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23)
623화 7구역 (1)
오랜 시간 미궁에서 함께 구르다 보면, 동료들과 눈짓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한 경지에 이르를 수 있다.
바로 지금처럼.
‘뭔진 몰라도 일단 잡고 보자.’
그런 내 눈짓을 받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꺼내 든다.
그리고 그 순간.
“순순히 답할 생각은 없다 이거군.”
공교롭게도 상대 리더 역시 나와 동일한 판단을 내리고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일단 제압해라!”
적의 숫자는 리더까지 포함해 열넷.
결속이 가능한 6의 배수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괜히 내가 다 불편했지만…….
뭐, 여긴 미궁이 아니라 도시 한복판이니까.
「캐릭터가 [거대화]를 시전했습니다.」
「캐릭터의 체격이 커지며, 크기에 비례해 위협수치 및 육체 수치가 증가합니다.」
상대의 수준을 모르기에 우선 몸의 크기부터 키웠다. 다만 몸집이 커지고나니 뭔가 떠오른 게 있었을까.
갑자기 달려들던 놈들이 당황하며 멈춰선다.
“비, 비요른 얀델…?”
“……거인이다!”
“실종됐다던 놈이 어째서 여기에……?”
거, 알아봐주니 고맙긴 한데…….
“도, 도망쳐라!”
“지원을 요청해야—!”
이제 와서 어디 가려고?
***
폐허가 된 차원 광장에서 마주친 노아르크 무리를 전부 제압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뭐, 대신 그 과정에서 열넷이던 인원이 열둘로 줄어들긴 했지만.
아, 당연한 말이지만 놓쳐서 그렇게 된 건 아니다.
단지 도망치는 과정에서 뒈졌을 뿐.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 놈들이었네.’
바퀴벌레처럼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게 평소에도 자주 합을 맞춰 튀던 놈들 같았다.
그중 발재간이 빠른 두 놈은 생포를 하려다간 아예 놓칠 판국이었고.
“잘했다. 에르웬. 놓쳤다면 귀찮아질 수도 있었을 텐데.”
“…천만에요.”
아무튼, 제압도 끝났겠다 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놈들 앞으로 다가갔다.
‘열두 명.’
확실히 아까보다는 훨씬 편안해지는 숫자.
“에밀리, 너는 죽은 놈들을 포함해 장비부터 벗겨라.”
시간이 얼마나 여유가 있을지 모르기에 우선 루팅도 하면서 심문을 하기로 했다.
역시 대화 상대는 이놈이 좋겠지?
“……읏!”
제압을 당하고나서부터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처박고 있던 리더의 머리통을 쥐어잡고 올려세웠다.
“야, 눈깔.”
내가 놈을 부르자, 옆에 있던 아이나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비요른, 이놈과 아는 사이였냐?”
“모르는데?”
“엥? 근데 어떻게 이름을 아냐?”
“……뭔 소리냐? 그냥 눈깔이 마음에 안 들어서 눈깔이라 부른 건데.”
아니면 어떻게 사람 이름이 눈깔이겠어.
가만 보면 아이나르 얘도 참 편견이란 게 아예 없다니까.
“하하… 난 또…….”
아이나르가 무안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박박 긁었고, 나는 익숙하게 아이나르에게서 신경을 껐다.
“아무튼… 야, 눈깔.”
다시 한번 불렀지만 눈깔은 답하지 않았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놈에게 물었다.
“우리가 오랜만에 도시로 돌아와서 그러는데, 대체 너희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역시나 이번에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즉시 망치로 내리찍었다.
리더가 아니라…….
콰직-!
그 옆에 있던 부하 한 놈의 손을 대상으로.
“아아아악!!!”
갑작스런 공격에 크게 놀라며 고통 어린 비명을 내지르는 부하 A.
나는 놈을 시작으로 순서대로 망치를 내치리며 한쪽 손을 박살내 버렸다.
그리고 다시 리더에게 물었다.
“우리가 오랜만에 도시로 돌아와서 그러는데, 대체 너희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아까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부하 A부터 시작해 망치를 내리쳤다.
다른 곳이 아니라 이미 작살 난 손을 대상으로.
콰직-! 콰직-! 콰직-!
나는 한 번 더 리더에게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고, 이번에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
부하들이 눈을 질끈 감는 걸 보니 이번 심문의 규칙은 다들 이해한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잘 잡아라, 아우옌.”
“예……!”
다시금 차례차례 기계적으로 내리치고 있자, 부하들 중 한 놈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제, 제가!”
“…응?”
“제가 답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 질문에!”
“오, 정말이냐?”
어느 정도 유도한 결과였기에 나로서는 놀랍지 않았지만, 부하 G의 배신을 지켜보던 리더 입장에선 좀 달랐을까.
“이 쓰레기 같은 새끼가……!”
내내 침묵을 지키던 눈깔이 부하 G를 향해 눈알을 부라린다.
다만 마초 사회인 노아르크 출신답게 부하 G도 만만치 않았다.
“씨발, 그럼 어쩌란 거요? 당신이야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끝이겠지만, 우리는 작살이 나는데.”
“…그런다고 저놈이 널 살려 줄 거 같냐!”
“아니겠지. 근데 뒈져도 덜 아프게 뒈지는 게 낫지 않소? 어차피 뒈질 상황에 충성을 다 해봤자 뭔 의미가 있는데?”
“배신한 게 알려지면, 마을에 있는 네 가족들도 절대—.”
“에라이! 퉤! 병신 새끼야. 넌 네 부하가 가족 없는 고아 새끼인 것도 몰랐냐?”
“…….”
내가 보기엔 부하 G의 압승이었다.
논리정연하고도 이기적인 그 말에 눈깔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물론 뒤늦게 뭐라 욕이라도 하려는 듯했지만…….
“이런 개자—.”
“조용.”
“커헉-!”
조무래기 싸움을 지켜보며 시간 낭비를 할 이유가 없어서 말이지.
“자, 됐으니 말해봐라. 대체 너희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이내 눈깔을 조용히 시키고 묻자, 부하 G가 우리가 없던 동안에 도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했다.
정리해보자면 간단했다.
일단 때는 약 두 달 전.
성벽 밖으로 나갔던 노아르크 잔당들은 옛날 주거지였던 지하 도시로 몰래 들어왔다.
라프도니아를 침공하기 위해서였다.
“침공이라고……?”
“……제정신이 아니군.”
얘기를 함께 듣던 동료들이 놀라고 아멜리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지만, 사실 나는 크게 놀랍지 않았다.
그야 예전에 원탁에서 광대에게 들은 적 있던 얘기거든.
‘설마 이렇게 빨리 실행에 옮길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광대가 이 얘기를 할 때 옆에 있었던 덕인지 베르실도 다른 동료들보다는 훨씬 더 침착해 보였다.
“그래서? 전황은 어떻지? 너희가 이긴 건가? 그래서 7구역도 이 꼴이 난 거고?”
“아뇨… 저희가 이긴 건 아닙니다. 지금은 잠시 소강 상태일 뿐이지요.”
“…자세히 말해봐라.”
“이틀 전, 하수도를 타고 도시로 올라와 라비기온의 몇몇 구역들을 기습적으로 침공했고, 하루 만에 점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틀 전……?”
이후 얘기를 더 들어보자, 오늘이 바로 미궁이 폐쇄된 지 정확히 하루가 지난 시점임을 알 수 있었다.
“일부러 탐험가들이 미궁에 들어가 있을 때를 노렸군. 왕가의 병력도 상당 부분 미궁으로 들어간 이후이기도 할 테고.”
“예,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얘기를 듣고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왜 이렇게 운이 나쁠까였다.
내내 잠잠하다가 겨우 돌아왔는데, 그때가 마침 도시 침공이 일어난 시기라니.
재수 없는 놈은 어디로 넘어지든 코가 깨진다 이건가?
“듣고 있으니, 멈추지 말고 계속 말해라.”
“아, 예…….”
이후 부하 G는 그간의 전황을 얘기했다.
미궁이 열리는 1일과 탐험가들이 돌아오는 2일 사이를 노린 것.
그 덕분에 구역 내 치안대를 쉽게 몰아내고 도시 점거에 성공한 것.
그리고…….
“어제 도시로 돌아온 탐험가들을 차원 광장에서 포위하여 한 번에 제압한 뒤, 이들을 인질로 잡고 왕가의 병력들과 대치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상황까지.
“왕가 입장에서도 일반 도시민들 목숨보다는 이들의 목숨이 귀한지, 쉽게 밀고 들어오지 못하더군요.”
“근데 너희는 왜 이곳에 있던 거지?”
“저희는 순찰 중이었습니다. 혹시나 왕가에서 침입자를 보낼 수도 있는 데다가, 숨은 잔당들도 찾아내야 하니까요. 그러다가 저희 순찰조의 마법사가 광장 쪽에서 뭔가 느꼈다고 하는 바람에…….”
“순찰조가 더 있나?”
“이 근방은 없습니다마는…….”
말꼬리를 흐리는 폼이 뭔가 할 말이 더 남았는데 주저하는 듯하다.
비장의 수를 쓸 타이밍이었다.
“괜찮으니 말해봐라. 도움이 된다면 살려 줄 용의도 있다. 아니, 반드시 살려보내 주겠다고 전사로서의 내 명예를 걸고 맹세하겠다.”
초창기부터 유용하게 써왔던 전사의 맹세.
이를 들은 부하 G가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속내를 털어놨다.
“곧 정기 보고 시간입니다. 만약 저희가 제때 보고를 올리지 않으면 다른 순찰조가 이곳으로 찾아올—.”
“이 개자식이……!!”
마지막으로 믿고 있었던 보루였을까.
부하 G가 술술 불기 시작하자 눈깔도 참지 못하고 발작을 일으켰다.
아오, 자꾸 귀찮게.
“정기 보고라는 거, 네가 할 수 있나?”
“예. 할 수 있습니다. 몇 번 해본 적도 있고요. 귀찮다고 제게 자주 떠넘겼습니다.”
“그래?”
“네 이놈! 내가 네게 그동안 얼마나—!”
그럼 얘는 이제 쓸모 없겠네.
콰직-!
눈앞에서 상관의 머리통이 박살 났지만, 부하 G는 잠시 움찔할 뿐 금방 평정심을 되찾았다.
“아까 가져가신 짐들 중에 메시지스톤이 있을 겁니다. 그걸 제게 주시면, 제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이건가 보군.”
부하 G의 말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멜리아가 곧바로 메시지 스톤을 찾아서 건네주었다.
“자, 그럼 해봐라. 쓸데없는 짓은 할 생각도 말고.”
“예…….”
이후 메시지 스톤을 건네받은 부하 G가 이를 통해 상부에 이상 없다는 내용의 보고를 올렸고, 평소에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별문제 없이 마무리가 됐다.
고로, 이제 다시 대화를 이어나갈 차례.
“아무튼, 그래서 몇몇 구역이라 했는데 정확히 어디어디를 뜻하는 거지?”
“13구역과 7구역입니다.”
“하…….”
“왜, 왜 그러십니까……? 제가 뭔가 실수라도…….”
진짜 재수에 옮이 붙었구나.
그 많은 구역들 중 두 개를 침공했는데 그게 왜 하필 우리 7구역인 거야.
한숨이 하염없이 나오지만 이쯤에서 마음을 다잡고 대화부터 이어나갔다.
“됐고, 말해라. 성지는 어떻게 됐지?”
13구역엔 수인들의 성지가 있고, 7구역에는 우리 바바리안들의 성지가 존재한다.
바바리안의 부족장이기도 한 나로서는 성지 걱정이 먼저 될 수밖에 없던 것.
“성지는 현재 도시와 단절된 상태입니다.”
“단절됐다고?”
“저, 저는 말단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오래전, 왕가에서 만든 마법진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 이종족을 언제든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도 있는데… 이건 저희끼리의 말이라 확실한 건 아닙니다.”
그리 말한 부하 G는 내가 바바리안의 부족장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그, 그래도 아예 단절시킬 방법이 있던 덕분에 성지 쪽에는 비교적 피해가 적을 겁니다.”
비교적.
그 단어에서 성지에도 피해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뭐, 그래 어쩌겠는가.
그냥 비교적 적다는 것에 감사해야지.
“13구역… 수인 쪽은 어떻게 됐는데?”
미샤도 고향이 걱정됐는지 껴들어 물었지만, 자세한 답변은 받기 어려웠다.
“거긴 구역이 달라서 저도 잘… 하지만 아마 그쪽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일 겁니다.”
“그래… 그렇구나…….”
증오했던 가족들이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걱정이 되는지 입술을 꾹 짓무르는 미샤.
“얀델, 필요한 정보는 대충 다 얻은 듯한데, 우선 자리부터 이동하는 게 어떤가?”
“이동하자고?”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만약 이 자리에서 포위된다면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힘들어질 거다.”
아멜리아의 조언대로 일단은 자리를 뜨기로 했다. 정기 보고는 잘 넘겼다고 해도, 혹시 누군가 우리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그럼 얘를 뺀 나머지는 정리해라.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그자는?”
내 지시를 들은 아멜리아가 부하 G를 힐끗했다.
그리고…….
“살려서 데려간다.”
내 대답에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부하 G.
“미, 믿고 있었습니다. 남작님! 맹세를 지킬 거라고!”
“웃기지도 않는군.”
지켜보던 아멜리아가 헛웃음을 내지었다.
하긴, 얘는 내가 맹세 따위에 어떤 가치도 두지 않는 사짜 바바리안이란 걸 아니까.
‘그래도 아이나르까지 있는데 너무 쉽게 어길 수는 없지.’
물론 아직 얘한텐 들을 게 더 남아 있단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치이이이익-!
베르실의 마법과 아멜리아의 탐험 용품(?)으로 시체들의 흔적까지 말끔히 지운 후에는 최대한 기척을 숨기며 이동했다.
7구역 전체가 노아르크 놈들에게 점거당한 만큼 당분간 몸을 숨길 은신처를 찾아야 했던 것인데…….
“예전에 살던 집은 어떨까요? 여기서도 그리 멀지 않을 텐데…….”
에르웬의 의견을 따라 옛날에 담보 대출을 받기도 했던 그 저택으로 향했다.
담장도 높고, 지하실도 있어서 여러모로 적당한 장소라는 판단이었다.
다만, 전쟁터가 된 도시에서 그 집이라고 멀쩡할 리는 없었다.
“아, 안 돼……. 내 추억의 집이… 나중에 열심히 돈 모아서 다시 사려고 했는데……!”
다른 순찰조들의 눈을 피해가며 도착한 저택은 화염 마법이라도 명중했는지 2층이 무너져 있었고, 곳곳에 그을린 자국도 가득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군. 겉만 이렇지 1층은 멀쩡해. 외관이 이런 것도 숨어 지내는 데 도움이 될 테고. 담장이 좀 무너지긴 했지만, 각도상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는 아니다.”
이내 아멜리아로부터 적합 판정이 내려졌고, 우리는 조심스레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아우옌. 지금부터는 우리끼리 대화를 좀 하려는데, 그놈은 지하실에 가둬놔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