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42)
제 1042화
249화. 명왕족의 첫 출격(9)
반이 말을 끝낸 직후 루크는 순식간에 그녀와 거리를 좁혔다.
뇌기에 물든 시퍼런 대검이 천천히 반의 머리로 떨어지고 있었다. 감각과 인지를 초월한 둔검, 그 칼날에 반과 루크 사이의 공간이 베어졌다.
일그러진 공간 속으로 몸을 피할 수는 없다. 그 공간에 닿는 순간 내부를 가득 채운 검기가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반은 아무렇지 않게 일그러진 공간 속으로 가볍게 보법을 밟았다.
루크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지금껏 그가 상대해온 적들은,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반처럼 무너진 공간에 정면으로 들어선 적이 없었다.
아이란 구출전 때 진 역시 그랬다. 진도 둔검에 무너진 공간을 자신의 검으로 상쇄하는 식으로 대응했었다.
“꼴에 창성이라고…… 웃기지도 않는군.”
쿠드드득-!
반이 보법을 밟자, 일그러진 공간들은 그녀의 속도에 맞춰서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발산하는 척력을 이기지 못해 밀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반은 순수하게 힘으로 루크의 둔검과 공간 붕괴를 파훼하고 있었다. 루크로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파훼였다.
“한 번만 경고해주지. 루크, 오늘은 네가 싸울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이따위 잡스러운 기술이 아니라 온몸으로, 전력으로 내게 맞서라. 네가 가진 의지 중, 무엇 하나라도 내게 관철해보라는 뜻이다.”
둔검에 무너진 공간이 루크의 앞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깨진 공간들 때문에 그의 얼굴이 흐려졌다.
루크는 그 중심으로 재차 일격을 내리꽂았다. 이번엔 둔검이 아니라 극히 빠르고 파괴적인 일격이었다.
그 일격에 무너진 공간들이 본래 모습을 찾았다.
그는 경악스러운 마음을 간신히 감추고 있었다. 반이 자신보다 강하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으나, 근소한 차이에 불과할 줄 알았다.
‘라프라로사 해방 전쟁의 여파로 상당한 부상에 빠졌고, 심지어 여기 오기 전엔 니르간드를 잡았을 터…… 그런데도 믿을 수 없이 강하구나, 킨젤로의 조각이 현현한 그 순간이 떠오를 만큼.’
먼 옛날 청년이었던 시절, 강적을 마주했을 때 불태우곤 하던 투쟁심이 다시금 그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수많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버린 그 투쟁심이.
그러나 반의 눈엔 그조차 가소롭게 보일 뿐이었다.
“아, 썩은 망령에겐 너무 어려운 주문이었나?”
시그문드가 일섬을 그었다.
좌에서 우, 칼날을 타고 떨어진 뇌기가 전장 중심에 날카로운 푸른 선을 그었고, 뒤따라 성소 전체를 뒤흔드는 풍압이 퍼졌다.
루크도 똑같이 검기를 퍼뜨리며 반과 다시 거리를 좁혔다. 그러나 그녀의 뇌기는 돌파하면 돌파할수록 더 강력하게 옥죄어왔고, 거리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다.
환상을 좇는 것 같았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건 오로지 검과 뇌기뿐인데도 속임수로 가득한 미로를 헤매는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를 쓰는 기분은 오랜만일 테지, 루크. 그러니 진정한 의미의 투쟁을 저버린 것이야. 거대한 존재의 힘을 빌리는 건, 근본적으로 아주 편한 일이다.”
핏-!
격돌 중인 뇌기에서 빠져나온 한 줄기 광파가 반의 뺨을 스쳤다.
“힘을 빌리기만 할 뿐이라면 편한 일이 맞겠지. 그러나 나는 그를 부활시키기 위해 싸워왔다. 긴 세월, 한 번도 꿈을 잊지 않은 채.”
“꿈이라…….”
반이 흘러내린 피를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간직하는 건 살아 있는 사람에게나 허용되는 일이다. 너처럼 이미 옛적에 죽어 썩어 문드러졌어야 할 놈이 계속 꿈이니 뭐니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세상이 천 년 전보다도 어지러운 것이지.”
“너의 이야기이기도 하지 않던가? 투신 반, 너 또한 반만년 전 이미 사라졌어야 했으니.”
“나와 형제들은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퇴장할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루크의 검이 먼저 반에게 닿은 건 별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루크는 반의 뺨을 벤 순간 더 깨닫고 있었다. 자신과 반 사이에 놓인 어마어마한 격차를 말이다.
도저히 ‘같은 창성’이라 할 수 없었다. 방금 루크는 싸움을 난전으로 이끌고자 억지로 균형을 깨뜨렸었다.
전투가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격차가 흐려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반은 단지 뺨을 옅게 베이는 정도로 그의 노림수를 원천봉쇄한 것이다.
전투는, 명백히 정돈되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검은 언제나 있어야 할 곳에 위치했고, 보법은 늘 예정된 공간을 향했으며, 격돌은 정해진 순간에만 이루어졌다.
반이 그렇게 싸우길 원하는 까닭이었다.
아무리 타락했다고 한들 루크가 창성인 건 사실이니, 반으로서는 변수를 억제하며 싸우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적의 움직임을 강제하고, 그걸 위해 때때로 작은 상처를 내어준다.
그게 지금 반이 루크를 상대하는 방식이었다. 창성이라는 경지를 떠나, 순수하게 훨씬 더 높은 무학을 이룬 입장에서만 행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루크의 등 뒤로 날개처럼 푸른 검들이 솟구쳤다. 명왕검 투신기, 뇌신검이었다.
태양신교의 제1사원은 여전히 루크가 보호하는 영역만이 불길에 휩싸이는 걸 피하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그 영역은 당연히 좁아졌고, 이제는 성소 중앙의 태양신 성상과 그 근처 일부만이 멀쩡한 상태였다.
루크는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는 듯 결연한 얼굴이지만, 당연하게도 반은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루크, 투신에 올라 뇌신검을 정립한 인물.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아무도 그 검을 사용하지 않는다. 낡았기 때문이지.”
뇌신검의 칼날들이 미친 듯이 반에게 몰아치고 있었다.
그 속도를 쫓지 못하는 이들에겐 그저 수십 갈래의 빛이 번쩍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으로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반은 뇌신검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두 걸음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손쉽게 뇌신검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꿈을 잊지 않았다는 네 말은 거짓이다. 정말 그랬다면 지금 네 검은, 내가 젊은 시절 네가 이룩한 위업을 공부하며 익힌 것과 그 형태가 달랐어야 해. 흐름을 멈춘 물은 반드시 썩듯이, 너의 검 또한 그러하다.”
시그문드가 허공을 찔렀다.
그러나 허공처럼 보인 그 공간은 뇌신검의 핵이라 할 수 있었고, 루크의 대검은 단번에 갈피를 잃었다.
물론 그렇다고 루크의 무위 그 자체가 낮아진 건 아니나, 그로서는 오의가 단순한 찌르기에 무너진 셈이었다.
그리고 지금 반이 뇌신검을 무너뜨린 방법을, 루크는 알지 못했다. 생전에도, 태양신교의 대사제가 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네 오의의 치명적인 약점을 모두 제거한 검, 그게 명왕군림검이다. 진 형제를 통해 이미 한 번 경험했을 테지.”
반의 눈동자가 푸르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명왕검 투신기 제10검
명왕군림검 – 개
“내가 다시 보여주마, 영광으로 알도록.”
바람이 무거워진다.
뇌기를 머금은 푸른 광풍이 순식간에 성소를, 바깥에서 불타고 있는 제1사원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이게…… 뇌신검을 진화시킨 결과라고?’
닮았다.
지금 루크의 앞에서 시작된 명왕군림검은, 분명 뇌신검을 닮아 있었다. 뇌기가 전개되는 과정, 검이 움직이는 방향, 사용자가 공간을 장악하는 방식까지, 전부.
지하세계에서 진을 상대할 때는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가 펼친 명왕군림검은 뇌신검과 닮은 점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진과 반이 펼친 검은 같다. 그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잠시 루크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창성이라 한들, 결국 검이란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고, 검술은 상대를 죽이는 방법일 뿐이다. 너는 태양신의 힘으로 부활하였음에도 그 방법을 발전시키지 않았고, 자신이 창성이라는 사실에만, 투쟁심을 잃지 않았다는 허상에만 얽매여 있었다.”
그 많은 시간을 갖고도 한 가지 검술조차 진보시키지 못한 자가, 세상을 완성하겠다고?
뒷말을 이은 반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다 제쳐두고, 결국 나를 쓰러뜨린다면 네 말은 진실이 될 테지. 꺾어봐라, 이 검을.”
루크가 포효를 내지르며 반에게 쇄도했다.
어느새 그는 새로이 뇌신검을 형성해 온몸에 갑옷처럼 푸른 칼날을 둘렀고, 새하얗게 빛나는 대검은 일검에 하늘을 가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창성에 다다른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듯이.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뜻대로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두 다리가 분명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반은 멀었고, 칼날을 떠나 앞으로 쏘아진 검기는 반에게 닿기 전, 어디쯤에선가 갑자기 사라졌다.
명왕군림검은 약점이 없다.
적어도 루크의 인식으로는 그랬다. 반이 아니라 명왕군림검을 우선 무너뜨리고자 황급히 주위를 살펴도, 도무지 약점을 찾을 수 없었다.
“함께 세상을 달리던 너의 형제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루크.”
그 말이 칼처럼 루크의 광심장을 찔렀다.
프즛, 크적!
어디선가 떨어진 한 줄기 벼락이 성상을 내리찍었다. 내내 흠집 하나 없이 보호되던 성상은 그대로 부서진 돌덩이가 되었고, 루크는 그 모습을 돌아볼 수 없었다.
반이 어느새 그와 거리를 좁힌 까닭이었다. 루크는 침착하게 보법을 밟으려 했지만, 이미 반의 검은 그의 어깨를 찌르고 있었다.
한 덩이 살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살점 대신 광심장의 파편이 바닥을 굴렀을 터.
루크는 침착하게 대검을 휘둘렀으나 이미 그 자리엔 반이 없었다.
또 한 번 시그문드가 루크의 가슴팍을 긁었다. 명왕군림검의 푸른 안개 속에서, 반은 마치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루크는 그녀의 속도를 쫓을 수도, 예측할 수도 없었다.
“그들이 있었다면 지금 네 눈에 이 검은 덜 완벽하게 보였을 것이다. 너는 그들이 있을 때, 가장 강했을 것이다. 너는 태양신이 아니라…… 그들을 선택했어야 한다.”
명왕군림검의 뇌기는 점점 더 밝아졌고, 루크의 시야는 계속 어두워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