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24)
제 222화
73화. 무라칸의 은인(1)
무라칸은 떠나기 전, 길리에게 준 편지와 더불어 자신의 대략적인 이동 경로를 그린 종이 한 장을 남겼다.
여정 중 문제가 생겼을 때 동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표식’을 남긴 지역 목록을 기록한 종이였다.
칠색조는 사흘 간격으로 무라칸의 표식을 확인하고 있었고, 1797년 11월 20일, 크라시 산맥 인근에 있는 ‘산텔’이라는 도시에서 한 용과 마물이 전투를 펼쳤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크라시 산맥은 무라칸이 표식을 남긴 지역 중 하나였다.
“나으리! 뭔가 이상합니다요. 무라칸 님이 크라시 산맥에 표식을 남긴 걸 저희가 확인한 직후, 산텔에서 한 화룡과 마물의 큰 싸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마물이 온통 시커멓고, 날개가 달린 데다 거의 용처럼 생겼다고…….”
“화룡과 싸웠다는 그 마물이 무라칸일 수도 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요.”
“왜? 표식을 남긴 직후에 전투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그렇지만, 지금 산텔이라는 도시는 난리가 났습니다. 칠색조 대원들이 진입해서 더 정보를 캐내려고 해도, 온통 통제 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도시는 불바다가 됐고요. 그런데 기사 한 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요!”
그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크라시 산맥 인근이 오지나 다름없다고는 하지만, 인근 도시가 통제될 정도의 전투가 있었다면 곧장 기사가 나와야 정상이었다.
칠색조는 도시가 완전히 봉쇄되기 전에 현지인들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외부 언론 중에는 이 사건을 다루는 곳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마물이 용을 닮았다는 것도 간신히 얻은 정보입니다. 두 시간만 늦었어도 현지인들을 못 만났을 겁니다. 제 생각엔 무라칸 님이 확실합니다요.”
언론 통제는 거대 세력들의 특권이다.
게다가 화룡이라니. 느낌이 좋지 않았다.
“화룡에 언론 통제. 공자, 딱 봐도 지플 측에서 손을 쓴 것 같습니다.”
“……지플과 함께하는 화룡이라면, 켈리악의 수호룡인 카둔밖에 없잖아요?”
엔야가 걱정스러운 듯 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제트가 보고를 올리기 시작한 이후, 동료들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제트.”
“예, 퀴칸텔 님.”
“도시를 습격한 화룡에 대한 정보가 더 있느냐? 생김새나 전투 당시 보여준 무위라든가.”
“다른 용에 비해서도 굉장히 거대한 편이라는 것만 확인되었습니다요.”
하…….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는 퀴칸텔.
“카둔이 맞군. 진, 아무래도 그 녀석이 습격당한 것 같다. 생각이 짧았다, 녀석을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어. 비먼트에 날 처음 찾아왔을 때부터 분명 지플은 녀석을 노리고 있던 거라고.”
벌떡 일어선 퀴칸텔의 눈동자가 불안으로 젖어 있었다.
카둔은 무라칸이 전성기였던 시절에도 껄끄러운 상대였다. 지금처럼 옛 힘을 잃은 상태로는 상대조차 될 수 없을 만큼 강한, 화룡의 왕.
퀴칸텔은 무라칸이 카둔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확신을 갖자마자 미친 듯이 불안해진 것이다.
“진정하세요, 퀴칸텔 님. 일단 무라칸이 죽지 않은 건 확실합니다. 계약자인 제가 아무것도 느끼질 못했으니까요.”
“젠장! 카둔이 무라칸을 제압했다면, 죽이지 않은 게 당연해. 죽이면 솔더렛의 다음 계약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날개를 찢어서 감금했거나, 마약에 절여놨을 거라고. 게다가 놈들은 솔더렛의 계약을 원하고 있으니, 그걸 이용해 계약자인 널 찾으려고 할 거다.”
안드레이와 일전을 벌인 날, 그가 내뱉은 말이 진의 뇌리를 스쳤다.
-이 기습은 칭찬해주지. 그러나 너와 너의 신은 마신석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될 것이다…….
마신석의 가장 중요한 재료.
지플에게 ‘솔더렛의 힘’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안드레이는 그날 뷰렛타와 함께 사망했으나, 지플이 ‘흑룡이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던 순간은 많았다.
예비 기수가 되어 검의 정원을 떠나며 무라칸을 탔던 날, 비먼트에 퀴칸텔을 찾아간 날, 묘지 거인을 죽인 일, 콜론 유적지 등등.
루테로 마법 연방이 아니어도, 지플의 정보통이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전해질 수 있는 소식들이었다.
‘퀴칸텔 님의 말대로, 어쩌면 놈들은 예전부터 무라칸과 나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미샤를 만나려면 꼭 혼자 움직여야 한다고 무라칸이 고집을 부린 결과이긴 했다.
어쨌거나 후회는 무라칸을 되찾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정확한 판단력과 신속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나으리, 이상한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요.”
“무엇이냐?”
“성국 반켈라는 중립국이지 않습니까? 저와 다른 대원들도 언론 통제는 지플이 하고 있다고 판단을 내렸는데, 어째 도시를 봉쇄하고 있는 건 반켈라의 성기사들입니다요.”
산텔은 ‘숄 제후국’에 속하므로 성국 반켈라의 땅이 아니었다.
“전투는 카둔과 무라칸이 펼쳤고, 언론 통제는 지플이 하고, 도시 봉쇄는 성기사들이 하고 있다?”
“예. 정작 숄 제후국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성국 반켈라가 도시 복구와 양민 구제를 위해 각국 피해 지역에 성기사와 치유사를 파견하는 건 흔한 일이나, 지역을 봉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건 해당 지역의 군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혹 그만한 군사력이 없다면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쪽이 맡는 게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진과 동료들은 당연히 지플이 통제하고 있을 줄 알았다.
“심지어 거길 들어가려던 칠색조 대원들, 그리고 우연히 냄새를 맡고 달려온 다른 기자들을 내쫓는 태도가 엄청나게 고압적이었습니다요. 무슨 이단자들 상대할 때처럼 말입니다.”
“네 말은 그럼, 성국이 지플의 편의를 돕고 있다는 것이냐?”
반켈라는 역사를 통틀어 누구의 편에도 선 적이 없는 국가였다. 진의 전생에서도 중립을 유지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와 대원들은 일단 그렇게 판단을 내렸습니다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산텔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는, 무엇 하나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길리가 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눈을 맞췄다.
“도련님, 그렇게 쉽게 당할 분이 아닙니다. 너무 걱정 마시고 얼른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쩌면 무라칸 님이 아니라 정말 날개 달린 마물일지도 모르고요.”
말은 그렇게 했으나 어깨에 닿은 길리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진이 더 심란해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중이었다.
진과 길리에게 무라칸은 동료를 넘어 가족인 것이다. 누군가 잘못되면, 차라리 그게 자신이길 바라는.
“카시미르 경. 혹 칠색조가 반켈라 측에 형성해둔 라인이 있습니까?”
“저와 브란이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신관들이 몇 있습니다.”
“경은 그럼 반켈라 쪽을 살펴봐주십시오. 산텔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왜 성국이 지플의 일에 관여하고 있는 것인지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 * *
진과 퀴칸텔, 그리고 쿠잔.
산텔에 직접 간 것은 그렇게 세 사람이었다. 이동관문이 산텔까지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숄 제후국에서부터 슈리를 타고 달려 꼬박 하루가 걸렸다.
직접 와서 살펴본 산텔은, 예상보다도 삼엄한 분위기 속에 통제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선혈처럼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확실해, 저건 카둔의 불꽃이다. 저렇게 진한 불을 사용할 수 있는 화룡은 그놈밖에 없어.”
퀴칸텔이 절벽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도시 내부에 마법사들과 성기사들이 불길을 잡고 있는 광경도 보였다.
양민들은 전부 불길이 잡힌 일부 구역에 모여 있었다.
기이한 풍경이었다.
반켈라는 재해, 전쟁 등의 상황에 언제나 양민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당연히 도시가 여전히 불타고 있으니, 양민들을 우선 바깥으로 내보내는 게 옳았다.
그런데 중갑을 입은 성기사들이 입구를 꽉 틀어막은 채 출입을 완전히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더 생각할 것이 없었다.
숨겨야 할 것이 있으니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누설되면 안 되는 정보가 있는데, 목격자가 너무 많은 경우일 가능성이 높았다.
“카둔이 도시에 남아 있진 않은 것 같군요. 그랬다면 마법사와 성기사들이 불을 대신 끄고 있을 필요는 없을 테니. 일단 도시로 진입해보죠.”
산텔은 평야 위에 덩그러니 놓인 도시였다. 경계병과 성기사들의 눈을 피해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다행히 아직 근처에 남아 진입 기회를 엿보는 기자들이 좀 있었다.
일행은 절벽을 내려서자마자 그들 사이에 섞여 도시로 접근했다. 그것이면 도시 안으로 들어서는 일에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일행이 돌파하기로 선택한 곳은 도시 좌측의 쪽문이었다. 그곳은 중앙 관문보다도 분위기가 험해, 기자들조차 자리 잡지 않은 곳이었다.
“물러서라.”
“후드를 벗고 신분을 밝혀라. 두 걸음 이상 더 다가오면 베겠다.”
쪽문을 가로막고 있는 성기사들이 일행을 보자마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그들은 일행이 오기 전에 기자 몇을 벤 듯, 흙바닥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중갑에 그려진 저울 문양이 성기사들의 직책을 알리고 있었다. 성국에서 유일하게 악명이 자자한, 이단 심판 소속 ‘교리수호 여명회’의 2급 기사들이었다.
결코 이런 한적한 도시나 봉쇄할 인물들이 아니라는 뜻.
‘교리수호 여명회 기사들이라…… 지플도, 성국도. 이번 일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군.’
그러나 이쪽은 가족의 생사가 걸려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만큼은 명분을 만들어가며 복잡하게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신분을 속이거나, 매수를 하거나 하는 등 시간이 필요한 작업을 할 때가 아니었다.
‘쿠잔.’
스릉-!
진이 눈짓을 보내자, 쿠잔이 안광을 번뜩이며 단검을 뽑았다. 칼날에 미리 제조한 마취독이 도포되어 있었다.
“침.”
입자다!
성기사들은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동시에 달려든 쿠잔과 퀴칸텔이 단 일격에 그들을 제압한 것이다.
쿠잔은 단검으로 중갑의 이음새를 정확히 찔러 상대를 마취시켰고, 퀴칸텔은 완력으로 투구를 열어젖힌 다음 쿠잔이 준 독을 먹였다.
성기사들이 선 채로 마취되어 굳어버린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퀴칸텔과 쿠잔이 성기사들을 벽에 기대 세워놓는 사이, 진은 문틈으로 검을 휘둘러 안쪽의 빗장을 베어버렸다.
빠르면 3분, 늦어도 10분이면 쪽문이 뚫린 사실이 알려질 터.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 안에 현지인을 만나 마물의 생김새가 무라칸과 정확히 일치하는지, 그가 영기를 사용했는지, 카둔과의 전투가 어떻게 끝났는지를 알아내면 될 일이었다.
끼익-!
그러나 쪽문이 열린 순간, 일행은 두 명의 새로운 성기사를 마주해야만 했다. 하필이면 정확히 근무를 교대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