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233)
233화 뉴에이지 (3)
고서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서재.
안경을 쓴 중년 사내 앞에서 바짝 긴장한 청년이 보고를 올리고 있다.
“최종 분석 결과, 벨베브 루인제네스가 마법진을 설치하고 리란느 비비앙이 작동시켰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말은 둘 다 도시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군?”
“예. 노아르크의 수호 결계가 정상 작동하는 것으로 추정컨대, 역시 라프도니아 내부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위장 하나는 기가 막힌 놈들이란 말이지.”
“지긋지긋한 놈들이지요. 그럼 이어서 오늘 아침 집계된 사상자 통계 보고드리겠습니다.
청년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번 사건의 총 피해 규모까지 보고했다.
다만 중년 사내는 감흥 없이 들을 뿐이었다.
“그래, 많이도 죽었군.”
4층 이상의 탐험가 중 70%가 죽었다.
살아남은 건 버림패로 남은 1,600명 남짓의 탐험가들과 처음부터 미궁에 진입하지 않았던 반동분자들뿐이라고 한다.
사실상 차원 붕괴에 준하는 막대한 피해.
“차라리 잘 됐어.”
라프도니아의 재상, 테르세리온 후작은 한 귀로 흘려내듯 피식 웃었다.
이에 청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할 게 있으니, 그럼 나가 보거라.”
“……쉬십시오, 아버님.”
“궁 내에서는 직위로.”
“예, 재상님.”
이내 사내가 손을 젓자 청년이 예의 바르게 목례하며 서재를 떠났다.
‘슬슬 마탑에도 연락을 넣어야겠군.’
사내는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오늘 있을 행사 때문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용인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솨아아아.
창문을 활짝 열자 바람이 힘차게 불어왔다.
햇살은 따스했고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국왕 폐하께서 좋아하시겠어.”
새 시대를 시작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
황도 카르논.
평민은 허가받지 못하면 들어설 수조차 없는 특수 지역.
“오오, 저게 왕궁인가!!”
왕가의 문양이 그려진 거대한 성문 너머로 들어서자 왕궁까지 쭉 뻗은 도로가 나타난다.
바닥에는 뿌려진 꽃잎이 한가득.
대로변엔 퍼레이드를 구경하듯 모인 인파가 곳곳에서 보인다.
물론 귀족은 거의 없다.
귀족 도시라 불리는 황도라 한들, 결국 인구의 9할은 이곳으로 출근하거나 숙식하는 사용인들로 이뤄져 있으니까.
“와아! 영웅들의 행차다!”
“꽃잎을 뿌려라!”
알바비로 얼마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용인들이 대로변에 수없이 늘어져 격하게 우리를 반겨줬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도착했습니다. 여정 중에 불편한 점은 없으셨는지요?”
이내 마차가 왕궁의 외벽 앞에서 멈춰섰다.
비단 우리가 타고 온 것뿐만 아니라 다른 수백 대의 마차도 마찬가지.
“그럼 내리지.”
“어, 잠깐만! 잠깐 숨 좀 돌리고, 응?”
이제 와서 긴장이 되는 건가?
하긴 얘는 황도에 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니까.
“……준비되면 말해라.”
“으으, 된 거 같당.”
마차에서 내리자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지난 참극 때 함께 사선을 넘었던 생존자들.
다만 서로 거리도 있기에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눈으로만 인사를 나누었다.
“금일 영웅들의 안내역을 맡은 페르트입니다. 이리로 오시지요. 모시겠습니다.”
우리는 성문 앞에서 간단하게 신분 확인만을 끝내고 안내인을 따라 왕궁으로 들어섰다.
정식 명칭은 영광의 궁.
연회를 열거나 왕가의 행사를 진행될 때 내빈을 맞는 용도로 사용되는 궁전.
“비, 비요른…….”
왕궁이란 이름에 걸맞게 너무도 화려한 내부에 아이나르가 기죽은 듯 내 눈치를 봤다.
거참, 얘는 이상한 데서 항상 이러네.
“어깨 펴라. 손님으로 왔는데, 네가 그러면 더 이상하지 않냐.”
“…아, 알았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안내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스무 평 남짓의 개인 접객실이었다.
“영웅들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들어서자마자 시녀들이 달라붙어 머리를 세팅해 주거나 단정하지 못한 옷매무새를 대신 정돈해 주었다.
또한 전담 안내인은 그러는 동안에도 간단한 예절들과 오늘 연회의 진행 순서들을 우리에게 알려 줬다.
그렇게 또 얼마나 지났을까.
“얀델 씨!”
“오호, 그렇게 꾸미니 다들 못 알아보겠군?”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던 레이븐과 아브만이 우리의 접객실을 찾아왔다.
그들 역시 평소와는 복장부터 달랐다.
땅에 질질 끌리는 기장의 정통 드레스를 입은 레이븐과 깔끔한 슈트를 입은 곰아저씨.
“핫, 조금 어색하지?”
곰아저씨가 멋쩍은 표정으로 볼을 긁적인다.
나름 아내의 도움을 받아 차려 입고 왔는데 여기서 기를 쓰고 갈아입혀 줬다고 한다.
용케 사이즈가 맞는 게 있었다 싶지만…….
“내빈을 위한 연미복은 모두 마법 부여가 된 의상입니다.”
안내인의 말에 따르면, 체격 구분 없이 착용 가능한 마법옷이 수천 벌가량 있다는 듯하다.
‘의상에 마법 부여라니.’
얼핏 합리적이면서도 터무니없는 낭비다.
우리처럼 연회복이 없는 내빈들이 왕궁에 방문하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럼 레이븐, 너도 여기서 옷을 갈아입은 건가?”
“아뇨, 저는 제 걸 입고 왔는데요?”
“……그렇군.”
상류층에 속하는 마법사답게, 이런 격식 있는 옷이 한 벌쯤은 그녀에게 있던 모양.
“와아, 예쁘당. 이런 건 얼마나 하냥?”
“어……. 글쎄요. 사실 예전에 스승님에게 선물 받은 거라서.”
“아, 정말? 아무튼, 그런 옷까지 입으니까 정말 요정 같당. 그 요정족이 아니라, 동화책에 나오는 옛날 요정.”
“페어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 응. 그거 그거.”
“흐음, 지금 키 작다고 놀리는 건 아니죠?”
“아니, 그럴 리가 있냥! 진짜 예쁘다니까?”
어느샌가 시작된 미샤와 레이븐의 걸스 토크.
나와 곰아저씨, 아이나르는 뒤쪽으로 물러나 다른 대화를 나누었다.
“이봐, 얀델. 보상에 대해서는 더 들은 것 없나? 예전부터 갖고 싶던 4등급 정수가 있는데 혹시 가능할까 싶어서 말이지.”
“글쎄, 거기까지는 나도 들은 게 없어서.”
“그보다 비요른, 배고픈데 밥은 언제 주나?”
“못 참겠으면 육포나 먹고 있어라.”
“오, 갖고 온 게 있나?”
“나도 하나만 줘라. 입이 심심하군.”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육포를 질겅질겅 씹고 있자니 잠시 떠났던 안내인이 돌아왔다.
“입장할 준비가 모두 끝났다고 합니다. 어서 가시지요.”
인파로 북적이는 접객실 밖 복도.
안내인들은 그런 그들을 질서정연하게 줄세웠다.
참고로 우리의 위치는 맨 앞 중심부였는데, 좌측으로는 멜터 펜드가, 우측으로는 카일 아저씨가 자리했다.
“아, 자네 왔나?”
“그런 옷도 제법 잘 어울리는군.”
“자, 여기 이쪽에 서게.”
……거, 부담스럽게.
“왜 하필 내가 가운데냐?”
“허허, 다른 사람이 서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여기 모인 모두가 자네 등만을 보고서 따라갔던 사람들인데.”
어, 음…….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지만, 이 아저씨는 나를 너무 높게 치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그래서 뭐라고 말이라도 해보려던 차였다.
“시작하려나 보군. 앞을 보게.”
카일이 정면을 응시하며 말했고.
“영웅들이 입장하십니다!”
누군가가 웅장한 외침과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뿌우우우우우-!
우렁찬 나팔 소리를 기점으로 시작된 경쾌한 연주.
“어서 가게.”
카일의 독촉에 열린 문 너머로 발을 내딛자, 그 뒤로 수많은 탐험가들이 따라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문 너머의 공간은 직사각형 구조의 홀이었다.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었고, 텅 빈 왕좌가 있는 곳까지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나는 카펫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목발 없이 걸으려니 죽을 맛이었지만, 바바리안의 자존심을 위해 안간힘을 써가며.
터벅, 터벅.
걸음을 내딛는 동안 기사들은 검을 뽑아 들어 경의를 표했고, 신관들은 신성력을 펑펑 써가며 축복을 내렸다.
아, 귀족들은 저 멀리서 박수를 쳐줬다.
1년 차가 좀 넘은 탐험가가 받기에는 너무도 망극한 대접.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아마 그건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겠지.
‘이건 뭐 구경거리도 아니고.”
아, 구경거리 맞나?
탓.
이내 걸음을 멈추자 뒤따르던 탐험가들도 줄지어 멈춰 섰다.
군인의 질서정연함과는 차이가 있었다.
제식을 배우지 않았기에 오와 열이 제대로 맞지 않고, 복장도 중구난방이라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준다.
근데 그게 우스꽝스러웠을까?
“풋.”
멀리서 어느 귀족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퍼져 나갔다.
동시에 무언가 짓이겨지는 소리도 났다.
꽈악-
살짝 고개를 돌려 뒤를 훑어보니 한 탐험가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나와 함께 동굴에서 길을 뚫던 전사였다.
참나, 몬스터들 대가리를 부술 땐 그렇게나 눈에 뵈는 게 없더니.
‘생각보다 숫기가 없구만.’
그때는 알지 못했던 전사들의 또 다른 면모.
왠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함성이 터져 나왔다.
“베헬—라아아아아아아!!”
드넓은 공간에 메아리치는 함성.
의도한 건 아닌데 후창이 이어졌다.
“베헬—라아아아아아아!!”
많지 않은 바바리안을 비롯해 우리의 전투 함성에 중독된 전사들이 토해낸 외침이었다.
“이 미친놈들이 왕궁에서까지…….”
대부분의 탐험가들은 아연한 표정을 짓거나 기도 안 찬다는 듯 숨을 토해냈다.
반면 귀족들은 조금 달랐다.
이게 약속된 퍼포먼스라고 생각했을까?
순간 놀랐다는 듯 정적을 뽑아내던 귀족들이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렀다.
‘얘네도 진짜 웃긴 새끼들이네.’
뭔가 웃기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좋아졌다.
화려한 왕궁, 보기 힘든 귀족들의 수많은 시선, 어색한 연미복 등등. 이 자리를 거북해하던 탐험가들이 조금이나마 여유를 되찾았다.
‘암, 다들 뻔뻔한 탐험가들이면 이래야지. 거기서 어떻게 살아서 돌아왔는데.’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서 카일이 씨익 웃었다.
“말했지 않나. 자네가 아니면 과연 누가 이 앞에 서겠느냐고.”
글쎄,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런 걸 바바리안이 아니면 누가 하겠어.
“저, 정숙! 정숙해 주십시오! 라프도니아의 재상이신 아게니 로튼 테르세리온 각하께서 납십니다!”
그렇게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재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외견.
희끗희끗한 머리에 선한 인상.
왠지 교장 선생님을 떠오르게 하는 재상은 텅 빈 왕좌 앞에 서서 연설을 시작했다.
일단 시작은 가벼운 농담부터.
“하하, 미안하오. 내가 너무 늦었구려. 부디 영웅들은 너무 노여워 마시오. 참 좋은 날이지 않소.”
자연스레 날씨 얘기로 이어진 연설은 또다시 물 흐르듯 다음 주제로 연결됐다.
딱히 거창한 내용은 없었다.
우리들의 노고를 하나씩 읊조리며 치사하고, 이번에 우리를 부르게 된 이유를 귀족들에게 설명한다.
“왕가의 기사는 물론이고, 이름난 클랜들도 하지 못한 일을 이들이 해냈소. 아마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을 터.”
노아르크의 정보를 갖고 생환한 것.
명목상 이게 우리의 공훈이었다.
그야 탐험가들의 반발을 억제하려고 당근을 준다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따라서 나 아게니 로튼 테르세리온은 병상에 계신 국왕 폐하를 대신해 그 공을 치하하는 바요!”
길었던 연설이 끝나고 재상은 탐험가들의 공훈에 따라 보상을 정리했다.
일단 생존자 전원에게 1,000만 스톤과 황도 카르논의 출입 권한을 주며, 활약에 따라 추가 보상이 있을 거라던가?
참고로 공표 순서는 우리가 먼저였는데……
“나르텔 클랜의 단장 멜터 펜드는 나오시오.”
첫 번째는 멜터였다.
“그대는 고블린 숲 전투에서 청랑족 출신의 범죄자 푸른갈기를 처치하며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헌을 하였소.”
이미 정보 수집이 끝났는지 구체적으로 공적을 언급하는 재상.
“그대에겐 은혼보고를 개방하겠소. 원하는 정수 하나와 물건 하나를 고를 수 있소. 또한, 2,500만 스톤의 포상금을 내리겠소.”
“감사합니다.”
멜터 펜드는 4등급 정수와 그와 비등한 값어치의 장비가 보관된 보물창고 입장권을 손에 넣었다.
‘……내 차례를 기대해 봐도 되는 부분인가?’
사실 우리 셋 중 공적으로 따지면 멜터가 가장 낮다. 애초에 늑대놈을 처치할 수 있던 것도 다 따져 보면 내가 시체 수집가를 녹다운 시켜서 가능했던 거니까.
‘후…….’
애석하게도 다음은 카일 아저씨였다.
“철의 마도사, 카일 페브로스크 경은 앞으로 나오시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재상.”
“그간 정무로 바빠서 이제야 찾아뵙는 걸 용서하시오.”
재상이 말한 카일의 공은 세 가지였다.
가진 지혜를 활용하여 원정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
메스 텔레포트로 베르자크를 따돌려낸 것.
그리고 고블린 숲 전투에서 파멸학자를 상대로 시간을 끌고 피해를 입힌 것.
“오래전부터 금지된 마법을 연구할 수 있는 권한을 원했다지요? 오늘부로 그대는 라프도니아 왕가의 자랑스런 왕실 마도사요.”
“제게 얼마나 기쁜 말씀인지 재상은 모르실 겁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카일은 왕실 마도사로 승진했다.
모든 종류의 마법을 마음껏 익히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
“바바리안 일족의 전사, 얀델의 아들 비요른은 나오시오.”
드디어 내 차례였다.
다만 원래부터 명성이 있던 멜터나 카일과는 전혀 다른 케이스여서일까?
재상은 조목조목 뜯어 보듯 나를 응시하더니, 내 공훈을 하나씩 읊었다.
“그대의 공훈은 이와 같소.”
“숭고한 의지로 내분을 멈추고 보다 많은 기사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한 것.”
“가장 위험한 최전선에서 누구보다도 용감히 싸우며 귀감이 된 것.”
“탐험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미끼가 되어 베르자크에게서 시간을 벌은 것.”
“이계의 저주받은 영혼, 아벳 네크라페토를 몰아붙여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별일 없던 거 같네.
그런 생각을 속으로 하던 차였다.
“고작 이 정도로는 그대가 해낸 노고를 표현할 수 없을 것이오. 하지만 그럼에도 왕가를 대표해 그대의 공을 치하하는 바!”
“…….”
“그대에겐 금혼보고를 개방하겠소. 원하는 정수 혹은 물품 하나를 선택해 고를 수 있으며, 5,000만 스톤의 포상금을 하사할 것이오. 또한!”
재상이 말을 마저 이었다.
“그대에게 준남작 작위를 수여하겠소.”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