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51)
제 111화
51화. 요나 룬칸델(1)
그 감정이 연민이라는 걸 깨닫기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열두 살.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요나 누님은 오직 살인만을 위한 존재로 키워진 건가.’
짧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눴을 뿐이지만.
진은 요나가 감정이 풍부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은 듯 보이니 당연한 일.
그러나 그 감정은 어딘가 뒤틀려 있다.
요나는 회귀 전의 토나 형제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살인 후 죄책감에 둔감했다.
그녀에게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움직이는 고깃덩어리일 뿐, 생명이 ‘살아 있기에’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 따윈 중요치 않다.
말하자면 괴물.
하지만 진짜 괴물은 아니다. 진의 전생에서 앤에게 상처받은 채 그림자처럼 지내던 요나도, 지금 진 앞에서 펑펑 울다가 웃기를 반복하는 요나의 마음속에도.
분명 보편적인 사람들이 지닌 여러 감정이 내재되어 있었다.
가령 형제애라든가,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라든가,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은 욕망이라든가, 함께 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소한 염원이라든가.
그 모든 것이 묵살당한 채.
그녀는 단지 힘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역사상 최악의 암살자가 되었다.
‘후.’
가슴속에서 뜨겁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치밀었다. 복부를 헤집으며 올라와 가슴을 콱 틀어막고, 목구멍을 긁어대 당장이라도 뱉어버리고 싶은 그 감정의 이름은 분노였다.
열두 살, 혹은 그보다 어릴 때부터 막내 누님의 인간성을 철저히 말살해온 이들을 향한 분노.
그들은 다름 아닌 진과 요나의 혈육이다.
“혹시 내가 며칠 동안 네 옆에 계속 몰래 붙어 있던 것 때문에 화가 난 거야? 그래도 너 씻거나 볼일 볼 때는 떨어져 있었는데.”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잠깐, 제 옆에 계속 붙어 있었다고요?”
“응.”
“한시도 빠짐없이?”
요나가 베라딘과 단테를 흘겼다.
“음…… 너와 열 걸음 이상 떨어져 있던 순간은 하루에 다섯 시간이 안 될 것 같아. 네 친…… 아니, 저것들이 온 이후로도 계속 그랬고.”
그 사실을 아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요나에게 직접 듣게 되니 충격이 밀려왔다. 진이 ‘요나가 근처에 있다’는 걸 인지한 건, 사밀에 온 후 세 번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한 번은 요나가 직접 쪽지를 떨궈서, 한 번은 조금 전 오울과 함께 찾아오리라 예상한 상태에서였다.
나머지 한 번만이 심안을 뜬 후 살수들의 추격을 피하는 도중 느낀 것이다.
“진아, 혹시 내가 무섭거나 기분 나빠?”
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까까지는 그랬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히히히.”
천진난만한 얼굴로 요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기분이 나아진 듯, 진 쪽으로 가볍게 한 걸음을 다가서기도 했다.
“나도 네가 살수들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 하지만 더 성장하길 바란 건 사실이야. 만약 네가 죽으면 나는 조금 슬퍼질 거고, 또 금방 잊을 거고, 너는 편해졌겠지.”
본래 소름 끼쳐야 마땅한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깨진 유리에 베인 듯 아릿하게 다가왔다.
“부당하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뭐가? 나만 널 지켜본 거? 아까도 말했지만, 네가 목욕하거나 볼일을 볼 땐…….”
“그거 말고요. 누님은 지금껏 쭉 살인인형 취급을 받으셨잖습니까. 그렇게 어릴 때부터. 그건 순혈 룬칸델이란 걸 감안해도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이라고요.”
“그게 나빠?”
“나쁩니다.”
그러자 요나가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혹시 막내는 살인을 안 해 봤어?”
“그런 문제가 아니라.”
“히히, 애초에 난 이렇게 태어났는걸. 그러니까 슬퍼할 필요 없어.”
“그렇게 태어났다니 대체 그게 무슨…….”
잠시 말을 멈춘 진이 생각에 잠겼다.
‘룬칸델이 비인간적인 가문인 건 사실이지만, 요나 누님한테 한 짓은 이상할 정도로 지독해. 그건 누님이 벌써 무명왕을 뛰어넘는 암살자가 된 이유와 관련이 있었겠지.’
무명왕 오울조차 좁은 방 안에서 들키지 않고 몇 시간이나 진에게 붙어 있는 건 불가능했다. 하물며 며칠 동안 열 걸음 안에서, 20시간 가까이 관찰하는 일은 더더욱.
“누님, 혹시 신의 계약자입니까?”
“아니.”
암살이나 기척을 지우는 것과 관련된 신은 없으며,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게 솔더렛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의 능력이라곤 이해할 수 없으니 물어본 것이다.
“그럼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누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누님이 세상에 죽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요.”
“막내는 몰라도 돼. 음, 그리고 내가 암살할 수 없는 대상이 한 명도 없는 건 아니야. 혼자서 일을 해야 하면 꽤 많고, 살수조를 제대로 짜서 움직이면 손가락 발가락 다 합친 정도가 남을걸.”
즉, 그녀가 살수조를 이끌고 암살하지 못할 대상은 세상에 고작 스물쯤이 전부라는 뜻. 도주는 고려치 않은 수치라 해도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알려줄 순 없는 겁니까?”
“너도 비밀이 있잖아.”
진이 아니라고 대답하려는 찰나, 요나가 슬쩍 진의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마치 그림자와 관련된 힘이 네게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내가 솔더렛의 계약자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냥 시선을 그림자에 둔 건가.’
따져 물어봐야 좋을 게 없었다.
요나는 진의 영기를 인지하고 있었는데, 그건 그녀가 지닌 힘이 영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진은 모를 수밖에 없지만.
그 힘은 요나에게 계속해서 진을 죽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요나는 그 속삭임을 무시하는 중이고.
“여러모로 절 당황스럽게 하시는군요.”
“동생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줘. 네가 사밀에 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 착한 루나 언니도 찾아준 적이 없는데.”
“슬프게도 하시고요. 루나 누님이 요나 누님을 싫어합니까?”
“좋아하진 않는 것 같아. 내가 몇 번 약속을 어겼거든. 아니, 좀 많이…….”
진이 손수건을 물에 적셔 그녀에게 내밀었다.
“닦으세요, 얼굴에 눈물 자국이 남았습니다.”
손수건을 받아 든 요나가 슥슥 제 얼굴을 문지르며 눈동자를 빛냈다.
“막내는 날 좋아해 주면 좋겠어.”
“아직 누님과 저 사이엔 깊은 형제애가 있을 만큼 추억이나 유대감이 없습니다.”
“난 그런 게 없는데도 널 좋아하는 걸?”
“그건 누님이 제게 환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절 죽이려고 했던 건 사실이잖아요. 누님에겐 애정표현이었다지만, 제게는 치명적인 생존 위협이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글쎄요.”
만독주를 주십시오.
차마 그런 소린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속이 빤히 보이는 짓을 하는 건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애정을 줄 테니 그에 비해 과한 대가를 주라는 못난 짓거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진은 요나와의 관계를 어찌해야 할지 감을 못 잡는 중이다.
막내 누님이 안타까운 건 사실이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루나조차 그녀를 포기했거나, 거리를 둔 게 분명한 것이다.
‘루나 누님과의 약속을 어겼다는 건, 아마 요나 누님이 혈육을 죽인 적이 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아. 그게 아니라면 루나 누님 성격상 이런 요나 누님을 가만히 내버려 뒀을 리가 없어.’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폭풍성에 있을 때 길리가 몇 번 사촌과 삼촌들의 장례에 참석하러 외출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의 사인은 대외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그때는 진 역시 그저 이름만 알고 있는 먼 사촌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사촌이라지만 얼굴조차 본 적이 없었으니까.
“으, 네가 날 좋아해 주지 않으면 널 죽이겠다고 협박이라도 해야 할까?”
“그런 건 보통 관계에서 더 멀어지는 지름길입니다.”
“그럼 만독주를 줄까? 그거 받고 나랑 계속 놀아주라. 형제들이 날 찾아온다면, 이것밖에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거든.”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진은 일단 거절하기로 했다. 요나와 차후 어떤 관계를 맺을지 정리한 후 요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싫습니다. 그리고 누님이 제게 바라는 건 대가성 애정이 아니지 않습니까? 애정은 조건을 걸고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누님이 만독주를 주셔도, 제가 가진 누님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일 겁니다.”
“아우우!”
요나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난 너랑 영원히 친해질 수 없는 거야? 나는 네가 너무너무 좋은데도?”
또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다급하게 소리치는 막내 누님을 보며, 진이 씁쓸한 미소를 감췄다.
“오늘도 밖에 생도들 안 돌아다니죠? 요 이틀간, 살수들과 저희의 대결 구도를 만들기 위해 밤마다 통행금지령을 내린 것 같던데요.”
“맞아. 오늘도 없어.”
“그럼 산책이나 좀 할까요?”
“히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과연 이 대책 없고 안타까운 막내 누님을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여관방을 내려서자마자 달 밝은 길. 사밀에 온 후 여유로운 밤 산책은 처음이었다.
“군데군데 무너진 집이 많군요.”
“네가 다 부쉈으니까. 그것 때문에 반성문을 백 장이나 썼다구. 저쪽으로 좀 가면 내가 좋아하는 곳이 나오는데, 원래 방문객은 출입금지야. 가 볼래?”
“그러죠.”
그곳까지 가는 내내 대화는 주로 요나가 조잘거리고, 진이 맞장구를 쳐주는 식이었다.
그리고 요나는 이 산책이 어쩌면 막내와 마지막 추억이 될 수 있다는 마음에 굉장히 천천히 걸었다. 진은 그녀와 보폭을 맞추며 묘한 죄책감을 느껴야 했고.
평소와 달리 생도들이 근무를 서지 않는 몇 개의 길을 지나자 제법 가파른 언덕이 나왔다. 요나가 ‘좀 가면’이라고 나온다고 했던 그 언덕 앞에 서기까지, 그들은 두 시간을 걸었다.
“올라가면 뭐가 나옵니까?”
“꽃밭과 절벽.”
“누님이 말하니까 괜히 아찔한데요.”
“널 절벽으로 밀기라도 할까 봐? 그건 나한테 너무 쓸데없는 짓인걸. 그 정도 높이 절벽에서 떨어져 봐야 네가 죽을 리도 없고.”
“농담이었습니다.”
피식 웃고 언덕을 오르자, 온통 한 종류의 야생화가 피어 있는 꽃밭이었다.
진도 잘 아는 꽃이다. ‘녹장미’, 이름 그대로 녹색 장미인데 멀리서 보면 잡초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꽃잎이 작은 데다 대륙 전역에 흔히 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잡초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 꽃이기도 했다.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고, 사계절 내내 자라며, 관상용으로도 식용으로도 쓸모가 없으니 사실상 잡초였다.
“오…….”
그래도 달빛에 물들면 잡초보다는 운치가 있다. 허리를 숙여 손톱 반의반만 한 잎들이 움직이는 걸 보면 나름 오묘하기도 하고.
“예쁘지?”
“예. 녹장미가 달빛 아래 모이면 이렇게 볼만하다는 건 처음 알았군요.”
“보통 녹장미는 잡초 취급을 하던데, 나는 제일 좋아하는 꽃이거든. 막 밟거나 물을 안 줘도 잘 안 죽는 데다, 죽어도 그 자리에 금방 또 새 녹장미가 돋으니까.”
어째 이유가…….
진이 말을 삼키며 꽃밭을 둘러보는 사이, 요나가 녹장미 두 송이를 꺾어다 맞붙여 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작은 꽃잎들이 벌어지면서 좀 더 그럴싸한 모양이 되거든. 녹장미의 또 다른 매력이지. 보기보다 어렵다? 막 엮으면 꽃잎이 부서지니까, 세심한 작업이 필요해.”
히, 웃으며 요나가 고리처럼 엮인 두 송이의 녹장미를 내민 순간.
‘아!’
진은 잊고 있던 전생의 기억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이 그것을 처음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이번 생엔 처음이지만, 전생에선 이따금씩 누군가 방에 두고 간 것이다. 이렇게 두 송이가 함께 엮여 작은 꽃잎들이 벌어진 녹장미를.
그때는 순혈인데도 매일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자신을 불쌍히 여긴, 하인 중 하나일 거라고만 짐작했었다. 길리는 한사코 자신이 아니라고 했으니.
“받고 마음 풀어줘. 어쨌거나 넌 죽지 않고 내 덕에 심안도 뜬 거잖…….”
“그게 누님이었을 줄이야.”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