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78
78
소드마스터 힐러님 078화
26장 S급 던전(2)
은주는 낯선 공간에서 깨어났다.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정신을 차리는 것과 동시에 느껴지는 두통에 그녀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헌터라도 과음의 숙취를 피해갈 수 없었다.
강한 정신력으로 숙취를 몰아낸 그녀는 주변을 살폈다. 넓은 객실의 침실에 있었고 옆에는 누군가 누워 있었다.
이불이 전신을 가리고 있어서 누군지 알 수는 없었다.
“서, 성준 씨……?”
마지막 기억을 더듬은 은주는 성준이라고 예상하고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성준 씨?”
다시 한 번 그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벗겨보았다. 그곳에는 성준이 아닌, 설아가 잠들어 있었다.
은주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 * *
두 사람을 호텔에 던져두고 나온 성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타고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아쉽지 않으십니까?
리슈발트가 물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성준은 그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관음 당하는 취미는 없어서.”
리슈발트는 언제나 그의 곁을 따라다닌다. 도움이 되는 충직한 부하지만 가끔은 불편할 때도 있었다.
-저를 다른 곳으로 정찰 보내면 되지 않았겠습니까?
성준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명쾌한 해답이었다.
“헛수고하게 하는 건 안 되지.”
-감사합니다, 주군.
다음 날, 은주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S급 헌터 랭킹 10위인 백하연의 정규 공략팀 ‘로열크로스’와의 연습 일정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호텔에서 있었던 일은 기억이 안 나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언급이 없었다.
성준은 후자라고 생각했다.
“공략 연습이라…….”
성준은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높은 난이도의 던전을 2개 이상의 정규 공략팀이 연합해서 공략할 땐 호흡을 맞춰보기 위해 연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략 연습은 처음 해보기 때문에 성준은 현장에서 당황하지 않기 위해 헌터닷컴에서 정보를 검색했다.
‘생각보다 별거 없네……?’
헌터닷컴에는 많은 정보가 있었다. 성준은 긴장했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헌터닷컴을 끄고 의자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강성준 씨, 덕분에 좋은 밤 보냈어요. 고마워요.]설아였다.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메시지였다. 성준이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이 없자 그녀는 메시지를 하나 더 보내왔다.
[조만간에 ‘공식적으로’ 한 번 더 찾아갈게요. 할아버지의 압박이 심해져서 말이에요.] [던전 공략 일정이 하나 잡혀 있습니다. 끝나면 연락을 드리죠.] [기다릴게요.]대화가 끝났다. 성준은 일찍 휴식을 취했다.
곧 은주, 그리고 하연과 만나기로 한 날이 찾아왔다.
연습이 있기 전에 성준과 은주, 그리고 하연이 먼저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었다.
약속 장소는 아이언 수련장 근처의 카페였다. 시간이 다가오자 성준은 차를 몰고 아이언으로 향했다.
‘없네.’
주차를 끝낸 뒤 카페로 들어가 안을 살폈지만 은주와 하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마시면서 두 사람을 기다렸다.
5분이 지나기 전에 두 사람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성준을 먼저 발견한 은주는 잠깐이지만 얼굴을 붉혔다. 다행히 성준이 보기 전에 수습할 수 있었다.
“서, 성준 씨……!”
은주는 성준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하연도 그녀를 뒤따라 다가왔다. 긴 머리를 붉게 물들인 그녀는 성준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반가워요. 강성준 씨, 저는 백하연이라고 해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반가워하는 목소리에서 호의가 섞여 있었다. 두 사람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가지고 와서 성준의 앞에 앉았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차규태를 죽여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하연이 말했다. 성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원한이라도 있었습니까?”
“네. 저 말고도 성준 씨를 보면 고마워할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그녀는 대답과 함께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세한 사정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원한이 깊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차규태의 행실을 보면서 원한을 가진 사람이 한둘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차규태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은’ 말할 수는 없지만 하연이가 성준 씨한테 많이 고마워하고 있어요.”
은주가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노리고 한 일은 아니었다. 성준은 쑥스러운 것인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은주와 하연도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하연이 회의를 리드했다. 파티의 편성과 던전에서 주로 사용될 진형 같은 것을 의논했다. 회의 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짧게 느껴졌다.
회의가 끝나고 세 사람은 수련장의 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다른 파티원들과 함께 모이기로 했었다.
“다들 모여 있었네요?”
은주가 자신의 팀원들을 보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하연도 미소를 지으며 ‘로열크로스’의 팀원들과 합류했다.
S급 던전 공략을 위해 모인 파티원의 수는 성준과 은주, 그리고 하연을 포함해서 15명이었다. 마법계와 보조계가 각각 1명씩, 그리고 회복계가 성준을 포함해서 2명이었으며 전투계가 11명이었다.
“강성준 씨, 반갑습니다. 저는 ‘로열크로스’의 부팀장을 맡고 있는 이기훈이라고 합니다.”
푸른 로브를 입고 둥근 안경을 쓴 남자가 성준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스스로를 정규 공략팀의 부팀장이라고 소개한 그는 임페리얼 길드의 간부이기도 했다.
“저도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를 했다. 은주와 하연은 성준에게 각자의 정규 공략팀에 소속된 팀원들을 소개해 주었다.
“대형 가상 전투 시스템실을 예약해 두었습니다. 올라가시죠.”
아이언 수련장에는 파티 단위의 수련을 위한 시설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기훈 씨 빼고 우선 1명씩 전투력 점검 좀 하고 들어갈게요!”
은주가 말했다. 마법계 헌터인 기훈은 기술적인 문제 탓에 가상 전투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를 제외한 다른 파티원들은 한 명씩 들어가서 가상의 마물과 전투를 펼쳤다. 다른 파티원들은 관전 모드를 켜고 차례를 기다리면서 안의 상황을 살폈다.
“이제 강성준 씨 차례예요.”
하연이 말했다.
마침내 성준의 차례가 온 것이었다. 그는 가상 전투 시스템 수련실의 관전 모드를 켜고 안으로 들어갔다.
출현할 적은 밖에서 랜덤 설정해 둔 상태였다. 수련용 검을 집어 들자 A급 인간형 마물인 정령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환.”
푸른 로브를 입고 후드를 깊게 눌러쓴 정령사는 등장과 동시에 스태프를 흔들어 불꽃 수호병 4기를 소환했다.
붉은 화염이 깃든 검과 방패를 든 불꽃 수호병 4기는 성준을 보며 새빨간 안광을 빛냈다.
‘여전히 진짜 같네.’
성준은 짧게 감탄했다.
정령사는 시간을 끌수록 상대하기 까다로워지는 마물이었다. 시간을 끌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성준은 지체 없이 정령사를 향해 쇄도했다.
첫 번째 소환 이후 캐스팅 중인지 그는 곧바로 두 번째 정령들을 소환하지 못했다.
“하앗!”
불꽃 수호병들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성준이 짧은 기합과 함께 수련용 검을 휘둘렀다. 가상의 오러가 불꽃 수호병의 방패와 함께 상체를 절단했다.
남은 불꽃 수호병들도 허무하게 쓰러졌다.
“헉……!”
후드 아래로 드러난 정령사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성준은 이렇게 디테일한 모습까지 구현하는 가상 전투 시스템의 기술력에 감탄했다.
“소…… 커헉!”
찰나의 순간, 정령사는 캐스팅을 끝내고 소환을 외치려 했지만 성준의 내찌른 수련용 검이 그의 흉부를 먼저 꿰뚫었다.
소환사는 검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내며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소멸했다. 그가 토해낸 피가 옷에 묻었지만 소멸과 함께 옷에 묻었던 피도 깔끔하게 사라졌다.
“대단합니다!”
“A급 마물이 이렇게 빨리 사냥당하는 모습은 처음 봐요!”
성준이 수련실을 나오자 밖에서 수련실 내부와 연결된 모니터를 통해 관전하고 있던 파티원들이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차규태를 죽인 게 운은 아니었군요.”
하연이 말했다. 그녀는 보조계 헌터였지만 S급 헌터였다. 방금 전, 짧은 관전이었지만 성준의 실력이 결코 A급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건 은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A급 최상위야…….’
성준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것은 미스터리투성이였다.
“이제 협동 연습을 시작할게요.”
하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파티원들이 대형 수련실에 들어가 연습을 시작했다.
‘디케’와 ‘로열크로스’는 가끔씩 던전 공략을 함께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았다.
성준은 디케와는 호흡을 맞춰보았지만 로열크로스와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풍부한 실전 경험은 처음부터 그들과 같은 소속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주었다.
“강성준 씨, 정말 대단했어요. 처음부터 저희랑 같이 다닌 것 같았어요.”
수련이 끝나고 회식 자리에서 ‘로열크로스’의 팀원이 말했다.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놀랄 정도로 성준의 적응력과 센스는 뛰어났다.
성준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 * *
회식이 끝나고 며칠 뒤, 그들은 S급 던전 입구에 모였다.
합동 공략팀의 지휘는 총 셋이 맡았다.
전방 지휘는 은주가 맡았고 중앙 지휘는 하연이 맡았다. 마지막으로 후방의 지휘와 안전은 성준이 책임지게 되었다.
“다들 너무 긴장하지 마요.”
은주가 부드럽게 다독였지만 무거운 침묵은 여전했다. 파티원 중 S급 던전을 ‘공식적’으로 경험해 본 헌터는 은주와 하연이 유일했다.
비공식적인 S급 던전 공략까지 합하면 성준도 포함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가 적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긴장할 뿐 두려움에 떨지는 않았다. 모두 던전 공략 경험이 풍부한 헌터들이었으니까.
“던전에 진입하겠습니다!”
던전 입구가 열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다른 던전과 달리 지하에는 넓은 공동 대신에 하나의 게이트가 있었다.
“필드형 던전인 것 같네요. 게이트에 오르면 필드로 이동할 거예요.”
공략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던전도 다양한 모습으로 그들을 반겼다. 다른 필드로 이동하는 던전 또한 흔하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했다.
다들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게이트에 올라갔다. 그리고 강력한 ‘힐’이 발현된 것처럼 찬란한 백색의 섬광이 그들을 덮쳤다.
눈을 떴을 땐 넓은 평원의 한가운데였다.
“팀장님!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군가 물었다.
“마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에 보스가 있으니까 그곳으로 가면 돼요.”
은주가 대답했다. 다행히 그녀와 하연은 필드형 S급 던전의 공략 경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