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36)
제 111화
45화. 큰 그림(2)
키다드 홀의 거처는 번화가에서 한참 떨어진 숲속에 외따로 위치해 있었다.
그럴싸한 벽돌집은 내부까지 가정집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지하에는 온갖 마법 연구 시설이 구비된 대마법사의 은신처.
이곳에 키다드가 타인의 방문을 허용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거실 탁자에 진을 앉혀둔 채 키다드가 찻잎을 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히스터라니! 게다가 마력을 전승받기까지 했다면, 이 아이는 분명 완전마력체의 소유자다……!’
두근두근, 찻주전자를 쥔 키다드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반면 진은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차분히 그를 기다렸다.
히스터.
1400~1500년경 한때나마 마법으로서 지플을 위협한 희대의 마법 가문.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끝내 지플에게 패배해 역사 속에서 지워져버린 그 이름. 이제는 관련 서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찬란했던 그들의 마법은 완전히 명맥이 끊겨버렸지만.
키다드는 그 이름과 그들이 이룩했던 위대한 마법을 알고 있었다.
‘지플의 고등 교육 마법 기관으로 지낼 때, 단 한 번 가본 비밀서고. 그곳에서 확인한 히스터가의 짧은 역사는…… 가히 모든 마법사들의 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때부터 키다드는 한동안 히스터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었다. 전 세계의 아카데미와 경매장을 돌아다니며 지플이 미처 회수하지 못한 히스터의 흔적들을 사들인 것이다.
아티팩트, 마법 서적, 하다못해 히스터가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소한 물건들까지 모두.
온통 쓰레기뿐이었다. 마법적 가치가 드높거나 그들의 정신이 깃든 진짜배기들은 모두 지플의 기밀 자료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몇 해 전, 휴페스터의 소국에서 기적처럼 얻은 단 하나의 마법서.
그것이 스스로 ‘역류계’라 이름 붙인 키다드만의 독특한 마법을 완성시켜주었다. 9성에 이르고도 찾지 못하고 있던 역류계 마법 정수의 한 조각을 채워준 것이다.
‘키다드, 네놈은 지금 내가 히스터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지, 증명한다면 어떻게 구슬려 제자로 삼을지. 마음이 다급해서 미쳐버리려고 할 테지… 내 스승에게 그랬던 것처럼.’
키다드가 찻잔을 내어오자 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애멀 님.”
“자네가 히스터의 마지막 생존자인 줄 알았다면…… 그렇게 거칠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야. 처음엔 켈리악의 서자, 혹은 다른 대마법사의 제자인 줄 알았다네.”
“솔직히 제 성을 밝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평생 감추고 살 생각이었죠. 개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애멀 님은 제 가문에 대해 알고 계시니, 그 이유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아, 그래. 잘 알고 있지…… 자네의 존재가 지플에 알려지는 순간,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 말이야.”
“……하지만 애멀 님께선 저를 지플에 넘기지 않으시겠지요. 그럴 것이라면, 굳이 이렇게 향긋한 차를 내어줄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저는 차를 잘 모르지만 척 느끼기에도 훌륭한 향이군요.”
키다드가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지플이 책정한 자네 몸값이 얼만지는 알고 있는가?”
“모릅니다.”
“최소 금화 백만 개일세. 게다가 자네는 마력까지 전승받았으니, 그 열 배는 될 것이야.”
푸우웃!
진이 의도적으로 머금고 있던 찻물을 뿜었다.
“허…… 죄… 송합니다. 실감조차 나지 않는 금액인지라. 천만이라면… 멜타도어 제후의 창고를 다 털어도 한참 부족할 것 같군요.”
진짜로 놀랍기는 했다. 그렇다면 전생의 스승에게 걸려 있던 현상금이 그 정도였다는 뜻이니까.
“금화 천만. 이 늙은이가 죽기 전까지 다 쓰기도 어려운 돈이지. 이딴 벽돌집이 아니라, 섬을 하나 사서 통째로 연구실로 만들어도 좋을 돈이고 말이야. 그러니 내 자네를 팔아넘기지 않을 이유가 없어.”
“으음.”
“즉, 자네 운명은 완전히 내 손아귀에 있는 셈이야. 내 진짜 이름은 키다드 홀, 자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9성에 올라 악명을 떨치던 시기가 있었지.”
“애멀 님이 역류의 키다드…… 홀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키다드가 만족스러운 듯 웃음 지었다.
“내 이름을 아는가? 자네 시대엔 그리 왕성히 활동한 적이 없건만.”
키다드가 손아귀에 마력을 뭉쳐 보였다.
키이잉, 키잉!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날카로운 소음을 일으키는 마력, 전성기의 키다드를 상징하는 역류계 마법의 시작 형태였다.
“마법 학도가 된 이후, 마음속으로 가장 존경하던 사람이 바로 키다드 님이었습니다. 공부를 하는 동안 키다드 님과 관련된 서적들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봤는지 모르실 겁니다.”
“왜지?”
“키다드 님은 저와 달리 능력을 감추지도, 지플을 피해 숨지도 않았으니까요.”
“오호.”
“저는 제 힘과 잠재력을 깨닫고도, 멜타도어의 마법 학교를 졸업해 평범한 하급 마법사의 인생을 살려고 결정한 상태였습니다. 그곳이라면 제 재능을 알아볼 사람이 없을 것 같았거든요.”
3류도 아닌 5류. 멜타도어 마법 학교에 대한 키다드의 평가는 냉정하고 정확했다. 교수진이 겨우 4, 5성에 머무는 학교인 것이다.
“확실히…… 멜타도어의 쓰레기들은 자네를 몰라봤겠지. 숨죽여 살 생각이었군. 그래, 이해가 돼. 나 역시 내 재능이 지플에 짓밟힐까 두려워 한때나마 그런 고민을 했으니, 히스터인 자네는 더 그랬겠어.”
진이 속으로 비웃음을 삼켰다.
키다드는 ‘역류계’ 마법을 이루기 전까지, 어떻게든 지플에 빌붙으려고 악을 쓰던 인간이었다. 역류계 마법을 정립하고 나서야 지플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키다드 님께선 결국 9성이라는 대업을 이루셨죠. 지플의 지원조차 없이 말입니다. 그에 비해 저는…… 별 이야길 다 하는군요. 제 신상을 어떻게든 숨겨도 모자랄 판에. 사실, 저는 지금 좀 감격스럽습니다.”
“무엇이 감격스러운가?”
“생각해보십시오. 저는 지플을 피해 숨으러 가던 도중, 말 그대로 우연히 키다드 님을 만난 겁니다. 그리고 키다드 님은 제게 호의를 보이고 있군요.”
“호의라!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당장 3초 내로 자네를 실신시키고, 지플에 팔아넘길 수도 있네. 무려 천만이야, 천만.”
“키다드 님이 돈에 눈이 먼 사람이었다면, 이미 지플이나 비먼트에서 한 자리를 꿰차고 계셨을 겁니다. 그들의 권속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며 모든 마법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계셨겠죠.”
잠시 말을 고른 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안 그러셨습니다, 편한 길을 두고 늘 그들과 일정 거리를 두셨죠. 제가 책에서 느낀 키다드 홀이라는 인물은, 든든한 배경하나 없이 마법에 대한 집념과 신념을 지킨 굳건한 인간. 그것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키다드는 점점 진에게 매료되어가고 있었다.
아부를 잘하기 때문이 아니다. 목숨 줄을 쥔 상대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과, 어딘지 위엄이 서린 두 눈동자.
그런 것들이 키다드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정확히는, ‘후계’에 대한 그의 욕망을 사로잡고 있었다.
‘멜타도어 마법 학교? 결코 그딴 5류 사이에서 썩게 둘 수 없는 천하의 기재야! 게다가 강하고 단단한 내면을 지닌 자의 저 당당한 눈빛, 젊은 날의 내가 꿈꾸던 것을 그대로 지닌 소년이로군…….’
긴 정적이 흘렀다.
키다드에게 감동을 억누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내 스스로 한 마법의 일가를 꿈꾸는 것까지는 꿈꾼 적도 없다. 그러나 후계가 될 인재를 찾아 대체 얼마나 많은 세월을 허비했던가.’
이것이 우연이라면 하늘이 키다드라는 한 인간의 생애에 반해 선물을 내려준 것이며.
운명이라면 두 번 다시는 없을 인연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키다드는 이미 진이 히스터의 마지막 전승자라는 걸 확신했으나, 확실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키이이잉……!
키다드가 손아귀에 형성한 마력을 더 높이며 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자네는 지금부터 내게 자네가 진짜 히스터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네. 그리고는 한 가지 선택을 해야 할 것이야.”
“……어떤 선택입니까?”
“그건 증명한 다음에 알려주도록 하지. 보여주게, 자네가 히스터라는 증거를. 물품도 좋고, 능력도 좋아.”
진이 해진 가죽 가방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저를 키운 용병단장이 제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며 준 마법서입니다. 저자는 슈지엘 히스터, 제 선조 중 한 명이라더군요. 그러나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리 줘보게!”
키다드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자, 진이 고개를 저었다.
“보여드릴 순 있으나, 만지는 것은 안 됩니다.”
“뭐라?”
“제 스스로 맹세를 했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제 허락 없이 다른 누군가가 만지게 하지는 못하겠다고 말이죠. 멀리서 살펴보십시오. 저를 죽일 것이 아니시라면.”
미리 준비한 대사가 찌르르, 키다드의 가슴을 울렸다. 건방지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대화의 주도권은 이미 진에게 넘어간 상태였으니까.
“좋아…… 자네가 직접 펼쳐서 보여주게, 그러면.”
스륵, 스륵, 스륵……. 진이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키다드의 입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이 암호체계, 진짜 히스터의 마법서다!’
이내 진이 마법서를 덮자 곧바로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제 나이는 열여섯,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는 7성의 마력을 갖고 있습니다. 전승지에서 얻은 이 마력은, 완전마력체를 지닌 순혈 히스터만이 가질 수 있다더군요.”
“자네는 용병단장의 손에 길러졌다면서, 완전마력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단 말인가? 그건 역사서 속에서조차 유실된 단어이건만.”
“전승지에 가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곳으로 들어서자마자, 온갖 기록 마법이 펼쳐지며 완전마력체가 무엇인지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자격 요건이 충족되었다며, 마력을 전승해줬고요. 이건 따로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기, 기록 마법! 그것까지 경험했다고……!?”
지플이 히스터가를 멸문시킨 것은 그들의 잠재력이 지플을 위협하는 수준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것은 히스터가 특유의 ‘기록 마법’ 때문이었다. 역사를 뜻대로 조작하는 것에 능통한 지플로서는 히스터가의 기록 마법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지플의 천재들조차도 따라할 수 없는, 마법보다도 차라리 찬란한 문명에 더 가까운 신기 그 자체.
“이만하면 증명이 되었습니까? 키다드 님.”
“자넬 키운 용병단장이 누구지?”
“슈체론 왕국 남부 지방의 오클리 벤이라는 용병입니다. 회색부엉이라는 작은 용병단을 운영했고, 모두…… 지플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저를 살리려다 죽었죠, 그래서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멜타도어로 온 겁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눈을 내리까는 진.
그가 하고 있는 모든 거짓말은, 그의 스승이 실제로 겪어온 일이었다. 이제 열넷이 되었을 스승은 아마 지금쯤 회색 부엉이들을 그리워하며 밤마다 눈물짓고 있을 터였다.
‘나의 복수를 위해 당신의 아픔을 이용하고 있군요, 미안합니다. 스승. 다시 만나거든, 죽는 날까지 내 마음의 빚을 갚겠습니다.’
키다드가 탄식을 내뱉었다.
“……좋아, 자네가 히스터라는 건 증명되었네. 그럼 이제 선택을 하게.”
“말씀하십시오.”
“자네는 멜타도어의 평범한 마법사로 무의미한 삶을 살고 싶은가, 아니면 역류의 이름을 이어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고 싶은가?”
진이 속삭여 대답하자, 키다드가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