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9)
제 111화
35화. 콜론의 비극(9)
휘익.
뮤론의 지팡이가 맥없이 허공을 갈랐다. 단 한 점의 마력도 담겨 있지 않아, 그저 휘두르기만 한 것처럼 보였다.
‘끝난 건가……!?’
영기의 칼날에 베인 지옥문이 기괴한 마찰음을 일으키며 사그라지고 있었고, 진은 검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쓰러졌다.
털썩!
브라다만테가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진의 얼굴은 그야말로 피범벅이었으나, 치명적인 부상은 없었다.
“꼬마!”
“진 공자! 괜찮습니까!”
무라칸과 카시미르가 황급히 진에게 다가왔고, 테스는 푸른 불꽃을 거뒀다. 그러곤 걱정스러운 듯 진 쪽을 쳐다보다가 서서히 흐려지며 사라졌다.
진의 마력이 다해 소환이 해제된 것이다.
“뮤… 론은?”
“선 채로 타 죽었어. 훌륭했다, 꼬마.”
무라칸이 가리킨 곳엔 끝내 주문을 완성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뮤론이 있었다. 테스의 불길에 당해 죽은 것인데, 서 있는 것도 모자라 웃음을 흘리던 마지막 모습마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적들 중 가장 소름끼치는군. 마지막에 지팡이는 무의식적으로 휘두른 건가?’
뭔가 찝찝한 뒷맛이 남았으나, 그에 대해 당장 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혼이 나갈 것 같은 탈력감에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것조차 힘겨울 지경.
디노와 티카, 그리고 살아남은 원주민들도 하나둘씩 진 일행의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온몸을 덜덜 떨고, 간혹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 우뚝 선 채 석상처럼 굳어 있는 뮤론의 주검 때문이었다.
“으윽, 무라칸. 너는 괜찮냐, 카시미르 경은…….”
“너 빼고 다 괜찮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 네놈 몸속에서 지금 세 가지 힘이 아주 지랄이 났단 말이다. 제기랄, 이대로 역류가 가라앉지 않으면…….”
“나 죽어?”
“어, 죽어.”
“진짜?”
“아니, 가짜다. 이 기특한 놈! 네놈이라면 해낼 줄 알았다. 아무튼, 죽지는 않는데 지금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한 반년은 자리보전해야 돼. 야! 미물! 약 가져온 거 다 꺼내 봐.”
“여기 있습니다!”
카시미르가 재빨리 품속에서 미리 챙겨 온 약들을 꺼내 보였다.
전투를 대비해 귀한 약재를 꽤나 많이 챙겨 왔으나, 안타깝게도 지금 진에게 도움이 될 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망할, 누가 이런 쓸모없는 것만 챙기랬어? 일각수 뿔 가루는 왜 안 챙겼냐고? 네놈 창고에 영약 많잖아? 다른 거 더 없어? 하다못해 청적어 내단이라든가.”
“그 두 가지는 제 약재 창고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급속 치유가 가능한 약재 위주로 챙기라고 하셔서…….”
“허! 일 났군. 꼬마, 너 아무래도 반년은 요양해야…… 야, 야! 진! 정신 놓지 마, 인마!”
“저기.”
무라칸이 홱 고개를 돌렸다. 티카였다.
“뭐?”
“어쩌면 뮤론의 지하실에 약재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가 얼마 전 술에 취해 가문에서 일각수 몇 마리를 잡았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마법사의 연구실엔 보통 온갖 약을 조제하기 위한 물건이 가득하다. 특히 순혈 지플인 뮤론의 연구실인 만큼, 어쩌면 당장 필요한 약재가 있을지도 몰랐다.
“당장 안내해.”
“……저쪽, 죽은 제 동족들이 있는 곳입니다.”
무라칸이 쏜살같이 달려가 시체 더미를 치우기 시작했다. 곧 가려져 있던 몇 개의 서랍장이 보였고, 있는 힘껏 자물쇠를 뜯어내자.
“오.”
놀랍게도 상당한 크기의 일각수 뿔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라칸이 즉시 뿔을 잘게 부숴 진의 입으로 흘려 넣자, 진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크억!”
한가득 검은 피를 토해 내는 진.
일각수의 뿔은 지금처럼 마력 역류가 완전히 진행되기 전엔 최고의 특효약이었다.
섭취자의 마력이 7성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지만 말이다.
“아, 좀 살겠다. 영기랑 오러는 아직도 꼬여 있지만…… 일각수 뿔은 어디서 났어?”
무라칸이 뮤론의 연구실이라고 대답하려는 찰나, 티카가 왈칵 눈물을 쏟으며 진에게 넙죽 절을 올렸다.
“제 이름은 라티카 티카 마무티카, 신녀 대행으로서 콜론의 은인께 무한한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 은혜는 죽어서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러자 다른 원주민들도 티카를 따라 절을 올렸다. 그녀의 옆에 있던 기자 디노는 얼결에 그들을 따라 했고 말이다.
“아…… 일어나세요. 나는 라오사 신녀가 보내서 온 사람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진 룬칸델, 우리 콜론을 구원해 주신 분이시여. 그대가 아니었다면 우린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채 계속 저들에게 유린당했을 겁니다.”
남은 원주민은 티카를 포함해도 채 서른이 되질 않았다.
뮤론의 얼음덩어리에 맞아 죽은 이들이 스물쯤, 그리고 진 일행이 도착하기 전 지하실로 끌려가 실험체가 되어 죽은 이들이 백오십 이상.
참담했다.
절을 끝낸 원주민들은 지하실의 주검들을 붙잡은 채 꺽꺽 소리 없는 통곡을 쏟아 냈다.
“신녀께선…… 아마 당신께 우리를 ‘구원’해주라고 부탁하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예, 그렇긴 합니다만.”
이런 걸 구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
진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삼켰다.
“그건 우릴 다 살려서 데려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콜론의 신물을… 복원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뜻이었을 거예요.”
거울에 대한 이야기.
‘그걸 복원해야 한다고? 그렇다면 파손되었다는 뜻인가? 전생에서 들은 적 없는 얘기로군.’
진은 거울을 알고 있지만, 무라칸은 그렇지 않다.
“어이, 티카라고 했나? 너희들 신물이란 것. 대체 뭐냐? 아까 뮤론의 마력이 어마어마하게 증폭됐는데, 그게 신물을 직접 사용한 위력이 아니라 고작 시동어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었지.”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아마 뮤론의 마력엔 흐름이나 기운이 없는 것도 느끼셨을 테지요. 그 또한 신물의 위력입니다.”
“내가 사실 3000년을 넘게 산 용이거든, 근데 그런 물건이 있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어. 대체 뭐야? 너희가 모시는 신이 대체 누구냐?”
“클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십니다.”
“흠…… 모르는 이름이군. 일단 알겠으니, 그 신물을 챙겨서 돌아가자고. 근처에 범선을 대기시켜 놨어. 죽은 이들은 딱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으나, 무라칸은 원주민들에게 상당한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라도 저들이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면 그럴 것이다. 뮤론 같은 미친 작자가 아니라면.
“……그래야겠지요. 지금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이시여, 신물을 복원해 내는 건 지금부터 곧장 시작해도 내일 정오가 되어서야 끝이 날 겁니다.”
“뭐, 내일 정오? 왜 그렇게 오래 걸려?”
“의식을 치르고, 봉인된 땅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태양의 기운이 있어야 하고요. 죄송합니다, 은인들께 또 이런 부담을…….”
“진 공자, 무라칸 님. 정오까지 기다리는 건 무리입니다. 여긴 루테로 마법 연방이고, 우린 방금 순혈 지플을 죽였죠.”
카시미르가 아직까지도 서 있는 뮤론을 가리키며 말했다.
“라오사 양의 의뢰에 분명 신물 회수가 포함되어있긴 하지만, 정오까지 있다간 여기 있는 모두가 몰살당할 겁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원주민들과 디노를 제외하면 목격자가 없으니, 어쩌면 정오까지 무사히 버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이곳은 지플의 제한 구역인 만큼, 날이 밝아도 새로운 누군가가 찾아오진 않을 터.
“흐음, 언제나처럼 선택은 꼬마가 해. 어쩔 거냐? 신물을 위해 정오까지 기다릴 테냐, 아니면 생존자들 데리고 탈출할 테냐.”
티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를 포함한 콜론인들에겐, 목숨보다도 신물이 중요했다.
“티카 님. 이곳에 정기적으로 왕래하는 지플의 다른 단체가 있습니까? 아니면 뮤론의 수하라던가.”
잠시 고민하던 진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은 디노 말고 아무도 온 적이 없고요. 그 전엔 부하로 보이는 이들이 가끔 찾아왔는데, 뮤론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감시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겠군.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면… 정오까지 기다렸다가 신물을 챙겨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공자, 정말 괜찮겠습니까? 너무 위험한데요.”
“카시미르 경. 경께선 8성 마법사와 싸워 본 적이 있으시겠죠.”
“세 번쯤 되는군요.”
“경도 느끼셨겠지만, 뮤론은 9성에 가까운 마력을 운용했습니다. 심지어 흐름을 전혀 읽을 수 없기까지 했죠. 그러나 그건 신물을 제대로 사용한 것도 아니에요. 그게 만약 지플의 손에 들어가면…….”
답이 없었다.
진은 실제로 전생에서 거울을 얻은 지플이 어땠는지를 겪어 보았으니까.
‘하루에도 수십 명씩 7성 마법사를 만들어 냈다. 그저 마력만 7성인, 마법사라고 부르기도 뭣한 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후 세계는 그야말로 지플의 독주 체제였어.’
그런 의미에서 거울은 반드시 회수해야 했다.
놈들이 거울을 차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건, 진이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고 말이다.
“꼬마 말이 맞다, 미물. 저놈도 바보가 아니야. 당장 여길 뜨는 게 상책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지. 그러나 그 엄청난 물건을 지플이 거머쥐면? 감당 안 돼, 그거.”
“후우. 그건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리고 티카 님은 아마 제가 그냥 떠나자고 했어도 절대 가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티카가 뜨끔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클람의 의지를 수호하는 게 우리 콜론인들의 유일한 의미이자 의무입니다. 은인들께는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수백 년간 지플의 탄압에도 신물을 내놓지 않았던 거겠죠. 죄송할 것 없습니다, 우린 그저 대가를 받고 일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이제 티카 님도 어서 가 보십시오.”
진이 눈짓으로 지하실을 가리켰다. 슬퍼하고 애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티카가 젖은 눈으로 목례하며 뒤돌아섰다.
“저…….”
이번엔 디노가 진에게 다가왔다.
“기자 디노 재글런.”
“당신이 설마 진 룬칸델이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기사를 어떻게 써야 지플이 가장 불편해할지는 차차 같이 생각하도록 하지. 물론 지플의 만행을 고발한 문장들 속에, 나와 내 동료들의 이름은 빼줘야겠지?”
“……기자로서 명예를 걸고, 여러분의 이름은 절대 적지 않겠습니다. 제 친구들을 구한 사람들을 배신할 만큼 쓰레기는 아닙니다.”
“네 말대로 그렇게 보여, 디노. 일단 난 좀 생각할 게 있으니까, 너는 네 일을 해라. 정오까지 확실한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수집해. 지플이 나중에 발뺌하지 못하도록.”
“예.”
디노가 사라지자 진의 시선이 닿은 곳은 뮤론의 주검이었다.
‘지팡이…… 마지막에 놈이 지팡이를 휘두른 게, 정말 그냥 무의식적인 반응일 뿐이었을까?’
고민을 시작한 진의 동공이, 점차 커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