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59
59
소드마스터 힐러님 059화
20장 고립(2)
잠시 후,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것은 단순한 착각이었음을 알아챘다. 성준은 안도했다. 그는 적들의 수를 파악하며 차분하게 뒤로 물러났다.
‘혹한 마법군주.’
S급 마물이다.
주변에 A급 마물들의 모습도 다수 보였고 또 다른 S급 마물인 ‘용암 대전사’와 ‘폭풍 군주’도 보였다.
‘차라리 보스방에 몸을 던지는 게 더 낫겠어.’
S급 마물의 수가 셋이나 되었고 A급 마물의 수도 너무 많았다. B급 마물도 20마리 이상 되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무리’가 아니라 ‘군대’에 가까웠다.
‘이길 수 없다.’
은주가 합류해도 이길 수 없다. 성준은 확신했다. 그는 은신 상태를 유지한 채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서 은주와 합류했다.
“어떻게 되었어요?”
은주는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성준을 보며 물었다. 좋은 소식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는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었기에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길 수 없습니다.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길이 있을까요?”
“갈림길이 있는 것부터 일반 던전과 다릅니다. 그리고 마물들도 우회한 게 분명해요. 다른 길이 있을 겁니다.”
성준은 긍정적으로 말했지만 그것은 아득한 바람에 불과했다.
“네, 같이 힘내요.”
은주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성준은 그녀의 부드러운 눈웃음 뒤에 숨어 있는 절망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었다.
던전에서의 고립, 그것은 S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일반 던전만 공략해 온 그녀에게 있어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감정이 전신을 지배했다.
그렇게 그들은 절망을 품은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벌써 자정입니다.”
온통 어두워서 시간 개념을 상실한 상태였지만 시계가 있어서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성준이 시간을 알리자 은주는 발걸음을 멈췄다.
“벌써 그렇게 되었어요?”
“네.”
은주의 물음에 성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덕분에 두 사람은 던전에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많이 친해져 있었다.
“근처에서 안전을 확보한 다음에 노숙하죠.”
“좋아요.”
성준의 제안에 은주도 찬성했다.
두 사람은 근처를 살핀 끝에 석실의 모서리에서 은박지 같은 모습의 담요를 펼쳤다. 생긴 건 특이하고 얇지만 보온 기능이 탁월한 담요였다.
“제가 먼저 불침번을 설게요.”
은주가 말했다.
던전 같은 곳에서 노숙을 하게 될 경우에는 마물들의 습격에 대비해 밤을 경계할 불침번이 필요했다.
“아뇨. 은주 씨가 먼저 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이 피곤하셨죠?”
성준이 보기에 오늘 은주는 많이 지쳐 보였다. 지금까지 보고된 적 없는 새로운 던전에서 끔찍한 일들을 겪었으니 지칠 법했다.
“고마워요.”
은주는 성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오늘 여러 일을 겪은 탓에 많이 지쳐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당장에라도 누워서 쉬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성준의 제안은 정말 고마웠다.
은주는 담요를 덮고 누웠다. 성준은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명등을 놓고 드론을 작동시켰다.
2대의 드론이 주변을 순찰하면서 어둠을 밝혔다.
-안전합니다.
리슈발트가 보고했다. 마력의 간섭이 여전했지만 석실 내부 정도는 홀로 살펴볼 수 있었다.
“수고했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리슈발트는 고개를 숙였다. 뒤에선 은주가 뒤척이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몸을 뒤척이던 그녀는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났다.
“성준 씨…… 잠이 오지 않아요.”
그녀는 성준에게 다가갔다.
던전 공략이 계속되면서 그녀의 체력은 고갈되었고 정신은 피폐해져 있었다. 그녀는 S급 헌터였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내성이 부족했다.
두렵다.
무섭다.
죽기 싫다.
혼재된 감정을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성준은 불안한 상태의 은주를 다독여 주었다. 그녀가 S급 헌터가 아니라 평범한 여자였다면 진작 미쳐 버렸을 것이다.
헌터라고 해도 지금까지 버틴 것이 대단했다.
끝없는 어둠과 예상하지 못한 강한 적들, 동료의 죽음과 며칠째 고립된 상황은 단련된 헌터조차 미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성준 씨…….”
극한까지 내몰리면서 강인한 모습은 사라지고 의존적인 내면이 고개를 들었다. 성준은 가까이 다가온 은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내가 옆에 있는 한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차분하면서도 강한 확신이 담겨 있는 힘 있는 목소리는 불안해하는 은주를 진정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성준의 모습에서 불안함 감정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제가 못난 꼴을 보였네요.”
은주는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배시시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 모습을 보며 성준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웃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계속 웃으세요.”
“노력해 볼게요.”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계속 웃으라는 것은 힘든 요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은주는 기뻤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성준의 다정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주는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도움이 안 돼.’
은주의 멘탈이 붕괴될 경우 전투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성준은 귀찮지만 그녀의 멘탈을 케어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은주 씨.”
“네?”
“취미가 뭐예요?”
정말 뜬금없지만 던전에서 정신이 무너진 사람들을 케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부의 이야기를 꺼내서 관심을 잠깐이나마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취, 취미요? 풉…….”
갑자기 취미를 묻는 성준의 의도가 뻔해 보였을까? 그녀는 대답 대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규 공략팀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던전에서 정신이 손상된 헌터를 케어하는 방법에 대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그녀는 바로 사과했다.
“미안하면 대답이나 해주시겠습니까?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성준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것을 보는 리슈발트는 신난 표정이었다. 전생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기 때문에 즐거웠다.
전투가 시작되거나 누군가 시비를 걸 때면 전생의 모습이 강하게 나왔지만 평소에는 그렇지 않았다.
“제 취미는 영화 감상이랑 쇼핑이에요.”
20대 여자다운 평범한 취미였다. 쇼핑 같은 경우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여성 헌터들이 많이 가지는 취미 중에 하나였다.
“성준 씨는 취미가 뭐예요?”
이번에는 은주가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딱히 취미가 없습니다.”
“그게 뭐야, 재미없어요.”
은주는 귀엽게 눈을 흘겼다. 짧은 대화였지만 은주는 활기를 되찾았다. 긴장이 풀리자 잠이 오는 것인지 그녀는 성준의 옆에 담요를 깔고 누웠다.
“성준 씨, 여기서 나가게 되면 같이 영화 보러 가요.”
“그거 사망 플래그 아닙니까?”
“저는 그런 거 안 믿어요.”
성준의 농담에 은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린 반드시 살아서 나갈 거니까요.”
“물론입니다.”
성준은 미소를 지었다.
‘기운을 차린 것 같아서 다행이야.’
은주가 전투 중에 발목을 잡는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인지 그녀는 쉽게 잠에 들지 못했고 두 사람은 오전이 될 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오전 8시.
두 사람은 공략을 진행하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30분 정도 앞장서서 분주히 나아가던 성준은 전방에서 다수의 기척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마물인가요?”
은주의 물음에 성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회는 힘들 것 같네요. 싸워야 합니다.”
성준은 검을 뽑아 들었다. 마물들이 눈치챌 수도 있기 때문에 오러를 시전하지는 않았다. 그는 전방을 주시하며 참격을 사용하기 위한 최적의 자세를 취했다.
“제가 참격으로 대형을 망가뜨리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제가 돌격할게요.”
“저도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계획이 세워졌다. 성준이 참격을 위해 검에 오러를 부여하자 전방에서도 마력의 유동을 느낀 마물들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준은 이미 참격의 준비를 끝낸 뒤였다.
“슬래시!”
시동어를 내뱉으며 크게 검을 휘둘렀다. 전방을 향해 직선으로 쏘아지는 참격을 뒤따라 은주가 백색의 오러가 빛나는 대검을 들고 달려갔다.
참격에 당한 화염 광전사들이 쓰러지면서 마물 무리의 진형이 엉망이 되었다. 화염 광전사들의 몸을 자르고 지나간 오러 참격은 후방에 위치한 얼음 저격수들까지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켰다.
“하앗!”
은주가 기합과 함께 대검을 휘둘렀다. 진형을 회복하려고 움직이던 마물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고속 이동술을 사용해 빠르게 거리를 좁힌 성준이 합류하자 이십이 넘던 마물 무리는 순식간에 전멸했다.
“보스방인 것 같네요.”
은주가 말했다.
마물 무리를 쓰러뜨리고 전진하자 눈앞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그 너머에 보스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둘이서 가능할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습니다.”
성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차하면 동조율을 극한까지 끌어 올릴 생각이었다.
“든든하네요.”
은주도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힘차게 문을 열자 2대의 조명 드론이 전방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보스가…… 없는 걸까요?”
은주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의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고 계시잖습니까? A급 마물이 마구 쏟아지는 던전입니다. 관리국은 A급 던전으로 규정지었지만 사실상 S급 던전으로 봐야 합니다.”
성준은 리모컨으로 드론을 조작해서 주변을 순찰하게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영 살객이 보스일까요?”
“아니요. 무영 살객은 S급 상위 개체로 분류되지만 전투 능력은 하위 수준입니다. 순전히 은신 능력이 전부인 마물이 S급 던전의 보스로 출현할 리가 없습니다.”
성준의 시선이 천장을 훑었다. 어디선가 희미한 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선명하지 않아서 쉽게 추적할 수 없었다.
긴장감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성준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마도 보스로 등장한다면…… 정령 군주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정령 군주는 S급 마물 중에서도 일반 개체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모든 속성을 다루기 때문에 전투력은 상위 개체와 맞먹을 정도였다.
“정령 군주라면 은신 능력도 있겠네요?”
“물론입니다. 암흑 속성도 다루니까요.”
“기척은 잡을 수 있겠어요?”
은주가 물었지만 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힘드네요.”
기척을 잡아내기 힘들었다. 그는 잠깐의 고민 끝에 한 가지 결심을 하고 입을 열었다.
“은주 씨, 은신을 사용하세요. 제가 미끼가 되겠습니다.”
“성준 씨…….”
“제가 더 기척을 잘 읽으니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죄송해요…….”
“괜찮으니까, 어서요.”
성준의 재촉에 은주는 은신 아이템을 사용해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준은 기척을 잡아낼 수 있었다.
“제기랄!”
그리고 동시에 그는 욕설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