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68)
668화 신세계 (3)
사람이라고는 우리를 빼고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할 수 없던 성벽 바깥.
한데 사람의 기척이 감지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무려 팀 단위가 아니라…….
“상대는 단 한 명… 놀랍게도 숙면 중인 듯하군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한 명이라는 사실에 나는 더욱더 큰 불안을 느꼈다.
여러 명인 것보다 훨씬 더 말이 안 된다 해야 하나?
3등급 마물들이 등장하는 이 위험한 땅에, 그 누가 대체 어떤 이유로 혼자서 다니고 있는 걸까.
“일단… 가봐야겠지?”
“예. 일단 주변의 변수는 모두 파악해두는 게 옳으니까요.”
이백호와 궁수가 신속하게 의견을 주고받고서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먼저 갈 테니 알아서 따라 와!”
대포알처럼 쏘아져 나가는 이백호.
도대체 얘는 겁이라는 게 없나?
나였다면 정체 모를 변수인 만큼 팀원들과 함께 천천히, 그리고 또 은밀하게 접근을 했을 텐데.
‘저 무조건적인 자신감…….’
어쩌면 이거야말로 이백호의 가장 큰 약점일지도 모르겠다.
“……배, 백호?!”
“아우레스, 우리도 얼른 가요. 저 남자가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혹시 또 모르잖아요.”
이내 남겨진 우리들도 서둘러 이백호를 뒤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누, 누구신데 이러는 거요! 켁! 노, 놓아주시오!”
한 남자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도 바로 저 아래에서.
“…이 아래인가 봐요.”
지진이 나서 넓게 갈라진 듯한 지면의 틈새를 내려다보자 그 아래에서 이백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다들 왔어? 내가 갈 테니 기다려! 여기 좁아서 어차피 다 못 들어와!”
그 말을 끝으로 잠시 기다리자 이백호가 절벽 아래에서 얼굴을 빼꼼했다.
위에서는 각도에 의해 잘 보이지 않지만, 저 아래에 숨겨진 공간이 있는 듯한데…….
“읏차!”
이내 높이 뛰어오른 이백호가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며 우리가 있는 곳에 착지한다.
사냥감을 잡은 듯 높이 올린 오른손엔 어느 이름 모를 중년의 사내가 붙잡힌 채 발버둥치고 있었다.
몇 달은 족히 씻지 않은 듯 매우 비위생적인 모습이었는데…….
“뭐, 뭐야! 당신들은……! 놔! 놓으라—.”
우리를 발견하고서 더욱 심하게 몸부림을 치던 중년 사내가 어느 한쪽에 시선을 멈춘 채 동공을 확장한다.
“…아우레스 님? 문지기 아우레스 님 맞으시죠! 아우레스 니이이임!!”
“그, 그대는……!!”
…뭐야, 서로 아는 사이였어?
“………누구시오?”
“히익! 접니다 저! 노아르크 직속 경비대대 3조장 붉은 눈!”
“붉은 눈? 처음 듣는 이명인데……?”
아우레스가 고개를 갸웃하자, 모가지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잠시 풀어줬던 이백호가 눈길을 좁힌다.
“허, 그냥 아무 이름이나 대고 아는 척 한 거였어?”
“아, 아닙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붉은 눈! 붉은 눈 데일란!”
녀석이 다급하게 자기의 이름까지 덧붙이자 렉 아우레스도 뭔가 떠오른 듯했다.
“데일란? 데일란이면 메룬 선술집 할배 이름인데? 아… 너 설마 거기 아들내미냐?”
“예예! 맞습니다! 그게 바로 접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놈이 있었지! 으하하하! 반갑다!”
그제야 서로를 알아보게 된 두 사람.
이에 이백호도 뭔가 김이 빠졌는지 잡고 있던 사내를 짐짝처럼 바닥에 던졌다.
다만, 그렇다고 아예 관심을 잃은 건 아니었을까.
“데일란이라고 했지?”
“예, 예……! 그렇습니다!”
“말이나 해봐. 너 혼자 여기서 뭐 하고 있던 거냐?”
“그게…….”
“솔직하게 말 안 하면 뒈지니까 참고하고.”
저 강압적인 태도는 이백호가 가진 무서운 점 중 하나였다.
도리 같은 건 싹 무시한 채 늘 힘으로 찍어 누르며 대답을 강요하는데, 그런 주제에 또 거짓말 탐지 기능까지 달려 있거든.
‘나도 그때 돌아버리는 줄 알았지…….’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알을 굴리며 쪼그라든 남자를 보니 불현듯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뭐,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만.
“빨리 말해보라니까? 뭔 헛짓거리를 하려고 여기서 이러고 있었냐고!”
이백호가 한 번 더 윽박을 지르자, 사내가 눈을 질끈 감고서 답했다.
“…타, 탈영을 했습니다!”
“탈영……?”
“그… 라프도니아를 침공한다는 계획이 너무나 허무맹랑하게 느껴져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괜히 꼈다가 의미없이 죽을 게 뻔하지 않습니까!”
“헤에… 그래서 남들 다 돌아갈 때 너는 몰래 빠져나왔다 이거네?”
“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저랑 똑같이 생각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이 있었습니다.”
“응? 근데 왜 지금은 혼자인데?”
“그… 마물 때문에 중간에 흩어지게 돼서…….”
사정을 들어보니 처음엔 백 명도 넘는 인원이 함께 바깥 세상에 남아 돌아다녔다고 한다.
힘을 합치면 이곳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던가?
그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그들이었지만, 그 약속은 강력한 마물을 마주친 순간 의미가 없어졌다.
그도 그렇지 않은가.
애초에 본신의 안위만을 위해 집단에서 빠져나온 놈들인데,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제대로 힘을 합칠 수 있을 리가.
“그래서 흩어진 뒤에는 숨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조심히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이곳에 정착을 하게 된 건데…….”
“아까 그 절벽에 난 토끼굴 같은 곳에?”
“예…….”
“거기 살게 된 지는 얼마나 됐고?”
“그…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이제 두 달 정도 됐을 겁니다…….”
“이야, 대단하네. 근데 너 똥오줌은 어디서 쌌냐?”
“그게… 실은… 절벽 끝에 가서 쪼그려—.”
“그만해요! 더러운 얘기는.”
이내 힐러인 제이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 잔소리를 하자, 이백호는 궁시렁대면서도 피식 웃으며 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이 타이밍이라 여겼을까?
“근데… 공자님은 누구십니까?”
녀석이 당돌하게 이백호를 상대로 질문을 던진다.
“나? 내가 왜 궁금한데?”
“그… 아니 다름 아니라… 도시에서 오신 거라면 혹시 알고 계신가 해서……. 성주의 계획이 성공한 건지…….”
거, 이제 와서 따라가지 않은 걸 후회하는 건가?
만약 도시에서 온 거라고 하면 도시로 돌아갈 때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할 기세다.
물론 이백호가 그런 요구를 허락할 리 없지만.
“그건 네가 알 것 없으니 일단 조용.”
“…….”
“후, 그럼 요놈을 어떡할까? 어차피 내버려둬도 금방 뒈질 거 같긴 한데…….”
그 말에 사내의 표정이 훨씬 더 급해졌다.
하기야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오늘 저녁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는 듯한 말투로 저러고 있는 걸 보면 내가 다 소름이 돋을 지경—.
“자, 잠시만요! 드릴 제안이 있습니다!”
“응?”
“도시로 돌아갈 때 저도 좀 데려가주십시오! 그럼 제가 쓸모 있는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필사적인 기색이 역력한 거래 제안.
다만 이백호는 심드렁한 표정을 내지을 뿐이었다.
“음, 별로 안 궁금한데…….”
진심으로 관심이 없다는 듯한 목소리였으나, 나는 그게 연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협상이랄까.
상대가 저자세로 나오면 그에 맞춰서 주도권을 잡는 게 바로 이 녀석의 버릇이었으니까.
“뭐, 그래도 말해봐. 정말 쓸모 있으면 고민은 한번 해볼 테니.”
이백호는 철저하게 갑의 위치에서 무엇도 하나 내주지 않은 채 말했고, 이내 사내의 입을 통해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차원 비석……! 차원 비석이 어디에 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흐음……?
***
사내의 이야기는 아주 짧고 간결했다.
집단에서 떨어져 나온 뒤,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한참이나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때 우연찮게 발견하고 말았다.
노아르크 개척지에 있던 것과 동일한 생김새를 지닌 차원 비석을.
“뭐야… 진짜네?”
거짓말 탐지기를 지닌 이백호가 이리 말할 정도니 일단 진위 여부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테고…….
“보통 사람들은 절대 갈 생각도 않는 험지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제, 제가 아니면 절대 찾지 못하실 겁니다!”
확실히… 절벽 아래에 나 있는 작은 굴을 찾아서 살던 놈이 저리 말하니 정말 상상도 못한 곳에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게 어디 있는데?”
이내 차원 비석의 존재가 아주 매혹적이었는지, 이제는 심드렁한 척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백호.
사내도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딜을 걸어왔다.
“말씀드리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
“좋아, 약속을 원하는 거지? 약속할게. 말썽 안 피우고 잘 따라다니면 도시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사내는 이백호가 거짓말인지 아닌지 살펴보는 듯했으나, 결국 별다른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습니다…….”
“자, 됐네. 그럼 말해봐 어디야?”
이백호의 물음에 사내는 본인의 은신처가 있던 절벽 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여기 아래에 있습니다.”
“여기 아래?”
“예…….”
하, 어쩐지 너무 쉽게 말해주더라니.
어차피 우리가 이 근처만 수색해도 금방 들킬 테니 빨리 거래를 끝내려 했던 거구나.
“먼저 갈 테니 다들 알아서 내려와, 알았지?”
이번에도 이백호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고, 우리는 각자의 방법을 사용해 뒤따라 내려갔다.
후우우웅-!
마법사는 부유 마법으로.
탓, 타닷, 탓-!
궁수는 절벽을 폴짝 폴짝 뛰면서.
[히히히히잉-!]사제는 비행도 가능한 소환수를 탄 채로.
그리고 나는…….
‘몸으로 때워야지 뭐.’
콰아아아아앙-!
꽤 깊어서 그런지 착지한 순간 발끝을 타고 전기가 흐르는 듯했으나, 열심히 찍은 골강도와 물리 내성 스탯으로 버틸 수 있었다.
“이야, 남작님 화끈하네요?”
“뭐라는 거냐. 됐고, 이게 그 차원 비석인가 보군?”
“네. 진짜 있기는 했네요? 작동시킬 수 있는지까지 보려면 이따 할배한테 물어봐야겠지만.”
거진 70m는 됨직한 깊은 골짜기.
빛도 제대로 닿지 않아 어두컴컴한 그곳에는 아까 사내가 말했던 차원 비석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오, 할배! 여기, 여기! 얼른 와서 좀 확인해봐!”
“하벨리온, 너도 가서 같이 살펴봐라.”
이후 마법사들이 도착한 후에는 그들이 차원 비석을 조사했고, 두 마법사 모두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이용했던 그 차원 비석과 완전히 동일한 성질을 지녔습니다.”
“아마 그때처럼 마력만 충분히 불어넣는다고 하면 포탈이 열릴 가능성이 높네.”
“와, 진짜로? 그렇게 열심히 찾아다녔을 때도 못 찾은 걸 이렇게 찾네.”
그리 말하는 이백호가 기특하다는 듯 땅굴 사내의 어깨를 팡팡 내리친다.
거, 칭찬할 거면 더 팍팍 쳐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그건 각자 스타일인 거니까 뭐.
“그럼 얼른 마력부터 넣어봐. 제대로 되는지도 확인을 해보자고.”
“……만약 된다면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아니, 일단은 해보라고. 되는지를 먼저 보고 생각을 해야지. 사람이 왜 이렇게 경우가 없어?”
“…….”
괜히 말을 꺼냈다가 타박을 받은 GM이 씁쓸한 표정으로 차원 비석에 다가간다.
그리고…….
“시작하겠네.”
먼저 와 있던 파멸학자와 함께 마력을 주입하자, 이전과 완전히 똑같은 이펙트가 터져나왔다.
솨아아아아아-!
밀집된 마력이 뿜어내는 빛.
그것이 점점 형체를 갖추며 크기를 키우고 어느덧 형체를 갖춘다.
“정말 포탈이 열렸군요.”
“백호 군, 이제 어쩔 건가?”
“……글쎄, 진짜 이제부터 생각해봐야겠는데.”
“되도록이면 빨리 끝내게. 포탈은 5분 정도밖에 유지가 되지 않으니.”
“오케이.”
그렇게 정말로 혼자 고민을 하는가 싶던 이백호는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역시 궁금하네. 이게 어디로 이어지는지. 오랜만에 정말로 탐험하는 느낌도 들고.”
“…우리 목적을 잊지 말게. 우리는 마법진을 고칠 재료를 얻기 위해 이곳까지 온 걸세.”
“근데 혹시 모르잖아? 이걸 타면 더 빨리 그쪽에 도착할 수 있을지.”
“…….”
“뭐, 안 되면 다시 포탈 열고 돌아오면 되는 거고. 안 그래?”
이 새끼는 대체 P가 몇 퍼센트인 거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고 방식이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동의했다.
‘궁금하긴 해…….’
진짜 탐험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던 때, 이백호가 결정을 끝냈다.
“오케이, 고민 끝.”
“어쩔 텐가?”
“한번 넘어가보자. 나중에 여기까지 다시 오려면 그게 더 일이니까. 남작님도 괜찮죠?”
음…….
“싫다고 하면 안 할 거냐?”
“아뇨. 우리끼리 넘어갈 건데요? 남작님은 여기서 기다리세요.”
“따라가겠다.”
그래, 이것도 일종의 히든피스라고 할 수 있는데 이백호 혼자만 보낼 수는 없지.
나도 결정을 내리자 이후로는 속전속결이었다.
“야, 너가 먼저 들어가.”
“저… 저 말입니까?”
“왜 못 들어갈 이유라도 있어?”
“그 건너편에 위험한 게 있을 수도……. 아,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백호는 땅굴 사내를 먼저 포탈에 태워서 보냈고, 이후로는 한 명씩 순차적으로 포탈을 넘어갔다.
참고로 내 차례는 마지막이었는데…….
번뜩-!
눈앞이 하얗게 물들며 천천히 시야가 회복된다.
나는 버릇처럼 일단 주변부터 쓱 둘러보았다.
지형은 어두운 동굴 속.
근처에 마물은 없다.
다만 문제는…….
“백호 씨? 제대로 온 게 맞습니까? 차원 비석이 그 어디에도 안 보이는데?”
넘어온 순간 포탈은 사라졌고, 다시 포탈을 열 수 있게 해주는 차원 비석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하나, 둘, 셋, 넷, 다섯…….’
사람이 한 명 부족하다.
아니, 정확히는.
“뭐야, 그 새끼.”
우리에게 차원 비석 위치를 알려줬던 그 녀석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진짜 어디 갔어? 아니, 도망칠 만한 시간은 절대 안 됐는데? 대체 뭐야, 그 새끼?”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중얼거리는 이백호.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두근-!
왠지 함정에 빠진 거 같다 해야 하나?
이유 모를 불길함이 엄습해 오기 시작한다.
나는 서둘러 녀석과 친분이 있던 아우레스에게 말을 걸었다.
“아우레스.”
“왜 부르시오?”
“아까 그놈 있잖냐. 데일란이라는 놈.”
“그렇소만?”
“데일란이 성이면… 이름은 뭐냐……?”
아우레스 입장에서는 조금 뜬금없을 물음.
다만, 아우레스는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고 대답해주었다.
“글쎄… 잘 기억이 나지 않소.”
“……그러냐?”
애석하게도 별 소득이 있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차라리 모르는 게 다행이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생각을 접으려던 때.
아우레스가 흘려 들을 수 없는 말을 꺼냈다.
“다만…….”
“다만?”
“굉장히 흔한 이름이었던 거 같소이다.”
……에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