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590)
590화 보스런 (3)
수호자 정수의 특징은 두 가지다.
기본으로 주어지는 능력치가 일반 개체의 것보다 1.5배 높고, 일반 개체가 지닌 모든 액티브 스킬을 사용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5층 균열 중 하나, 빛의 틈새.
그곳의 수호자인 지옥거인 헤르자가 지닌 정수는 그 일반적인 범주에서 살짝 벗어난다.
“자, 에밀리… 다 쉬었으면 한 번 써봐라.”
본래의 법칙을 따르면 4등급 마물, ‘키클롭스’의 액티브 스킬 3종을 전부 다룰 수 있어야 하는 게 옳지만…….
헤르자의 정수가 가진 액티브는 오직 하나뿐.
심지어 그 액티브 스킬은 일반 ‘키클롭스’가 가진 스킬도 아니다.
바로 이렇게.
「아멜리아 레인웨일즈가 [파동 연결]을 시전했습니다.」
스킬을 사용하자 아멜리아와 내 몸 사이로 흐릿한 선 하나가 연결된다. 오직 스킬의 대상자인 자들끼리만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연결선.
효능은 간단하다.
「아멜리아 레인웨일즈가 [심연의 힘]을 시전했습니다.」
연결된 이들끼리는 서로 스킬을 공유할 수 있다.
지금 내 망치 위에 피어난 흑색의 빛무리처럼.
‘이 정수도 진짜 많이 연구했는데 말이지.’
얼핏 보면 이런 개사기 스킬이 어디 있나 싶지만, 연구를 하다보면 알게 된다.
절대 사기 스킬까지는 아니라는 걸.
아,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후웅-!
내 망치 위를 뒤덮은 흑색의 빛무리가 공기 중에 흩어진다.
아멜리아가 스킬을 비활성화한 것인데…….
“…영혼 소모가 극심하군.”
“얼마나 심하지?”
“최상의 상태에서도 1분을 채 유지하지 못할 만큼.”
어찌보면 [자가 복제]와 비슷한 느낌의 패널티라 볼 수 있다.
MP 소모량이 무지막지하다.
“그럼 이제 다른 방식으로도 써보겠나?”
슬슬 다음으로 넘어가자는 식으로 말하자 아멜리아가 눈을 감고 정신 집중의 시간을 가졌다.
그 첫 번째는 방금처럼 자신의 스킬을 동료를 통해 발현하는 것.
서포터 타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보스가 쓰는 패턴이지.’
적에게 연결을 걸고서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딜러 타입.
조금 전에 처치한 지옥거인만 해도 내게 연결을 걸고 핸디캡이 큰 대신 파괴력이 높은 광역기를 펑펑 써대는 패턴이 존재했다.
뭐, 주변에 사람이 없고 연결을 쓸 때마다 곧바로 눈깔을 공략했기에 큰 어려움 없이 넘어갈 수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이건 패스.’
아멜리아는 자폭 스킬도 광역기도 없기에 이런 방식은 아예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남은 방식은 마지막 하나.
「아멜리아 레인웨일즈가 [자가 복제]를 시전했습니다.」
「아멜리아 레인웨일즈가 [파동 연결]을 시전했습니다.」
‘소환체’를 강화하는 형식의 유틸 타입.
사실상 [파동 연결]의 정석적인 사용법이다.
공격기로 쓸 때 핸디캡을 적에게 떠넘기고, 적의 위치에서 스킬을 쓸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지만…….
그건 MP통이 무지막지하게 큰 몬스터들에게나 어울리는 사용법이니까.
[파동 연결]은 이렇게 쓸 때 빛을 발한다.“정말로… 영혼 소모가 똑같아졌군. 대체 무슨 조화인 거지?”
글쎄, 게이머이기에 당연히 원리는 모른다.
마법사라면 정신 파장의 일치니 주파수가 같니 뭐니 하며 알 수 없는 가설을 늘어놓았을 테지만.
나는 단지 무수히 많은 실험 끝에 결과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소환체’를 대상으로 [파동 연결]을 썼을 때는 MP 소모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걸.
아, 참고로 당연히 분신도 소환체 판정이다.
“이거라면… 더 다양한 전투가 가능하겠어.”
전투에 일가견이 있는 아멜리아는 새로 얻은 능력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챈 듯한데…….
“그나저나 체화 이능… 너희 세상에서 패시브 스킬이라 부르는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듣지를 못했는데…….”
“아, 키클롭스에 대해서 모르나?”
“흔히 볼 수 있는 개체는 아니니까……. 모든 개체의 특성을 아는 네가 이상한 거다.”
지식이 부족한 게 창피했는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아멜리아.
“자, 껴라. 그럼 알게 될 거다. 체화 이능이 어떤 건지.”
나는 피식 웃으며 들어오기 전에 발품을 팔아 겨우 구한 물건을 꺼냈다.
그와 동시에 아멜리아의 눈에 의문이 맺혔다.
“이건…….”
외눈 안대.
소위 말하는 궁예 안대였다.
***
「[외눈박이]가 활성화됩니다.」
「캐릭터의 동체 시력이 + 200 상승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아멜리아와의 듀오 레이드가 끝난 뒤.
그다음에도 계속해서 멤버를 교체하며 균열에 도전했다. 그야 어느 상황에서도 탱커는 탱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딜러는 그렇지 않으니까.
[던전 앤 스톤]의 핵심은 ‘상성’이다.상성이 맞지 않는다면 절대 잡을 수 없는 적이 존재하며, 그 반대로 상성만 맞는다면 한결 수월한 공략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 인력풀을 그냥 썩히는 것도 낭비지.’
왕가의 최정예들로 이뤄진 탐사군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인재들이 섞여 있었다.
신관이 필요할 땐 대주교급 신관이 함께 들어가 내 지시에 따랐고, 2등급 화염 마법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할 줄 아는 마법사가 한 명쯤은 있었다.
‘인원 제한이 없는 이유를 알겠네.’
1인용, 2인용 균열 클리어가 메인인 미궁.
다만 그렇다고 두 명이서 깨라고 설계된 곳은 아닌 듯하다. 분명 수백 명이 들어와 적재적소에서 나뉘어 쓰이며 차근차근 공략해야 하는 곳이었겠지.
‘그래도 조금 아쉽네. 5층 수호자를 이렇게 잡았는데 버리는 정수들이 너무 많아서.’
마법사를 데리고 들어가도 되는 경우엔 시험관에 정수를 담아 나올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전부 다 버려야 했다.
‘제일 싼 것도 경매장에 올리면 수억 스톤은 할 텐데…….’
물론 가장 아쉬운 점은 아이나르였다.
졸업 정수까지는 아니어도, 5층 수호자 중에는 창술사가 쓰기 좋은 정수가 하나 있었으니까.
아쉽게도 나 혼자 버스를 태울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놈은 아니라 데리고 들어가는 건 포기해야 했지만.
뭐, 그래도 이번 탐사 덕분에 루팅이 까다로운 정수 하나를 아멜리아에게 먹였으니 만족이다.
‘분신 도적한텐 졸업 정수나 다름없으니 대체용 정수는 안 먹여도 될 테고…….’
새삼 느끼지만, 지하 1층은 말도 안 되는 곳이다.
미궁의 어느 곳과도 궤를 달리한달까?
이곳에 와서 처음 본 것이 몇 개이고, 이득을 본 건 얼마나 되는지 가늠도 하기 어려울 정도.
“…….”
정말로 여기는 뭐 하는 곳일까.
뱀파이어 아저씨를 만난 후 혼자 가만히 있으면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은빛 바다, 우기, 차원붕괴, 촌장, 햄식이…….
떠오른 것들을 잊지 않게 되새기고, 놓친 것은 없나 다시금 복기하는 시간.
‘에휴, 생각해서 뭐 하냐.’
늘 그렇듯 갑갑함을 느끼며 상념을 끝냈다.
그리고 머리를 비우기 위해 휴식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4층은 안 돼요. 너무 위험해요.”
4층 균열 수호자인 칼피온의 석상 앞에서 레이븐에게 뭐라뭐라 간청하는 탐험가가 보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다들 ‘큰 망치’란 이명으로만 불러서 모르겠다.
아무튼, 도시에서도 유명한 3등급 탐험가였다.
“다시 한번 생각해줄 수 없겠소? 내게 있어 꼭 필요한 정수란 말이오.”
딱 봐도 경험치가 목적이라거나, 타임어택에 목을 메는 족속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저 말대로 정말 저 정수가 필요한 거겠지.
“아니,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외람된 말이오만, 금의 마법사께서는 제 실력에 대해 제대로 모르지 않소?”
“제 판단이 틀렸단 뜻인가요?”
“하하… 그런 뜻이 아니라……. 단지 시험이라도 해달라는 뜻이었소. 내게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레이븐이 정색하며 말해도 사내는 여전히 뜻을 꺾지 않았고, 이에 레이븐도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따라서 지켜보던 내가 나섰다.
사실 따져보면 저 귀찮은 업무를 맡긴 것은 나니까.
“그리 시험을 보고 싶다면 내가 도와주지.”
“얀델 남작……?”
내가 대화에 껴들자 사내는 당황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차라리 잘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리다.”
녀석은 얘기가 끝나자마자 호전적인 눈빛으로 ‘큰 망치’를 들어 올렸다.
‘거, 어떤 식으로 시험을 보겠다고 말도 하지 않았건만.’
딱히 새삼스럽지는 않다.
탐험가들이 마초스럽던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나도 이쪽이 훨씬 편하기도 하고.
“저… 얀델 씨? 굳이 저 때문에 힘 낭비를 할 필요는 없는데요……?”
뭐래, 얘는 또.
“힘 낭비를 하는 게 아니다.”
“…네?”
“시간 낭비를 줄이는 거지.”
이내 나는 [거대화]를 활성화하며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작군.”
그 한 마디를 짧게 뱉어냄과 동시에 대련이 시작됐다.
다만, ‘큰 망치’란 이명을 지닌 녀석답게 몸이 상당히 단단했고, 그 탓에 대련은 꽤 장기전으로 흘러갔다.
한 15분쯤 걸렸나?
“제가 졌습니다…….”
내게는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하는 반면, 내가 망치로 턱주가리를 후려칠 때마다 나가떨어지던 녀석은 끝내 패배를 받아들였다.
“제가 과욕을 부린 듯하군요. 아쉽지만, 4층은 포기하겠습니다.”
레이븐에게 구질구질하게 굴던 것과는 대비되는 깔끔한 태도.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원래 마초들일수록 힘의 섭리에 군말 없이 수긍하는 법이다.
“와아아아아아-!”
“남작님의 승리다!”
승부가 끝나며 주변에 모인 구경꾼들이 환성을 토해냈으나, 딱히 고양감이 느껴지거나 하진 않았다.
‘이쯤 되니까 확실히 딜이 안 박힌단 말이지.’
최근 들어 자주 느끼는 탱커의 비애다.
벨라리오스 정수에 아이기스의 장벽까지 먹으며 이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졌지만, 대미지는 예전 그대로였—.
“얀델 씨,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후후후, 고맙다는 말이라면 괜찮—.”
“아, 말로 하면 5분이면 끝났을 일을 15분이나 낭비하게 해서요?”
“어…….”
일순간 머리가 멍해진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레이븐은 장난이었다는 듯 피식 웃었다.
“됐고, 따라와요. 안 그래도 얀델 씨한테 전해줘야 할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이내 몇 걸음을 따라서 움직이자 레이븐이 음성 제어 마법을 활성화했고, 나도 표정을 진지하게 바꿨다.
“비밀로 해야 하는 이야기인 건가?”
“네?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잘 모르겠어요. 판단은 얀델 씨가 하시는 게 낫겠네요.”
“해봐라.”
자그마한 키에 맞춰 허리를 숙이며 경청할 자세를 취하자 레이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제가 심사관 비슷한 역할을 하다보니 그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들을 기회도 많았단 말이죠? 그러다 알게 된 건데…….”
본론만 간단히.
그런 말을 하기도 전에 레이븐이 알아서 핵심만 짧게 요약했다.
“캠보르미어 공작이 이제 아무런 말도 안 해요.”
“아무 말도 안 하다니?”
이건 원래 그러지 않았나?
그런 의문이 입 밖으로 나오려던 찰나였다.
“아니, 정말 말 그대로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있어요. 살의가 치솟는다라든가 그런 어떤 말도.”
“아…….”
“지금은 그냥 들어가자마자 눈이 시뻘개져서 달려든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요. 얀델 씨가 나온 직후엔 그래도 ‘말’을 하기는 했었잖아요?”
깊은 고민으로 갈 곳 잃은 손이 자연스레 턱으로 향한다.
“확실히…….”
수상한 일이긴 하다.
애초에 멀쩡했던 아저씨한테 갑자기 광증이 시작된 것도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무려 세 시간이나 제정신이지 않았던가.
“세상에 원인이 없는 변화는 존재하지 않아요.”
레이븐이 마법사스러운 대사를 치며 나를 올려다봤다.
“그럼 공작이 갑자기 변한 이유는 뭘까요 대체?”
바바리안으로서는 백날 머리를 굴려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사실 저 얘기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설이 있었다.
[사실··· 아까부터 광증이 다시 도지고 있네.]만약 그 아저씨가 멀쩡한 상태로 말을 걸어온 게 미궁 입장에선 ‘오류’라고 한다면…….
‘핫 픽스…….’
실시간으로 오류가 패치된 것일지도 모른다.
미궁을 다스리는 누군가에 의해.
***
1층부터 5층까지 존재하는 균열 수호자 27종.
그리고 캠보르미어 공작과 같은 카테고리에 묶이는 미확인 수호자가 14종.
도합 41종.
처음에는 막막하게 느껴졌던 보스런이지만, 착실하게 공략을 이어간 결과 어느덧 그 끝이 다가왔다.
‘앞으로 한 마리인가…….’
이제 남은 석상은 5층 균열의 석상 하나.
참고로 저 녀석이 등장하는 균열은 굉장히 낮은 확률로 열리는 ‘유니크 균열’로 나와는 상성이 좋지 않다.
마지막까지 미뤄둔 것도 그래서였고.
“하아…….”
벌써 수십 개의 불빛이 밝혀졌건만.
여전히 미동도 없는 석문을 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마지막 하나까지 다 깨야 뭔가 일어나려 하나 보네…….’
결국 저놈까지 잡는 수밖에 없단 뜻이다.
‘그래도 두 명까지 입장이 가능하니 해볼 만할 거 같긴 한데…….’
차라리 이번 공략에서는 내가 빠지는 게 맞지 않을까 고민도 해봤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보스전 특성상 탱커 한 명은 필수인데, 내 빈 자리를 대신 해 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니, 찾아보면 없지는 않을 터이나…….
‘영 못미덥단 말이지.’
그럴 바에는 내가 들어가는 게 낫다.
고로, 이제부터 고민해야 하는 것은 여기서 누구를 데려가야 하냐는 것.
‘이번에도 에르웬?’
무난한 선택이긴 했다.
그야 얘는 치트키나 다름없으니까.
실제로 에르웬은 레이븐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나와 함께 수호자를 사냥했다.
쉬운 균열은 정수를 캘 수 있으니 마법사와 함께 들어갔고, 어려운 균열은 몇몇 상황을 제외하고는 전부 에르웬을 대동한 것인데…….
‘……아니야.’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번 공략 대상은 무력만으로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다.
그럼 아멜리아는 어떨까?
‘얘도 나쁘지 않기는 한데…….’
아멜리아보다는 아이나르 쪽이 더 나아보인다.
투쟁심이 하락하며 존재감이 옅어지기는 했지만, 그 특유의 행운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툭.
요행을 바라는 거라면 더 좋은 선택지가 있다.
그것도 바로 여기 내 앞에.
“준비해라. 균열에 들어갈 테니.”
내 통보가 떨어진 즉시, 녀석이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예? 제가요? 왜, 왜요……?”
레아틀라스교의 성기사, 스벤 파라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