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46)
제 222화
77화. 악역(4)
본래라면 진은 그들과 여론전을 펼쳐 결코 승리할 수 없었다.
지플의 허점을 잘 찔렀다 할지라도 언론 장악력에서 너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자신들을 ‘선’으로 위장해온 지플의 언론 장악력은 그야말로 철옹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진에게도 그만한 힘이 있다.
현재 이곳 성국엔 전 세계의 모든 언론이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디노를 포함해 대大 기자라 불릴 만한 기자들도 여럿. 그들은 대부분 룬칸델이나 지플, 비먼트의 펜대였으나 중립 언론에 속한 이들도 몇 있었다.
‘꼭 기름이 가득 담긴 통 같군.’
진이 광장에 모인 기자들을 훑어보며 생각했다.
곧 언론이라는 기름통은 디노의 불씨에 닿아 미친 듯이 불타오를 것이다. 지플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지플, 킨젤로. 돌아보면 그것들과는 폭풍성을 떠나자마자 계속 악연이었지.’
문득 폭풍성을 떠나자마자 킨젤로의 도움을 받은 지플 극렬 추종자들에게 습격을 당한 게 떠올랐다.
어쩌면 그때부터 이들과의 싸움은 예견된 수순일지도 몰랐다. 룬칸델의 정점에 오른 이후, 반드시 꺾어야 할 대상이기도 하고 말이다.
오후 세 시.
“저게 뭐야?”
누군가의 목소리에 성난 군중들이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지플의 거대 함선, ‘코젝’이 유유히 수도의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코젝의 모습에 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코젝 속엔 지플의 정예 마법사 부대, ‘백야’와 칼 지플이 탑승하고 있었다.
“코젝? 아오, 저건 또 왜 왔어?”
코젝을 보자마자 무라칸이 칼눈을 떴다.
“성국에 룬칸델의 기수들이 상주하고 있으니, 지플도 과시할 필요가 있었겠지. 룬칸델에 칼 지플을 암살할 생각 따윈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기도 하고. 사죄하러 온 주제에 위세는 위세대로 부리는군.”
“하여간 웃긴 놈들이네. 아, 콜론에서 개고생한 걸 생각하니 열이 뻗치는군. 당장 부숴버리고 싶구만.”
“공자님, 전 그럼 슬슬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래, 고생해라.”
디노가 떠난 후 광장에 코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신민들은 불안과 분노가 깃든 눈동자로 해를 가리고 있는 그 거대 함선을 노려보고 있었다.
우우웅…….
이내 코젝의 하단부에서 널찍한 빛이 흘러나와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형성했다.
계단을 타고 탑승자들이 내리기 시작하자 전신이 구속된 칼 지플의 모습이 보였다.
칼은 평민 죄수들이나 입을 법한 회색 천옷을 걸친 채 무척 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서며 점차 지상에 가까워지는 칼, 그리고 그를 향해 분노 어린 목소리를 드높이는 신민들.
“우우우!”
“우리 형제, 자매들을 대체 어떻게 한 거냐!”
“인간을 실험체로 사용하다니, 정녕 신이 두렵지도 않더냐……!”
“이 미친 마법사! 패륜아!”
그 ‘지플’의 마탑주, 그것도 순혈이 소국의 백성들에게 온갖 상소리를 듣고 있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문 차원에서 문제를 일으키든, 개인이 일으키든. 지플은 언제나 순혈이 아닌 대변인들을 내세워 사후 대처를 해온 것이다.
분노한 목소리엔 전염성이 있다.
코젝을 보고 잠시 위축되었던 신민들은 이제 금방이라도 칼을 찢어 죽일 기세로 악을 썼다.
고개를 숙인 칼은 말이 없었고, 그의 뒤에 선 백야의 마법사들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라니는 미리 진에게 전해들은 대로 이 과열된 분위기를 가로막지 않았다.
휘익-!
퍽!
라니의 눈치를 살피던 신민 중 하나가 칼을 향해 주먹만 한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돌팔매에 맞은 칼의 이마가 터지며 핏방울이 튀었고, 일순 군중들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칼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뚝, 뚝.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는데도 뒤에 선 백야의 마법사들은 반응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건 무언의 허락이었다. 칼 지플을 어떻게 해도, 지플 본가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진의 예상대로 지플은 칼이 죽거나 크게 다친 뒤 본격적인 실력 행사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뭐라도, 말을 하란 말이다!”
퍽, 퍽! 휘익!
칼이 코젝이 형성한 빛의 계단을 다 내려섬과 동시에, 곳곳에서 돌팔매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가 돌에 맞아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다섯 번.
기자들이 이 진기한 처벌의 현장을 열심히 기사로 작성하고 있는 그때.
“신민 여러분, 잠깐 멈춰주십시오!”
라니가 천천히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즉시 돌팔매질이 멈췄고, 칼은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모습.
“칼 지플. 그대의 자백을 받기에 앞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이오?”
“정말, 생체 골렘 실험은 그대의 주도하에 자행된 것입니까?”
칼로서는 당연히 그 질문이 ‘지플 전체가 아니라, 너 혼자 한 것이냐’는 의미로 들렸다.
그렇기에 아버지, 켈리악 지플의 명령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소.”
“맹세할 수 있나요?”
“내 죄악을 가문 전체의 것으로 돌리고 싶은 모양인데, 틀렸소. 물론 그대의 입장에선 지금 이 상황이 지플의 꼬리 자르기라고 느껴질 수 있겠지. 하지만 난 4마탑주, 순혈이오. 나 말고도 꼬리가 될 만한 사람은 많소.”
“그럼 왜 당신이 직접 왔죠? 다른 꼬리를 보내면 됐을 텐데요.”
“내 죽음이 나로 인해 실추된 가문의 명예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오. 설령 그대가 내게 자비를 베풀어준다 한들 가문이 나를 다시 거둘 일은 없을 거요. 그러니 날 죽이시오.”
“너무 편한 죽음을 바라고 있군요. 당신이 실험체로 잡아간 억울한 신민들의 목숨이 무려 3,000명에 달합니다. 칼 지플, 당신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진술을 할 때까지 죽음을 누릴 수 없을 겁니다.”
라니가 칼의 상처 곳곳에 치유마법을 펼쳤다.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갔다.
“그런데, 칼.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무엇이 말이오?”
“실험체로 잡혀간 신민은 3,000명이 아니라 823명입니다.”
칼은 과연 4마탑주였다.
라니의 속임수에 당하고도 표정이 변하지 않은 것이다.
“비투라 벨터가 그렇게 많은 신민을 보냈었나, 몰랐군.”
“칼 지플 경!”
누군가 칼을 부르며 앞으로 나섰다.
디노 재글런이었다.
“칼 경은 그 극악무도한 실험의 주체가 아니잖습니까! 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왜 나서서 누명을 쓰려고 하느냔 말입니다!”
순식간에 광장에 모인 모두의 시선이 디노에게 집중되었다.
“저건 뭐야!”
“지플의 하수인이냐, 개소리 말고 꺼져라!”
“신민 여러분, 제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기자입니다! 이름은 디노 재글런.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지플의 펜대가 아닙니다. 콜론에서 자행됐던 뮤론 지플의 생체 골렘 실험을 최초로 보도한 기자죠.”
웅성웅성.
“저, 디노 재글런은 기자와 콜론 원주민들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지플가의 다른 수뇌부는 몰라도, 칼 지플 경은 이번 생체 골렘 실험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디노가 가방에서 소식지를 한 뭉텅이 꺼내 주위에 뿌렸다.
눈치 좋은 기자들이 가장 먼저 앞으로 달려들어 소식지를 주워 읽었다.
몇 줄 읽기도 전에, 기자들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디노와 칼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불씨가 번졌다.’
진은 속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금까진 칼 지플 한 사람만 추하게 땅바닥을 굴렀지만, 이젠 지플 전체가 진흙탕 싸움을 해야 할 터였다.
“킨젤로 산하 암흑마법회?”
“생존자들을 구출한 곳이, 4마탑이 아니라 옛 오테리엄에 있는 암흑마법회의 성채라고?”
3류 테러단체로 알려진 킨젤로와 리올 지플에게 괴멸당한 후 하급 잔당만이 남았다고 알려진 암흑마법회.
디노가 뿌린 소식지엔 지플과는 비교할 수 없이 별 볼 일 없는 단체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또한 6개월 전 ‘바멀’로 알려진 의문의 실력자가 지플과 킨젤로의 회담을 훼방한 사실을 알렸으며, 그 과정에 칼이 킨젤로 측에 납치된 사실도 서술되어 있었다.
“이보시오, 디노 재글런! 이게 갑자기 무슨 이야기란 말이오?”
한 기자가 디노를 향해 외쳤다.
속독으로 소식지를 훑어본 사람들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느닷없이 난입한 이 젊은 기자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라니 경은 생존자들을 구출한 영웅의 이름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하셨지만, 제가 라니 경을 대신해 밝히자면 그분은 바멀 경입니다. 예, 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는 초신성, 바멀 경이죠.”
“무슨 소리냐고!”
“절 대大 기자로 만들어준 콜론 원주민 학살 사건, 그 당시 저는 기사에 원주민들을 구한 영웅이 ‘지나가던 행인’이라 서술한 바가 있습니다. 그 행인이 바로 바멀 경이었습니다. 전 그때부터 바멀 경과 친분이 생겼고, 그분의 영웅적 선행을 기사로 남겨왔습니다.”
이 대목에서 진은 부끄러운 마음에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고, 무라칸은 간신히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디노는 뻔뻔하면서도 비장한 얼굴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껏 지플의 악행을 추적하고 계셨죠. 지플은 콜론 원주민들을 상대로도 생체 실험을 벌였으니까요. 추적 도중, 바멀 경은 벨라도 제후국의 한 버려진 섬에서 지플과 킨젤로가 모종의 거래를 하는 걸 목격하게 됩니다.”
“그게 지금 상황과 어떤 상관이 있소?”
“제가 드린 소식지 2면의 상단을 봐주십시오. 킨젤로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3류 테러단체가 아니라, 지플의 최대 동맹이었던 거대 세력입니다. 바멀 경은 일부러 라니 경에게 생존자들을 4마탑에서 구해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멀 경은 성국을 집어삼키고, 신민들로 실험을 자행한 게 지플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킨젤로에 칼 지플이 납치된 걸 이용해 그들을 한 번에 공론화시키려고 하셨죠.
디노가 준비한 긴 뒷말은 이어질 수 없었다.
“더는 못 들어주겠구나.”
시이익-!
칼의 뒤쪽에 서 있던 백야의 마법사 하나가 디노에게 마력 광선을 쏘았기 때문이었다.
광선은 정확히 디노의 머리를 향했고, 너무 빠르게 펼쳐져 대부분이 인지하지도 못했다.
스겅!
하지만 군중 속에 있던 누군가가 쏜살같이 달려 나와 마력 광선을 베었다.
“엇!”
별안간 어두워진 시야에 뒤늦게 흠칫하며 뒷걸음질을 치는 디노.
“죽여서 진실을 파묻는 건 자네들이 아니라 휴페스터의 문화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난 이 이야기가 꽤 흥미롭거든. 좀 더 들어보는 게 어떻겠나? 지플의 마법사들.”
디노를 구한 건 다름 아닌 조슈아 룬칸델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새로이 난입한 진짜 거물을 보며 동요를 시작하기도 전에.
“룬칸델이 직접 공격당한 것도 아니건만, 그리 함부로 검을 뽑아서야 되겠느냐? 납검하라, 2기수.”
루나가 고개를 저으며 디노의 앞을 막아섰다.
아니, 그녀는 조슈아가 백야 마법사의 마력 광선을 베기 전에 이미 디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맨손으로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 마력 광선을 완벽하게 잘라내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