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3)
제 111화
36화. 각자의 지원군들(4)
“저자는……!”
“비, 비궁주! 비궁주 탈라리스 엔도르마!?”
7마탑의 특급 이상 마법사 중에 비궁주의 얼굴을 모르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창 무라칸에게 마법을 쏟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미도르 역시 탈라리스가 타고 있는 흰 두꺼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
‘해냈군요, 카시미르 경!’
진은 탈라리스를 보자마자 하마터면 긴장을 풀고 쓰러질 뻔했다. 역류 때문에 이미 몸은 한계에 다다랐고, 간신히 서 있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법사들이 난사를 멈춘 사이 무라칸이 재빠르게 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저 두꺼비가 2초만 늦게 왔어도 네놈은 다신 날 못 볼 뻔했다. 크크, 꼬마. 양서류가 이렇게 예뻐 보이긴 처음이지? 눈두꺼비 모트, 이 시대에도 저걸 부리는 인간이 있었군.”
환수, 눈두꺼비 모트.
그것은 마법사들이 타고 온 적룡보다도 거대한 몸집을 지녔고, 존재해 온 세월을 과시하듯 턱에 울창한 흰 수염이 가득했다.
오직 ‘만빙’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다룰 수 있는 신비로운 환수, 모트가 보옹보옹 울음소릴 내자 탈라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번에 오긴 꽤 먼 거리였지. 다시 찾을 때까지 들어가서 쉬고 있어, 귀염둥이.”
쏘옥!
놀랍게도 탈라리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트의 거대한 몸집이 새하얀 차원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내 차원문이 닫히자, 사뿐히 지상에 착지한 탈라리스와 시리스가 주위를 살폈다.
“어디 보자…… 내 딸한테 비궁설화를 받은 녀석이. 아, 저기 있군.”
탈라리스가 키득대며 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른이나 되는 특급 마법사와 여섯 마리의 적룡은, 잔뜩 긴장한 채 시선을 떼지 못했다. 특히 탈라리스의 악명을 모르는 적룡들마저 본능만으로 덤비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순간에 전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탈라리스가 등장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은 의식을 행하고 있는 원주민들뿐.
저벅, 저벅.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아무렇지도 않게 미도르를 지나쳐 진에게 다가선 탈라리스. 그녀가 지나치는 순간, 미도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굴욕감을 느꼈으나 차마 그녀의 뒤를 노릴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인지하기도 전에 목이 날아갔을 터.
“어머, 상태가 말이 아니네. 내 목소리는 들리니?”
“들립니다, 탈라리스 경.”
“그래? 그럼 널 도와주기에 앞서 한 가지만 먼저 물어보자. 내 307번째 남자친구를 죽인 범인이 정말로 너야?”
“예?”
“알카로 첸더러 말이야.”
진이 생도 시절 마미트에 임무를 나가 죽인 첸더러 백작가 약쟁이의 이름.
느닷없는 이야기에 진은 고통조차 잊고 헛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리스 역시 민망함에 고개를 저었으나, 한편으론 진이 걱정되는 듯 미간을 좁혔다.
“아, 그건.”
“탓하려고 한 말은 아니야. 그 약쟁이는 어차피 치울 예정이었거든. 대신 다음에 다른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주렴. 네 옆에 있는 잘생긴 오빠라던가.”
진과 시리스가 황당한 마음을 억누르는 와중, 무라칸은 어깨를 으쓱하고 있었다.
“훗, 잘생긴 오빠라, 보는 눈이 있군. 등장 시기도 꽤나 적절하고 말이야.”
“그렇다면 오빠는 나랑 조만간 차든 술이든 한잔하도록 하지. 아무튼, 딸아. 넌 네 애인이나 간호해 주면서 놀고 있어. 난 저것들 좀 물리고 올 테니.”
“애인이 아니라니…… 하, 됐어요. 다녀오십시오, 어머니.”
“그래, 그래. 아, 그리고 말이야. 넌 내 딸아이한테 꼭 감사하는 게 좋을 거다. 시리스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 자리에 올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야.”
촤아아악!
탈라리스가 뒤돌아섬과 동시에 별안간 땅에서부터 얼음벽이 치솟아 진 일행을 감쌌다. 진을 보호하기 위해 ‘만빙’을 다루는 능력을 부려 결계를 친 것이다.
손짓 한 번으로 친 것이지만, 무라칸조차 감탄을 연발할 만큼 강력한 결계였다. 또한 탈라리스는 원주민들이 있는 쪽에도 같은 결계를 쳐 주었다.
‘살았다.’
그때서야 긴장이 풀린 진의 두 다리가 휘청거렸다. 반사적으로 진의 어깨를 붙잡아 주는 시리스.
“……오랜만이군, 진 룬칸델. 다시 만나는 날엔 당연히 검을 겨루리라 생각했는데, 이런 식일 줄은 예상치 못했어.”
“시리스 님, 고맙습니다. 큰 빚을 졌군요.”
“고마워할 거 없어, 내가 꺾기 전에 네가 다른 누군가에게 당하는 게 싫었을 뿐이니까.”
“으윽.”
진이 신음을 내뱉으며 뮬타의 룬을 해제하자 투구 안에 고여 있던 핏물이 한가득 바닥으로 쏟아졌다.
‘세상에, 이런 상태로 방금까지 서 있었단 말이야? 이렇게까지 탁해진 피는 본 적도 없어!’
피 속에 영기와 마력, 오러가 뒤섞여 시커먼 빛이 흘렀다. 시리스가 빠르게 약병을 꺼내며 진을 무릎에 눕혔다.
“죄송합.”
“더 말하지 마.”
시리스가 차분히 진의 입속으로 영약을 흘려 넣기 시작하자 무라칸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보기 좋은데. 둘만의 시간에 내가 괜히 방해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어디론가 좀 비켜줄까?”
무라칸은 여러모로 굉장히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방금까지 진과 이별할 걸 각오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이토록 좋아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흥, 당신은 내가 지금까지 본 용 중에서 가장 방정맞군.”
“어? 내가 용인 걸 어떻게 알았냐?”
“어머니는 용이 아닌 남자에게 결코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난 지금 기분이 썩 좋지 않으니, 더 깐죽거리지 않았으면 하는데.”
“흐흐, 알겠다. 그럼 나도 좀 쉬어야겠으니, 꼬마를 잘 부탁한다.”
펑!
그렇게 말한 무라칸이 고양이로 변신해 진 옆에 자리를 잡고 눕자, 시리스가 헛숨을 삼켰다.
‘설마 룬칸델의 연회에서 본 고양이가 이 용이었단 말이야!?’
연회장에서 진과 대결한 후, 떠날 때까지 틈날 때마다 ‘나비 룬칸델’을 안고 쓰다듬고 귀여워해 준 나날이 떠오르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진 룬칸델.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그러나 무릎에 닿는 진의 젖은 머리카락이 왜인지 썩 싫지 않은 시리스였다.
한편 결계 바깥의 마법사들은 미도르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궁주가 난입했으니 그냥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지플의 명예를 걸고 맞설 것인가.
냉정히 생각하면 전자가 현명한 선택이었다. 후자는 승리 가능성이 한없이 바닥에 수렴하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미도르는 후자를 택했다.
‘상대가 비궁주라 할지라도, 형님의 원수들을 눈앞에서 놓칠 순 없다.’
또한 미도르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다.
‘7마탑만으론 비궁주를 상대하는 게 무리겠지만…… 조금만 버티면, 다른 마탑에서도 지원이 올 터!’
콜론으로 오기 전, 미도르는 다른 마탑에도 뮤론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전파했다.
-현 시간부로 7마탑의 모든 마법사들을 소집해 콜론으로 향하겠습니다. 원로님들께서는 본가와 다른 마탑에 속히 연락해 주십시오.
-굳이 다른 마탑까지? 일을 너무 크게 벌이는 것 아니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이 새벽에 갑작스러운 호출이라니…….
미도르의 예감은 정확히 적중한 셈이었다. 뮤론이 죽은 것도 모자라, 비궁주까지 연루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본가와 다른 마탑에서 제대로 된 지원군을 보내준다면.
승산이 있었다. 상대는 시론 룬칸델이 아니라 탈라리스 엔도르마니까.
‘또한 내게는 가주께서 내려주신 권능이 있다. 어쩌면 공간 폭발만으로도 비궁주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 적어도, 지원이 올 때까지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판단을 끝낸 미도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탈라리스와 눈을 맞췄다.
“비궁주. 나는 7마탑의 부탑주, 미도르 엘너라고 하오. 서해의 패자께서 무슨 연유로 지플의 일을 방해하시는지 여쭈고 싶소만.”
미도르가 말을 끝맺자 마법사들이 전투 대열을 짰다. 여섯 적룡 역시 언제든 브레스를 쏠 수 있도록 숨결을 모으는 모습.
탈라리스가 가소로운 듯 코웃음을 쳤다.
“일? 나도 오랜만에 일하는 중이야. 그런 의미에서 일을 방해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너희들이지. 주제를 알고 조용히 물러나면 눈감아 주도록 하마.”
“비궁주의 무위가 엄청나다는 것은 세상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나, 비궁이 우리 지플을 상대로 협박을 할 수는 없소. 저들은 가주의 여섯째 아들이자, 7마탑의 탑주를 살해한 이들이오. 그러니 물러나시오, 비궁주.”
“오호, 꽤 강단이 있는 애기네.”
“지플 전체가 비궁을 명백히 적으로 규정하는 건 비궁주께서도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오. 또한 이곳은 루테로 마법 연방. 우리 지플의 땅이오.”
“하지만 매력은 없어. 우리 가문이 얼마나 대단하네, 내 땅에선 내가 제일 잘 나가네 소리치는 강아지들이 다 그렇듯 말이야. 하긴, 똥개도 자기 동네에선 호랑이처럼 구는 법이지.”
그러자 미도르의 뒤편에 있던 원로들이 눈을 부릅떴다.
“비궁주! 말씀이 지나치……!”
“닫아, 그 입.”
탈라리스는 그저 욱해서 소리친 원로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우윽!”
단지 그뿐이건만, 돌연 원로가 땅에 철퍼덕 주저앉으며 숨이 막히는 듯, 제 목을 부여잡기 시작했다.
살의.
원로가 쓰러진 것은, 탈라리스의 살의를 정면으로 받았기 때문. 10성 기사의 ‘의지’란 그 자체로 무기나 다름이 없었다.
“3원로!”
“결계를 쳐라!”
급히 마법사들이 마력을 연환해서 결계를 형성했고, 동시에 적룡들이 일제히 붉은 숨결을 토했다.
화아아악-!
그러나 용의 숨결이 이토록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탈라리스가 손짓만으로 여섯 적룡의 숨결을 쳐 내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파창! 숨결은 그녀의 손에 닿자마자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되어 산산이 부서졌고, 마법사들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한 번만 더 숨결을 토하면 거기 못생긴 도마뱀들은 모트의 한 끼 식사가 될 줄 알렴. 자, 이만하면 격차는 명백히 보여 준 것 같은데. 계속할 테냐?”
지플의 마법사들에게 그건 마지막 기회였다.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조용히 떠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러나 미도르는 그 기회를 붙잡을 마음이 없었다.
“우리가 그대를 상대하다 모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내 세상에서 먼저 지워질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대의 이름과 비궁의 전설일 것이오, 비궁주!”
퍼엉!
각오를 다진 미도르가 탈라리스의 목덜미를 노리고 공간 폭발을 사용한 순간.
탈라리스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폭발이 시작된 찰나의 순간에 정확히 반응해 얼음 결정으로 막아내긴 했지만, 그녀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허, 이건 켈리악 지플의… 힘인데 말이야. 뭐야,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