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65)
제 111화
56화. 혼돈의 조각가(1)
촤악!
잠든 가짜 오턴의 얼굴에 한 바가지 찬물이 쏟아진다. 의자에 묶인 가짜 오턴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우윽.”
그 앞에는 줄칼로 손톱을 정리하고 있는 알리사가 앉아 있었다. 물을 뿌린 칠색조 대원이 절도 있게 경례하고 밖으로 나가 문을 잠갔다.
닫힌 문 때문에 복도에서 이어지는 빛이 차단되자, 가짜 오턴과 알리사가 마주앉은 지하 취조실이 어둠에 휩싸인다.
“너 같은 놈을 상대하고 있으면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 떠오른단 말이야.”
사가각, 사가가가각.
어둠 속에 줄칼이 손톱을 갉아대는 소리가 유난히 크다. 줄칼이 번들거리며 날카로운 빛을 일으키면, 잠깐씩 알리사의 무표정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는 라트리가 유리아의 힘을 ‘공명’으로 이용하는 걸 반대하는 대신 본인이 취조를 도맡기로 했다.
혹시라도 라트리가 공명 도중 실수를 저질러, 이 삭막한 광경과 악인의 얼굴을 딸아이의 절대안에 공유시킬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강하고 유능하며 밝고 선한 티칸의 수비대장 신분이나.
그녀의 과거 신분은 비먼트 특임대 2조. 특임대 2조는 황족 보호가 주 임무였는데, ‘보호’라는 것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뜻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붙잡은 자객의 배후를 캐낸다든가, 그 과정에 심문을 한다든가, 필요하다면 고문을 한다든가.
알리사는 티칸의 동료들 중 비명에 가장 익숙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그녀보다 비명에 익숙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젠장, 대체 이게 무슨…….”
후우.
줄칼을 멈춘 알리사가 가볍게 손톱을 불었다.
“편지를…… 쓰게 해줘라. 몸값이 필요해 이러는 것이라면 본회에 요청하겠다. 네놈들은 누구지? 키다드 홀의 제자가 우릴 치다니, 뭔가 착오가 있던 게 분명하군.”
가짜 오턴은 여전히 진을 키다드 홀의 제자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는 죽은 롤트처럼 진에게 직접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다.
“착오는 없었어. 이제 네가 앉아 있는 그 의자가 네 세계의 전부다.”
“하, 고문이라도 할 셈인가? 내게 뭘 원하지?”
“암흑마법회에 대한 정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
“키다드 홀의 제자가 뭘 모르나본데, 우릴 캐내봤자 네놈들에게 좋을 게 없다. 키다드 홀 본인도 우리와는 조심스러운 관계를 유지했단 말이다. 날 고문한 사실이 본회에 알려지면.”
“이 줄칼이 얼마나 무궁무진한 사용법이 있는지 궁금해 미치겠는 모양이지? 해썸의 살인마 마토 배커.”
“내…… 이름을 어떻게?”
가짜 오턴, 아니. 해썸의 살인마 마토 배커의 눈동자가 커졌다.
마토가 역류에 의식을 잃은 나흘 사이, 알리사는 칠색조를 이용해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채식주의자였던 진짜 오턴 멜슨이 사라진 시점을 확인하고, 마토가 오턴으로 변장한 기간의 행적을 추적하자 어렵지 않게 정체를 캐낸 것이다.
마토는 살인을 즐기기로 악명 높아, 약소국 해썸 왕국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마법사였다.
사각, 사각…….
다시금 줄칼이 알리사의 손톱을 갉았다.
“내가 특임대 2조 부조장이거든. 그리고 네가 건드린 건 키다드 홀의 제자가 아니라, 비먼트의 8황자고.”
“뭐, 뭐라고……?”
“믿기 어렵지? 그런데 나도 해썸 왕국의 썩은 노괴가, 어떻게 아카데미 출신 상급 마법사 오턴 멜슨으로 변신했는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 지금부터 서로에게 신뢰를 주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우리.”
“8, 8황자라니 그 무슨. 아…… 설마, 역류의 키다드를 죽인 게 비먼트 황실이었…….”
“쉿, 조금이라도 편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면 말이야. 지금부터 네가 떠들어야 할 이야기는 그게 아니지.”
으아아아악!
마토 배커는 알리사가 뭘 시작하기도 전에 비명부터 지를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살아서 돌아갈 수 있는 구멍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 * *
알리사가 지하 취조실을 빠져나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 뒤.
“고생하셨습니다, 알리사 님.”
“진 공자, 엔야.”
두 사람은 저택 1층 휴게실에서 알리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 좀 나왔습니까?”
“그럼요.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더군요. 암흑마법회 본회의 위치와 소속 마법사 일부, 그리고 변신술사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변신술사라고요?”
“올라가서 다 같이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군요, 진 공자.”
고작 한 시간 만에 그야말로 알짜배기만 찾아왔다. 진은 내심 감탄했고, 엔야는 지하 취조실에서 있던 일을 상상하다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알리사가 엔야의 얼굴을 살피곤 싱긋 미소를 지었다.
“너무 무서운 상상은 하지 말아요, 엔야 양. 취조는 아주 인도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졌으니까. 진 공자가 비먼트 8황자고, 나는 특임대 2조라니까 그냥 알아서 술술 불더군요. 과거 몸담았던 단체를 사칭하니까 꽤 기분이 묘하던데요?”
“아앗, 저는 그저 알리사 님이 그 인간 때문에 힘드셨을까봐…….”
“후후. 마토 배커는 양민 살인이나 즐기던 쓰레기 같은 인간이에요. 오히려 너무 쉽게 불어서 아쉬울 정도더군요, 과거 놈이 해썸 왕국에서 저지른 일들을 살펴보니 어찌나 잔혹하던지.”
(고문 없이)쉽게 불었다.
진과 엔야는 과연 그 말이 진실일까, 거짓일까 상상하다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이제 동료들 중 가장 무서운 사람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알리사를 선택할 것이다.
“그럼 이제 마토는 어떻게 되나요?”
“그건 엔야 양이 알 필요가 없답니다, 하하.”
“네, 넵.”
함께 카시미르의 집무실로 가자 모든 동료들이 모여 있었다.
“자, 다 모였으니 정리하도록 하죠. 진 공자가 사람을 정말 잘 데려왔더군요. 암흑마법회의 본회가 있는 곳은, 놀랍게도 오테리엄입니다.”
“오테리엄?”
“오테리엄이라면, 반켈라의 옛 수도잖아?”
무라칸과 퀴칸텔이 동시에 대답하자 알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반켈라가 동대륙 서남쪽 구석에 위치했던 시절의 수도죠. 오백여 년 전이니, 퀴칸텔 님은 그 시기를 직접 겪으셨겠지요.”
무라칸은 잠들어 있던 시기다. 하지만 알리사의 말대로 퀴칸텔은 당시 반켈라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던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건 아니지만, 워낙 큰 사건이라 꽤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
오백여 년 전, 반켈라는 마족의 침공을 받았다. 건국 이래 반켈라가 대대로 보관해온 마족의 성물, ‘지토의 눈’을 되찾기 위한 침공이었다.
당시 룬칸델과 지플은 중립국 반켈라를 돕고자 동시에 기사와 마법사를 파견했다.
룬칸델과 지플이 힘을 합친 유일한 전쟁으로 기록된 ‘성국수호전’은 결국 반켈라의 승리로 돌아갔으나, 황폐화된 반켈라의 땅은 도저히 재건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반켈라는 대륙 중부로 자리를 옮겨 사실상 새로이 건국되었고, 옛 반켈라의 터전은 아직까지도 미보호 구역으로 남아 마물들의 서식지로 변한 상태였다.
퀴칸텔이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자 무라칸은 그런 일도 있었냐며 하품을 했고.
진은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춰야 했다.
‘리올 지플의 유산. 멸살암천화염옥 최종형의 마법서가 있는 곳이 오테리엄인데 왜 하필 거기 터를 잡고 있냐고, 그 자식들이.’
암흑마법회가 별 상관없이 그곳에 본거지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암흑마법회는 리올 지플에게 몰살당했으니까.
소소하게 악당 소탕이나 할 생각이었는데, 어째 까볼수록 자꾸 예상치 못한 대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놈들이 언제부터 그곳에 터를 잡았답니까?”
“한 오십 년쯤 됐나 봐요. 아무튼, 진 공자 말대로 암흑마법회가 잔당 수준이 아니란 건 확실합니다. 예상대로 롤트 조의 형, 차가운 조 역시 암흑마법회 소속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죠.”
이어 알리사가 마토에게 캐낸 암흑마법회 소속 마법사들의 이름을 읊자, 동료들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비먼트 아카데미의 대원로 훼지론 헨서크, 릴리스타의 가주 수잔 릴리스타, 안즈의 대마도사 추콘 톨더러. 9성급 마법사 중에 확인된 인물은 이 셋, 그 이상은 마토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롤트 조가 제게 죽기 전 암흑마법회 내 자신의 서열이 열 손가락 안이라고 했는데, 열 번째였던 모양입니다. 세상에, 그것들 대체 뭐지? 암흑마법회가 그 정도라면, 본체인 킨젤로는 더 답이 없겠군요.”
이번만큼은 진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저만한 인물들이 암흑마법회에 모이는 이유가 무엇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을 지경.
‘킨젤로와 암흑마법회가 그 정도라는 건 회귀 전에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정보야. 나는 이제야 우연히 알게 됐지만, 본가와 지플은 이미 파악한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
분명 그럴 것이다.
저만한 인물들이 연루되어있는데 룬칸델과 지플, 비먼트가 아무것도 모를 리는 없었다.
왜일까?
이제부터 알아봐야 할 문제지만, 섣불리 움직이기엔 거물이 너무 많다.
‘본가와 지플, 그리고 비먼트가 관망하고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들에게 얻어내야 할 것이 있거나, 함부로 들쑤셔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겠지. 거대 세력들 모두.’
전생에서 킨젤로가 한창 활개를 치던 시기에도 거대세력들은 달리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일단은 킨젤로의 대략적인 규모를 파악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또 충격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죠. 킨젤로는 변신술사를 보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토 배커를 오턴 멜슨으로 완벽하게 변신시킨 게, 바로 부바르 가스톤이라는 인물의 소행이었더군요.”
알리사가 마저 정보를 풀자 카시미르의 눈동자가 커졌다.
진으로서는 기다리고 있던 이야기였다.
“잠깐, 부바르 가스톤이라면…… 예전에 진 공자가 제게 비슈켈 이블리아노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을 때 나온 이름이잖아요?”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비슈켈 그자가 킨젤로 소속일 가능성이 있다더군요.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쿠라노 공국을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한 조각 공방을 찾아갔습니다.
-‘예술은 폭발’이라는 해괴한 이름을 가진 그 조각 공방의 주인은 부바르 가스톤이라는 인물이죠. 그리고 알아본 바, 부바르는 킨젤로의 간부입니다. 그리고 비슈켈은 그를 매주 만나고 있으니 의심이 가는 부분이죠.
과거 진과 나눈 대화를 떠올린 카시미르가 감탄하는 사이, 용들은 ‘변신술’이라는 단어에 집중하고 있었다.
“인간이 대체 어떻게 변신을 한다는 거야? 게다가 타인을 변신시킨다고? 변장이 아니라?”
“그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군. 변신은 우리 용들에게만 허용된 축복인데……?”
“음, 변신 방법이 무엇인지는 마토도 자세히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마취제를 삼키고 기절했다가 깨어나면, 부바르가 변신을 끝내놓는 식이라더군요.”
“저는 마토 이전에 이미 변신한 암살자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폭풍성을 떠나던 날, 수호기사로 변신한 지플 극렬 추종자들이 저를 노렸었죠.”
진이 그때의 일을 꺼내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연회에서 부바르를 반쯤 죽여 놓은 적도 있고요. 제가 가서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그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