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5)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5화(15/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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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 가본 놈이 가본 놈을 이긴다.
전학생은 본인 이름이 적힌 자리에 가서 머쓱하게 앉았다.
학기 중간에 전학 오면 그래도 인사라도 시키는데, 개학 첫날이라 그런지 따로 소개 같은 건 없다.
아무튼 갑자기 낯선 땅에 떨어진 불쌍한 중생은 구하고 봐야지.
눈동자만 떼굴떼굴 굴리고 있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 내 이름은 제이든이야. 제이든 패터슨. 너는?”
“난 오디. 오디 티루말라. 그냥 오디라고 불러.”
“어. 오디. 만나서 반갑다.”
“나도.”
순박한 미소가 귀엽네.
– 드르륵.
잠시 후.
4학년 담임인 미스터 아담이라는 남자 선생님이 들어왔다.
대충 봐도 190센티는 넘어 보인다.
4학년쯤 되면 선생보다 큰 아이들이 하나 둘 생긴다.
독일계나 네덜란드 쪽이 특히 키가 큰데, 여자고 남자고 장대같이 크다.
그래서인지 4학년부터는 세 개 학급 중 두 개 학급이 남자선생님이다.
커가는 사춘기 아이들 통솔하려면 무서운 선생님이 제격이니까.
난…
아직도 반에서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처음으로 제이든의 친 부모 키가 궁금해졌다.
***
전학생 오디는 이상하게 살짝 풀이 죽어있는 느낌이었는데, 전학을 와서 그런 것과는 궤가 달랐다.
며칠 후 점심시간에 그 이유를 알았다.
이제는 초등학교에서 고학년이라 부를 수 있는 4학년.
4학년이라 좋은 점 중 하나는 급식 양이 성에 안찰 경우 한번 더 사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창 크는 성장기의 아이들은 항상 배가 고픈 법.
점심식사가 일찍 시작되는 저학년 아이들은 배가 고파도 음식을 더 사먹을 수 없다.
나중에 고학년들의 식사가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4학년과 5학년은 12시에 함께 식사를 한다.
이때 첫 번째 배식이 끝나고도 남은 음식이 있다면 선착순으로 더 사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돈을 내고 사먹을 수도 있지만 보통의 초등학생은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본인 점심식사 어카운트에 들어있는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어카운트에 돈이 모자라도 먹게 하고 부모에게 돈을 내라 공지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엔 재정이 어려운지 돈이 없으면 음식을 안준다.
할당된 급식을 다 먹고도 아직 배가 덜 찬다며 급식대로 달려갔던 알렉스가 터덜거리며 돌아왔다.
“왜 빈손이야?”
“어카운트가 마이너스야. 아오. 엄마는 돈도 안 채워넣고.”
“네가 너무 빨리 쓰는 거 아냐? 너 도시락 싸올 때도 다 먹고 또 사먹는 경우 많잖아.”
“…오디. 근데 넌 8학년들이랑 같이 수업 듣는 거 힘들지 않아? 너무 재미없을 것 같은데.”
말 돌리기는.
하지만 다들 궁금했던 내용이기에 모두 오디의 입을 주목했다.
여기서 ‘아니. 엄청 재밌는데?’라는 답이 나오면 다들 어떤 반응들일지 궁금하네.
“어. 재미없어.”
“그럼 엄마한테 말해서 안한다고 해.”
“…”
“왜? 엄마가 무서워?”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인 오디가 말없이 샌드위치만 우물거린다.
점심식사 테이블은 커다란 원형 테이블로 7개의 동그란 의자가 붙박이로 붙어있다.
아이들이 의자가지고 장난칠 수 없게끔 고정되어 있는데, 안쪽에서 밖으로 밀어 꺼내는 형식이다.
우리 테이블은 7개의 의자가 다 채워진 상태다.
알렉스가 심하게 빨리 먹어치워서 그렇지 남은 우리는 아직 식사의 절반도 하지 못한 중이고.
‘부모가 엄한 모양이네.’
엄마 이야기만 나와도 풀이 팍 죽는 모습을 보니 좀 안됐네.
조용히 남은 식사나 하고 있는데 오디가 천천히 입을 연다.
“큰 형은 지금 16살인데…CMU(카네기 멜론 대학) CS(컴퓨터 사이언스) Ph. D(박사) 과정에 들어갔고, 몇 년 전부터 구글이랑 조인트해서 AI 연구하고 있어. 그리고 동생은 나보다 한 살 어린데 수학은 8학년꺼 듣고, 나머지 수업은 6학년꺼 들어.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머리가 나빠. 엄마는 그냥 평범하게 자라는 것도 괜찮다고 했고, 아빠는…멍청한 놈이라고 해. 그래서 말할 수 없어.”
“…”
– 땡그랑.
정적.
누군가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이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각자의 감정을 표현했다.
– 왓더!
–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니까 16살 큰형이 구글이랑 같이 연구한다는 거지?
– 음. 우리 누나가 16살인데…걔는 12학년인데도 놀기 바쁘던데…
– CMU CS Ph. D? 그게 뭔데?
– 니가 멍청하면 우리는…
“…힘들겠네.”
– 끄덕끄덕.
오디의 엄마는 전직 하버드 입학사정관이자 현직 프로그래머이고, 아빠는 인도에서 유명한 테크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1년에 절반은 인도에서 머문다고.
인도 사람들은 각자의 성만 들어도 무슨 계급에, 어떤 일을 하는 집안인지 모두 안다고 한다.
검색해서 찾아볼까?
어차피 인도 공용어가 영어니까 검색하면 나오는 집안일 지도 모른다.
오디가 이 동네로 이사 온 것은 엄마 직장 때문으로, 몇 개의 선택지 중 큰형 학교하고 가장 가까운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란다.
우리 동네에서 CMU까지는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급한 일이 있을 때, 차로 달려갈 수 있는 거리이긴 하다.
‘9살, 초등학교 4학년생 오디 티루말라.’
소처럼 큰 눈을 가지고 있는 순박하게 생긴 녀석.
리세스(Recess) 타임에 친구들과 노는 걸 보면 영락없는 4학년짜리인데 말이다.
새삼 엄마의 꼰대력에 감사를 표하게 됐다.
그냥 제 나이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면 되는 거지.
때가 되면 초등학교 가고,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가고, 그러다가 남들 보기에 좋다 싶은 대학에 입학하고, 공부가 더 하고 싶으면 대학원을 가던가 돈을 벌고 싶으면 취직을 하면 되는 거지.
일찍일찍 선행 코스를 밟아 대학을 졸업하면 뭐하나.
냉혹한 사회에 어린 나이에 내던져지는 것 뿐인데.
일찍 성공해서 조기 은퇴를 꿈꾸는 건가?
옛말에 3대 불행으로
[조기성공, 중년상처, 노년무전]을 꼽는다 했는데.
조기성공이 3대 불행 중 하나에 속하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이런.
나도 꼰대가 되어 가는 건가?
모르겠다.
주변에 이렇게 어린 나이에 사회로 진출한 사례가 없어서 안일한 생각에 젖어 사는 것일 수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가는 건가.
그냥 오디의 말은 20대 후반의 정신연령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을 뿐.
오디가 묘하게 풀이 죽은 모습도 이해가 간다.
집 안에선 완전 멍청이로 취급받다가 학교만 오면 천재로 추앙받는다.
거기서 오는 괴리감을 소화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다.
시끌벅적하던 우리 테이블의 점심시간은 그렇게 엄숙한 분위기로 끝이 났다.
물론 식사 후 리세스 타임엔 축구를 하면서 신나게 놀았지만.
***
어쨌든 우리는 학생이다.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학생으로서의 본분은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면 4시.
숙제는 웬만해선 없고, 있어도 20분이면 끝이 난다.
대부분 수학 문제지 한 두 장이고, 가끔 영어 숙제로 글쓰기가 있지만 금방 끝내면 된다.
그마저도 안 해 오는 애들이 태반인 학교다.
애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집으로 모였다.
소문이 났는지 옆 동네에서도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집 식탁에는 6명의 초딩들과 2명의 중딩이 있다.
마크와 헤나의 아버지가 본인 집에 너무 크다며 넘겨준 기다란 식탁.
나무로 대충 만든 것 같은 식탁은 긴 직사각형의 모양으로 공원에 있는 야외용 파티 식탁과 비슷하다.
진짜 거기서 떼온 건 아니겠지?
모양이 꼭…
쩝.
남을 함부로 의심하는 건 좋지 않다.
아무튼 한쪽에 4명씩 대충 붙어 앉으면 8명까지는 소화가 가능한 식탁이다.
“5.4.3.2.1 스타트!”
– 사각, 사각, 팔락, 팔락.
연필로 필기하는 소리와 책장 넘어가는 소리들.
어느 새 우리 집 베이스먼트(지하방)는 애들 공부방이 되어 버렸다.
“끝!”
“쉿! 가져와 봐.”
역시 어릴수록 숙제가 없다.
헤나가 제일 먼저 숙제를 끝냈다고 손을 든다.
내 숙제를 하다가 헤나가 한 숙제를 봐주었다.
“잘했네. 아직 시간 끝나려면 50분 남았어. 저쪽에 가서 너 좋아하는 책 읽거나 그림 그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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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개학 첫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스쿨버스 안에서의 대화 때문이다.
“우와. 오늘 첫날인데 우리 담탱이 숙제를 내줬어. 너도 있어?”
“아니. 근데 마크. 너는 5학년이니까 있을 수도 있지. 혼자 하기 싫으면 우리 집으로 건너 와. 너 숙제하는 동안 나도 같이 공부할게.”
“진짜? 혼자 하기 진짜 싫었는데.”
“나도 가도 돼? 너가 그 프리알지브라 공부 시켜줬다는 제이든 맞지?”
“어? 어. 넌 누군데?”
“나 마크랑 같은 반 친구. 크리스틴 오웬. 나도 가도 돼? 난 마크보다 공부는 잘 해.”
“어. 언제든지. 마크랑 같이 와.”
“오케이. 20분 뒤에 보자.”
크리스틴이 먼저 내리고, 우리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빨리 걸으면 10분도 안걸리는 거리긴 하다.
자전거로는 2-3분?
그날 마크와 크리스틴이 왔고, 헤나는 마크의 부록으로 따라왔고, 제이콥이 왔고, 제이콥의 친구인 매튜가 붙었다.
거기에 자전거로 10분 거리의 알렉스가 따라붙었고, 동네 2학년짜리 꼬맹이 조나단이 붙었다.
조나단은 순수하게 심심해서 인 것 같다.
거기에 나까지 총 8명.
초등 2학년짜리부터 중등 6학년짜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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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가 서로 어울려 놀기엔 나이대도 성별도 맞지 않는 이상한 그룹이었지만 뭐 어떠리.
모여서 공부하겠다는데.
공부시간은 딱 1시간.
이 동네는 중학생이라고 숙제가 많지는 않다.
거기도 최대 30분, 보통은 20분이면 끝이 난다.
다만 틀리면 내가 봐주고, 다시 풀고 하느라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영어 글짓기 숙제는 사실 나도 그다지 자신은 없었는데, 애들 써 놓은 걸 보니 그래도 내가 낫다 싶다.
어쨌든 이곳에 합류한 이상 1시간은 채워야 끝나는 시간.
본인 숙제가 빨리 끝나면 그 시간동안 조용히 다른 걸로 시간을 채운다.
못 견디겠으면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조나단은 벌써 몇 번을 탈주했다.
하지만 오늘은 낮잠으로 시간을 채우기로 결심한 것 같다.
A4용지 한 바닥 가득(? 20문제) 적힌 두 자릿수 더하기 숙제를 끝내고는 한쪽에 놓인 소파에 가서 드러누워 버렸다.
2학년인데 오죽하랴.
가만히 두었다.
– 띠링. 띠링.
숙제가 끝날 때 쯤 들리는 벨 소리 2번.
누군가 애들 먹으라고 음식을 놓고 간 거다.
“내가 가져올게.”
“어.”
지겨워서 몸을 비틀던 알렉스가 후다닥 일어나 1층으로 올라갔다.
– 피자!
알렉스가 1층에서 소리를 지른다.
시계를 보니 1시간이 거의 다 됐다.
다들 숙제는 이미 끝나서 종 치기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오케이. 오늘은 여기서 끝!”
“야호!”
“이제 뭐할거야? 닌텐X 게임?”
“아니. 오늘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할 거야.”
“오! 오! 나 그거 알아! 셋플릭스에서 봤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다 할 때까지 금 안에 도착해야 하는 거. 못하면 두두두두-바로 총 맞아 뒈지는 거. 그거 맞지?”
“…어. 그거 맞아. 일단 올라가서 손 먼저 씻고, 피자 먹고. 나가자.”
“예스예스!”
문화가 잘못 전달된 폐해다.
소파에 죽은 듯 누워있던 조나단이 벌떡 일어난다.
쟤는 이거 때문에 오는 거다.
공부가 끝나고 다 같이 노는 이 시간.
공부시간을 다 안 채우고 탈주하면 끼워주지 않았더니 어떻게든 여기서 비비고 있는다.
백인들도 대도시나 학군이 치열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식들 공부에 신경을 많이 쓴다던데.
이 동네는 부모들이 도통 애들 공부에 신경을 안쓴다.
그냥 예습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숙제라도 내어주니 고마워해야 할 판.
요즘 제이콥은 수업시간이 너무 즐겁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물어보는 걸 혼자 독식하듯 대답을 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예쁨을 많이 받는단다.
시험을 치르면 이제까지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100점이 수두룩하니 본인도 즐겁고, 관심없던 부모님도 은근히 좋아하고, 선생님도 좋아하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이지.
1시간 공부를 가장한 숙제를 하고, 10분 피자를 먹고, 2시간을 밖에서 놀았다.
“총 안 쏴?”
“원래 총 쏘는 게임 아니라니까!”
“아냐! 셋플릭스에서는 총 쐈다고. 우리 집에 너프건(Nerf Gun) 많아!”
“우리 집에도!”
“나도. 가져올게!”
“…”
서울 안 가본 놈이 가본 놈을 이긴다더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순수한 어린이들의 놀이는 결국 너프건 싸움으로 변질됐고, 나중엔 온 동네가 그냥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재밌으면 됐지 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