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25)
제 222화
73화. 무라칸의 은인(2)
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다행이었다. 똑같은 방식으로 제압하면 그만이니까.
스릉!
앞에 있던 성기사가 반사적으로 검을 뽑은 순간, 퀴칸텔의 주먹이 먼저 그의 안면을 가격했다. 빠각! 투구가 우그러지며 핏물이 튀었고, 그는 그대로 기절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쿠잔도 당황하지 않고 똑같이 갑옷 이음새를 찔러 상대를 마비시켰다.
“오자마자 성기사 넷을 해치웠군.”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퀴칸텔 님.”
진이 쓰러진 성기사들을 배수로에 감추며 말했다. 꼭 시신처럼 보였으나 죽은 건 아니었다.
다행히 쪽문 바로 안쪽에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 양민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도시 중심부를 이미 봉쇄해둔 결과였다.
세 사람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거리로 진입해 한시라도 빨리 무라칸의 소식을 확인해야했다.
쪽문 안쪽으로 조금 들어서자 순찰 중인 성기사들이 꽤 많았다. 제트의 보고대로 숄 제후국 병력은 없었으며, 온통 교리수호 여명회처럼 극단적이고 권위적인 인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진 일행이 그들의 눈을 피해 중심부로 무난히 잠입하고 있는 이유는 실력이 뛰어난 것도 있었으나, 거리가 무척 시끄럽고 번잡하기 때문이었다.
카둔이 남기고 간 불꽃에 건물이 타들어가고 무너지는 소리는 물론이고.
온통 곡소리와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아이고, 아이고오……! 전투에 가족과 친지를 잃은 이들이 길마다 쓰러져서 오열하고 있었다.
아직 수습되지 않은 시신들도 곧잘 눈에 띄었다. 성기사들이 무정한 눈빛을 투구로 가린 채 수레에 시신을 던졌다.
대부분이.
아니, 하나도 남김없이 시체는 모두 불에 타서 죽은 이들이었다. 온몸이 새카맣게 타서 신원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천지였다.
아직까진 영기가 사용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끔찍하군요.”
“카둔을 비롯한 화룡들은 원래 인간 따윈 신경 쓰지 않아. 특별한 인간이 아닌 한, 벌레나 다름이 없지. 대부분의 용들이 인간을 하등한 생물로 보긴 하지만, 화룡들은 특히 더 그런 편이다.”
하지만 저 시체들에 무라칸의 잘못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진의 뇌리를 스치는 순간, 퀴칸텔이 꿰뚫어본 듯 뒷말을 이었다.
“그 녀석은 적어도 제 목적을 위해 이유 없이 인간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부류는 아니야.”
진은 대답 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진입하면 진입할수록 시체가 늘어나고 있었다. 아예 산처럼 쌓아둔 채, 신관들이 둘러싸고 위혼곡을 부르는 광경도 적잖이 찾아볼 수 있었다.
어림잡아도 사망자가 최소 오천은 될 것 같았다. 산텔 정도 규모의 도시에는 괴멸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는 피해였다. 도시 거주민 중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고 봐야 할 테니 말이다.
시신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적은 수의 부상자들도 쉴 새 없이 신음과 비명을 토하고 있었다. ‘성자’라 불리는 반켈라의 치유사들이 그들에게 붙어 진땀을 쏟았다.
그러나 모든 성자가 치유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행은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공자님, 도시 분위기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진. 퀴칸텔 역시 같은 마음으로 성자들을 살폈다. 치유술을 펼치고 있는 이들이 아니라, 설교 비슷한 것을 늘어놓는 성자들이었다.
“지금 도시 앞 평야에선 아직도 화룡이 마물과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하고 유순한 백성들이여, 하늘의 심부름꾼들이 왔으니 두려워 말고 절망하지 말 것이며…….”
“우리의 부모, 형제, 자매, 자녀를 죽인 그 증오스러운 마물은 화룡의 손에 곧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다 함께 기도합시다, 신께서 화룡을 굽어 살피시며…….”
도시 앞 평야에서 계속 싸움이 이어진다는 것은 분명 거짓말이었다. 진과 동료들이 방금 그곳을 지나쳐 도시로 들어온 것이다.
바깥엔 몇몇 기자와 그들을 가로막는 성기사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성자의 앞에 쭈그려 앉은 양민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모양새였다.
“기도합시다!”
“아아아!”
심지어 성자의 말도 안 되는 선동에 감동받아 쓰러지는 이들도 있었다.
한쪽에선 치유를 하고, 한쪽에선 덜 다친 이들을 상대로 선동을 하고, 도시는 꽉 틀어막고. 반켈라에서 온 이들은 뻔해도 너무 뻔한 짓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양민들이 바보라서 성자들의 선동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을 잃은 충격과 슬픔에 정신이 무너질 것 같은 와중, 성자들 특유의 ‘설파술’에 세뇌되고 있는 것이다.
성자들은 ‘신성력’이라 주장하지만, 진을 비롯한 대다수의 마법사들은 그것이 마안의 일종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옛 정신계 마법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설파술은 주로 이럴 때, 설교와 전도를 위해 사용되고는 했다.
성자의 눈동자에 깃든 은은한 노란빛이 설파술이 발현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죽은 이들도, 살아있는 이들도, 모두 기도의 힘으로 묶여 우리는 혼자가 아니게 될 것이며! 사명을 이룬 이들은 평화를 얻게 될 바……!”
설파술은 정신력이 강한 이들에겐 전혀 소용이 없으나, 지금처럼 충격에 빠진 양민들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었다.
“현 성왕은 분명 성자들의 설파술 사용을 엄격히 금지했을 텐데, 죄다 설파술을 쓰고 있군.”
설파술을 사용하는 성자는 ‘이단’으로 분류하겠다고 공표까지 했던 게 바로 현 성왕 ‘미클란’이었다.
그동안은 편의와 관습에 의해 계속 사용되었으나, 설파술은 분명 교리와 성국이 추구하는 선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카둔이 저지른 학살을 마물에게 덧씌우려는 선동이로군. 무라칸이 마물이 맞다면, 내 생각엔 카둔에게 잡히지는 않은 것 같구나.”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퀴칸텔 님. 잡혔다면 이 난리를 칠 이유가 없으니까요.”
무라칸으로 추정되는 마물은 도망쳤고, 카둔은 그걸 급히 쫓느라 도시에 뿌린 불꽃을 회수하지 않았다.
진과 퀴칸텔은 동시에 같은 상황을 유추했다. 만약 잡혔다면 카둔이 도시에 퍼진 불꽃을 거두고, 마물을 죽인 공로로 지플의 이름까지 빛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왜 저것들이 성왕의 엄명을 어겨가면서까지 지플을 돕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는 있겠어.’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미루어보면, 반켈라는 더 이상 ‘중립국’이 아니었다.
설파술이라는 금기까지 사용해 지플을 돕고 있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허락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에 대한 고민보다 무라칸을 찾는 게 시급했다.
“슬슬 기회를 봐서 양민들하고 대화를 좀 시도해보죠. 마물이 무라칸이 확실한지만 확인하고 떠나야겠습니다.”
생각보다 양민들과 접촉할 만한 기회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선동에 빠진 양민들과는 대화해봐야 의미가 없을 거고, 오히려 수상하다며 성자에게 보고될 가능성이 높았다.
다시 이동하려는 찰나, 한 성기사가 일행의 앞쪽에 있던 성자를 찾았다. 그러고는 귓속말로 뭔가를 알린 후, 재빠르게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
“……선하고 유순한 백성 여러분! 방금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어떤 간악한 무리가 도시로 침입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즉시 우리 심부름꾼들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순찰을 돌고 있는 성기사들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대로 위주로 이탈한 양민들만 살폈으나, 이제는 골목과 건물 틈새를 살펴보기 시작한 것이다.
빠르게 자리를 뜨고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양민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나 성기사나 성자, 혹은 화재를 진압하는 마법사들이 있었다. 그들과 따로 떨어진 양민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지경.
가장 큰 문제는, 산텔에 대기 중인 성기사가 그들이 예상했던 숫자를 훨씬 웃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젠장, 거리가 온통 성기사로군. 대체 몇 명이야? 이대로라면 숨어 다니는 것도 곧 한계다, 진.”
“피곤하게 됐군요, 쪽문을 뚫을 때부터 예상한 일이긴 하지만.”
끼익…… 쿵-! 끼이익……!
멀리서 모든 관문의 이중 잠금장치가 굳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의 성기사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소리를 질러대며 거리를 뛰었고, 성자들은 양민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었다.
“여기다!”
골목을 지나자마자 일행을 마주친 한 성기사가 소리를 질렀다.
도시를 온통 시뻘겋게 물들인 불꽃과 번잡한 분위기는 일행을 지금껏 잘 숨겨주기도 했으나.
반대로 일행 역시 평소보다 감각이 떨어진 상태였다. 심안이 발현되었어도 이 난리 속에서는 근처에 움직이는 수백 명의 기운을 다 정확히 감지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골목이 꺾이는 지점에서 성기사와 마주치기 전에 방향을 꺾지 못한 것이다.
소리친 성기사 뒤로 다섯 가량의 성기사가 더 있었다. 교리수호 여명회, 이단 심판자들답게 그들은 빠르게 나팔을 불고 신호탄을 쏘아 수색 대상을 발견한 것을 알렸다.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다섯이 아니라 오십, 혹은 대장급 이상이 섞여 있었다면 일행도 신중하게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명회 2급 기사 다섯 따위가 일행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퀴칸텔과 쿠잔이 각각 둘씩 맡고 제압하려는 사이, 진이 시그문드를 뽑았다.
콰지직-!
성기사 다섯이 진을 짜기도 전에 평식 벼락을 떨궜다. 어차피 나팔과 신호탄에 위치가 노출되었으니, 벼락을 펼쳐 빠르게 정리하고 이동하는 게 나았다.
5초 사이에 열 개의 벼락을 떨궈 넷을 제압했다.
물론 진은 다섯 모두를 제압할 생각이었다. 벼락에 당하지 않은 한 사람은, 분명 명왕검을 처음 겪는 것일 텐데도 침착하게 보법을 밟았다.
진의 기준에서도 상당한 실력자라는 뜻.
그러나 그 성기사는 왜인지 검을 뽑지 않고 있었다.
처음 진 일행을 본 순간에도 나머지 넷이 즉시 검을 뽑고 소리를 지를 때, 그만이 마땅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퀴칸텔과 쿠잔이 그 성기사에게 함께 달려들려는 순간.
“잠깐, 잠깐만요!”
돌연 성기사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반켈라 내, 유일한 극렬 집단이나 다름없는 교리수호 여명회의 기사라고는 믿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뭐냐?”
“저는 교리수호 여명회 2급기사 라니 살로메라고 합니다. 당신들, 제가 보기엔 이단이 아닌 것 같은데.”
“뭐?”
“이단 아니죠? 대답해주세요.”
갑작스러운 질문.
하지만 투구 속 눈빛이 너무나 진중해서, 진은 그냥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저는 이단이 아닌 자에겐 절대 검을 뽑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그 미친 화룡과 싸운 흑룡과 관련이 있습니다. 맞습니까?”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자신을 라니라 밝힌 성기사는 ‘마물’이 아니라 흑룡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미친 화룡이라니, 카둔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게 느껴졌다.
철컥, 철컥, 철컥-!
뒤쪽 골목에서부터 또 다른 성기사들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몇 초 뒤면 그들이 서 있는 골목에 도착할 것이다.
“일단 날 따라오세요. 내 동료들에게 붙잡히면 당신들은 살아나갈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