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206
206
소드마스터 힐러님 206화
64장 겨울의 땅이 붉게 물들다(3)
러시아 정보국장의 저택에 무장 병력이 들이닥쳤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저택 경비원들이 달려 나왔다.
“러시아 연방 보안국에서 나왔다. 저항하는 자는 즉각 체포하겠다.”
신분증은 진짜가 분명했기 때문에 저택 경비원들은 무기를 버리고 집행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저택 경비원들을 무력화시킨 러시아 연방 보안국 요원들은 조를 나누어서 저택 내부를 철저하게 수색했다.
“팀장님! 정보국장을 확보했습니다!”
“그쪽으로 가겠다.”
러시아 정보국장은 자신의 서재에 있었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상황 발생에 몸을 피하지 못한 것이었다.
러시아 연방 보안국의 정당한 집행이기에 도망친다고 해도 범죄자가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큭…….”
정보국장은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짧은 신음을 삼켜야만 했다. 무장한 보안국 요원 2명이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팀장급 요원이 서재로 들어왔다.
“중요한 시국인데, 보안국에서 나를 왜 찾는 건가?”
“잘 알고 계시는군요. 중요한 시국이기 때문에 대통령님께서 직접 보안국에 집행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직접……? 그럴 리가…….”
“정보국장을 맡고 계시니 보안국의 집행 과정은 잘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팀장의 말에 정보국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보안국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모를 리가 없었다.
집행이라는 이름으로 시베리아의 설원에 조용히 묻힌 시체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자신도 그렇게 묻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소름이 돋았다.
“대통령님께서 그런 지시를 내렸을 리가 없네! 대통령님을 만나게 해주게나!”
정보국장이 발악하듯 외쳤다. 팀장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SS급 헌터 강성준이 옵니다.”
“뭐…… 라고? 그런 보고는 받은 적이 없는데…….”
러시아 대통령이 보안국과 함께 은밀하게 진행한 일이니 정보국장이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설마?”
“이제 알겠습니까? 지금 이건 ‘청소’입니다. 당신은 버림받았습니다. ‘전’ 정보국장.”
“마, 말도 안 돼!”
정보국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버림받았다고? 믿을 수 없다. 아니,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발악해도 변하는 건 없습니다. 저희와 함께 시베리아로 가주셔야겠습니다.”
* * *
10시간의 긴 비행이 끝났다. 성준과 일행들을 태운 항공기는 러시아의 중앙 연방 관구에서도 모스크바 인근에 위치한 공군 비행장에 착륙했다.
항공기에서 내린 성준은 러시아 공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았다. 레이드 상황 시작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사열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러시아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강성준 씨?”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남성이 다가왔다. 30대 중반으로 보였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성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허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러시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크렘린 궁전 비서관을 맡고 있는 세르게이라고 합니다.”
한국어였다. 어색하긴 했지만 이해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성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러시아군의 배치는 끝났습니까?”
“네. 차원 관문이 열릴 것으로 추정되는 중요 구역에 병력이 배치되었습니다.”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러시아 국토는 넓었다. 그래서 연합 위원회로부터 병력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예상 지점에 병력을 배치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에서는 우선순위를 정했다. 병력이 배치되지 않은 곳은 집중적인 피난 유도가 진행 중이었다.
“차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스크바 레이드 관제국으로 모시겠습니다. 체류하는 동안 머무를 숙소도 근처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차량 2대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성준과 일행들은 2대의 차량에 나누어 탑승했다. 목적지는 모스크바 레이드 관제국이었다.
2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달린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S급 헌터가 3명 있습니다. 경계가 생각보다 삼엄하군요. 다른 의도를 의심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리슈발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지만, 성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여기가 모스크바라고는 하지만 고작 S급 헌터 3명은 성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러시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국가 전체를 영향권으로 만든 레이드 상황이 코앞인데, 다른 생각을 할 리가 없다는 게 성준의 생각이었다.
“상황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성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르게이는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자 상황실로 통하는 긴 복도가 있었다. 복도의 끝에는 커다란 철문이 있었다.
세르게이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지문을 인식하자 철문이 열리면서 상황실의 내부 모습이 드러났다.
정면에는 거대한 모니터가 있었고 그 앞으로 수백 대의 컴퓨터 앞에 수백 명의 요원이 앉아서 정보를 분석하고 있었다. 상황을 지휘하는 곳에는 커다란 원탁을 두고 수십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뒤로 수행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러시아 대통령입니다.”
제니퍼가 성준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경비가 삼엄하다 싶었는데, 역시 이유가 있었다. 러시아 대통령이 상황실에 있었던 것이었다.
“다들 자리를 비켜주겠나?”
상황실에 모인 수백 명의 인원이 러시아 대통령의 그 한 마디에 자리를 비켜주었다. 러시아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러시아 대통령이 성준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조약서에 서명한 이상, 저는 약속을 지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성준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러시아와의 감정은 나쁜 편이었지만 새로운 조약이 체결되었으니 이제는 그가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관련 인물들은 모두 제거했습니다. 러시아에 계시는 동안 불편한 상황은 없을 겁니다.”
러시아 대통령이 설명했다. 성준을 공격하는 것을 선두에서 지휘했던 정보국장은 보안국 요원들과 함께 시베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또한 당시 상황을 지휘했던 정보국 요원 대부분이 러시아 연방 보안국에 의해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러시아에 방문하는 성준을 위한 일종의 ‘대청소’였다. 딱히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러시아에 체류하는 동안 잡음이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 정보국과 불미스러운 마찰이 있었기에 조금 염려했었습니다.”
성준은 은근슬쩍 러시아 정보국의 과거 행적을 강조했다. 러시아 대통령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표정을 관리했다.
성준이 철저한 ‘갑’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어도 표출할 수 없었다.
“러시아에 체류하는 동안 얼굴 붉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네. 저도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성준은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둘의 대화가 끝나자 상황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본인의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각 연방 관구의 상황을 보고하겠습니다!”
중령 계급의 군인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브리핑이 이어질수록 현재 러시아의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비군을 포함해 모든 병력과 물자를 동원했지만, 국토 전역을 수호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좋지 않았다. 차원 관문은 초기에 제압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웨이브를 소환하여 암세포처럼 주변을 침식하게 된다.
그러면 영향권과 격전지가 넓어져서 차원 관문의 파괴가 힘들어지고 피해가 커지게 된다.
“제니퍼.”
성준은 연합 위원회에서 비서 역할을 맡고 있는 제니퍼를 불렀다.
“말씀하세요.”
“연합 위원회의 추가 지원을 불가능한 겁니까?”
성준은 질문을 던지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각 국가에서도 레이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을 남겨둬야 할 테니까.
“추가 지원을 요청할 수는 있습니다. 아직 예비 병력을 남겨둔 위원국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지원 병력이 대규모 레이드 상황 발생 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예상대로였다. 대규모 병력이 움직이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성준은 짧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지원 요청해 두세요. 장기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상륙이 실패하면 더 이상 종족 연합에게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성준은 생각했다.
종족 연합 쪽에서도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상륙에 상당한 숫자의 주력군을 동원할 것으로 보였다.
초기에 차원 관문을 파괴해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병력 부족으로 그것이 힘들 테니, 장기전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알겠습니다. 연합 위원장님의 권한으로 추가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제니퍼의 대답을 들은 성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관계자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들으셨지요? 추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차원 관문을 초기에 전부 파괴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최대한 버텨주셔야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브리핑은 30분 정도 더 진행된 끝에 종료되었다.
“숙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크렘린 궁전의 비서관, 세르게이는 브리핑이 끝나기 무섭게 성준에게 다가와 말했다.
숙소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성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태운 차량은 모스크바 중심에 위치한 저택 앞에 멈췄다.
세르게이가 먼저 내려서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성준이 차에서 내리자 그는 숙소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의 별장입니다. 모든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편하게 이용해 주십시오.”
“세르게이 씨는 별채에서 지낼 예정입니까?”
성준이 물었다. 본채 옆에 작은 별채가 있었다. 수행원들이 지내는 공간으로 보였다. 세르게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원활한 연락을 위해서 별채에서 지낼 예정입니다. 언제든지 호출해주시면 달려가겠습니다.”
크렘린 궁전 비서관이면 결코 낮은 직책은 아니었지만, 그는 성준을 깍듯하게 모셨다.
아마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관련된 지시 내용이 있었을 것이다.
“잘 부탁하겠습니다.”
성준이 대답했다. 러시아에서 얼마나 머물게 될지 몰랐다.
장기전이 되면 체류 기간이 길어질 것이겠지만 성준은 대한민국으로 전쟁의 불씨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들 들어가서 쉬도록 하죠.”
성준이 말했다. 제니퍼와 한석, 그리고 제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성준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마침내 잠의 늪에 빠져들었을 때도 악몽을 꾸고 말았다.
그날 꿈에서 러시아는 피바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