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Game as a Barbarian RAW - Chapter (687)
687화 미스터리 (1)
딱히 실수 같은 걸 하지 않았음에도 공 들여서 키운 캐릭터가 플레이 내내 죽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크게 놀랄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백호 팀의 궁수, 레이튼 브라이엇이 사망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본 드래곤과 사투를 펼쳤고, 그 이후 무작위 좌표로 순간이동을 당하기도 했으니까.
어떤 캐릭터라도 9계층에서 홀로 살아남는 일은 결코 쉽지 않으며, 부상까지 입은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힐러인 제이나 플라이어 또한 운 좋게 나를 만난 게 아니라면 그 자리에서 운명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
그래도 갑자기 이렇게 소식을 들으면 당혹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법.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브라이엇 씨가 죽었다니…….”
GM이 충격을 받은 얼굴로 다시 한 번 되묻자, 파멸할배는 별다른 감흥이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로 사실만을 고하듯 말을 이었다.
“이리로 향하는 길에 그의 시체를 발견했네. 있는 힘을 다 끌어쓴 상태에서 홀로 살아남기엔 이 지역이 많이 가혹했나 보더군.”
“그, 그런…….”
일행의 부고 소식에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GM.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같이 했을 파멸할배는 정작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라는 게.
“아무튼, 브라이엇 군은 죽었으니 나무에 천을 매달아 소식을 전할 사람은 이백호, 그 친구밖에 없단 게 내 결론일세.”
“그, 그렇군요……?”
“브라이엇 군은 이만하면 됐고, 그래서 여긴 어떤 상황인 건가? 저 건축물은 또 뭐고?”
“그… 저희도 잘 모릅니다. 와보니 갑자기 이런 게 생겨 있어서…….”
“흐음, 아주 흥미롭군.”
눈을 반짝 빛내며 구조물을 향해가는 파멸할배를 어이없게 보기도 잠시.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레이튼 브라이엇…….’
이백호와 함께 다니던 걸 보면 결코 착한놈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나라도 애도를 표하자.
이 삭막한 미궁에 그 정도 낭만도 없으면 너무 슬픈 일일 테니—.
“…브라이엇 씨는 항상 다 그만두고 싶어 했어요.”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제이나가 보인다.
“원하는 대로 됐네요.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될 테니까.”
뭐지? 얘도 사이코패스인가?
불현듯 그런 생각도 들었으나, 제이나의 표정을 본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비꼬는 듯 들리기도 하는 말이지만, 이것 역시 그녀 나름대로의 애도임이 느껴졌다.
“그쪽 동료들은 좋겠네요. 죽으면 어느 누구보다 슬퍼해줄 사람이 있어서.”
“그럼 너도 아예 이적하지 그러냐?”
장난스레 툭 던진 말에 제이나가 멈칫하더니, 이내 작게 웃으며 답했다.
“그건 안 돼요. 난 제물이 많이 필요하니까.”
“제물이야 약탈자나 노아르크 놈들을 때려죽여서 해결하면 그만이다.”
“……제가 그 노아르크 놈들이라는 건 알고 하는 말이죠?”
아, 그것도 그러네.
“말은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그래라 뭐.
어차피 나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카루이의 사제를 클랜원으로 받았다가 그 사실이 발각되면 ‘삼신교’까지 내 적이 되어버린다.
왕가만 생각해도 머리 아픈 나로선 절대 벌어져선 안 될 일인 것인데…….
‘이제 렉 아우레스랑 이백호만 오면 되는 건가.’
이후 파멸할배와 GM은 새로운 이상 현상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고, 그 외의 나머지는 대기를 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하루, 이틀…….
사흘째가 되어서 렉 아우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넝마가 되었다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망신창이가 된 상태로.
“하, 하하… 사, 살았구려…….”
며칠 동안 그 어떤 고생을 했는지는 몰골만 봐도 알 수 있는 상태.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아우레스는 곧바로 잠에 들었고, 그런 그를 제이나가 옆에서 보살피며 치료했다.
그리고…….
“결국 천을 매단 건 네가 아니었다는 거군…….”
“부끄럽지만, 그렇소. 마물들에게 겨우 도망쳐 태고의 땅에 발을 들이밀었는데, 그때 딱—.”
“그만.”
길어질 거 같은 렉 아우레스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내고서 일행들과 시선을 공유한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황상 이백호가 천을 매달아 소식을 전한 게 분명한데, 정작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니.”
“확실히 좀 이상하네요. 처음에 며칠은 다른 지역에도 천을 매달러 가서 그랬다고 이해할 수도 있었는데…….”
“나 역시 이 정도 시기면 한 번쯤은 돌아와서 중간에 확인을 하는 게 합리적인 행동이라 생각하네.”
렉 아우레스까지 합류를 하며 의문이 커진다.
천을 매단 게 얘도 아니라면 정말로 이백호밖에 없는데, 얘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이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파멸할배가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어쩌면 이백호는 저 안에 먼저 들어가버린 것일지도 모르겠군.”
파멸할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기념비 왼편에 새롭게 나타난 건축물이었다.
누가 봐도 입구처럼 생긴 구조물.
밖에서 조사를 열심히 해봤지만, 아직 그 아래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어찌 될지 모르니 전원이 다 모인 다음에 결정을 하기로 한 것인데…….
“확실히… 이백호라면 혼자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오기 전에 잠깐만 확인을 해보겠다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짓이지만, 왠지 그라면 그렇게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파멸할배의 설명에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들.
다만 정작 말을 꺼낸 파멸할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분명히 이상한 일일세. 이백호 그 친구가 자네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그 누구보다 신중한 자니까.”
“…예?”
“겉보기와 달리 이백호는 절대 무모한 짓은 하지 않네. 가끔 보면 옆에 있던 내가 다 답답해질 정도로 겁이 많지.”
“…그 이백호가 말입니까?”
“자신감이 넘치는 것과 신중한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니 말일세.”
“하지만 저 안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신 건 루인제네스 공 아니십니까.”
“그렇지. 소거법에 의해 다른 가능성이 떠오르지 않으니까. 하나 그렇게 신중한 이백호가 만약 저곳에 들어갔다고 한다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따로 있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일세.”
흐음…….
“어떤가? 비요른 얀델, 자네 생각은.”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해진다.
파멸할배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저 안으로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어렵다는 뜻이니까.
그도 그럴 게,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면 진작에 이백호가 한 번은 나오든가 했을 터.
“하루만, 하루만 더 기다려보고 결정하지.”
이후 나는 하루의 유예 기간을 두었지만, 그동안 이백호가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따라서 이제 결정을 내릴 차례.
“하벨리온, 이 아래에 뭐가 있을지 짐작 가는 게 있나?”
암흑 시야로 뒤덮여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계단 아래를 바라보며 묻자, GM이 고개를 내저었다.
“태초의 땅에 이런 게 있다는 얘기는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태초의 땅만이 아니라 별무덤 전역에서 이러한 입구는 본 적도 없고, 전에 왔을 때는 없다가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도 너무나 수상하다.
하지만…….
“좋아, 결정했다.”
“역시 들어갈 모양이로군?”
“그래.”
처음부터 들어가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위험을 무릅쓰고 별무덤 전역을 뒤진 것도 ‘수상한’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것 아닌가.
그런 게 떡하니 나타나줬는데 그냥 지나칠 리가.
“좀 더 이백호를 기다려보려 했지만… 나타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혹시 안에 들어가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우리끼리 진입한다.”
일단 들어가보자.
***
일종의 던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믹이 있을 것이고, 알지 못하면 밟는 수밖에 없는 함정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좁은 계단 아래로 내려간다.
터벅, 터벅.
선두에는 당연히 내가 서 있고, 최후방에는 렉 아우레스가. 그리고 원거리 라인들이 중심부에 차례로 서 있는 진형.
터벅, 터벅.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발을 내딛는다.
정보가 없는 ‘던전’이란 건 원래 그런 거니까.
게임 내에서는 첫 트라이는 항상 정보를 얻는 것에 만족해야 했을 만큼, 미지의 지역은 위험하다.
터벅, 터벅.
그런 의미에서 다섯 명 모두 허리에 로프를 둘러 굴비처럼 엮었다.
참고로 로프는 암벽 등반을 하듯 입구 앞에 말뚝을 세워 고정시켜 둔 상태였는데…….
“으앗! 큰일이오! 큰일!”
계단을 얼마 내려가기도 전에 맨 뒤편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밧줄이 끊어졌소!”
“……뭐라고요?”
“내 잘못이 아니오! 난 아무것도 안 했단 말이오! 그냥 따라간 것밖에—!”
“거짓말은 아닌 거 같습니다. 여기 단면을 보면,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로 베어낸 듯한데…….”
“다들 벽쪽으로 붙어봐라.”
이내 좁은 계단을 비집고 올라가 로프의 단면을 직접 확인해보았다. 일단 아우레스가 뭔가 실수해서 잘릴 수 있는 흔적은 아니었다.
애초에 수백 미터까지 늘어나도록 설계된 마공학 로프가 실수로 끊어질 일 자체가 없기도 하고.
“천천히 따라와라.”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기에 내려가던 것을 멈추고 다시금 계단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이미 내려왔던 것보다 한참 더 올라오지 않았나요……?”
“예. 맞습니다. 지금까지 내려간 계단이 213개인데 지금 벌써 240개가 넘었습니다.”
아무리 계단을 밟고 올라가도 바깥은 보이지 않는다.
쉽게 말해 돌아갈 길이 사라진 것.
“…크, 큰일 아니오? 여기에 갇힌 거지 않소!”
“호들갑 떨지 마세요. 다들 그 정도는 예상하고 들어온 거니까.”
“그, 그렇소이까?”
제이나가 렉 아우레스에게 핀잔을 줌과 동시에 GM이 내 옆으로 다가온다.
“돌아갈 길이 막힌 건 확인했으니, 이쯤에서 다시 원래대로 진행을 하는 게 어떨는지요?”
합리적인 조언이었다.
다만 어딘가 위화감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위화감이 아니라…….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입구가 사라지고, 다시 돌아가려 하면 무한히 나타나는 계단이라…….’
기시감이 피어난다.
그야 균열 중에 이런 곳이 하나 있긴 하거든.
‘황금 유적’.
4층의 균열 중 하나인 그곳 초입부에 이런 연출이 있었다.
‘가만 보니까 벽도 뭔가 비슷한 거 같고…….’
만약 ‘황금 유적’을 기반으로 한 지역이라고 한다면, 마냥 아래로 내려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여기에도 피스가 하나 숨겨져 있으니까.
입구가 닫힌 상태에서 계속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특수한 이벤트 하나를 겪을 수 있다.
‘뒤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일단 이벤트는 깨고 가는 게 낫겠지.’
아, 물론 여기서도 그 이벤트가 발생한단 보장은 없다.
하나 한 번 시험해본다고 해서 손해 보는 건 약간의 시간 말고는 없을 터.
“계속 올라갈 테니 낙오되는 사람이 없게 조심해서 따라와라.”
“예? 하지만…….”
“먼저 가지.”
이후로는 성큼 성큼 발을 뻗으며 빠르게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리고…….
“언제까지 올라가려는 겁니까? 가도 가도 계단 말고는 나오지가 않는데.”
“되돌아가는 것도 일이겠네요.”
이제 한 절반 정도 올랐다고 예상이 되는 시기.
터벅, 터벅.
이질적인 발걸음 소리가 두 귀에 포착되며 나는 황급히 진형을 멈춰 세웠다.
“멈춰라.”
“아, 이제 돌아가시는—.”
“조용.”
“……?”
“앞에서 누군가 내려오고 있다.”
참고로 그 누군가에 대해서는 나도 정보가 없다.
애초에 특수 이벤트 자체도 이런 식이 아니니까.
‘대체… 누구지?’
알 수 없지만,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경계 상태를 뜻하는 수신호를 올린다.
그리고 그때.
“…….”
“…….”
가까워지던 발걸음 소리가 뚝 그친다.
‘저쪽도 우리를 눈치챈 건가?’
팽팽하게 당겨진 실처럼 경직된 공기.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방패를 쥔 손에 힘을 불어넣은 그 순간이었다.
타닷-!
기습적으로 달려드는 소리가 귓가에 잡힌다.
“전투 준비!!”
짧았던 정적을 깨트리며 외침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재빠르게 돌진한다.
반사적으로 방패로 태세를 갖추던 나는 그대로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탓-
빠르게 달려오다가 방패 앞에서 장난스럽게 멈추는 두 발.
“서프라이즈! 어때요, 놀랐어요?”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미친놈인가?’
이백호였다.
***
이번에야말로 이 새끼를 한 대 때릴까 말까 고민을 하던 차, 이백호가 실실 웃으며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른다.
“우하하! 많이 놀랐어요? 많이 놀랐죠? 많이 놀란 거 같던데.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장난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라.”
“에이, 이걸 어떻게 참아요? 드디어 소중한 동료들이랑 재회를 하게 됐는데!”
“…….”
“아니, 근데 진짜 안에 있을 줄은 몰랐네. 어떻게 날 안 기다리고 그냥 들어가지?”
……뭐라고?
“남작님은 내가 장난친 것 정도로 뭐라 하면 안—.”
“…지금 뭐라고 했냐?”
목소리를 내리깔며 묻자 이백호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서 의문 어린 시선을 보낸다.
나는 빠르게 한 가지를 확인했다.
“아주 중요한 문제니 장난치지 말고 진지하게 답해라. 나무에 천을 묶어둔 게 너 아니냐……?”
지금까진 거의 확신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다만, 그 물음에 이백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뭔 소리예요? 그 천… 남작님 쪽에서 달아둔 거 아니었어요……?”
그 반응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백호가 아니라면.’
그럼 대체 여기로 오라고 한 놈이 누구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