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591)
591화 보스런 (4)
포탈을 넘자마자 스벤 파라브가 물었다.
“그… 왜 저였습니까?”
좀 이상한 질문이었다.
그 내용이 아니라 타이밍이.
“포탈에 넘어온 다음에서야 그걸 묻는다고?”
“…남들 앞에서 말하기 곤란한 질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음, 역시 진짜 그 이유였구나.
보면 볼수록 세심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다.
의리도 꽤 있는 거 같고.
“아무튼, 왜 저입니까? 성기사가 필요한 거라면 다른 분들도 계셨을 텐데…….”
재차 이어진 질문에 나는 솔직히 답했다.
“성기사여서 뽑은 게 아니다.”
“…예?”
“너여서 뽑은 거지.”
스벤 파라브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대강 예상한 일이었다.
이게 어디 그냥 멘트이던가?
한 번씩 할 때마다 백이면 백 감동 받던 유서 깊은 멘트—.
스윽.
음, 그랬을 텐데.
어째선지 스벤 파라브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쳤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거리를 벌리듯이.
“……왜 그러나?”
의문을 표출하며 한 걸음 다가서자 그만큼 물러서며 다소곳하게 양팔로 상체를 가리는 녀석.
이내 경계의 눈빛을 받은 나는 헛웃음을 내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놈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거 같았다.
그야 최근에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던가.
“오해하지 마라. 머리통 깨버리기 전에.”
“그럼… 소문이 사실이 아니란 뜻입니까?”
“소문?”
“그… 남작님께서 남색을 즐—.”
“그만.”
더 듣기 어려웠기에 일단 말은 끊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해명을 위해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 그렇군요?”
진심이 전해졌는지, 녀석의 눈에 깃든 경계심이 조금 옅어졌다.
다만, 아직도 한 가지가 의문이었을까?
“그러면 좀 전에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인지…….”
성기사라서가 아니라 스벤 파라브여서 뽑았다.
그 말의 의미는 간단하다.
정말 말 그대로니까.
수호자를 잡는 데 필요한 것은 성기사가 아니라 이 녀석이었다.
그리고…….
‘잘 된 거 같네.’
그 계획은 이미 절반쯤은 성공했다고 본다.
실제로 이 녀석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포탈 안으로 들어섰으니까.
“혹시 여기 들어올 때 불안하거나 그런 감정을 느꼈나?”
그래도 확인 차 한 번 더 묻자, 녀석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리고 뒤늦게 무언가 깨달은 사람처럼 입을 벌렸다.
“아, 설마 그것 때문에……?”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이 주제는 마무리.
이후로는 보스 공략에 대해서 얘기를 했고, 치트 모드이긴 해도 게임을 하다 온 녀석답게 보스전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은 숙지하고 있었다.
모르는 것들도 이해가 빨랐고.
“저… 남작님께서는 어떻게 그런 것들을 전부 알고 계신 겁니까?”
녀석이 그런 나를 보며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으나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야 어디 내가 그냥 바바리안인가?
“작위 귀족이 되면 보통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지.”
“다른 귀족들은 잘 모르는 거 같던데…….”
“그놈들은 탐험가 출신이 아니지 않나. 애초에 녀석들은 미궁에 별 관심도 없다. 돈이 되는 게 아니라면.”
“아… 하긴 그렇겠군요.”
귀족이라는 특이점을 내세우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의문을 접는 스벤 파라브.
업무용 대화도 끝났겠다 슬슬 일어나서 공략을 시작해볼까도 싶었으나, 나는 그러지 않고 조금만 더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얘랑은 단둘이 얘기를 나눴던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일단은 좀 가벼운 주제부터.
“스벤 파라브, 신전 생활은 어떻나?”
“사실 크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속계 신청을 낸 뒤에는 외지인 취급을 받기는 하지만… 제 입장에선 오히려 그게 편할 때도 있다보니까요.”
속계란, 종교인이 신전 생활을 끝내고 일반 시민으로 돌아갈 때 하는 의식이다.
의식을 마치고 나면 해당 종교인은 신전의 명을 강제로 따라야 하는 의무가 지워진다.
“속계는 정확히 뭘 하는 거냐?”
종교와 거리가 먼 나로서는 궁금한 부분이었다.
일단 새끼 손가락을 잘라야만 나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들었지만…….
그 삼신교에서 열심히 키운 성기사를 아무런 대가 없이 풀어줄 거 같지도 않다.
“별거 없습니다. 여신님께서 내린 축복을 제하고 신전에서 받은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나가면 끝이니까요.”
“신전에서 받은 모든 것들……?”
“하하,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단 뜻입니다. 제가 얻어낸 것 모두 신전에 소속되어 있을 때 얻은 것이니까요. 아, 내년부터는 세금도 내야하겠군요.”
쉽게 말해, 전재산을 바치면 탈퇴가 가능하다는 뜻.
어떤 면에서 보면 새끼 손가락 하나 바치는 게 훨씬 인도적인 처사로 보일 지경이다.
“그래도 크게 두렵지는 않습니다. 고울랜드 씨께서 전부 지원을 해주시겠다고 약조……. 아니, 잠깐만 설마 남작님은 전혀 모르셨습니까?”
말을 하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기겁을 하는 스벤 파라브.
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걱정 마라. 너는 내가 끝까지 책임질 테니.”
“휴우… 놀랐습니다.”
“근데 의외로 담담하군? 속계가 끝나고 나면 더 성장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성기사는 일반 탐험가와 다르다.
그들 역시 신관, 마법사처럼 정수를 먹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대신 ‘공적’을 쌓다 보면 새로운 권능이 하나씩 추가된다.
아, 참고로 공적을 쌓는 방법은 다양하다.
미궁에서 몬스터를 잡거나, 헌금을 내거나, 교단 임무를 완수하거나.
그렇게 공적이 쌓이면 주기적으로 교황이 와서 기도를 올려주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새 스킬이 생겨있는 식이었다.
교황의 권위가 막강한 것도 그래서였고.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곳에 있다가는 언젠가 죽을 게 분명한데. 게다가 속계 이후에 여신님이 직접 새로운 권능을 내리는 일도 없는 건 아니니 그 부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물을 더 열심히 잡아야겠군.”
“남작님과 지내면 자연스레 많이 잡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평소에는 영 가벼운 녀석처럼만 보였는데, 막상 둘이서 대화를 나눠보니 나름 열심히 살아가는 녀석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이 부분도 조금 궁금해졌다.
‘얘는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려나?’
아우릴 가비스가 탈출 티켓을 상품으로 내걸었을 때 일단 참가하기는 했지만, 얼마 안 가 기권을 하고 원탁을 떠났다.
게다가 아이스록 원정 이후에는 우리와 함께 복수를 하겠다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였고.
‘근데… 이걸 어떻게 물어봐야 하려나?’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뒤, 나는 조심스레 돌려서 물었다.
“스벤 파라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하십시오. 남작님.”
“혹시… 만나는 사람이 있나?”
“예?”
못 들을 질문을 들은 사람처럼 놀란 녀석이지만, 나로서는 진지한 질문이었다.
그 대답 여하에 따라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니까.
“현재 교제 중인 여인이 있느냔 뜻이었다.”
“저, 그… 없습니다마는…….”
“흐음, 그렇군……?”
그럼 다른 질문으로 알아보는 수밖에 없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입을 떼려던 찰나.
“하, 하지만!”
녀석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마, 마음에 둔 사람…….”
“……?”
“아니, 마음에 둔 여인은 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녀석은 나와 몇 걸음가량 거리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
스벤 파라브의 마음을 훔친 여인이 누구인가.
끈질기게 물었지만 녀석은 쑥맥처럼 얼굴을 숙일 뿐 결코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 여성에게 그만큼 진심인 게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행동.
“저, 정말로 고울랜드 씨는 아닙니다. 그분은 뭔가 서, 선생님 같은 느낌이라…….”
“즉, 순진하고 약한 여자가 좋다는 거군?”
“그,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알고 있다. 장난이다 장난.”
얘도 참 놀리는 맛이 남다르단 말이지.
이내 녀석의 어깨를 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적인 대화를 나눠봐서인지 이전보다 한층 더 친해진 느낌이다.
녀석이 어떤 사람인지도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그럼 수다도 떨 만큼 떨었으니 이만 가보자.”
“예.”
그렇게 녀석을 이끌고 스타트 포인트를 벗어나 복도를 걸어나간다.
끼이이익-!
딱히 뭔가 조작할 것도 없이 근처에 다가가자 알아서 열리는 보스방 입구.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열렸던 입구가 쾅 소리를 내며 거칠게 닫힌다.
화르르륵-!
장내는 어두웠지만, 미리 바바리안 캔들 모드를 활성화한 덕분에 시야 확보는 어려움이 없는 상황.
좌측, 우측, 정면으로 향하는 세 갈래길이 모습을 드러낼 뿐, 균열 수호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야 당연하다.
지금 우리가 잡을 수호자는 어떤 개체보다도 특이한 타입이니까.
터벅, 터벅.
지금 걷고 있는 이 미로.
이 미로 전체가 지금부터 우리가 상대해야 할 보스몹이다.
지금은 그 첫 페이즈라 볼 수 있을 테고.
「영혼지기 하우시엘이 [방어체계]를 시전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이동을 시작한 순간, 작은 이음면도 보이지 않던 매끈한 벽 사이로 마력포가 튀어나오며 우리를 정조준한다.
그리고…….
퍼엉-! 퍼엉-!
나야 딱히 아프진 않지만, 유리몸인 마법사들이 맞으면 딱 골로 가기 적당한 정도의 대미지.
스벤 파라브를 데려온 이유엔 이것도 있었다.
성기사라 보조 탱커도 가능하고, 자가 치유도 되는 놈이니까.
“괜찮나?”
“아… 예. 조금 놀랐을 뿐. 괜찮습니다.”
뭐, 그래 보이긴 한다.
애초에 저거 맞고 다칠 수준이면 데려오지도 않았을 테니.
“그럼 계속 이동하지.”
이후 간간이 쏘아지는 마력포, 액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 등등을 물리치며 미로 속을 헤매고 있자니 머지않아 목표로 한 공간이 나타났다.
정사각형 구조의 석실.
그리고 그 중심부에 떡하니 놓여있는 수박 크기의 마석.
저것을 부수는 순간 1페이즈는 끝이다.
바로 이렇게.
콰직-!
망치로 마석을 내려친 순간, 벤시의 비명을 떠올리게 하는 기괴한 하울링이 공간 전체에 진동하며 온 세상이 까맣게 물든다.
눈을 떴을 때는 서 있는 공간이 달라져 있었다.
고풍스럽게 꾸며진 저택의 복도.
다만, 꿈속 공간에 온 것처럼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복도가 끝없이 앞으로 펼쳐져 있다.
“함께 방을 뒤져 두 번째 마석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지요.”
“엄밀히 말하면 ‘함께’가 아니라 네가.”
“아… 예…….”
우리는 함께 이동하며 순차적으로 각각의 방들을 수색했다.
사실 이걸 수색이라 하기에는 민망했지만.
아무튼.
“그… 딱히 위험한 기분은 들지 않습니다.”
닫힌 방문을 열고 들어간 뒤, 파라브가 중심부에 떡하니 놓인 상자를 오픈한다.
그리고…….
퍼엉-!
뒷일은 운에 맡긴다.
그 과정에서 함정이 발동되며 독이 펴져나오는 일도 있었고, 마물이 튀어나와 한참이나 전투로 시간을 잡아먹히기도, 짜증나는 저주에 걸리기도 했다.
“저… 이건 열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혹여나 얘 기분이 조금이라도 이상해지면 일단 보류를 한 상태로 나온 뒤 체크만 해두었다.
정 마석을 찾지 못하면 그때부터 하나씩 열어도 되는 거니까.
‘확실히 혼자 찾게 하려니 시간이 오래 걸리네.’
만약 지금이라도 둘로 나뉘어 수색한다면 훨씬 더 시간을 아낄 수 있을 테지만, 이는 어쩔 수 없었다.
「영혼지기 하우시엘의 [방어체계]가 더욱더 견고해집니다.」
아무리 이놈이 공략 시간에 비례해 강해지는 보스라고 한들.
‘…다 같이 죽을 수도 있는 걸 어떻게 열어?’
이 상자들 사이에는 너무나도 불합리한 함정이 섞여 있다.
정말 비유가 아니라 만 번에 한 번.
아니, 십만 번에 한 번 정도 꼴로 상자를 열었을 때 벌어지는 이벤트인데…….
‘나는 손대지도 말자.’
행운.
정확히는 불행 앞에서 확률이란 그냥 숫자놀음일 뿐이다.
적어도 나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뭐, 반대로 긍정적인 이벤트가 발생하는 일도 있지만.’
참고로 둘 다 하나씩만 존재하며, 확률은 거의 동일하다.
그래서 게임을 할 때는 제작자가 일부러 그 개같은 것을 섞어놨구나 싶었다.
무작정 상자를 전부 다 여는 식으로는 찾아낼 수 없도록.
순전히 운에 의지해야 하도록.
‘아무튼, 황금 상자는 사실상 기대하지 않고 있는 편이 좋—.’
“저… 남작님……?”
파라브의 얼떨떨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나는 그대로 굳었다.
“……어?”
죽은 미믹처럼 활짝 열린 상자.
솨아아아아아아-!
그 안에서 찬란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