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267)
267화 파루네 섬 (1)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있다.
그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조금은 안일해졌던 걸지도 몰랐다.
두근-!
노아르크의 탐험가들이 없다.
아니, 애초에 탐험가 자체가 몇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바로 미궁 속의 세상이었다.
그러니까 얼른 정보 확인부터.
“총 몇 명이지?”
“최소 여덟 명이요.”
내가 목소리를 깔고 묻자, 에르웬이 찰나의 간격도 없이 즉답했다.
“최소 두 팀이 싸우는 중이라는 뜻이군.”
“일단 정황상은요.”
“달리 내가 알아야 할 특이점은?”
“……없어요.”
음, 말투가 그런 게 아닌 거 같은데.
이런 걸 그냥 지나치는 건 좋지 않다.
영화에서도 그렇잖아?
“달리 내가 알아야 할 특이점은?”
나는 한 번 더 강하게 물었고, 이내 에르웬은 조심스레 대답했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아요.”
그래, 그렇구나.
“죄송해요.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말꼬리를 흐리는 에르웬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미안할 거 없다.”
실은 나도 그랬거든.
탐험가끼리 PK 중이란 말을 듣자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앞으로의 결정을 고민하던 차였다.
“얀델,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이번에도 구할 거냥……?”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도라니?”
“저번에 1층에서도, 황도에 불이 났을 때도 그랬지 않냥. 너는 사람을 구하는 걸 좋아하니까…….”
뭐라는 거야 얘는.
그때와 지금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황도에서는 그저 그럴 여력이 있었고, 여력이 남으면 꼭 돕겠다는 약속도 했었다.
그리고 1층에서는…….
“뭘 착각하는지는 알 거 같지만, 지금 기회에 확실히 말하겠다.”
결과적으로 나는 수천 명의 탐험가를 이끌고 활로를 열며 가당치도 않게 영웅 취급을 받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어딘가 뜨거워졌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 내가 진정으로 구하려던 건 너희였다.”
여전히 우선순위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영웅이라 불릴 자격이 없는, 이기적인 사람이니까.
나와 내 사람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 말은…….”
“예감도 좋지 않은데 굳이 휘말릴 필요는 없지. 이대로 섬을 벗어난다.”
“하지만 그래도 되는 건가? 저쪽이 어떤 사정인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 수도 있다.”
곰아저씨가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원래 이런 캐릭터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아무래도 1층에서 느낀 영웅 뽕맛에 아직도 취해 있는 모양.
“저들도 탐험가다. 그 정도 각오는 했으니까 이 일을 하고 있겠지.”
나는 리더의 권위를 담아 딱 잘라 말했고, 곰아저씨도 군말 않고 납득했다.
하지만 뒤늦게 한 가지가 걱정됐을까?
“레이븐, 너는 괜찮나? 아까 만난 그자와 친분이 있던 거 같은데.”
“파츠란 씨요? 음, 저쪽에서 싸우고 있다면 역시 그분이 휘말렸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곰아저씨의 우려에 레이븐이 말을 흐렸다.
그리고 우리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상관없다니?”
“어차피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도 아닌걸요. 만약에 도우러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지극히 탐험가스러운 이기적인 답변.
다만 이어진 뒷말에 우리는 모두 말을 삼켰다.
“……저한텐 우리 팀이 더 소중해요.”
거, 저런 말을 눈 하나 안 돌리면서 하네.
얘도 나이가 한 살 더 먹더니 뻔뻔해졌다.
생긴 건 아직도 꼬맹이구만.
“그럼 결정 났군.”
결정이 내려지기 무섭게 우리는 걸음을 돌려 해안가 쪽으로 달려나갔다.
도착 예상 시간은 약 1시간.
그리 큰 섬은 아니기에 얼른 빠져나가면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히든피스를 두고 가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거야 우선 섬을 벗어났다가 나중에 상황을 보고 다시 노려봐도 될 터.
‘그래, 불안할 땐 일단 튀는 게 상책이지.’
나는 마지막 미련마저도 버렸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바다예요!”
이내 해안가에 도착한 우리는 서둘러 배를 꺼내 파도 위에 띄웠다. 그리고 차례차례 올라타 노를 저으며 섬에서 멀어졌다.
그렇게 조금은 마음이 놓여가던 찰나였다.
“비, 비요른!”
용맹한 바바리안 여전사 아이나르가 두려운 감정을 고스란히 내비치며 소리쳤다.
“어, 어떻게 된 거냐! 바, 바다가……! 바다가 높아진다!!”
잠잠했던 바다가 순식간에 돌변하더니 격하게 일렁이며 배를 흔들기 시작했다.
「파루네 섬의 공물이 파괴되었습니다.」
「바다의 분노가 섬을 뒤덮습니다.」
니미럴.
***
파루네 섬의 히든피스는 간단하다.
섬 중심부에 숨겨진 ‘공물’을 파괴 시, 바다의 분노라는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다.
일종의 디펜스 이벤트다.
해안가에서 바다 괴수가 섬을 향해 몰려오고, 우리는 내륙에서 이를 막아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노린 것은 이벤트 보스의 정수.
4등급 몬스터 엘프로트.
미샤나 에르웬이 먹는다면 후반부까지 쓸 수 있을 정수다.
뭐, 드롭이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아무튼, 지금 생각할 주제는 아니다.
‘저쪽에 최소 8인. 그리고 여기가 6인…….’
사실상 최대 난이도의 이벤트가 개방됐다.
히든피스야 어쨌든 일단 이 섬을 벗어나는 게 최우선 과제라는 뜻.
“이, 이게 무슨 일이죠?”
“갑자기 파도가 이렇게 치다니, 이런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노! 어서 노를 저어라!!”
아무도 이 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듯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에 당황하기도 잠시, 우리는 서둘러 노질을 시작했다.
그야 거의 바깥까지 나와 있던 상황 아닌가.
‘조금만 더 가면 아예 벗어날 수 있어.’
실제로 게임에서도 이벤트가 발생한 다음에도 섬을 탈출하는 게 시스템적으로 막혀 있던 건 아니다.
어지간한 배로는 얼마 못 가 침몰해서 그렇지.
“하나, 둘. 하나, 둘!!”
구호를 외치며 영차영차 배를 이끌고 파도를 넘는다.
하지만…….
‘돈 좀 더 써서 좋은 배를 살걸.’
도무지 나아가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제자리걸음을 넘어, 있는 힘껏 노질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점점 섬 쪽으로 밀려나는 듯한 기분.
기분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비, 비요른! 서, 섬이 가까워지고 있는뎅?”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려 해도 뒤로 밀려나는 배.
괜스레 입맛이 쓰다.
배에 마공학 추진 장치 정도만 달아놨어도, 어떻게든 뚫고 나갈 수 있었을 거 같은데.
“비요른! 배에 물이 찬다……!!”
“어, 어떡하죠? 어디 부서진 거 아니에요?”
이내 배에 물까지 차기 시작하자, 일행들 사이에서 패닉이 번져나갔다.
슬슬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
“섬에서 벗어나는 건 포기한다.”
찰나의 고민을 거듭한 나는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모두 등 돌려 앉아라! 파도를 타고 최대한 섬을 향해 나아간다!”
여섯 명이 정원인 소형배의 장점이다.
배에 앞뒤 구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크게 의미가 있지는 않다. 이렇게 파도가 거칠게 배를 밀어내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무거운 장비는 전부 아공간에 넣고!”
이내 배의 무게를 줄이는 것에 더불어, 전복 사태를 대비해 장비들도 벗게 시켰다.
오케이, 그럼 이제 할 수 있는 밑준비는 끝.
“오른쪽!!”
노는 배를 움직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배가 균형을 잃고 뒤집히지 않도록만 사용했다.
그렇게 한 3분쯤 흘러, 저 멀리 보이던 섬이 확연히 가까워졌음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저, 저기……!”
시도 때도 없이 통통 튀면서 앞으로 나아가던 배가 큰 파도에 휩쓸렸다.
그리고…….
“꺄아아아악!!”
완전히 뒤집혔다.
“푸훕!”
순식간에 물에 잠긴 육신.
일단 어떻게든 뒤집힌 배를 잡고 버텼다.
“다들 괜찮나!!”
“어, 일단은!”
“나도 무사하다!”
내가 외치자 여기저기서 생존 신고를 해왔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레이븐은?”
어떻게 된 거지?
설마, 그대로 휩쓸려 간 건가?
“푸흡, 여기! 여기 있어요!”
후, 놀랬네.
뒤집힌 배를 꼭 잡고서 둥둥 떠다니며 우리는 빠르게 의견을 나눴다.
“그럼 이제 어쩌죠?”
“그냥 이대로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냥?”
“어, 일단 잘 가고 있기는 한 거 같은데…….”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었다.
강한 부력이 특징인 특수 나무로 제작된 배답게 뒤집힌 상태에서도 가라앉는 일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배에 타고 있던 때보다 안정적인 거 같기도 하고…….’
파도가 섬으로 밀려들고 있기에, 딱히 우리가 조종을 하지 않아도 배는 해안가로 향할 것이다.
“다들 꽉 잡아라!”
이내 우리는 파도에 나가떨어지지 않게 배 손잡이를 꼭 잡은 채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1분가량 흘렀을 때였다.
‘어, 이건 생각 못했는데…….”
우리는 새로운 위기 앞에 놓였다.
“저기, 바위! 바위당……!”
해안가에 가까워지며 우뚝 솟은 암초가 배와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
이제 와서 경로를 틀거나 하는 건 불가능했다.
“흩어지게 되면 섬 중심부로 와라!!”
나는 다급히 최악을 가정해서 외쳤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앙-!
배가 암초에 부딪쳤다.
***
촤아아아아-!
거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이물질이 낀 것처럼 앞은 흐리게 보였고, 입에선 바다 특유의 짠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카칵, 카칵, 카카카각.
무언가 갉아먹는 소리가 났다.
다름 아닌 내 발치에서.
“……?”
뭔가 싶어 겨우 고개만 들어 하체 쪽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굳었다.
대형견 크기의 가재 괴물이 내 발을 어떻게든 씹어 먹어 보려고 아등바등 하는 중이었다.
“지랄을 한다.”
아니, 그게 되겠냐고.
내 물리 내성이 몇인데.
퍼억-!
일단 자유로운 한쪽 발을 이용해 스터렙을 밀쳐냈다. 그리고 서둘러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손으로 쥐고 있던 판자때기로 가재 괴물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스터렙을 처치하였습니다. EXP +1」
9등급 몬스터답게 고작 한 방에 빛이 되어 사라지는 가재 괴물.
‘근데 뭐야, 이 판자때기는…….’
그제야 눈치챈 것인데 나는 눈을 뜬 순간부터 웬 판자때기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이게 어디서 나온 물건일까.
깊이 고민할 것도 없이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배가 박살났지…….’
배가 암초에 부딪치며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나는 가장 큼직한 판자때기를 잡고서 꽉 끌어안았다. 이거면 바바리안 몸뚱이라도 물에 가라앉지는 않으리라는 판단.
‘덕분에 산 건가…….’
이내 파악을 끝마친 나는 신속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텅 빈 모래사장에는 그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애들은 괜찮으려나…….’
일단 레이븐은 괜찮을 것이다.
수영은 못하지만 마지막에 부유 마법을 쓰며 공중에 떠오르는 걸 봤으니까. 미샤나 에르웬은 수영을 할 줄 아니 걱정이 좀 덜하고.
문제는 수영을 못하는 아이나르와 곰아저씨.
‘후, 제발 무사히 해안가로 떠밀려왔으면 좋겠는데.’
암만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자꾸 걱정이 된다.
다만 그런 마음과 별개로 손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아공간에 넣어둔 장비를 꺼내 걸쳐 입었다.
곧 몬스터 떼가 섬에 몰려올 테니까.
스터렙 정도나 돌아다니는 걸 보니, 다행히 이벤트가 시작되고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인 듯하지만…….
대비를 해야 한다.
‘탐험가끼리 싸우고 있다고 했는데, 대체 무슨 상황이었기에 이 이벤트를 연 거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몇 가지 있지만, 지금으로선 해결이 불가능한 종류의 것.
하,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도우러 갈걸.
그랬으면 무슨 상황인지는 알았을 텐—
터벅.
해안가를 떠나 숲 안으로 들어서려던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수풀 너머에서 인기척이 들린 탓이다.
타닷, 타닷, 타닷.
누군가가 달리는 소리.
‘몬스터는 아니야.’
파루네 섬 내부에 있는 몬스터는 모두 활공이 가능한 비행형 곤충이다.
몬스터가 달리는 소리는 아니라는 뜻.
또한, 흩어진 동료도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숲 안쪽이었으니까.
반대 방향으로 달릴 이유가 없다.
‘그럼 아까 싸우고 있다는 탐험가들 중 한 명이려나?’
나는 천천히 메이스를 들어 올리며 인기척의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굳이 기다린 이유는 간단했다.
들린 걸음 소리는 한 명이었지 않은가.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일대일이면 적어도 몸을 뺄 자신이 있다.
따라서 접촉해 정보를 얻는 것이 먼저다.
‘지금.’
뛰는 소리를 통해 거리를 재던 나는 타이밍이 되자마자 기습적으로 손을 뻗었다.
“허억, 허억. 꺄아, 읍—!”
순식간에 제압당한 사냥감이 허공에 떠올라 발버둥 쳤다.
“가만히 있어라. 안 해치니까.”
원래 계획은 이어서 메이스를 휘둘러 확실히 제압 시키는 것이었으나, 이는 보류하기로 했다.
일단 안면이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뭐, 상대 쪽은 기억이 안나는 모양이지만.
“풀어줄 테니 조용히 해라.”
“다, 당신은 누구…….”
“조용히 하라고 했지 않나.”
이내 사나운 목소리로 다그치자 새하얀 법복을 입은 여신관이 파르르 떨었다.
후, 이러니까 나쁜 사람이 된 거 같네.
“난 비요른 얀델 준남작이다.”
“아……!”
일단 이름부터 밝히자 여신관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정체를 의심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파츠란에게 내 얘기를 들었던 모양.
“그러니까 진정해라, 에르시나. 난 너의 적이 아니니.”
“어, 어떻게 제 이름을…….”
어떻게 알기는.
예전에 한 번 만나 봤으니까 알지.
거듭 말하지만 잊기 어려운 기억이었다.
[에르시나 사제님. 혹시 이자를 치료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거절하겠습니다.]이 여자가 내 치료를 거부했을 땐 정말이지 세상이 무너지는 거 같았는데.
쩝, 됐다.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니.
“그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어서 설명해 봐라. 숲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상황 파악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