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44)
제 222화
77화. 악역(2)
스겅-!
사람의 목이 베이는 날카로운 소리가 일었다. 그리고 툭, 비투라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라니는 검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일순 멈춰있었다.
길어야 1초, 혹은 그 절반. 그러나 동작을 끝낸 이후의 그 짧은 시간이 라니에겐 꼭 영원처럼 느껴졌다.
‘아…… 비투라 경.’
그 영원이 지나가지 않기를 바랐다.
이대로 모든 것이 멈춰버리기를 바랐다.
이제부터 그녀가 애도해야 할 것은 아율라의 자녀들을 위해 자신을 불사른 사내가 아니라, 지플의 추악한 꼭두각시이기 때문이었다.
프하악……!
비투라의 목에서 뿜어진 뜨거운 선혈이 그녀의 얼굴을 적셨다. 몇 방울은 눈동자로 튀었다. 접힌 눈꺼풀 사이로 피와 눈물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아버지!”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치며 가짜 성왕을 바라보는 라니.
그러나 그녀가 부르는 아버지는, 아마 아율라의 품에 있을 진짜 성왕 미클란을 향한 것이었다.
“아버지, 아버지! 안 돼,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요. 아버지, 정말 왜 이래……!”
라니가 몸을 던져 가짜 성왕을 끌어안았다. 즉시 신성 치유 마법을 펼쳤지만, 가짜 성왕의 목에 난 구멍은 인간의 능력으로 어쩔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비투라가 확실히 끝장을 낸 것이다. 땅에 떨어진 가짜 성왕의 휴화산 왕관이 피에 젖어있었다.
철과 철이 부딪히는 파열음, 성기사들의 기합과 비명, 불안에 젖은 사람들의 탄식이 어지럽게 퍼지는 가운데.
라니의 처절한 외침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충신, 배신자, 신민. 가릴 것 없이 모두 라니의 목소리에서 불길한 직감을 받았다.
성왕이 가짜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에게도, 모르는 이들에게도 이 죽음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폐하, 폐하가 쓰러졌다!”
“총대장 비투라 벨터가 폐하를……!”
“성자들은 당장 폐하를 치료하라!”
성자들을 찾은 것은 여명회의 대장 중 하나였다. 가짜 성왕이 죽은 걸 알면서도 그렇게 소리친 이유는 행렬에 있던 성자들 역시 지플의 개들이기 때문이었다.
비투라와 가짜 성왕이 사망한 이상, 지플의 충견들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생체 골렘 실험 생존자들을 확보해야 했다.
지플의 발목을 잡을 최악의 증거를 처리해야, 차후 성왕 시해에 대한 책임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성왕이 사망했으니, 지플은 분명 확실한 공을 세운 이들만을 비호해 줄 터였다.
“비켜라, 비켜! 폐하를 살펴야 한단 말이다!”
마차의 뒤쪽 행렬에 있던 성자들이 전장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짜 성왕의 죽음을 목격한 신민들이 폭주하기 시작한 탓에 혼란만 가증되었다.
라니의 앞쪽에선 계속 황금방패회와 교리수호 여명회의 성기사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여명회! 이단자들을 전부 생포하라!”
라니가 가짜 성왕을 품에 안고 흐느끼는 연출을 끝낸 것은 바로 그때였다.
“황금방패회! 무슨 일이 있어도 여명회의 손에 이들을 넘겨선 안 됩니다. 비투라와 여명회가 반역을 저지르면서까지 이들을 죽이려 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라니 살로메, 반역이라고 했느냐! 네년이 지키지 못한 탓에 폐하께서 변을 당하셨다. 누구더러 반역자라고 소리치느냐, 이 찢어 죽일!”
“황금방패회의 성기사들은 라니 살로메의 말을 따라라. 역도들을 막아! 라니의 근처에 있는 신민들을 보호해라!”
황금방패회의 충신들이 대열을 가다듬었다. 비투라가 고르고 고른 인물들인 만큼, 끔찍한 난전 속에서도 결속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황금방패들이여, 잘 보아라. 네놈들 하는 짓이야말로 역도 그 자체다. 신민들은 둘째치더라도, 최소한 성자들이 폐하를 살펴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하는 것 아닌가? 폐하께선 아직 살아계실지도 모른다. 치료를 못 해 돌아가신다면 네놈들은…….”
“폐하께선 비투라 벨터의 비수에 당해 서거하셨고, 그자의 명을 따랐던 네놈들은 폐하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쳐라!”
수적인 열세가 있으나, 황금방패회는 교리수호 여명회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초조한 쪽은 황금방패회였다.
드드드……!
광장 바깥에서부터 땅울림이 전해지고 있었다.
중장갑을 입은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토록 극단적으로 치달았으니 당연한 수순이었고, 모두 지플의 하수인이었다.
‘꼬마.’
인파 속에 섞여있던 무라칸이 진을 속삭여 불렀다.
‘어.’
‘종교쟁이 쪽이 못 버틸 것 같으면, 우리가 나서야 하나? 저 녀석이 잘못되면, 내가 은혜를 갚기로 한 건 물론이고 비투라의 희생도 물거품이 된다.’
‘그럴 일 없어.’
‘저것들을 종교쟁이가 어떻게 막아?’
‘못 막지. 성국에 라니를 도울 이들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면.’
진이 대답하자마자 또 다른 교리수호 여명회의 성기사들과 병사들이 도착했다.
얼핏 보기에도 성기사만 백 명이 넘었고, 양민 통제를 위한 병사들의 행렬도 결코 짧지 않았다.
“역도들은 사살하고, 라니 살로메와 이단자들은 생포하라!”
새로 도착한 대장이 그렇게 소리치자 성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돌파대열을 짰고, 병사들이 창대로 신민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신민들도 이 상황은 납득할 수가 없거든. 바보가 보기에도, 반역을 일으키고 있는 쪽은 분명 교리수호 여명회니까.’
단지 교리수호 여명회와 황금방패회의 대치만 있었다면 모를까.
비투라가 가짜 성왕을 죽인 것이 결정적이었다.
“폐하의 따님을 지켜야 하오!”
“라니 경은 안 된다! 폐하를 해한 것도 모자라, 라니 경까지 어쩔 셈이냐! 이 더러운 지플의 앞잡이 놈들이……! 아율라께 부끄럽지도 않더냐!”
“막아, 몸으로 막아요!”
돌연 광장에 있는 신민들이 전장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평소 신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성왕 부녀였다. 신민들의 입장에서 여명회는, 축제날 딸이 보는 앞에서 아비를 죽인 천하의 죽일 놈들이었다.
또한 라니와 황금방패회는 사건이 시작되고 시종일관 상식적이고, 납득 가능한 행동만을 보인 반면.
여명회는 노골적으로 생존자들을 붙잡으려는 모습만 보였다. 심지어 사망한 것이 분명한 성왕을 치료하겠다며 길을 열어달라는 헛소리까지 해대면서 말이다.
-지플과 킨젤로가 성국의 수뇌부를 완전히 장악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이 신민들까지 전부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니오. 놈들의 동맹이 깨지면서, 신민들을 우민화하려는 시기가 늦춰진 덕이지.
-반드시 신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야겠군요.
-내 아주 실감나게 나쁜 놈이 되어보겠소.
어젯밤 진과 비투라가 나눈 대화.
진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전생에선 이 시기에 이미 신민들의 우민화가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폐인이 된 라니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라니와 비투라는 외로운 싸움에 지쳐 성국을 포기했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진 때문에 역사가 바뀌었다. 진실을 밝힐 조건이 완전히 충족된 채로.
“무슨 짓들이냐! 이단자를 감싸는 게 얼마나 큰 중죄인지 모르지 않을 터, 비켜라! 비, 비키라고 경고……!”
기세 좋게 소리치던 여명회 대장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지원 온 여명회 성기사들을 가로막고 있는 신민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광장을 가득 채운 신민들 모두가 라니를 위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창대를 들이밀던 병사들은 오히려 밀려나고 있었고, 성기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같은 말만 반복했다.
“비키란 말이다!”
강림제가 아닌 다른 날이었다면 죄 없는 신민들의 피를 뒤집어쓰면서라도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랬다간, 생체 골렘 피해자들이 살아남아 증언하는 것보다도 더욱 큰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보는 눈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수백 명에 달하는 각국 기자들의 시선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상황에 그들 앞에서 자국민을 학살하는 건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지플을 등에 업고 있어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라니 경, 황금방패회! 우리가 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맞서십시오, 지플의 실험실에 끌려갔던 자녀들을 사수하십시오!”
“아율라께서 네놈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성난 군중보다 무서운 것은 세상에 많지 않다. 교리수호 여명회의 성기사들은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라니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녀의 눈가에 피눈물이 마른 자국이 선명했다. 곧 그것마저 훔쳐낸 그녀의 시선이, 바닥에 놓인 비투라의 목에 닿았다.
비투라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목소리와 소음이 광장을 어지럽히는 와중, 라니가 찬찬히 가짜 성왕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죽음은 안식으로 이어질지니, 무겁고 어두운 지상에서 사역하던 자. 아율라의 너른 품에서 영혼은 자유로울 것이며, 지난 고통은 모두 괜찮은 농담이 되어 그대를 즐겁게 해주리…….
들릴 듯 말 듯 작게 속삭이는 기도였다.
그러나 바람이 부는 것과 같았다. 바람에 풀잎이 뉘이듯, 악을 쓰던 신민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지난 고통은 모두 괜찮은 농담이 되어 그대를 즐겁게 해주리…….”
“남겨둔 짐은 그대와 같은 자가 기꺼이 이어받아 아침의 재료가 될 것이고, 이를 나눠드는 자 또한 그대와 같은 사람일 것이니…….”
신민들 중 그 기도문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진풍경이었다. 외부인들조차 그 기도에 감화되어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이며 저마다 조의를 표하고 있었다.
황금방패회 성기사들도 무기를 감추고 무릎을 꿇었다. 이내 눈치를 살피던 여명회 성기사들까지 기도에 참여했다.
바닥에 떨어진 쇳조각과 핏방울이 아니라면 방금까지 전투가 있었다는 걸 그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다.
기도가 끝나갈 무렵, 한 남자가 슬며시 진의 옆으로 다가왔다.
‘공자님.’
‘왔나, 디노.’
디노 재글런.
이제는 명백히 언론계에서 젊은 대大 기자라고 불리는 남자. 그는 진의 부름을 받자마자 성국으로 달려와서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머츄얼 실라가 남긴 기록은 기사화 준비가 끝났습니다. 콜론의 비극과 유사, 연관성이 있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뤘고, 초점은 성국의 실질적인 피해에 맞췄습니다.’
‘고생했다. 지플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습니다. 꼬리 몇 놈을 내세워 잘라내기엔, 지플의 수뇌부가 직접 개입한 정황으로 쓸 수 있는 증거가 너무나 많습니다. 공자님 말씀대로 칼 지플의 신변을 킨젤로가 확보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크고요.’
디노가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지플이 선善이라 불리는 시대는 막을 내릴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