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50)
제 111화
50화. 이틀 긴 밤, 하루 짧은 밤(3)
진의 두 손아귀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곡검처럼 휜 그것은 두 뼘 반 정도 크기에 끄트머리가 송곳처럼 날카롭다.
그리고 주먹으로 부드럽게 감싸 쥐어도 다 잡히질 않고, 기묘한 한기가 배어 있으며 묵직했다.
‘은룡의 발톱……! 저걸 갖고 있었단 말인가! 대체 어떻게!?’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는 오울. 그를 추궁하는 요나의 눈빛에도 당혹과 분노가 서렸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대체 저 귀한 걸 진이 어떻게 얻었다는 말씀인데요? 예비 기수인 막내한테 제 본가가 챙겨줬을 리도 없잖아요! 게다가 룬칸델 창고에도 저건 없을 거고요!”
룬칸델에 은룡의 발톱이 있었다면 진즉 무명과의 거래를 위해 사용했을 것이다.
오울이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맹세코 나는 아니란 것을 알려주마. 너도 알다시피, 우리 기밀창고에 있는 은룡의 발톱은 두 개뿐이다. 그마저도 저것과 달리 부러진 것들이지.”
용의 발톱은 대장장이와 아티팩트 제작자들에게 꿈의 재료다. 용의 사체를 가공한 장비엔 해당 용이 모시는 신의 권능이 미세하게나마 깃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늘, 이빨, 뼈, 장기 등 단 하나도 가릴 것 없이 용의 신체는 귀하게 취급되었다.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고, 몇몇 상위종 용의 사체를 제외하면 가치에 비해 효율이 좋지 않아 사실상 사치품이나 다름이 없는데도.
용의 신체로 가공한 장비는 늘 수요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무명에게 ‘은룡의 발톱’은 단순히 귀한 재료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용의 사체를 다룰 만한 거상들 중에도 아는 이가 극히 드문 정보지만 말이다.
“그럼 대체 막내가 어떻게……?”
“그건 지금부터 차차 확인해봐야겠지. 우선, 내기는 내가 이긴 셈이로구나. 네 동생이 저걸 보인 이상, 이번 암살은 실패다.”
“으윽.”
“분하겠지만 네가 졌느니라. 설마, 네 분노로 저들을 죽이는 게 은룡의 발톱보다 귀하다고 생각지는 않겠지? 아무리 너라도 그 정도는 이해하리라 믿…….”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하지만 아직 안 끝났어요. 막내가 저걸 우리한테 안 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랬다면 꺼내지도 않았을 터. 같이 가보자꾸나.”
창가로 다가간 진이 은룡의 발톱이 더 잘 보이도록 한껏 들어 보였다.
‘단테와 베라딘을 도시 밖으로 내쫓진 않았지만, 결국 살려냈으니 내기는 내가 이겼습니다, 무명왕.’
30초쯤 그렇게 있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소리 없이 찾아온 요나와 오울이 서 있었다. 미리 그 광경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이건 겪을 때마다 소름 돋네. 기척을 대체 어떻게 죽여야 이런 일이 가능한 거야?’
하지만 처음 사밀을 찾아왔을 때와 차이가 없는 건 아니었다.
건너편 건물 지붕에서 내려온 두 사람이 거리를 활보한 순간은 짧게나마 직접 ‘느꼈기’ 때문이었다. 심안이 개안되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진이 차분한 얼굴을 꾸미며 두 사람에게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85대 무명왕이시여. 그리고 오랜만입니다, 요나 누님.”
모르는 척 인사를 건네자 요나가 괜히 오울의 뒤에 숨어 헛기침을 했다. 왠지 진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쭈뼛대는 모습까지.
“은룡의 발톱은 어디서 났느냐?”
오울이 거침없이 묻자 진이 반사적으로 베라딘과 단테를 바라보았다.
‘역시 마비까지 끝냈군. 저번처럼 대화를 듣지 못하게 하려고.’
오한이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분이지만, 이제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예비 기수로서 여행 중 우연히 알게 된 은룡에게 선물을 받았다는 정도로만 이해해주십시오.”
다소 건방지게 느껴질 수 있는 대답에도 오울은 불호령을 떨구지 않는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단지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들은 모양이로구나.”
“그렇습니다. 이것을 보이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명의 살수들로부터 한 번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씀해주시더군요…….”
-무명의 살수들은 옛날부터 우리 일족의 발톱을 신물 이상으로 여겼어.
-왜요?
-잘 이용하면 암살이 불가능한 대상을 암살할 수 있거든. 놈들 특유의 가공법이 있는데, 그걸 사용하면 눈 한 번 깜짝할 정도는 암살 대상의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있다더군.
-경지에 이른 살수들에겐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그런 식이라면 죽이지 못할 사람이 없겠어요. 타인의 시간에 간섭하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란 말입니까?
-본래는 올타께서 직접 강림해도 극히 한정적으로만 가능한 일이야. 놈들의 가공법에도 꽤나 큰 희생이 필요한 모양이고.
말하자면 은룡의 발톱은 무명의 살수들에게 ‘찰나’의 순간을 벌어주는 도구였다.
‘요나 누님이나 무명왕 정도의 살수라면, 그 찰나의 순간은 꽤나 절대적일 테지. 암살뿐만이 아니라 싸움에 있어서도.’
루나나 탈라리스라 할지라도, 은룡의 발톱을 네댓 개쯤 갖고 있는 무명왕을 이길 수는 없다.
게다가 무명이 은룡의 발톱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라면 더더욱. 그 방식이 싸움이 아닌 암살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발톱을 지닌 채 ‘암살 기회’를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그 말대로다. 그걸 내게 넘기면, 네 죽음은 없던 일이 되지.”
“절 죽여서 빼앗아간 다음, 살인멸구 하는 쪽이 더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은룡께서 말씀하신 바, 무명의 최대 비밀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만.”
“네가 룬칸델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저 둘이 평범한 인물들이었다면 그리하는 것도 고려했을 것이다.”
“날 때부터 가진 배경이 늘 원망스러웠는데, 오늘 처음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드는군요.”
진이 오울에게 은룡, 퀴칸텔의 발톱을 내밀었다.
“무명왕께 이것을 바치기 전에, 한 가지 여쭈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하라.”
“왜 생도가 아닌 진짜 살수들이 저를 집중적으로 노린 것인지 궁금합니다. 요나 누님이 룬칸델로서 저를 견제한 것인지, 아니면 무명왕께서 저를 시험한 것인지 알려주십시오.”
오울이 미소를 꾸미며 진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서로 다 아는 사항을 굳이 물어보는 이유가 뻔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사흘 사이 이 맹랑한 놈에게 두 번이나 당하는군. 요나와 나 사이에 내기가 있었다는 걸 확실히 밝히라는 건가.’
은근한 협박이었다.
지금 마땅한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당신이 찾아왔었다는 걸 요나에게 불겠다고. 또한 청을 한 번 들어주기로 한 걸 잊지 말라고.
“나와 요나가 너를 두고 내기를 하였다. 나는 네가 생존한다에, 요나는 그 반대에 걸었지. 나는 네 덕에 내기를 이긴 데다 은룡의 발톱까지 얻었으니, 상을 내리마.”
“감사합니다.”
“그럼 나는 이만 자리를 비켜주마. 오랜만에 만난 오누이끼리 할 이야기가 있을 테니 말이야. 이야기가 끝나면 무명관을 찾아오너라.”
“이제 저는 무명의 살수들에게 더 이상 암살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나와 요나를 포함해, 그 어떤 무명의 살수도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네가 도시를 빠져나간 이후 10년 동안 지속될 것이며, 너와 네 가문이 우리를 침략하지 않는 한 이 결정이 번복될 일은 없다.”
이번엔 진의 동공이 커졌다.
‘10년……!’
그토록 긴 기간 동안 무명의 살생부에 오를 일이 없게 될 줄은 진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다.
‘땡잡았군. 차후 가문에서 형제들과 전쟁을 할 때 무명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어.’
기수와 기수가 견제를 한답시고 외부 살수를 이용하는 건 비웃음거리밖에 안 된다.
그러나 진은 조슈아나 뮤, 앤이라면 충분히 무명에 의뢰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때쯤이면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일단 죽이고 싶을 테니 말이다.
오울이 여관방을 나가자 요나가 쭈뼛대기 시작했다.
검지로 머리카락을 꼬고, 미소를 짓다가도 울적한 표정이 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히…… 막내야.”
“예, 누님.”
대답하는 진의 목소리가 싸늘한 기운이 배어 있다.
요나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 난 널 견제하려는 의도는 없었어. 정말이야. 오히려 널 성장시켜주고 싶었고.”
“그래서 진짜배기 살수를 수십 명씩 보냈습니까? 매일 저를 감시하시면서 말이죠.”
“정말인데…….”
“저로서는 누님의 행동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저 둘은 누구야?”
요나가 마비된 단테와 베라딘을 슥 쳐다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녀는 아직 두 사람의 신분을 몰랐다.
“베라딘 지플과 단테 하이란입니다.”
“히, 그렇구나.”
“누님은 직접 저를 죽이는 일에 실패하셨죠. 무명왕께서 제 안전을 보장하셨으니 지금 죽일 수도 없을 테고요. 그러니 이제 제가 저들과 어울린다고 가문에 알리면 되겠군요.”
“어어, 너는 내가 왜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하면 네가 죽거나 크게 다칠 가능성이 높은 걸.”
“누님은 저를 싫어하니까요. 그게 아니면 그렇게 조직적으로 살수를 보내진 않으셨겠죠. 저와 누님이 만난 건 예비 기수의 법도에도 어긋나지 않는데, 왜 그러셨습니까?”
다소 진심이 섞인 분노였다.
진은 요나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른다.
그런데 요나로 인해 사밀로 오자마자 일반적인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으니,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만독주를 받아내야 할지라도.
“난 그냥 너랑 놀고 싶어서, 쪽지도 그렇게 썼잖아…….”
“절 장난감으로 취급하셨군요.”
“아니야! 절대 아니거든!”
대뜸 소리를 지르는 요나.
‘아까부터 당최 감이 안 잡히는데. 뭐지? 진짜로 나랑 놀고 있다고 생각하신 건가?’
이내 요나의 눈동자에 물기가 맺히자 진으로서는 억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죽이려고 한 쪽은 누님인데 왜 누님이 우십니까?”
“나도 몰라. 눈물이 나는 걸 어떻게 해?”
“누님은 무명의 최고 살수 아닙니까? 감정 제어 훈련은 어떻게…….”
“난 그거 못 받았어. 그런 거 필요 없을 만큼 사람을 잘 죽인다고 했단 말이야. 어머니가 날 처음으로 오울 님한테 소개하셨을 때에.”
멈칫한 진의 눈동자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뭐……?’
그때의 요나는 열두 살.
룬칸델이라 할지라도 살인인형 취급을 받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하물며 어머니에게는…….
진은 모를 수밖에 없지만.
요나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건 그녀가 여덟 살 때, 폭풍성을 찾아온 사촌 중 한 사람이었다.
또한 요나에겐 유모가 배정되지 않았으며, 폭풍성을 떠나 본가에서 지낸 2년조차도 생도로 활동한 적이 없다.
심지어 폭풍성에서 지낼 때조차도, 함께 있던 다른 형제들과 그녀는 식사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시론의 엄명 때문이었다. 서열 전쟁이 중요하다고 하나, 폭풍성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요나와 함께 자란 자식들이 다 죽어버리는 일은 막아야하는 것이다.
훌쩍, 훌쩍, 히.
울다 웃기를 반복하는 누이를 보며, 진은 오싹한 마음보다.
무겁고 거대한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