-
– O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e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
.
.
언제 또 저런 걸 가져왔대?
누군가 색소폰으로 미국 국가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고기를 먹던 인간들이 모두 국가를 제창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국뽕가지고 뭐라하지 말자.
미국인 국뽕은 말도 못한다.
그 순간.
– 파팟팟!
“앗. 내 귀!”
흥에 겨웠던 동네 꼬마 녀석 중 하나가 너무 가까이 폭죽을 터트렸다.
귀가 얼얼한 건 둘째치고, 폭죽 화염 하나가 내 옷에 내려앉았다.
어른들이 화들짝 놀라 내 옷을 털어주고, 나를 살폈다.
저쪽에서 다른 아줌마들이랑 수다를 떨고 있던 엄마가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어머. 제이든. 괜찮니?”
“필립! 조심안하고!”
“애가 뭐 알고 그랬나요. 전 괜찮아요. 필립아 괜찮아. 엄마. 전 집에 들어갈게요. 조금 추워요.”
“어? 그. 그럴래.”
“엄마랑 삼촌은 노세요. 무슨 일 있으면 엄마 부를게요.”
“그래. 그러렴.”
천상 미국인인 엄마와 삼촌이다.
어른들도 이 날이 얼마나 즐거운 날인지 잘 안다.
기본적으로 우리 3식구는 육식동물이다.
고기가 이렇게 많은 날을 놓칠 수는 없지.
집으로 들어와 2층 내 방 창문을 꼭 닫았다.
침대에 누웠는데도 하늘 높이 솟는 불꽃들이 보인다.
훨씬 낫네.
“제이드은~노올자~자니?”
이놈들이 부른다.
무시하자.
그날 밤 우리 동네에선 여지없이 새벽 2시가 넘어가도록 폭죽이 터져댔다.
좋을 때다.
원래 젊어서 노는 거다.
놀 수 있을 때 열심히 놀게 두자.
***
이번 여름엔 어떻게든 가까운 곳이라도 놀러가자고 했지만 결국 개학날이 다가왔다.
먹고 사는 게 어디 쉬운가.
내가 떼라도 썼으면 가까운 데라도 갔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동안 살림살이가 많이 풍족해지긴 했다.
일단 월세가 없으니까.
시골의 원베드룸이라고 하더라도 원체 아파트 공급 자체가 없는 동네이기 때문에 저렴하지 않다.
한 달에 1200불.
한화로 치면 160만원가량을 매달 월세로 내고 있었기에 엄마는 쉴 틈이 없었던 거다.
그런데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월세가 사라졌다.
물론 폐가나 다름없는 집을 샀기에 이것저것 뜯어고치느라 돈이 많이 들긴 했지만 매달 그냥 사라지는 돈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삼촌도 벌고, 엄마도 벌고.
엄마가 우겨서 생활비의 3/4을 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보다 풍족해진 건 피부로 체감이 될 정도다.
두 사람이 제대로 된 어른으로 큰 것 같아서 대견했다.
대견하다 했다고 아니꼽게 보지마라.
원래 이 사람들이랑 비슷한 연령대시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