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159
159
소드마스터 힐러님 159화
50장 블러드 크리스마스(3)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외성의 성벽이 높지 않았다. 그래서 은신 상태를 유지하면서 성내로 진입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공간을 단절하는 결계는 먼 곳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후작성의 병력은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뱀파이어 후작의 성답게 경비는 철저했다. 뱀파이어 하나가 리빙 아머 셋과 함께 조를 이뤄서 성벽 위를 순찰하고 있었다.
-외성에서 내성으로 향하는 길목에 은신을 탐지하는 아이템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주변 정찰을 다녀온 리슈발트의 보고였다. 은신 탐지 아이템은 지구는 물론이고 이계에서도 흔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뱀파이어 후작의 성이라서 그런지 설치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성준은 잠시 골목에 숨어들어 은신을 해제했다. 그리고는 리슈발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다른 길은?”
-뱀파이어 남작이 지키고 있습니다. 아마 은신의 존재를 감지할 겁니다.
리슈발트의 말에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뱀파이어 남작 정도라면 누군가 근처에서 은신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그들의 능력치가 보정되는 밤이었으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뱀파이어 남작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어.”
-훌륭한 선택입니다.
리슈발트는 감탄했다. 은신 탐지 아이템과 달리 뱀파이어 남작은 은밀하게 처리해 버리면 침입 사실이 새어나갈 걱정이 없었다.
“은신.”
성준은 다시 은신 상태가 되었다.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리슈발트가 먼저 움직였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곳에는 높은 탑이 있었다.
입구는 뱀파이어 기사 둘이 지키고 있었다. 탑의 상층부에서 강한 마력 반응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뱀파이어 남작이 있는 것 같았다.
-뱀파이어 기사들은 주군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리슈발트가 보고했다. 성준은 발걸음을 옮겼다. 잡담조차 없이 경계를 계속하고 있는 뱀파이어 기사들의 사이를 지나쳐 탑의 상층부로 올라갔다. 계단의 끝에 도착하자 뱀파이어 남작의 뒷모습이 보였다.
“뭔가…….”
뱀파이어 남작은 은신의 존재를 감지했다. 날렵하게 검을 뽑으며 주변을 경계했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한 마력이 느껴졌다. 부하들을 부르기 위해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지금!’
성준은 뱀파이어 남작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빠르게 이동하면서 은신이 풀렸다. 하지만 뱀파이어 남작이 육안으로 성준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의 검이 휘둘러졌다.
“커헉?”
오러가 깃든 날카로운 칼날이 뱀파이어 남작의 목을 깊이 베었다. 피 분수가 솟구쳤다. 뱀파이어 남작은 위태롭게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는 혈마법을 사용해 지혈을 시도했지만 성준은 그럴 틈을 줄 생각이 없었다.
연격이 펼쳐졌다.
섬광과도 같은 찌르기가 뱀파이어 남작의 심장을 관통했다. 인간에 비해 재생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난 뱀파이어라고는 해도 심장에 심한 손상을 입으면 숨이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쿠, 쿨럭……!”
뱀파이어 남작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흘린 피가 하늘로 솟구치더니 신호탄처럼 요란한 소음과 함께 사방으로 퍼졌다.
죽기 직전에 혈마법으로 침입자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수비 병력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리슈발트가 보고했다. 발각된 상황이었지만 성준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보스부터 죽이고 시작할까 했는데 안 되겠네…….”
-섬멸입니까?
“그래. 일단 잡졸부터 다 죽이자.”
대답과 함께 성준은 탑 아래로 시선을 던졌다. 영주성의 수비 병력이 탑을 포위하고 있었다. 뱀파이어 귀족도 섞여 있었다.
“리슈발트. 이번 각성 던전의 난이도는?”
-SS급 하위 정도입니다. 주군이라면 체력과 마력의 소모가 극심하겠지만 무난하게 클리어할 수 있을 겁니다.
리슈발트가 대답했다. 만약 성준이 ‘흡수’를 사용하지 못하는 평범한 SS급 헌터였다면 클리어조차 불확실했을 것이다.
“조심해야겠네.”
성준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탑 아래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마력을 끌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슬래시.”
시동어와 함께 마력을 머금은 검을 휘두르자 오러 참격이 지상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쏘아졌다.
“이, 이런…… 크악!”
뱀파이어 기사의 오른팔이 잘리는 것으로 시작을 알렸다. 뒤이어 부드럽게 착지한 성준은 날렵하게 검을 휘두르며 폭풍검을 시전했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몰려든 수비 병력이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찢겨 나갔다. 뱀파이어들의 피부는 리빙 아머의 갑옷과 비슷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지만 성준의 ‘검풍’은 리빙 아머의 갑옷조차 찢어 버리는 무서운 절삭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격에 수십의 리빙 아머가 조각나고 10여 명의 뱀파이어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혈마법으로 방어를 펼치거나 오러 아머를 가동한 소수의 뱀파이어 귀족과 기사들만이 두 발로 서있었다.
-뱀파이어 남작 셋에 기사가 다섯입니다.
뱀파이어 남작은 S급 하위 티어 수준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뱀파이어 기사는 A급 최상위 티어에 불과했다.
뱀파이어 기사도 S급으로 분류하는 학계도 있지만 인정받지 못한 소수 의견에 불과했기 때문에 성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우, 우리로는 막을 수 없다! 백작님의 본대에 지원을 요청해!”
“후작님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뱀파이어 기사 둘이 전령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성준은 단검을 던져서 한 명을 죽이고 다른 한 명은 고속 이동술로 거리를 좁힌 뒤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제기랄! 합격진이다! 내가 엄호하겠다!”
뱀파이어 남작 하나가 황급히 혈마법을 캐스팅하며 외쳤다. 이제 남은 전력은 남작 셋에 기사 셋이다.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야만 했다.
그들이 합격진을 펼치기 위해 움직인 순간이었다.
섬광이 그들을 덮쳤다.
“커헉!”
“윽!”
휘둘러진 검에 뱀파이어들이 허무하게 쓰러졌다. 뱀파이어 남작이 셋이나 있었지만 성준의 검을 버티지 못했다.
성준이 움직임이 멈췄을 땐 그곳에 멀쩡하게 서 있는 뱀파이어는 없었고 하늘에서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멀리서는 뱀파이어로 구성된 병력이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성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크리스마스인데 너무 화려했나?”
-그야말로 블러드 크리스마스군요.
리슈발트가 재미없는 농담을 던졌다. 성준은 적의 병력이 몰려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두 죽일 생각이십니까?
“어차피 도망 못 쳐. 그래서 잡졸들부터 천천히 처리하려고.”
차원을 단절하는 결계가 유지되고 있어서 각성 던전이 클리어되거나 성준이 죽을 때까지 그 누구도 도망칠 수 없다.
보스만 죽이고 클리어하는 방법도 있지만 들켜버렸기 때문에 성준은 ‘섬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후작성의 수비대가 성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휘관은 뱀파이어 백작입니다.
리슈발트의 보고에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 중에서도 S급 최상위 티어의 전투력을 지닌 뱀파이어 백작 정도라면 성준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제국군 전투 사제복……? 이단 심판관인가?”
뱀파이어 백작은 성준의 옷차림을 보고 오해했다. 이단 심판관들도 전투 사제복을 입고 다니지만 평범한 전투 사제들보다 우수한 최정예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군을 제국의 이단 심판관으로 오해한 것 같습니다.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는군요.
“재밌는 장난을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성준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계획을 변경해야겠어. 섬멸은 취소다. 생존자를 몇 명 남겨두자.”
성준이 말했다. 여기서 그가 제국군 이단 심판관인 척 연기를 하면서 뱀파이어들을 처참하게 죽인다면 제국과 종족 연합 간의 분란의 씨앗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뭘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냐? 인간…… 어서 질문에 대답하라. 제국의 이단 심판관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제국의 이름으로 악의 근원을 심판하러 왔다.”
성준은 큰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했다. 본래는 황제를 입에 담아야 했지만, 그것은 내키지 않았기에 대신 제국의 이름으로 선고했다.
그는 이단 심판관을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이단 심판부대에도 지인이 많았고 그들과 함께 전장을 누빈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뭐라고……? 종족 연합과 제국이 맺은 조약을 잊은 것이냐!”
“그런 건 상관없다. 나는 제국의 적을 섬멸할 뿐이다.”
성준은 검을 들어 올렸다. 마력을 모으자 뱀파이어들이 서둘러 혈마법 방패를 펼쳤다.
“질풍검!”
성준이 검을 휘두르자 검풍을 머금은 회오리가 주변을 휩쓸었다. 수준 높은 혈마법 방패를 전개하고 있던 이들은 무사했지만 혈마법의 수준이 낮은 뱀파이어들은 붉은 방패가 찢기기 무섭게 전신이 검풍에 베여 쓰러졌다.
대부분 리빙 아머들로 구성된 진형 외곽이 무너졌다. 성준은 고속 이동술을 펼쳤다. 무너진 진형을 돌파하자 뱀파이어 기사들이 나타났다.
“전력을 다해 막아라!”
명령을 내리는 이는 뱀파이어 자작이었다. 자작 정도라면 S급 상위의 실력자다. 그를 노려보는 성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지휘관을 노릴 생각이십니까?
성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수가 많을 때 지휘관을 죽이고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은 전술의 기본이었다. 성준은 눈동자에 마력을 끌어 올렸다.
“석화.”
석화 저주를 머금은 붉은 광선이 뱀파이어 자작을 향해 날아들었다.
“제, 제기랄……!”
공격을 인지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못했다. S급 상위의 마물조차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속도였다.
다량의 마력을 소모했지만, 일격으로 뱀파이어 자작이 석화 저주에 걸리고 말았다.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더니 돌로 변했다.
“방심하지 마라!”
뱀파이어 백작이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성준이 예상보다 강했기 때문에 직접 개입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었다.
뱀파이어 기사들이 성준을 향해 포위망을 전개하는 사이 백작은 왼손을 뻗었다.
-염동력입니다!
리슈발트가 경고했다. 성준은 자신의 주변을 옥죄는 강한 염동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마력 방출로 강제 상태 해제를 노렸지만 소용없었다. 블링크조차 불가능했다.
‘생각보다 염동력이 강하다…… 그렇다면……!’
백작에게 간섭하는 수밖에 없다. 성준은 리슈발트를 향해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리슈발트!”
성준이 마력을 전달하자 리슈발트가 검을 뽑았다.
-다시 한번 제 검을 바치겠습니다.
일순간 뱀파이어 백작과의 거리를 좁힌 리슈발트의 검이 뱀파이어 백작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짧은 순간 위험을 느낀 백작은 염동력 제어를 해제하면서 황급히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리슈발트의 검격을 피했다.
-큭…… 주군! 죄송합니다!
“충분해!”
뱀파이어 백작이 염동력 제어를 포기하면서 보이지 않는 구속이 풀렸다. 블링크 마법으로 백작의 배후로 이동한 성준은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붉은 피가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