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22)
제 1122화
258화. 전 차원의 포식자(12)
-오르갈, 마녀가 대답을 해주었나?
-[젠장, 아니. 마족 삼인방을 통해 네 말을 전달하긴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마녀를 만날 수 없는 모양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심연의 거주자들인 그들도. 아마 이번 말루기아와 켈리악의 전투에서 무언가 영향을 받은 것 같군.]
얼마 전 진과 오르갈이 나눈 대화.
당시 진은 오르갈에게 마녀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때 오르갈은 마족 삼인방으로부터 단지 불가하다는 답변만 들었으나, 진실은 마신석과 관련이 있었다.
헬루람은 그때부터 완성된 마신석이 이곳 677차원에 ‘멀쩡한 상태’로 도착하지 못하도록 준비를 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하늘에 열려 있는 마신대의 차원문들, 그 너머로 복잡하게 이어진 차원의 통로들.
켈리악은 이미 앞서 말루기아와 크라고스가 그 길들을 훼손하고 전장에 나타난 것을 겪었다.
그런데 헬루람은 이제 마신석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온전하지 않으리라는 말까지 하고 있었다.
헬루람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고, 심연의 혼돈을 온 전장과 아공간으로 전개하며 켈리악과 정면으로 힘겨루기를 한 건 그를 위한 마지막 한 수였다.
[나를 들여다보느라 신경을 쓸 수 없었을 테지. 그러나 이제는 늦었다. 네 마신석엔 이미 나의 피와 살이 묻었어. 더는 네가 알던 모습이 아니게 되었다.]헬루람과 켈리악의 전투가 일으킨 여파는 전장만 일그러뜨리지 않았다. 차원문 너머, 마신석이 오는 길과 그 본체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켈리악이 그 현상을 염두에 두지 못한 건 다름이 아니었다.
그는 전 차원을 정복하며 수백 명의 창성을 짓밟았고, 그보다 많은 신들을 복종시켰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학살했으나, 그중 헬루람에 필적하는 권능을 지닌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헬루람은 역사 조작에 의해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한이 있어도, 단 한 번도 그와의 정면 승부에 응하지 않았다.
두 존재가 격돌한 건 지금이 처음이고, 켈리악은 한 번도 마신석을 이용해 이와 똑같은 상황을 계산한 적이 없다. 지금처럼 바멀 연합과 전투를 하다 완성된 마신석을 소환하고, 말루기아가 난입하고, 헬루람의 진신마저 나타나는 일은 가정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여파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켈리악은 알지 못했다.
자신과 헬루람이 전력으로 붙으면, 간섭 제한조차 뛰어넘어 차원 통로 안에 존재하는 마신석도 충분히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제 네가 그 거대한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은, 오롯이 너의 손에만 달려 있구나.]울컥!
켈리악의 입에서 핏덩이가 쏟아졌다. 크란텔에 갈라진 머리뼈가 아직도 허옇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내 그는 쪼개진 머리뼈 사이로 흘러내린 무언가를 손으로 집어 다시 머릿속으로 넣으며 헬루람을 올려다보았다.
“나를 아주 증오하는군, 마녀…… 너와 말루기아가 이렇게까지 내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완성된 마신석은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간섭 제한을 뚫고 넘어올 수 있는 마신석은, 오직 헬루람이 건드린 그 물건뿐이었다.
제국에서 말루기아가 마신대의 본진을 치지 않았다면 켈리악은 하나, 어쩌면 두 개까지도 다시 소환을 시도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제 마신대엔 그만한 여력이 없었다.
[많은 고아들이 그러하듯, 너 또한 오해하고 있구나. 내가 고아를 증오할 이유는 없지. 너라고 다르지 않다. 단지 나는 내 근간을 지키고자 너를 보러 왔을 뿐.]“그래, 너는 저기 포칼이나 말루기아, 태양신의 자아들. 그 시답잖은 부모들이 있어서 좋겠군. 푸흐흐…… 한 놈은 마신석이 도착하는 시간을 늦추고, 한 놈은 그 마신석을 훼손하고. 그리고 또 한 놈은 애초에…… 내가 이곳을 직접 찾아오게 만들었다라.”
켈리악이 고개를 돌렸다.
677차원을 직접 찾아가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만든 장본인, 진을 보기 위해서였다. 진은 여전히 발레리아와 엔야의 앞에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야 네 표정이 이해가 되는군, 진 룬칸델. 그 절박한 눈동자가. 보아라, 진. 나는 세상에 다시없을 권력을 거머쥐었고, 너는 그렇게 약한데도 기어이 나를 막아내며 쉴 새 없이 기적을 갱신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둘 다 시간을 조금 읽을 수 있는 불멸자들에게 농락을 당하는 신세로구나.”
헬루람과 말루기아, 그들이 지금 켈리악을 몰아붙일 수 있는 건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
켈리악이 성급하게 677차원을 찾은 것, 바멀 연합이 마신대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저력을 보여준 것, 시론과 반을 비롯한 창성들이 켈리악조차 충격을 받을 만큼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 것 등…….
그러나 가장 크게 작용하는 건, 헬루람과 말루기아가 그런 사건들 사이사이에 숨은 온갖 미래를 읽어낸 것이었다.
그 둘이 미래를 읽지 못했다면 켈리악은 결코 지금만큼 심각한 위기에 처하지 않았을 터였다. 미리 마신대의 본진을 치지도, 최적의 시기에 마신석을 훼손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
“사실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미지근했다, 시간이란 걸 꼭 정복해야 하는 것인지 체감이 되질 않으니. 이곳을 제외한 차원은, 모조리 숨만 불어도 흩어지는 민들레 씨앗처럼 나약한 세계였지. 그래서인지 돌아보면 이만한 힘을 얻는 게 그리 괴롭지도 않았던 것 같군.”
켈리악의 눈동자에 생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이미 두어 차례 죽음을 겪었음에도.
“내가 쓰러지든, 네가 쓰러지든. 그때 시간보다 위대한 저 빌어먹을 불멸자들은 어둠, 혹은 파멸이라는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려 움직이겠지. 그렇게 되면 너도, 나도 결국 틀렸다는 게 증명되는 것이야.”
우리, 그런 결말만은 만들지 말자고.
켈리악이 그렇게 말하자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물처럼 출렁이던 전장도 일순 본래의 형태를 되찾았고, 미친 듯이 몰아치던 강들도 차분히 잦아들었다.
바보처럼 그의 이야기를 듣느라 싸움을 멈춘 게 아니다. 창성들도, 불멸자들도 켈리악이 말하는 내내 그를 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없었을 뿐이다.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해진 상태임에도, 켈리악은 갑자기 더 거대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이내 그는 주먹으로 제 가슴을 쾅쾅 두들기고는, 진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불멸자들의 시시한 질서 따윈 아무래도 좋다. 너와 나, 결국 누가 옳았는지만 판가름을 내면 된다. 나는! 방법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세상이 나를 부정하면, 그럴수록 나는 더 잔인하고 악독하게 모든 것을 이 손아귀로 움켜쥘 것이다. 그것들이 마침내 내 눈에 흡족해질 때까지 이 두 손으로 흔들고 뭉개고 빚을 것이다. 그리하다 끝내 허무해지더라도, 오늘 승리한 기쁨을 떠올리면 나는 웃을 것이다.”
광기를 넘어선 무언가가 켈리악의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그 눈을 본 이들은, 순간적으로 그로부터 진의 모습을 보았다. ‘결코’ 쓰러지지 않고 꺾이지 않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이었다.
진도 인식할 정도였다. 지금 켈리악은 마치 자신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미치겠군…… 네놈들 모두, 1초라도 빨리 이 세상에서 꺼져라. 내가 기억하는 세상은, 이렇지 않았다. 모든 걸 바로잡으면, 나도 떠날 것이다. 너 같은 괴물이 되기 전에, 너희 같은 끔찍한 불멸자가 되기 전에.”
이제 네 시간.
네 시간을 버티면 저주가 해제된다. 진은 썩고 굳어 움직이지 않는 왼팔을 의식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말루기아였다.
그녀가 켈리악을 향해 손을 뻗자 그의 주위로 수십 개의 거대한 황금빛 입방체가 형성되었다. 이내 입방체가 우레처럼 켈리악을 내리쳤으나, 이미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어느새 그는 하늘 위, 헬루람의 뒤에 서서 그녀의 목을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다. 보호막처럼 퍼진 어둠과 혼기가 켈리악을 밀어내려 했지만 이미 이빨이 들어오고 있었다.
크득! 사람의 살을 씹는 것과 다르지 않은 소리가 났다. 켈리악은 입안에 들어찬 살점을 뱉어내며 한 번 더 그녀를 물어뜯었다.
비명이나 신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방에 퍼진 어둠이 잠시 흐려지고 있었다. 켈리악을 속이며 마신석을 더럽히느라 그녀 또한 많은 권능을 소모한 상태였다.
푸욱, 푹! 어둠이 가시로 변해 머리와 척추, 심장을 찌르기 시작할 때쯤 켈리악은 다시 헬루람과 거리를 벌렸다. 그사이 창성들과 아락시온, 크라고스의 검이 켈리악을 휩쓸었고, 그들을 피해 달아나듯 지상으로 떨어진 그는 몸의 5할 정도를 잃은 모습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누더기를 뭉쳐둔 듯한 모습, 뒤틀린 얼굴에선 흘러내린 눈알이 덜렁거리고 재생은 더디다. 가장 먼저 다시 거리를 좁힌 시론과 반의 일격이 남은 몸을 마저 찢으면,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론과 반은 충분히 공격권을 확보했음에도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화염옥이……!’
멸살화염옥, 어둠이 가리고 있던 마법의 최종장이 다시금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헬루람의 어둠을 찢고 나와 찬란한 광휘를 일으키고 있었다.
심지어 아까보다도 더 강렬하게 타올랐다. 시론과 반마저 그 열기에 짓눌려 움직임이 둔해졌고, 헬루람조차 빛을 피해 그로부터 가장 먼 어둠으로 다시 몸을 감추고 있었다.
아무도 열기를 거슬러 켈리악을 칠 수 없었다. 그사이 켈리악은 육신을 재구성하며 숨을 골랐다.
“크후욱, 훅……!”
그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되찾자마자 멸살화염옥의 열기는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켈리악은 당분간 자신에게 남은 최대의 공격 수단을 마녀로부터 되찾기 위해 도박수를 던졌던 것이다.
헬루람은 멸살화염옥을 다시 가릴 수 없다. 그건 파멸의 태양기를 증폭시킨 말루기아와 아락시온도 마찬가지고, 전장의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켈리악에게 대적하는 이들은, 또 멸살화염옥이라는 태양을 등진 채 싸울 수밖에 없었다.
“마신석이 없어도 나는 켈리악 지플이다. 전 차원에서 가장 강한 존재다. 한데 헬루람, 너는 마신석이 훼손되었다고 말했을 뿐, 그게 도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더군. 후후, 달라졌다면 달라진 대로 맞춰서 쓰는 맛도 있을 테지.”
이내 켈리악의 시선이 라프라로사에 닿았다.
그는 여전히, 진이 솔더렛의 유산으로 들어서는 걸 가장 경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