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66)
제 111화
56화. 혼돈의 조각가(2)
예전이었다면 동료들도 변신술사의 존재를 인지했으니, 다짜고짜 찾아가서 자백을 받아냈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변신술을 펼치며, 그 능력으로 무엇을 얻으려 하느냐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킨젤로는 상상이상으로 위험한 단체고, 세상의 유일한 변신술사인 그는 킨젤로 내 핵심 인사일 수밖에 없었다.
부바르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을 터.
‘천만다행이지. 언젠가 적당한 때에 부바르를 한 번 손보거나 죽이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과거 칠색조가 ‘부바르는 킨젤로의 간부다’라는 정보를 가져왔을 때도 조금 신기했을 뿐, 필요할 때 부바르를 어떤 식으로든 처리하는 일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뻔했군. 생각 없이 벌집을 들쑤실 뻔했잖아…… 암흑마법회 놈들에게 감사해야겠어.’
사실 부바르를 지금 시점에 만나서 딱히 뭘 할 것은 없다.
다만 한 번쯤 가볍게 접촉해보는 것쯤이야 나쁠 게 없었다.
별다른 기대 없이 찾아간 암흑마법회의 소굴에서도 굵직한 정보들이 쏟아졌으니 말이다.
“공자께서요? 음, 설마 그를 붙잡아 마토 배커처럼 처리하려는 건…….”
“설마요, 알리사 님. 손님으로 위장해 그의 조각 공방을 찾아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오려는 생각입니다. 킨젤로와 암흑마법회. 이 친구들, 보안이 썩 대단치는 않은 것 같아서요. 혹시 압니까? 또 뭔가 정보가 떨어질지.”
킨젤로와 암흑마법회가 이번에 진에게 정보를 흘린 건 사실 그들의 보안이 허술하기 때문은 아니다.
‘마검사 진 룬칸델’이라는 변수를 헤아리지 못했을 뿐.
아카데미 마법사들의 잔당 소탕 작전만 보아도, 진의 전생에서 암흑마법회는 무난히 생도들을 납치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뤘다.
‘꿀은 빨 수 있을 때 빨아야지. 마검사 진 그레이, 혹은 진 룬칸델의 소문이 세상에 돌기 시작하면 그만큼 나를 주시하는 눈이 많아질 테니.’
그때가 되면 정보를 얻는 일이 지금보다는 덜 순탄할 수밖에 없다. 진 룬칸델이 마검사라는 소문이 난 시점엔, 티칸 역시 그의 세력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음, 공자의 뜻이 그렇다면야. 얼굴 한 번 다시 봐둬서 나쁠 게 없기도 하고요. 어차피 킨젤로와 암흑마법회엔 아직 공자의 얼굴을 아는 자가 없을 테고…… 혼자 다녀오실 겁니까?”
카시미르가 묻자 고개를 젓는 진.
“아뇨, 함께하기에 딱 적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 그리고 카시미르 경께서는 칠색조를 시켜 백랑족과 킨젤로의 관계를 파악해주세요.”
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 * *
한편, 비먼트 특임대는 암흑마법회 소탕 작전에서 살아남은 생도들을 데리고 수사에 몰두하고 있었다.
특임대 3조장 라츠와 그의 휘하 대원 셋, 그리고 특임대 마법 1국 3조장 ‘브이’와 휘하 대원 다섯이 이번 수사를 맡았다.
“정말 그자들의 얼굴을 똑바로 기억하는 자가 아무도 없단 말이냐? 파스칼 칩, 너와 킨 마우라, 모즈 오렐은 그들을 현지에서 종자로 들인 장본인들이다. 모른다는 게 말이 될 것 같나.”
“정말 모릅니다, 대원님…….”
“장차 제국을 수호하는 마법사가 될 생도를 스물 가까이 잃었고, 6성 마법사 둘과 7성 마법사 한 명이 죽었다. 바른대로 고하지 않으면 너희들의 가문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사안이란 말이다.”
브이가 나지막이 말하자 세 생도는 어찌할 바를 몰라 질끈 눈만 감았다.
용기를 낸 것은 칩이었다.
“하지만 대원님, 저흰 정말로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마력 역류 때문인지, 기억이 온전치가 않습니다. 생각나는 건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네놈들이 정녕.”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작전에 참가했던 생도는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오히려 저희도 은혜를 갚기 위해 어떻게든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마, 맞습니다, 대원님들. 말씀드렸듯이, 저흰 진 그레이와 오스틴 그레이라는 이름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혹 찾게 된다면 저희에게도 소식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 셋뿐만이 아니라, 다른 생도들도 비슷한 마음일 겁니다. 자랑스러운 아카데미의 생도들은 예로부터 은혜를 잊는 법이 없습니다…….”
라츠와 브이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생도들 모두가 이런 식이었다. 뭔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한데, 모두가 입을 닫으려고 하는 것이다.
마우라, 오렐, 칩의 경우는 순수하게 은혜를 갚겠다는 마음과, 특임대 사칭범들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들켜봤자 좋을 게 없기 때문에(물론 진에 대한 공포가 더 크기도 했다) 입을 닫은 것이지만.
다른 생도들은 사정이 좀 달랐다. 역천을 경험한 생도들 사이에선, 벌써 ‘역류의 키다드가 지옥에서 돌아왔다’는 낭설이 나도는 중이다.
마법사들에게 키다드의 악명은 특임대와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 생도들은 몰라도, 그들의 부모 세대는 키다드를 직접 겪어본 이들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부모들이 직접 함구령을 내렸다.
어차피 키다드의 재림인지, 제자인지 모를 자는 생도들이 아닌 암흑마법회만 사살했으므로, 특임대가 기를 쓰고 추적할 이유까지는 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
키다드에게 원한을 사느니, 특임대를 조금 서운하게 하는 게 낫다.
생도들의 부모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실제로 부모들이 보기에 특임대가 추적, 단죄해야 할 대상은 키다드가 아니라 암흑마법회이기도 했다.
“후우, 폐하께서 생도들을 절대 고문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더 윽박지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생도들이 저러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고요. 충격이 컸겠죠. 라츠 조장,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생도들이 물러가자 브이가 말했다.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진 그레이라는 자는 키다드의 제자, 혹은 본인이다. 그게 아니고서는 반켈라 영원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역천의 마법서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그건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처음 키다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암살자에게 당했다고만 생각했는데 말이죠. 각국 소식지에서도 역천은 아직 반켈라의 영원창고에 있다고 기사를 내보냈으니…….”
“진 그레이가 키다드 본인이라는 가정 하에서는, 변신술사의 도움을 받았다는 가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진 그레이에게 살해당한 척, 신분을 세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 특임대 1, 3조가 추적하고 있다는 그 정체불명의 변신술사…… 흐음, 그렇다면 백랑족을 벤 것은 오스틴 그레이 쪽인가.”
라츠는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사건 현장을 둘러보았다.
‘오스틴은 진 그레이와 달리 체구가 작고, 어울리지 않는 콧수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걸걸한 편이었다고 그랬지. 추정 나이는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 사이.’
칩, 마우라, 오렐이 아닌 다른 생도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랬다. 부모가 함구령을 내렸다 할지라도, 특임대를 상대로 완전히 입을 닫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시간이 좀 흐른 탓에 골텝의 시신 절단면은 다소 뭉개졌으나, 그가 사용한 망치는 그렇지 않았다. 라츠는 한동안 완벽하게 두 조각난 망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단테 하이란.’
문득 라츠가 떠올린 이름 하나.
‘체구가 작고, 목소리가 걸걸하며, 백랑족의 망치를 저토록 완벽하게 동강낼 수 있는 소년이라면…… 내가 아는 선에선 단테 하이란이 유일하다. 하이란 가를 한 번 찾아가봐야겠군.’
그러나 그날 밤, 동강난 망치를 챙겨 하이란 가를 찾은 라츠는, 단테에게 직접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나는 아직 이걸 이렇게 깔끔하게 벨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라츠 경. 절단면을 보니 8성 기사에게나 가능한 수준 같군요. 그나저나, 암흑마법회를 몰살시킨 게 누구라고요? 진 그레이?”
덕분에 단테는 베라딘과 할 말이 늘었고, 다음에 진을 만날 때 물어볼 말도 늘게 되었다.
* * *
1796년 10월 30일.
진은 부바르를 만나러 쿠라노 공국으로 가는 길에, 굳이 콘 제후국의 이동 관문을 경유했다. 그리곤 베라딘, 단테와 헤어지기 전 맥주를 마신 주점에 들러 혼자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점심 즈음 콘 제후국 중부 이동 관문에서 쿠라노 공국 행 표를 구매했다.
정오의 이동 관문은 여행길을 떠나는 귀족들과 사업차 출장을 떠나는 이들로 북적북적하다. 진은 안경 쓴 얼굴에 검을 차지 않고, 장갑으로 굳은살 가득한 손을 가려 전자처럼 보였다.
“손님 여러분, 15분 뒤 이동 관문이 개방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모두 자리에 앉아 대기해주시길 바라며…….”
안내원들이 승객들을 점검하며 돌아다니는 사이. 도각, 도각. 가벼운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요즘 콘 제후국에서 유행하는 굽 낮은 구두에서 날 법한 소리였다.
“가방 좀 치워줄래요? 여기, 제 자리거든요.”
이내 진 앞에 걸음을 멈춘 발소리의 주인이 말했다. 화려한 붉은 머리에 정장을 차려입은 그녀를 올려본 진이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아, 네. 미안합니다.”
잠시 후 이동 관문이 개방되며 승객들이 마력의 빛에 휩싸였다.
진은 내리자마자 각종 공방이 자리 잡은 거리를 찾았다.
부바르의 조각 공방은 공방이 모인 거리가 아니라, 수도 외곽 지역에 홀로 떨어져 있지만 일부러 그런 것이다.
행여 킨젤로의 의심을 살지도 모르는 일이니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
괜히 이 공방, 저 공방을 저녁까지 들락거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공방 주인들에게 가장 뛰어난 조각가에 대한 정보를 물었더니, 놀랍게도 거의 모든 이들이 부바르의 이름을 꺼냈다.
“어느 가문의 도련님인지 모르겠으나, 진짜배기 천재 조각가를 찾고 있나 보군.”
“제가 아주 존경하는 분의 흉상 제작을 요청하려고 하다 보니…….”
“마을 서쪽 구석에 부바르 가스톤이라는 인물의 공방이 있소, 그곳을 찾아가보시오. 부바르의 실력마저 부족하다고 여긴다면, 쿠라노에는 당신이 만족할 만한 조각가가 없다는 뜻이오.”
“사실 쿠라노에 이름난 조각가를 좀 알아보고 온 길인데, 그런 이름은 처음 듣는군요. 부바르 가스톤? 비먼트 예술 학회지에서도 거론된 적이 없는 이름 같습니다만.”
“유명하다고 가장 뛰어난 건 아니잖소? 부바르, 그자가 성격만 멀쩡했다면, 공왕의 직속 조각가가 됐을 거요. 어쩌면 비먼트 황제의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고.”
“그 정도로 대단합니까?”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부바르에게 조각의 신이 깃들었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지. 쯧, 그 괴상한 자에게 하늘은 왜 그런 재능을 내린 건지 모르겠군. 죽이고 싶을 만큼 부럽소!”
“하하, 진정하시죠. 조각의 신이라…….”
“당신은 외부인이니 잘 모를 테지만, 원래 쿠라노의 공방 거리는 이것보다 두 배쯤 더 길었소. 부바르가 등장한 이후 그의 조각을 보고 좌절한 조각가들이 예술을 접어서 짧아진 거지.”
“허.”
연회장에서 본 부바르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으나, 적어도 이곳 조각가들 사이에선 천재 중의 천재로 치부되는 모양이었다.
‘변신술과 조각술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진이 부바르의 조각 공방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 어둡고 한적한 숲길에 이르자, 나지막이 이런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제 나와도 괜찮지 않을까요? 요나 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