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36)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36화(3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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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에이저(Teenager)들의 봉사란 3
지휘자는 없다.
내가 맨 앞 끝 쪽에 앉아 눈짓으로 신호를 했다.
서로의 눈을 보며, 손가락을 보며 우리는 연주를 이어갔다.
– 뺘얌.
삑사리가 난다.
마커슨이다.
당황하며 얼굴이 붉게 물들자 그걸 보고 웃긴 알렉스가 또 삑사리를 낸다.
프렌치 혼의 소리는 크다.
크리스틴의 고개가 넘어간다.
– 뿌잉.
플롯이 삑사리가 나자 3명의 트럼본들도 삑사리가 난다.
연주자들이 평정심을 잃으면 그 곡은 망한 거다.
여기저기서 삑삑거린다.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했다.
다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연주에 집중한다.
겨우 한 곡이 끝났다.
– 우하하하.
음악에 조예가 깊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깔깔거린다.
그 웃음소리에 옆에 졸고 있던 할머니가 또 깔깔거린다.
“헤. 연습할 때는 잘 됐는데. 흠흠. 그럼 다시 마음을 다잡고 다음 곡으로 넘어갈게요. 다음 곡은 비틀즈의 ‘I Want to Hold Your Hand’라는 곡이에요. 다들 잘 아시죠? 가사를 아는 분은 부르셔도 좋아요.”
이곳의 평균 연령은 80세.
새롭고 신선한 것보다는 귀에 익은 걸 연주할 때 반응이 좋다.
일부러 대중음악을 끼워 넣은 것이다.
스타워즈의 곡보다는 웅장하지 않지만 따라 부르기는 쉽다.
우리 중 보컬은 없다.
아직도 연습할 때의 실력이 나오지는 않는다.
중구난방의 연주가 이어지지만 몇몇 사람들의 손가락이 리듬에 맞춰 움찔거린다.
눈물을 찍어내는 할머니도 있다.
젊은 시절의 회상에 잠긴 것이겠지.
“그럼 마지막 곡입니다. 클로드 드뷔시(Debussy)의 ‘클레어 드 룬(Clair de Lune)’이라는 곡입니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곡이죠.”
사실 이 마지막 곡은 도전이었다.
보통은 피아노 독주로 쓰이는 곡이지만 연습 때 나름 분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해도 되겠다 싶었다.
실수였다.
– 빠. 뿌. 붕, 픽.
망했다.
잔잔하고 감성적인 곡으로 조금 무리다 싶긴 했지만…졸고 있는 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뜰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다. 다시!”
– 뿌우웅.
결국 나까지 삑사리를 냈고.
어른들은 이제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깔깔거렸다.
처음 보았을 땐 아무 기대 없이, 그저 갇혀있는 긴긴 시간을 뭐라도 하면서 때우기 위해 참석한 것이 확실해 보였던 이들.
눈빛들이 초롱초롱해져 버렸다.
첫 곡부터 껄껄거리던 분이 이젠 대놓고 웃어버린다.
웃음은 전염된다.
그 웃음에 나머지 사람들도 웃기 시작했다.
첫 곡의 작은 삑사리에 잠깐 웃고 지나간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긴 웃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알렉스의 어깨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기가 막힌 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모르게 픽- 웃어버리자 그걸 본 우리 클럽 놈들이 모두 와- 하고 웃어버렸다.
결국 자리에 있던 모두의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 소리에 다른 곳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기회를 이렇게 날릴 순 없지.
“큼. 마지막 곡은 다시는 도전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끝내기는 너무 아쉬우니까요. 음. 첫 번째 곡. 스타워즈의 Imperial March 다시 들려드릴게요. 다른 분들도 같이 들어요.”
– 좋지.
– 오. 다스베이더.
– 짝짝짝.
.
.
.
새로 합류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한다.
우리 팀들도 사람들이 자꾸 모이니 살짝 긴장한다.
이 분위기 좋다.
– 빠빠빰.
한바탕 웃고 났더니 힘이 났는지 모두가 합심해 굉장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웅장하고 경쾌한 곡이 널싱홈 전체에 울려 퍼지며 오늘의 무대가 마무리되었다.
– 짝짝짝짝.
– 브라보!
– 멋지다!
.
.
.
매가리 없는 목소리가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의 직원들부터 처음 들어설 때 꺼림칙한 눈빛을 보내던 간호사까지 모두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쳐 주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어른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고.
삼촌은 이 모든 상황들을 동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내 눈짓에 우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받았다.
“그럼 다음 주 이 시간에 또 찾아오겠습니다. 다들 꼭 오세요. 재미있고, 밝은 곡 들고 올게요.”
내 말에 흩어지는 사람들.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가 딱 좋다.
괜히 호기부리며 한 곡 더하다간 다음 주엔 한명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주섬주섬 악기를 챙기고 있는데, 휠체어 하나가 쭈욱 다가온다.
처음부터 껄껄거리며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보내던 할아버지.
“제이든이라고?”
“네.”
“멜버른 중학교 다니고?”
“네. 6학년이에요.”
“아무리 작은 단위라고 해도 6학년이 전체를 통솔하다니. 리더십이 뛰어나구나. 넌 크게 될 거야. 음. 나는. 큼. 22년 동안 중학교에서 밴드부 선생을 했었단다.”
“와. 그러셨구나. 반가워요. 선생님.”
“그…혹시 원한다면 악보를 좀 줄까? 가지고 있는 게 많은데, 내 자식들은 음악에 도통 관심이 없어서 말이다.”
“어우. 그럼요. 주시면 너무 좋죠.”
“오래된 거라 좀 낡았겠지만 도움이 될 거야. 내가…나름대로 해석해 놓은 것들도 좀 있고. 내 글씨체를 알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시. 싫으면 안 받아도 된다.”
“주세요. 싫지 않아요. 저 눈 좋아서 악필도 잘 알아봐요. 헤헤. 그리고 다음에 선생님 원하실 때 우리 지휘도 해주세요.”
“그. 그래도 될까?”
“그럼요. 아까 보셨잖아요. 우리 완전 초짜라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부탁드려요. 선생님.”
“…고맙구나. 악보는 다음 주에 오면 주마. 그게 집 창고에 다 모아놨는데. 내가 절대로 버리지 말라고 했으니까. 아들 녀석이 버리진 않았을 거야. 아. 내 이름은 리차드다. 리차드 커나스.”
“네. 미스터 커나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늙는다는 건 참…
좋은 게 1도 없는 것 같다.
한때는 중학생 밴드부를 호령하며 행사 프로그램을 짜고, 아이들에게 레슨을 했을 사람.
이제는 코에 산소관을 끼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움직여야 한다.
그나마 이곳의 다른 분들에 비하면 아직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악기를 다 싼 친구 놈들이 모여들었다.
선생님이 ‘너희도 동의하냐?’는 눈빛으로 둘러보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돌아가는 미스터 커나스.
“잠깐. 리차드 커나스?”
“왜?”
내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그 이름. 어디서 들어봤는데? 어디서 들었지?”
“여기.”
“뭐?”
“여기이.”
오디가 우리가 연주했던 스타워즈의 악보를 내밀며 손가락을 뻗었다.
– 편곡: 리차드 커나스.
허얼.
인터넷에서 중학생이 연주하기에 가장 적합한 스타워즈 편곡 작품을 다운받았었다.
미국에서 꽤 유명한 중학교 밴드 선생님이 편곡을 했다고 해서 자그마치 2불이나 내고 산 악보인데.
여러 밴드 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또 연주 지도자로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사람.
‘저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야?’
“도. 동명이인 아닐까? 엄청 유명한 사람이던데.”
“다른 사정이 있겠지. 다른 사람 사생활엔 관심 끄시고.”
“야. 크리스틴. 넌 진짜 말 좀 예쁘게 해.”
“내가 뭐!”
“됐다.”
“뭐가 됐는데? 매튜! 뭐가 됐냐고!”
“말 예쁘게 하라잖아. 뭘 자꾸 물어.”
“제이코옵! 싸울래?”
“…집에 가자.”
.
.
.
금방 일상으로 돌아오는 놈들.
잠깐 기대했었다.
“기다려. 다음주꺼 등록해 놓고 올 테니까. 말썽부리지 말고.”
“제이든. 우리가 무슨 애들이냐? 꼰대 같은 소리 좀 그만해.”
“마크. 곧 기말이지? 숙제로 내 준 책은 다 읽었고?”
“…”
– 피식.
내 한마디에 바로 꼬리를 내리는 마크.
어린놈의 자식들.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가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기다리고 있다.
“잘 했어? 사람들 반응은 어때? 계속 할 수 있겠어? 어우. 너무 궁금하다. 막 박수도 쳐주고 그래? 거긴 치매 앓고 있는 사람들 많아서 돌발행동도 있었을 텐데.”
“으하하하. 누나. 이거 봐봐. 내가 싹다 녹화했어. 완전 웃겼다니까. 거기 직원이 사람들이 이렇게 웃는 거 처음 봤대. 완전 고맙다고 하더라고.”
“웃어? 뭘 했는데? 스탠딩코미디 하러 간 거 아니잖아.”
“일단 보시고.”
쥐구멍에 숨고 싶다.
***
교회에 갔다.
엄마가 각성한 후로 우리는 매주 주일 꼬박꼬박 교회를 나간다.
물론 바쁘거나, 아프거나, 급한 일이 있거나, 여행을 가거나 할 때는 빼고.
1년 52주 중 40주는 나오는 것 같다.
대단한 출석률이다.
삼촌은 슬쩍슬쩍 빠지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 얄짤없다.
그러다보니 이제 교회에서 우리를 모르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중학생이 되고는 유스부(Youth)에서 예배를 드린다.
중고등학생이 모두 모인다.
내가 유스부로 올라오면서 가장 좋아한 사람은 헤일리와 클로이다.
둘다 고등학교에서 풋볼(럭비, Football) 치어리더 주전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우리 고등학교는 부모들의 열성에 비해 아웃풋이 적게 나오는 학교다.
공부도, 음악도, 운동도.
상위 5%의 뛰어난 학생들 몇이 학교 점수를 올려놓고 있다고 보면 된다.
고등학교 풋볼 시즌은 9월부터 12주 정도 이어진다.
11월 말이나 12월 초면 끝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보통 10월 말이면 끝난다.
예선전에서 다 떨어지니까.
그래서 마칭밴드(Marching Band)도, 치어리더도, 운동선수도 활동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헤이. 제이든.”
“어. 헤일리도 왔네? 11학년인데. 안 바빠?”
“아. 진짜. 제이든. 애늙은이라니까. 우리 아직 1년 남았잖아. 괜찮아. 아직 시간 있어.”
“난 대학 안 갈 거라서 상관도 없고.”
“대학을 안가겠다고? 클로이. 다시 생각해 봐. 공부는 다 때가 있는 거야. 나중에 나이 들어서 공부하려면 힘들어.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머리도 안돌아간다고.”
“넌. 진짜 몇 살이냐? 됐고. 난 이미 아빠 식당 물려받기로 했어. 지금도 틈틈이 일하면서 배우고 있어.”
“아. 그러면 뭐.”
“그러니까 우리 걱정은 넣어두시고. 너. 우리 찬양팀 들어와.”
“어?”
“바순 연주를 그렇게 잘 한다며?”
“찬양팀에서 바순을 연주하라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바순은 좀 그렇지. 기타 할 줄 알지?”
“아주 조금?”
“가르쳐줄게. 배워. 기타는 금방 배워.”
“굳이?”
“어. 굳이.”
“좀 더 있다가 하면 안 될까? 그래도 6학년이 서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얘가 왜 빼고 이러실까? 벌써 3달이나 기다려줬는데? 우리가 너 오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는 건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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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합공에 물러설 자리가 없다.
기타를 아예 못하진 않는다.
전생에 아주 잠깐 겉멋에 취해서 기타를 배워보려고 했던 적이 있다.
기타 줄은 왜 그리 섬세하던지.
난 역시 스트링 쪽 보다는 관악기 쪽이라며 때려쳤었지만.
이젠 기타도 배워야 할 모양이다.
배워서 남 안준다는 건 이미 생생히 체험중이라 도망도 못가겠다.
***
집 안과 밖이 번쩍번쩍한다.
우리 집만이 아니다.
온 동네가 번쩍번쩍.
바야흐로 12월의 시작이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