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5
“훌륭하세요.”
어느 날.
무슨 일인지 삼촌이 맥주를 3병을 마신 날.
나한테 늘어놓은 넋두리였다.
솔직히 좀 놀랐다.
그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던 줄은 몰랐으니까.
세상에서 한국인만 젤 유별나게 열심히 사는 줄 알았는데 우물 안 개구리였다.
이곳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정말 코피 터트리며 살더라.
반면 엄마는 고등학교 4년 내내 일을 해야 했고, 원서를 쓸 즈음에 절친이 죽는 사고까지 당하는 통해 성적이 좋지는 않았다고.
물론 어디든 가려면 갈 수 있었겠지만, 동생인 리암을 차마 버릴 수 없어 그냥 취업을 선택한 것이다.
삼촌은 그 점을 내내 마음에 걸려 했던 거고.
전생에서 나는 돈을 모아 본 적이 없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원하는 물건은 뭐든 살 수 있었으니까.
물론 서자라는 태생적 한계로 눈치라는 걸 자동 탑재하고 있었기에 무턱대고 막 지르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들의 성장이 더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정말 잘들 컸수다.
* * *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아들. 잘 갔다 와.”
“조카. 잘 갔다 와.”
“네!”
골목길 앞 STOP 사인이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이집 저집에서 한 놈씩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8월 말이다.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들.
한국의 습한 더움은 아니지만 햇볕이 쨍하게 내려치는 건조한 날씨로 온도가 높다.
2학년짜리 조나단이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튀어나온다.
입고 있는 저 반바지와 반팔 티는 분명 어젯밤 샤워한 후 갈아입은 옷 그대로일 것이다.
운동화에 양말까지 챙겨 신은 게 어딘가.
“조나단. 눈 떠. 그러다 다쳐.”
“제이드은… 나 힘드러… 어.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거야? 방학이 너무 짧아.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이빨은 닦았냐? 세수는 했고?”
“…해야 해?”
“됐다.”
부모들이 뭐라고 안 하는데 내가 어쩌리.
다른 골목보다 우리 골목 사람들이 특히 더 애들의 학교생활에 무심한 것 같다.
스쿨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동네마다 성격이 보인다.
우리 동네엔 오전 8시 20분에 스쿨버스가 도착한다.
킨더까지는 그래도 부모들이 나와서 애들 차 타는 걸 보는데, 1학년부터는 얄짤없다.
동네에 애들이 많다 보니까 그냥 이집 저집 알아서 나오는 거다.
스쿨버스 드라이버도 그러려니 한다.
우리 골목이 이 학군의 마지막 경계선이다.
그 말인 즉슨, 학교에서 가장 멀다는 말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타고, 제일 늦게 내린다.
15대가 넘는 크고 작은 스쿨버스 중 우리 버스 번호는 9번 대형 버스.
30분 동안 여러 골목을 지나며 아이들을 태운다.
그렇게 총 30여 명의 학생들이 타는데, 버스가 서는 곳마다 동네마다의 특징이 명확하다.
어떤 동네는 부모들이 파자마 차림에 부스스한 머리 그대로 나와 기다리는 경우도 있고, 어떤 동네는 깔끔하게 옷 차려 입고 출근 준비 끝낸 상태로 나와 있기도 한다.
어떤 곳은 젖먹이 막내까지 데리고 나와 누나 형들 학교 가는 걸 배웅한다.
어떤 모습이든 부모들이 꼭 나와 있다.
우리 골목은 부모들이 아예 안. 나. 온. 다.
참… 주체적인 골목이다.
― 끼이익.
8시 23분.
오늘은 첫날이라 좀 늦은 모양이다.
STOP 사인 앞에 노란색 스쿨버스가 당도했고, 우리는 버스에 타기 시작했다.
이 버스를 탈 우리 동네 초딩은 총 6명.
둘이 안 보인다.
첫날부터 놓친 거지.
그 순간.
― 스타아아아압!!!!
마크가 비명을 지르며 뛰어온다.
헤나는… 안 보이네.
친절하게도 닫으려던 버스 문을 열어 주는 기사 아저씨.
마크가 헐레벌떡 타며 손짓 발짓에 여념이 없다.
“헤. 헤. 헤나. 헤나. 오는데. 1분만. 헥헥.”
“미안. 나도 이미 늦었다고.”
버스는 매정하게 출발했고, 뒤이어 쫓아 나온 헤나는 결국 엄마한테 궁둥짝을 맞았다.
* * *
역시 학교는 생명력이 팔딱팔딱 넘치다 못해 끓어 넘치는 곳이다.
― 하이. 제이든.
― 제이든. 하이.
― 하이. 잘 지냈어?
.
.
.
전학 오는 학생들이 없는 한 킨더부터 쭈욱 이어온 아이들.
한 반에 25명씩, 3학급의 학교인지라 한 학년에 75명 밖에 안 된다.
그냥 서로서로 다 안다고 보면 된다.
“제이든! 빅 뉴스. 빅 뉴스!”
킨더 때부터 저러더니 아직까지 매번 뉴스를 몰고 오는 알렉스.
300개를 3천만 개라 부르던 놈.
아직까지 숫자에 약하다.
꿈이 뉴스 앵커라는데 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가끔 괜찮은 뉴스를 물고 오기도 하기 때문에 심드렁하게 물어봤다.
“뭔데?”
“인도! 인도 애가 들어왔어.”
“뭐?”
“전학생이 있다고. 그것도 인도 애로 3남매래. 우리 4학년도 한 명 있대. 근데!”
“근데?”
“천재래!”
“오호. 천재?”
“어. 그냥 천재도 아니고 찐! 수학을 중학교 수학을 듣는대. 그… 지… 지….”
“지오메트리?”
“어! 그거. 지메트리. 어? 너는 어떻게 알아?”
“몰라. 니가 그냥 지. 지. 하니까 그건가 보다 하는 거지. 너튜브에서 봤어.”
“아. 암튼 그거. 완전 똑똑해서 샘들이 신기해하나 봐.”
“글쿤.”
“뭐야. 이 반응은? 너 혹시 질투하는 거?”
“뭐래. 얼른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 줘야지. 뭐 해?”
“아. 그렇지.”
인도인이라…
세상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다는 인도인과 중국인.
어째 이 학교에 없다 싶었는데, 결국 왔구나.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종족이 인도인과 중국인이다.
구구단과 19단은 2학년 때 뗀다고 하던데.
개인적으로 하등 쓸모없다 생각하는 Spelling Bee(심사위원이 부르는 단어의 알파벳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끝까지 말하는 대회)는 이미 인도인이 휩쓸고 있고, 온갖 과학 경시대회부터 수학 경시대회까지.
모든 대회의 상이란 상은 다 휩쓸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긴장해야 하나?’
나도 지금 당장 8학년 때 듣는 지오메트리 문제를 풀어 보라고 한다면… 풀 수 있겠지?
좀 오래되긴 했지만…
집에 가서 너튜브라도 뒤져 볼까?
전학생처럼 이렇게 수업을 몇 단계씩 뛰어넘는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가면 더 이상 들을 수업이 없어 근처 대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그거… 생각보다 엄청 귀찮은 거다.
― 드르륵.
문이 열리고 전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 안 가본 놈이 가본 놈을 이긴다
전학생은 본인 이름이 적힌 자리에 가서 머쓱하게 앉았다.
학기 중간에 전학 오면 그래도 인사라도 시키는데, 개학 첫날이라 그런지 따로 소개 같은 건 없다.
아무튼 갑자기 낯선 땅에 떨어진 불쌍한 중생은 구하고 봐야지.
눈동자만 떼굴떼굴 굴리고 있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 내 이름은 제이든이야. 제이든 패터슨. 너는?”
“난 오디. 오디 티루말라. 그냥 오디라고 불러.”
“어. 오디. 만나서 반갑다.”
“나도.”
순박한 미소가 귀엽네.
― 드르륵.
잠시 후.
4학년 담임인 미스터 아담이라는 남자 선생님이 들어왔다.
대충 봐도 190cm는 넘어 보인다.
4학년쯤 되면 선생보다 큰 아이들이 하나둘 생긴다.
독일계나 네덜란드 쪽이 특히 키가 큰데, 여자고 남자고 장대같이 크다.
그래서인지 4학년부터는 3개 학급 중 2개 학급은 담임이 남자 선생님이다.
커가는 사춘기 아이들 통솔하려면 무서운 선생님이 제격이니까.
난…
아직도 반에서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처음으로 제이든의 친부모 키가 궁금해졌다.
* * *
전학생 오디는 이상하게 살짝 풀이 죽어 있는 느낌이었는데, 전학을 와서 그런 것과는 궤가 달랐다.
며칠 후 점심시간에 그 이유를 알았다.
이제는 초등학교에서 고학년이라 부를 수 있는 4학년.
4학년이라 좋은 점 중 하나는 급식 양이 성에 안 찰 경우 한 번 더 사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창 크는 성장기의 아이들은 항상 배가 고픈 법.
점심 식사가 일찍 시작되는 저학년 아이들은 배가 고파도 음식을 더 사 먹을 수 없다.
나중에 고학년들의 식사가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4학년과 5학년은 12시에 함께 식사를 한다.
이때 첫 번째 배식이 끝나고도 남은 음식이 있다면 선착순으로 더 사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돈을 내고 사 먹을 수도 있지만 보통의 초등학생은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본인 점심 식사 어카운트에 들어 있는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카운트에 돈이 모자라도 먹게 하고 부모에게 돈을 내라 공지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엔 재정이 어려운지 돈이 없으면 음식을 안 준다.
할당된 급식을 다 먹고도 아직 배가 덜 찬다며 급식대로 달려갔던 알렉스가 터덜거리며 돌아왔다.
“왜 빈손이야?”
“어카운트가 마이너스야. 아오. 엄마는 돈도 안 채워 넣고.”
“네가 너무 빨리 쓰는 거 아냐? 너 도시락 싸 올 때도 다 먹고 또 사 먹는 경우 많잖아.”
“…오디. 근데 넌 8학년들이랑 같이 수업 듣는 거 힘들지 않아? 너무 재미없을 것 같은데.”
말 돌리기는.
하지만 다들 궁금했던 내용이기에 모두 오디의 입을 주목했다.
여기서 ‘아니. 엄청 재밌는데?’라는 답이 나오면 다들 어떤 반응들일지 궁금하네.
“어. 재미없어.”
“그럼, 엄마한테 말해서 안 한다고 해.”
“…….”
“왜? 엄마가 무서워?”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인 오디가 말없이 샌드위치만 우물거린다.
점심 식사 테이블은 커다란 원형 테이블로 7개의 동그란 의자가 붙박이로 붙어있다.
아이들이 의자 가지고 장난 칠 수 없게끔 고정되어 있는데, 안쪽에서 밖으로 밀어 꺼내는 형식이다.
우리 테이블은 7개의 의자가 다 채워진 상태다.
알렉스가 심하게 빨리 먹어 치워서 그렇지 남은 우리는 아직 식사의 절반도 하지 못한 중이고.
‘부모가 엄한 모양이네.’
엄마 이야기만 나와도 풀이 팍 죽는 모습을 보니 좀 안됐네.
조용히 남은 식사나 하고 있는데 오디가 천천히 입을 연다.
“큰형은 지금 16살인데… CMU(카네기 멜론 대학) CS(컴퓨터 사이언스) Ph. D(박사) 과정에 들어갔고, 몇 년 전부터 구글이랑 조인트해서 AI 연구하고 있어. 그리고 동생은 나보다 한 살 어린데 수학은 8학년 꺼 듣고, 나머지 수업은 6학년 꺼 들어.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머리가 나빠. 엄마는 그냥 평범하게 자라는 것도 괜찮다고 했고, 아빠는…멍청한 놈이라고 해. 그래서 말할 수 없어.”
“…….”
― 땡그랑.
정적.
누군가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이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각자의 감정을 표현했다.
― 왓더!
―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니까 16살 큰형이 구글이랑 같이 연구한다는 거지?
― 음. 우리 누나가 16살인데… 걔는 12학년인데도 놀기 바쁘던데…
― CMU CS Ph. D? 그게 뭔데?
― 니가 멍청하면 우리는…
“…힘들겠네.”
― 끄덕끄덕.
오디의 엄마는 전직 하버드 입학사정관이자 현직 프로그래머이고, 아빠는 인도에서 유명한 테크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1년에 절반은 인도에서 머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