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56)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56화(5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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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땡스기빙데이 3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한밤 중 마커슨이 누구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르는 척 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마커슨의 표정이 한결 좋아졌다.
“다들 괜찮대.”
“다행이다. 그러니까 너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있어.”
“어.”
묻지도 않은 답도 해 주고.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커슨의 엄마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어차피 월요일까지 학교는 쉰다.
그때까지도 오지 않으면 당분간 우리 집에서 학교를 다녀도 되고.
일요일 오후,
엄마는 일을 하러 갔고, 삼촌과 메디슨은 새로 산 집을 점검하러 갔다.
나와 마커슨은 베이스먼트 소파에 뒹굴 거리고 있었다.
“제이든.”
“어?”
“근데 도미니크가 왜 날 끌어들이지 않았을까?”
“너네 아버지 때문이라며?”
“그거야 어른들인 삼촌들 이야기지. 도미니크가 상관이나 했겠어?”
“아. 그건 그러네.”
“사실 도미니크가 우리 사촌 중에서는 제일 착했어. 근데 어느 순간부터 나한테 말도 걸지 말라고 그러고, 말 시켜도 짜증내고. 암튼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거든. 처음엔 엄청 서운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나를 보호하려고 그랬던 것 같아.”
“…”
그랬을까?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환상을 깨트리고 싶지는 않다.
“도미니크는 도대체 뭘 훔쳤을까?”
“뭐 짐작 가는 거 있어?”
“아니. 전혀. 난 걔 방에도 못가. 전에 할머니 심부름으로 잠깐 들어갔다가 노크도 안하고 들어온다고 들고 있던 컵을 던져서. 여기. 여기 보여? 이게 그 컵에 맞아서 생긴 상처야.”
마커슨이 이마 한쪽을 보여준다.
이제까지 못 봤는데 자세히 보니 한쪽에 오래된 흉터가 있긴 하다.
“나중에 물어봐. 뭘 훔쳤는지. 아니다. 물어보지 마. 아예 개입 자체를 하지 마. 뭐라도 알고 있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가? 그나저나 이제 도미니크는 어떻게 될까?”
“마일로처럼 보호소에 가겠지. 아직 18세 성인은 아니잖아. 아마 마일로보다 기간은 더 길테고. 어쩌면 1년 이상 잡혀 있게 될지도 모르지. 절도에 불법마약유통까지 걸렸으니까. 근데 어떤 걸 훔쳤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만약 나쁜 짓을 막으려고 했던 거면…정상참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는데. 도미니크 부모님 오버도즈로 죽었을 때, 두 사람을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도미니크야. 침대에 자는 것처럼 죽어 있었대. 그게 2년 전이야. 시기적으로 보면 도미니크가 막 그쪽 세계에 발을 담근 때이기도 해. 난 진짜 이해가 안가.”
“…나도 이해가 안되네.”
세상은 참 요지경이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시계는 똑딱똑딱 끊임없이 움직인다.
1년 넘게 마커슨과 지내다보니 마커슨은 생각보다 두려움을 많이 안고 사는 놈이다.
학교에서 우리들과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일상적인 생활을 할 때는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이다.
그런데 가끔 자기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과격함이 있다.
아마도 잠재된 두려움을 가리기 위한 자기방어기제가 아닌 가 싶다.
– 딩동딩동.
그 순간 들리는 초인종 소리.
우리 식구들이면 초인종을 누를 일이 없고, 공부방 놈들이면 초인종보다 문을 두드리는 걸 선호한다.
저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조용히 다가가 현관문 옆의 창문 블라인드를 슬쩍 들었다.
마커슨의 엄마가 서 있다.
“휴우. 마커슨 문 열어. 엄마 오셨다.”
“엄마?!”
– 달칵.
그대로 열리는 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마커슨을 바라보는 마커슨의 엄마.
“엄마!”
“마커슨!”
이산가족 상봉 나셨다.
이해는 한다.
그저 조용히 두 사람이 포옹을 풀 때까지 기다렸다.
“잘 지냈어?”
“네. 제이든 집이잖아요. 나는 정말 잘 지냈어요.”
“그래. 그럴 줄 알았지. 제이든 고맙구나. 미세스 패터슨은?”
“엄마는 일하러 가셨어요.”
“아. 그러시구나. 삼촌께선?”
“집 둘러보러 가셨어요. 저기 저 집이에요.”
“아. 그래. 들었다. 결혼하신다지?”
“네.”
“그…고맙다. 제이든. 너에게는 정말…큼.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짐작도 못하겠어. 우리 마커슨과 친구가 되어 준 것도 고맙고…공부 클럽에 넣어 준 것도 고맙고…후우. 네가 가족처럼, 형처럼 우리 마커슨 끌어주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어. 정말. 정말 고마워.”
서슬이 시퍼렇게 윽박지르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데.
뜻밖의 감사인사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어정쩡하게 고개만 끄덕거렸다.
“마커슨. 오늘 하루만 더 부탁할게. 집이 좀 난장판이라 가서 좀 치워야하거든.”
“네. 걱정하지 마세요. 원하신다면 이번 주까진 저희 집에서 지내도 돼요.”
“…진짜 그래도 되겠니?”
“네. 엄마도 그러라고 하셨어요. 마커슨 집 정리될 때까지 머물러도 된다고요.”
“…큼. 정말. 정말 고맙구나. 마커슨. 그럼 다음 주 일요일에 데리러 올게. 학교 가방이랑 옷가지들은…내일…후우. 내일 아침에 집 앞에 가져다두마. 새벽에 문 열면 있을 거야. 낮 시간엔 할머니와 함께 있어야 할 거 같아. 많이 무서워하시거든.”
“네. 엄마. 근데 할머니, 괜찮은 거죠?”
“그럼 괜찮지. 노인네가 겁이 많잖아. 같이 있어야지.”
“네. 그럼 얼른 가세요. 저는 괜찮아요.”
“그래. 또 보자.”
그렇게 마커슨의 엄마가 떠났다.
자식을 2주 동안 남의 집에 피신을 시켰다.
그 엄마의 기운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이 뭔가 생명력이 꺾인 느낌이다.
생각해보니 마커슨의 엄마야말로 근래 2-3년 사이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남편 사업이 갑작스럽게 흥했고, 또 갑작스럽게 망했다.
오랫동안 살던 동네를 버리고 삶의 터전을 바꿨고, 남편은 감옥에 들어갔으며, 언니 부부가 죽었고, 조카는 총에 맞았으며, 곧 소년원에 보내질 것이다.
살던 친정엄마의 집이 쑥대밭이 된 것은 덤이다.
나열하고 보니 참 역동적인 삶이었네.
그런 진탕 속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바르게 성장하고 있으니, 그 옆에 서 있는 우리들이 고마울 수밖에.
– 달칵.
삼촌과 메디슨이 돌아왔다.
뭘 했는지 옷이 온통 먼지투성이다.
“뭐하셨어요?”
“아. 크리스마스 장식 좀 하느라고.”
“같이 가시지.”
“너네는 이 집 장식 해야지. 안했어?”
“어…아직…그나저나 삼촌. 좀 전에 마커슨 엄마가 오셨는데요…”
“아. 들었어.”
“네?”
“일부러 들렀더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보냈으니까 너희도 걱정하지 말고. 마커슨. 1주일 동안 잘 지내보자.”
“네. 고맙습니다.”
“고맙긴. 참. 3일 이상 함께 같은 집에 살면 더 이상 손님 아닌 거 알지? 청소랑 빨래, 설거지 다 분담하는 거다?”
“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부터! 어때?”
“좋아요!”
마커슨이 오랜만에 웃는다.
그냥 손님처럼 1주일을 빌붙어 지내는 게 아닌, 1주일이라도 가족 구성원으로서 일을 맡겨주는 게 좋은 거다.
그렇게 마커슨과의 1주일간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
화요일.
학교를 마치고 모처럼 공부방 놈들 모두가 모였다.
오디의 입이 불룩 튀어나와있다.
“왜에?”
“나도. 나도 같이 살면 안되냐? 딱 1주일마안.”
“오디야. 불가능한 일은 거론하지를 말자.”
“그게 왜 불가능해?”
“그럼 엄마 허락부터 받고 와. 아니다. 너는 특별히 아빠의 사인을 받아와야겠지?”
옆에 놈들이 킬킬거린다.
다들 서로의 사정을 너무 잘 아니까 절로 실소가 나오는 거다.
“큭큭. 불가능한 일 맞네.”
“야!”
“뭐!”
“쓰읍. 그니까 그냥 말하면 안 되겠지. 작전을 짜자고. 1주일 전체 합숙. 어때? 이번 겨울방학 동안 다음 학기 완전 선행학습.”
“난 빠진다.”
“나도. 일하러 가야 돼.”
“나도. 그런 걸 왜 해? 노는 거면 몰라도.”
“맞아. 그리고 무엇보다 난 너네들이랑 1주일이나 같이 뒹굴고 싶지 않아.”
“와. 크리스틴! 말을 좀 가려서 해라. 누가 보면…”
“누가 보면?”
“아냐. 큭. 아니라고! 아씨. 너 진짜. 내가 여자라고 봐 주고 그런…아. 미안미안. 씨바. 미안하다고. 미이이이안! 여기 사람 죽어요!!!”
마크와 크리스틴.
쟤네 둘은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다.
어떨 때 보면 서로를 제일 잘 챙기는 것 같다가도 어떨 때 보면 저런 앙숙이 없다.
정말 죽일 기세로 마크의 목을 조르고 있는 크리스틴과 크리스틴의 한쪽 다리를 뽑아버릴 것처럼 잡고 늘어지는 마크.
매튜가 쯧쯧- 혀를 차더니 우리를 돌아본다.
“음. 얘들아. 근데 너네 왜 지난 학기에 크로스컨트리 안했어?”
“아. 그거. SS 오디션에 삼촌 이사다뭐다 깜빡했어. 내년엔 꼭 하려구.”
“그거 진짜 좋다. 꼭 해라. 그게 폐활량이 엄청 커져. 다들 관악기 하잖아. 엄청 도움 돼.”
“아. 그렇겠네. 나는 내년엔 꼭 할 거야. 너네는?”
“응. 난 키 좀 커야 돼. 그거 하면 키 큰다고 그래서 하려고. 농구 캠프는 이제 안 갈 거고. 역시 공 가지고 노는 건 안 맞아.”
“그건 나도 그래.”
7학년부터 신청할 수 있는 크로스컨트리.
원래는 7학년 시작하는 여름방학 때 신청을 했어야 했는데, 완전 깜빡했다.
“그런 의미에서 1월부터 트랙 한다는데 할 거야?”
“글쎄. 오래달리기는 할 만한데, 단거리 육상은 좀…무섭지 않냐?”
“어우야. 크로스컨트리는 2시간씩 달린다며. 난 그거보다 딱 100미터 뛰고 마는 게 낫다고 본다.”
“이런 무식한 것들. 트랙이 뭐 100미터만 있냐? 200미터도 있고, 400미터도 있고, 800미터도 있다. 심지어 일만미터도 있어.”
“그. 그럼 크로스컨트리랑 뭐가 달라?”
“마라톤이랑 일반 달리기의 차이점이지. 크로스컨트리는 동네 뛰는 거, 트랙은 운동장에서 뛰는 거.”
“…”
“그리고 우리 학교는 400미터 이상은 안 뛰어.”
“아무튼 나는 신청할거야.”
“그거 신청기간 지났어.”
“근데 왜 말을 한 거야?”
“추가 신청 받는대. 이번주 금요일까지.”
“…놀리는 거지?”
“우헤헤헤. 당연하지.”
“…”
알렉스.
아직도 멀었다.
저 유치한 장난은 언제 끝나려는지.
아무튼 가을엔 크로스컨트리, 겨울엔 트랙.
돈 없는 아이들이 주로 선택하는 종목이다.
이건 몸뚱아리와 괜찮은 운동화만 있으면 되니까.
풋볼이나 야구, 농구, 필드하키부터 아이스하키, 펜싱 등은 돈이 많이 든다.
장비부터 4-5시간 거리의 원정경기까지.
부모의 라이드는 필수다.
반면 크로스컨트리와 트랙은 학교에서 다 이뤄지고, 가끔 원정경기를 가긴 하지만 그래봤자 1시간 안팎의 다른 동네 학교들이다.
물론 그것도 잘 하면 멀리까지 원정 경기를 가겠지.
하지만 우리 학교는 욕심없이, 학생들 운동시키는 목적 차원에서 하는 거다.
어디를 가든 이동은 학교 스쿨버스로 한다.
“아. 신체검사지는 꼭 내야한다. 천식이나 뭐라더라? 암튼 큰 병 있으면 안 받는대. 뛰다가 쓰러지면 안 되니까.”
“그래.”
다음날, 7학년인 우리 4사람과 8학년인 마크와 크리스틴까지, 우리 공부방 놈들은 모두 신체검사지와 함께 트랙 신청서를 제출했다.
***
며칠 후.
마커슨이 집으로 돌아갔다.
마커슨의 엄마가 마커슨을 데리러 왔을 때, 두 엄마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3시간을 넘게 수다를 떨었다.
엄마가 오자 모든 준비를 다 끝내고 차에 타려던 마커슨과 인사를 하려던 나는 현관문 앞에 짐을 내려놓고 베이스먼트로 내려왔다.
마침내 ‘마커슨! 집에 가자.’라는 말을 하는 마커슨의 엄마.
무슨 말들을 주고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을 떠날 때 마커슨의 엄마는 젖은 눈을 하고선 환하게 웃으며 짧게 포옹을 해 주었다.
살면서 마커슨 엄마에게 포옹을 받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뜻밖이었다.
***
그리고 오늘은 12월 12일 금요일 저녁 7시.
SS1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다.
SS의 이번 텀이 마무리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 공연이 끝나면 내년 1월 중순에 새 텀이 시작된다.
엄마와 삼촌, 메디슨까지 콘서트에 참석했다.
학교에서 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러 학교가 모였던 TYT 공연과도 규모 자체가 다르다.
가족이어도 한 사람당 10불이나 되는 티켓을 구입해야 했고, 공연장소도 시립 뮤직홀이다.
관객들 역시 아무렇게나 넝마조각 따위를 입고 오면 엄청난 눈총을 받는다.
대충이라도 깔끔하게 꾸며 입어야 했다.
리허설을 위해 들어간 뮤직홀은 한국의 예술의 전당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소도시의 규모치고는 웅장한 편이었다.
영 최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공연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