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23)
제 1123화
258화. 전 차원의 포식자(13)
하늘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켈리악 지플, 그는 마치 한 번도 지친 적 없다는 듯 마력을 과시했다. 아직 헬루람이 펼친 어둠이 전장 전체에 남아 있으나, 그것만으로 멸살화염옥의 열기를 다 상쇄할 수는 없었다.
키이이익-!
쇠를 긁는 듯 날카로운 굉음이 울렸다. 화염옥의 중앙부가 눈처럼 뜨이더니 그 속에서 한 자루 창이 삐져나오며 시작된 소리였다.
막을 새도 없이, 창은 라프라로사의 상부 장갑을 향해 떨어졌다.
그 순간 말루기아가 라프라로사의 동력을 지키고 있는 벨티안의 태양기를 증폭시키지 않았다면, 단지 장갑이 뜯어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쿠드드, 드드드득……!
간신히 일격을 견뎌낸 상부 장갑이 삭은 껍질처럼 지상으로 쏟아졌다. 충격파만으로도 지상 사방에 거대한 구덩이들이 피어났고, 정신을 잃거나 죽은 이들은 힘없이 그 속으로 추락했다.
여전히 켈리악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았다.
라프라로사만 무너뜨리면 마신대가 몰살되는 것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그는 공격 경로에 있는 자신의 부하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함대는 물론이고, 창성과 자신이 소환한 불사조와 신들까지도.
[으윽……! 작업실은, 비궁주는 어떻습니까!?]“다행히 비궁주의 봉인에 피해가 있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충격이 또 전해지면, 그때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메리스와 로키아의 작업실, 그리고 그곳을 지키기 위해 펼쳐진 탈라리스의 대봉인.
행여 충격에 대봉인이 깨지면, 연합에겐 정말로 기회가 한 번밖에 남지 않는다. 더는 충격으로부터 아메리스와 로키아를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이 없으니, 그때부터는 매 순간 저주 해제에 실패할 수 있는 상태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제야 정말로 싸우는 기분이 나는구나. 매 순간 죽음이 눈앞에 일렁이고, 살갗엔 소름이 돋아.”
벌어진 화염옥 사이로 벌써 다음 창이 나타나고 있었다. 끔찍한 쇳소리 사이사이, 켈리악의 광기에 찬 웃음소리가 묻어났다.
“시론!”
반이었다. 그녀와 시론은 이미 창을 저지하고자 하늘로 도약하며 검기를 뿌리고 있었다.
헬루람에겐 아직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대신 말루기아와 헤일린,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린 크라고스도 함께 화염옥을 견제하러 몸을 날리는 모습.
시론과 반의 검기가 먼저 화염옥의 한가운데를 찔렀다. 일순 거대한 창끝이 우그러지는 모습이 보였고, 곧바로 태양신의 자아들이 쏜 태양기가 사슬처럼 세 갈래로 퍼져 화염옥을 묶는 모습이 이어졌다.
화염옥은 단지 켈리악의 마력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그의 육신과 진기, 그 일부가 통째로 녹아 있는 병기였다.
그렇기에 켈리악은 화염옥이 타격될 때마다 찐득한 핏덩이를 토하며 허리를 꺾었다. 그러나 당장 숨이 끊어져야 할 것처럼 발작을 일으키면서도, 켈리악은 끝까지 라프라로사를 노려보았다.
“크흐흐, 이런 식으론 막을 수 없어. 저것만 무너지면, 너희도 차례대로 한 줌 흙이 되는 것이다.”
충격에 잠시 형체를 잃었을 뿐, 창은 기어이 화염옥을 비집으며 빠져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전보다 더 강하고 단단한 기운이 느껴졌다. 방금 화염옥을 친 오러와 뇌기, 태양기 일부를 흡수한 까닭이었다.
선택해야 했다.
격전지에서 싸우는 창성들이 아니라, 르엣의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제자리에서 창을 한 번 더 받아낼 것인지, 피할 것인지. 상황이 너무 급박하니 진의 의견을 듣는 건 불가능했다.
피하면 창은 당연히 지상으로 떨어진다. 라프라로사의 보호를 받고 있던 아군들에게. 그들 대부분은 저 거대한 힘 앞에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질 터였다.
[……회피 기동 시작, 가능한 모든 수를 써서 공격을 피하도록 하세요.]르엣은 바로 결단을 내렸다. 이미 한 차례 같은 고민을 한 바, 그때도 그녀는 움직이기로 결정했었다. 단지 헬루람이 나타난 덕에 한순간 숨을 돌릴 수 있었을 뿐.
방금 전 켈리악이 수세에 몰린 걸 직접 두 눈으로 보았으니, 그녀 또한 가능하다면 최대한 아군을 지키며 버티고 싶었다.
그러나 격전지의 전투가 아군의 승리로 끝나리라는 보장이 없다. 켈리악은 언제든 쓰러질 것 같지만, 그건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는 전투가 시작된 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르엣은 뒷말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라프라로사가 급격히 상승하자, 창은 그 아래에 펼쳐진 대지를 찔렀다.
‘아……!’
하마터면 진은 그 순간 뒤를 돌아볼 뻔했다.
죽음.
너무나 많은 죽음.
결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한 명이라도 적을 더 저지하고자 찾아온 그 수많은 연합원들.
그들 중 5할 정도가 켈리악의 창에 파묻혀 한순간에 한 줌 재로 변하고 있었다. 그 수많은 죽음이, 그들이 마지막에 지은 표정이, 그 눈빛이 마치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인 듯 진의 내면으로 엄습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면의 고통에 짓눌려 잠시라도 허점을 보이면, 켈리악의 마수는 그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다행히 진의 검은, 계속 앞을 향해 겨눠지고 있었다.
켈리악은 그 모습이 대견하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군. 뭐, 너희가 죽인 마신대의 숫자에 비하면 정말 적기는 하다만,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게 이토록 기쁜 것도 오랜만이군.”
지상에 있던 이들이 전부 죽은 건 아니다.
무라칸, 그리고 연합의 초인들이 어떻게든 라프라로사가 빠진 자리를 채우고자 악을 쓴 덕분이었다.
[얼음공주, 괜찮냐!]“이 상황에서도 그런 이름을, 어서 모두 흩어지라고 소리쳐, 무라칸. 언제 또 갑자기 저게 떨어질지 모르니까…….”
시리스가 피거품을 뱉어내며 말했다. 그녀의 옆에 있던 루시는 온몸에 주먹만 한 구멍이 다섯이나 뚫렸으나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명왕족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아군을 지키느라 희생한 대가였다.
“린파 경!”
메리였다.
그녀는 창이 떨어진 순간 보호막을 두르지 못했다. 이미 마신대의 창성 한 사람에게 압박을 당하고 있던 탓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린파가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메리를 지키느라 몸에 커다란 구멍이 여럿 뚫렸으나, 루시처럼 회복할 수는 없었다.
“어째서 나를, 린파 경이 나보다 강하잖아……!”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메리.”
린파는 메리의 얼굴을 한 차례 쓰다듬어주고는, 가슴에서 덜걱거리는 자신의 광심장을 떼어내 그녀에게 건넸다.
“형제의, 형제는, 형제.”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 린파는 최대한 빠르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자 여러 번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광심장을 떼어준 후에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린, 가슴으로, 산다.”
린파의 눈이 감겼다. 메리는 그녀를 한 번 꽉 끌어안은 후,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혼자 떠나지 않았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해,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화염옥이 다음 창을 내뱉고 있으나 메리는 쓰러진 이들을 일으켜세우고, 죽은 이들을 눈에 담으며 움직였다.
그렇게 죽은 동료들을 지나치면, 어째서인지 그 자리엔 금빛 기운이 남았다. 진이 가진 재생의 권능이었다.
메리에게만 그런 현상이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구든 죽은 이들을 가슴에 담으면, 그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금빛 기운이 피어올랐다.
공명.
재생의 권능이 연합 모두와 공명하고 있었다. 진이 싸움을 위해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죽음을, 동료들이 대신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창이 떨어진 후, 가장 많은 연합원들을 살리고 있는 건 엘티엇이었다. 그는 여전히 조화의 힘으로 전장을 지휘했고, 그를 따라 진혼곡처럼 슬픈 소리가 나는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모두가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싸움을 위해 극한의 감각을 유지하려는 격전지의 창성들을 제외하면, 연합의 모두가 엘티엇의 바람에 맞춰 아직 꺼지지 않은 생명과 어쩔 수 없는 죽음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아가씨!?”
그 가운데 서 있던 헤도는, 별안간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뒤를 돌아보았다. 산드라 지플, 평생을 목숨보다 소중히 모셔온 아가씨가 서 있었다. 그녀는 헤도조차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험합니다, 왜 라프라로사를 빠져나오신 겁니까!?”
“헤도, 생각해보니 난 불사에 가까워. 우리 자기의 사람들을 구해야겠어.”
“안 됩니다, 아가씨의 특성도 켈리악의 마력에는.”
“시끄러워. 나는 약해서 진 씨를 직접 도울 수도 없는데, 이렇게 죽어가는 그이의 사람들까지 그냥 계속 두고 보라고? 여기서 제일 안전한 라프라로사 안에 앉아서? 가자, 어서.”
헤도는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산드라는 이미 화염옥의 열기 때문에 물처럼 끓고 있는 땅을 뛰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마력으론 잠시도 상쇄할 수 없는 열기였다. 이미 헤도의 근처로 오는 동안에도 열댓 번은 발목이 녹았다가 재생된 상태였다.
“사, 살려줘…….”
겨우 살아남아 목숨을 구걸하는 적들도 많았다. 그들은 여느 전장의 평범한 병사들처럼 집에 가고 싶다거나, 가족을 보고 싶다는 소리를 하며 앓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구할 수 없었다. 마신대의 창성들은 이미 자리를 피해 숨을 고르는 중이고, 그들을 지휘하는 론도는 나머지 창성과 신들을 데리고 사냥개처럼 라프라로사에게 들러붙으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서로를 끌어안고 가려는 자들과, 어떻게든 끝까지 물어뜯으려는 자들이 열기를 피해 전장을 방황하는 사이.
화염옥은 쉴 새 없이 창을 내뱉었고, 어느새 일곱 번째 창이 라프라로사를 조준하고 있었다.
창을 꺼내는 속도가 조금씩 더뎌지고 있기는 했다. 다만 창성들과 태양신의 자아들 또한 그만큼 저지력이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차원문 너머, 복잡하게 얽힌 차원 통로에서는 검게 물든 마신석이 전장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걸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전장에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