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43)
제 1043화
249화. 명왕족의 첫 출격(10)
쩌엉-!
채찍처럼 휘둘러진 시그문드가 루크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루크는 가까스로 검을 세워 막았으나, 무너진 성상의 잔해 속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울컥! 루크는 목구멍으로 차오른 뜨거운 핏물을 뱉어내며 황급히 시야를 돌렸다. 급할 필요 없다는 듯 천천히 다가오는 반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싸우기 전부터 확신했다. 반의 기준에서 루크는 ‘그저 그런 적’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창성이라고 하나 그 의지는 오래전 뒤틀렸고, 투신이었다고 하나 그 검은 구시대적이다. 반에게 지금의 루크는 투왕 형제들이나 연합의 초인들보다도 오히려 쉬운 상대였다.
“자신이, 명왕족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가…… 누굴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루크가 반을 노려보며 말했다.
“사지에 몰리니 궁색한 소리까지 지껄이는 것이냐, 갈수록 최악이로군. 루크, 나는 솔직히 너를 죽이기 전 내가 무엇 하나라도 인정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기를 바라고 있다. 너를 믿은 선조들을 조금이라도 덜 우습게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지.”
진심이었다. 그러나 루크는 반의 기대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이어갔다.
“반, 우리 명왕족은 근본적으로 태양신의 축복을 받은 종족이다.”
“그래서?”
“애초에 우린 태양신 킨젤로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네가 가진 그 힘이…… 과연 온전히 너만의 노력으로 이룩한 것이라 생각하는가?”
반은 대답보다 먼저 한 차례 더 벼락을 떨궜다. 성상의 잔해가 튀며 진한 돌먼지가 번졌다. 루크는 이어진 벼락을 쳐낸 후 자세를 가다듬었다.
“너는 명왕족 중에서도 가장 많은 축복을 받았다. 네 후계인 진 룬칸델 또한 마찬가지지……. 오늘 내가 쓰러진다고 한들, 결국 너흰 태양신이 남긴 축복과 의지를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 말에 반은 한동안 눈동자를 끔뻑이며 루크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허리를 꺾을 정도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걸작이군, 걸작이야.”
루크는 무방비하게 웃는 반을 보고도 함부로 공격을 시도하지 못했다. 보는 것과 달리 빈틈이 전혀 없었다.
“배경, 혹은 환경이 결국 모든 걸 지배한다…… 말하자면 네 말뜻은 이것이겠지, 루크. 우리 명왕족이 다른 생물에 비해 특별히 강한 전투력을 타고나는 건 사실이다. 태양신의 축복 때문이라는 가설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지.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
루크는 대답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했다. 언제든 시그문드가 날아들면 받아칠 수 있도록.
“태양신이 아니어도, 어차피 이 세상 모든 것은 날 때부터 자신만의 배경을 부여받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삶의 불공평함을 딛고 일어서고, 누군가는 운 좋게 부유하고 강하게 태어났는데도 세상을 원망하지. 결국 중요한 건 자기 삶을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일 뿐.”
이제 반은 루크에게 무엇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그저 광기에 빠진 벌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태양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든, 우린 그 노리개가 될 생각이 없다. 우린 그에게 무엇을 바란 적이 없기 때문이지. 나는 인생에서 한 차례 큰 실패를 겪었고, 지금은 다시 일어서는 중이다. 네놈처럼 헛된 망상에 빠지는 대신에 말이야.”
“그렇다면 이렇게 묻지. 내게 태양신이 있다면, 네게는 진 룬칸델이 있다. 결국 너도 너만의 의지로는 극복할 수 없던 일들을, 진 룬칸델의 도움을 받아 이룩하고 있는 것 아닌가.”
“너무 허접해서 안타까울 지경인 궤변이로군. 그래도 답을 해주자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과, 허황된 존재에게 의지하는 게 어떻게 같겠더냐? 근본적으로 다른 영역이다.”
대화는 끝났다.
반은 웃음기를 지운 채 차갑고 단단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루크는,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무녀가 제1사원이 습격당한 사실을 알아차렸을 테지만, 지원군을 보내는 건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태양신교의 무력은 루크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부활시킨 옛 영웅들은 반과 투왕들에 비할 수준이 아니었다.
‘남은 건 무녀가 교도들을 데리고 무사히 숨기를 기도하는 것뿐인가…….’
빛처럼 빠르게.
시그문드가 루크의 이마 위로 떨어졌다. 루크는 이번엔 완벽하게 반응하고 대검을 올려칠 수 있었다.
“커헉……!”
그러나 검이 격돌한 순간 루크는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핏물을 쏟았다. 그리고 그의 뒤로, 성소를 넘어 제1사원을 이루는 아공간 전체에 광대한 검흔이 남고 있었다.
명왕군림검을 응축한 일격.
창성에 올라본 루크조차 가늠하지 못한 파괴력이, 칼날이라는 작은 사물과 한 번의 종베기로 압축되어 있었다.
알아도 피할 수 없고, 막아도 온전할 수 없다. 설령 창성이라 할지라도.
압박감에 한쪽 무릎이 꺾이고 있었다. 루크는 힘을 쥐어짜느라 부들부들 떠는 몸으로 겨우 시그문드를 멈춰 세웠다.
아공간을 양단할 기세로 뻗어나간 뇌기가 끊임없이 충격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루크의 등 뒤엔 벌써 멀쩡한 모습으로 남은 사물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간조차 일그러져 수백 개의 기묘한 소용돌이로 변했고, 그 속으로 제1사원의 잔해가 쉴 새 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허억, 큭!”
반면 검을 쥔 반의 두 손은 미동조차 없다. 지그시, 루크를 압도할 뿐이었다.
이어 반이 한 번 더 시그문드를 내리쳤다. 루크는 그 틈에 다시 일어서서 검을 올려 쳤다가, 격돌하자마자 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무릎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악다문 입속에선 어금니가 부러졌고, 머릿속에선 뇌가 이리저리 튀고 부딪치는 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시야가 꺼졌다 돌아오기를 빠르게 반복했다. 루크는 어떻게든 정신을 집중해 반의 움직임을 읽으려 했는데, 그녀는 여전히 급하지 않았다.
루크의 시야가 흐려진 틈에 공격을 시도하지도 않았고, 자세가 무너진 걸 이용하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넌 명왕족의 수치다.”
콰아앙-!
세 번째 일격이 루크의 대검 위로 떨어졌다. 무릎은 이미 다 박살 났고, 허리뼈도 곧 주저앉을 것 같았다.
육신을 초월한 의지, 죽음을 넘어선 투지.
그때야 루크는 깨달아가고 있었다. 자신은 그런 것을 너무 오래전에 잊어버렸다고. 그렇기에 부서진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그는 평소와 같이 싸울 수 없다.
한계에 갇힌 것이다. 태양신교로서의 신앙이라는 한계에. 그러니 그가 먼 과거에 창성에 올랐던 사실은, 그 순간부터 무의미한 이야기였다.
계속해서 시그문드가 내리치고 있었다.
이미 전투는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력에 더 가까웠다. 검을 휘두르는 반의 건조한 얼굴은, 그녀를 사람이 아니라 무자비한 형벌 그 자체로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허, 아직 숨이 붙어 있는데, 검을 놓쳐?”
스물여섯 번째 종베기를 끝낸 후, 반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씨잇, 씻, 쉭, 루크는 쇳소리처럼 거북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겨우 살아만 있을 뿐, 얼굴은 알아볼 수도 없었다. 아까 어깨를 베인 팔은 떨어져서 어디론가 사라졌고, 다리는 무릎 위로만 남아 있었다.
광심장은 깨진 수박처럼 으스러졌고, 균열 사이로 그가 전투 전에 품은 태양신의 성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방금 대검을 땅에 떨어뜨린 것이다.
“키, 킨젤로가…… 너를 찾을…… 것이…….”
“그래, 마지막까지 태양신을 찾아서 다행이로구나. 이 순간에 갑자기 네놈이 저버린 형제들을 찾았다면, 나는 역겨워서 오늘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명왕군림검의 뇌기가 반의 광심장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반은 잠시 그 기운을 가다듬은 후, 마지막으로 검을 들었다.
그러곤 곧바로 루크의 광심장을 찔렀다. 균열을 비집고 들어간 칼날이 한 차례 거칠게 회전했고, 루크는 그대로 최후를 맞이했다.
광심장에서 흘러나오던 태양기가 서서히 허공으로 뭉치는 모습이 이어졌다. 반은 불쾌한 마음에 그 기운을 베어버리려다 검을 멈췄다.
태양기가 무엇을 하려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만일 아공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려 한다면, 그곳은 태양신교의 또 다른 본거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고생하셨습니다, 투신 형제.”
투왕들이 반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실망하고 있었다. 반이 승리한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옛 투신이었다는 자가 제대로 반격 한번 못하고 죽은 건 어이가 없었다.
“흠, 이 정도면 여기 있는 투왕들보다 약한 수준 아닙니까?”
“그렇다. 무위 그 자체는 루크가 더 뛰어날 테지만, 형제들 중 누가 싸웠어도 결국엔 이자를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한계에 가두고 있었으니…… 돌아가거든 모든 형제들에게 이 초라한 최후를 잊어선 안 된다고 전하라.”
“알겠습니다.”
반은 어느새 구체 형태로 변한 태양기와 아까 살려둔 사제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제들은 여전히 킨젤로를 찾고 있었다.
반은 그중 한 명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는 옆에 세 놈과 달리 망자가 아니더군. 그리고 네게선 피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예…… 나는, 아니, 저, 저는.”
“지금부터 우리가 태양신교의 다른 본거지로 갈 수 있는 길을 말하면, 네게는 기회를 주겠다. 사이비를 벗어나 제대로 된 삶을 살 기회를.”
“이 썩은 세상에 우리에게 보상이 될 건 아무것도 없…… 컥.”
다른 사제가 대신 소리쳤으나, 카이오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그의 턱을 돌렸다. 그는 얼굴이 반쯤 뒤틀린 채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물론, 진 형제가 연설에서 말했듯 적법한 재판 절차가 따르긴 할 것이다. 네가 태양신교 교도가 된 후 무고한 자를 살해했거나 그에 준하는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충분히 새 시작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제님, 안 됩 억.”
“악.”
반이 망자로 분류한 나머지 두 사제도 똑같이 의식을 잃었다.
“어떻게 하겠나?”
남은 사제는 쓰러진 사제들과 반을 번갈아 쳐다보며 몸을 떨었다. 심지어 앞에는 루크의 처참한 주검까지 보이니, 그는 처음으로 신앙이 흔들리는 느낌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반의 입장에선 그냥 사제들을 발레리아에게 데려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사제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최…… 최대한, 제가 아는 선에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우, 우선 여기서 제2사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파괴되지만 않았다면…….”
반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라. 지금 바로 출발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