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22
22
소드마스터 힐러님 022화
8장 최후의 기억(1)
희미한 시야에 3명의 기사가 보였다. 낯선 얼굴은 아니었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들은 성준을 향해 피로 물든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 중에 얼굴의 반이 피로 물든 기사가 입을 열었다.
“….로우켈… 13기사회를…”
하지만 기억이 완전하지 않은 탓에 목소리마저 희미했다.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느껴지는 감정의 대부분이 ‘분노’라는 것이었다.
성준의 입이 저절로 열렸다. 그는 거부하지 않고 기억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로우켈, 그러니까 전생의 성준이 뭔가를 말했다. 그러자 검을 겨누고 있는 기사들 또한 무언가 말했다.
언쟁은 계속되었고 결국 그들이 들고 있는 검이 성준의 목과 심장을 찔렀다.
“허억!”
꿈에서 깨어났다.
성준은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긴장감 넘치는 전장이 아니라, 익숙한 원룸 안이었다. 그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기억이 완전하지 않아서 꿈도 흐릿했다. 그래서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빨리 기억을 찾아야겠어.’
이번 꿈을 꾸고 나서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성준은 마력 흡수와 수련을 통해 전생의 기억을 조금 더 선명하게 떠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시지…?”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 오전 7시에 딱 맞춰서 깨어났다. 악몽이 알람시계 역할을 해준 것 같았다.
잠에서 깬 성준은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헌터 관리국에 방문할 계획이 있었다. 이윽고 준비를 끝낸 그는 택시를 타고 헌터 관리국에 도착했다.
“김현성 팀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아, 강성준 헌터님이시군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오는 길에 현성과 통화를 하면서 방문 사실을 미리 알린 덕분에 기다릴 필요 없이 사무실까지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아, 강성준 씨…”
조사팀 사무실에 도착하자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이라도 있는 것인지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늘은 무슨 일이신가요?”
“다음 매칭을 잡아줬으면 해서요.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표정이 안 좋습니다.”
“아… 그게 사실은… 하아!”
현성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성준을 보며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제 한지석이 죽었습니다.”
“제가 응급처치는 제대로 했을 텐데요.”
피는 멎었고 상처는 치료되고 있었다. 의식을 회복하는 데는 며칠 걸리겠지만 죽음의 고비는 넘겼었다.
“면목없습니다.”
현성은 고개를 숙였다.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누군가 한지석을 살해했습니다.”
“예, 아무래도 배후가 있을 것 같다는 저희의 의견이 옳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뒤를 쫓기 위해 헌터 관리국의 조사팀이 총동원되었습니다.”
현성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조직적인 PK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증언을 해줄 용의자가 죽어버렸으니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분간, PK범을 잡는 것도 중단될 것 같습니다. 모든 인력이 이번 일에 집중되고 있어서요.”
“어쩔 수 없죠.”
현성의 말에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헌터 관리국을 나온 성준은 옆에 있는 던전 관리국에 들러 솔플을 신청했다.
마침 비어 있는 D급 던전이 있었고 바로 일정이 잡혔다.
“강성준 헌터님이십니까?”
“네, 접니다.”
성준은 지체 없이 던전으로 향했다. 도착한 그는 대기하고 있던 직원에게서 간단한 인증 절차를 거친 뒤, 던전에 진입했다.
시작부터 D급 마물인 오크 넷이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성준의 앞을 불과 10초도 막지 못했다.
‘벌써 보스방이네.’
순식간에 보스방 입구에 도달햇다. 도중에 D급 마물 중에서 가장 민첩하다는 ‘블러드 울프’도 등장했지만 성준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보스방 문을 열었다.
조명 드론이 앞으로 날아가 어둠을 밝히자 마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스인 오크 라이더 하나와 하수인으로 10마리 정도의 오크가 지키고 있었다.
오크 라이더는 블러드 울프를 타고 있었다.
‘라이더는 조금 귀찮은데…’
성준은 오크 라이더를 향해 짜증이 다소 섞인 시선을 보냈다. 뭔가를 타고 있는 마물들은 기동력이 좋기 때문에 한 번에 죽이지 못한다면 귀찮아진다.
‘일격에 처리하면 돼.’
성준은 검을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한 채 천천히 보스방으로 진입했다.
“쿠워어어어!”
오크 무리가 달려왔다. 성준이 그들의 곁을 지나치자 10개의 머리통이 돌바닥에 떨어져 굴러 다녔다.
마지막으로 남은 오크 라이더는 당황한 듯했지만 멈추지 않고 성준을 향해 창을 겨눈 채 거리를 좁혀 왔다.
“지금!”
성준은 자신을 향해 내찌르는 창을 회피한 뒤, 검을 고쳐 잡으며 블러드 울프의 다리를 베었다.
블러드 울프가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고꾸라지고 오크 라이더가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성준은 블러드 울프의 숨통을 끊은 뒤, 오크 라이더에게 달려가 목을 베었다.
-공략 확인, 계측 완료. D급 던전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마력 흡수가 끝나기 무섭게 계측기가 반응했다. 잠들어 있던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새로운 새로운 정보가 쏟아졌다.
이번에 떠오른 기억은 단검 투척술에 관한 것이었다.
‘나가면 헌터 마트에서 단검을 하나 정도는 사야겠다.’
단검을 투척했던 기억도 되살아났는데, 능숙하게 사용한다면 쉽게 상대방의 허를 찌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는 사실에 성준은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채 던전을 나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달려오자 성준은 공략 사실을 알렸다.
“1시간 40분으로 신기록을 갱신했습니다!”
“이번에도 특전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지금 헌터님을 모셔갈 차량이 올 겁니다!”
던전 관리국 직원의 말에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C급 던전도 쉽게 돌 수 있겠어.’
이번에 D급 던전을 공략하는 체감 난이도가 많이 내려갔다. 이대로라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서는 조금 버겁게 느껴졌던 C급 던전의 솔플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가 도착했습니다.”
직원의 알림에 성준은 던전 관리국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이동하여 우선점유권을 한 장 더 받아왔다.
*
중상위권 길드인 ‘하운드’의 영입과장, 정태민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오늘은 일이 많이 없어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정장을 입고 넥타이까지 갖춘 그 모습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였다. 마물이 등장하고 헌터들이 등장한 시점에서 이미 길드는 기업이나 다름없으니 길드 간부인 그도 직장인이라는 이름이 어울렸다.
똑똑.
“최용덕입니다.”
노크와 함께 부하 직원인 용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용덕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짧은 머리에 안경을 끼고 있는 그는 피곤해보였다.
“무슨 일이야?”
“D급 던전 솔플 신기록을 2번이나 갱신한 헌터가 나타났습니다.”
“뭐라고? 자세히 말해 봐.”
“B급 헌터 강성준이 2시간 5분이었던 D급 던전 공략 기록을 오늘 1시간 40분으로 갱신했습니다. 앞선 2시간 5분의 기록도 강성준의 기록입니다.”
던전 관리국에서는 공평한 기록 확인을 위해 헌터의 등급별로 기록을 따로 관리하고 있다. 동급의 헌터들끼리만 경쟁하는 것이다.
격투기에서 체급을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뭐라고? 그게 사실이야?”
태민은 깜짝 놀라서 용덕을 보며 질문했다.
“사실입니다.”
“D급 던전을 솔플로 2시간 안에 공략한다는 건 쉽지 않을 텐데… 그런데 잠깐만, 방금 강성준이라고 했어?”
“예.”
“강성준이라면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솔플로 던전을 돌았다는 그 ‘무한동력’이잖아?”
성준이 헌터닷컴에서 무한동력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때부터 중위권과 중상위권에 포진한 몇몇 길드는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하운드 길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무한동력은 회복계 헌터일 텐데… D급 던전을 이렇게 빨리 공략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하지만 던전 관리국에서 나온 확실한 정보입니다.”
용덕이 대답하자 태민은 바싹 마르는 목을 입술을 적시기 위해 차갑게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혹시 다음 솔플 일정이 잡혀 있어?”
“C급 던전 솔플 일정을 잡은 걸로 압니다. 지금이 오후 4시인데… 자정에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거의 쉬지도 않고 바로 다음 던전이라고? 정말로 무한동력인건가… 지치지도 않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던전 공략은 등급이 높아질수록 굉장한 피로를 동반하기 때문에 길게는 한 달까지 쉬는 헌터도 있다.
D급 던전이라고 해도 며칠은 쉬고 공략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겨우 8시간 쉬고 다음 공략이라니!
믿기 힘들었다.
“…챙겨…”
“네?”
“짐 챙기라고! 우리 길드가 상위권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라!”
“설마 강성준이 공략하는 던전 입구로 갈 생각이신가요? 아무리 빨라도 6시간 이상은 걸릴 텐데요…”
용덕은 두려움에 떨었다. 태민은 입 꼬리를 슬쩍 끌어 올렸다.
“오늘은 외근과 야근을 섞어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