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47)
제 222화
77화. 악역(5)
후우…….
진이 낮은 호흡을 내뱉으며 허리춤에 닿은 손을 내렸다.
디노가 공격당한 순간, 진 역시 무의식적으로 마력 광선을 쳐낼 준비를 했었다.
다행히 멈췄다. 수련이 모자랐다면 앞으로 나가 모두의 이목을 끌고,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만약 공격이 있다면 누님이 막아주실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 미친놈들,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디노를 죽이려고 했단 말이지?’
그만큼 백야 마법사들이 디노의 발언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는 뜻.
마력 광선을 쏜 이들이 애써 무표정한 얼굴을 꾸미고 있었다.
하지만 진과 룬칸델들의 눈엔 보였다. 그들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백야 마법사들의 입장에서, 방금 펼친 공격은 무리수였다.
설령 성공해서 디노가 죽었다고 할지라도 온 세상의 지탄을 받았을 것이다.
패도 그 자체를 표방하는 룬칸델조차 이토록 섣불리 기자를 살해하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그게 진실이 까발려지는 것보단 나았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누님은 여전히 괴물 같군.’
맨손으로 8성 마법사들의 마력 광선을 쳐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것도 이런 기습 공격을. 상황과 별개로, 루나의 괴력에 소름이 돋았다.
스르릉.
조슈아는 순순히 루나의 말을 따라 검을 넣었다. 납검하기 전에 루나에게 목례하며 제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발심이 치솟긴 했으나, 대외적인 자리에서 룬칸델을 우습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걸 잘 아는 것이다.
웅성웅성.
백야의 갑작스런 공격에 군중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군중들을 놀랍게 만든 것은 ‘백경’ 루나 룬칸델, 그녀의 등장이었다.
그녀는 소문만 무성할 뿐, 좀처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럼에도 음유 시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를 찬탄하는 노래를 부르곤 했고, 노랫말 속 루나는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무위를 갖춘 고고한 무인이었다.
루나가 후드를 벗자 군중들은 감탄을 억누르기 급급했다.
결코 노랫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미모 때문이 아니었다.
군중들은 그녀의 진청색 눈동자에 깃든 위엄과, 백야와 코젝을 앞에 두고도 한없이 담대한 태도. 바로 그것에 매료되고 있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한 몇 초가 흘렀다.
“괜찮은가? 디노 재글런.”
“예, 덕분에…… 감사합니다, 루나 경. 그리고 조슈아 경.”
“상당히 흥미로운 주장을 하더군. 자네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으니, 차후 룬칸델의 사절단을 찾아와주게.”
“물론입니다.”
디노는 콜론인들과 루나의 땅에서 지내고 있지만, 서로 모르는 척을 했다.
“반갑소, 백야의 마법사들. 그리고 칼 지플. 루나 룬칸델이오.”
이내 루나가 백야의 마법사들에게 다시 시선을 옮겼다.
“……반갑소, 루나 경. 백야의 2대장, 마울 헨서크요.”
백야 2대장 마울 헨서크, 그는 방금까지 코젝의 계단에 서서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대가? 모르는 새에 2대장이 바뀌었나보군.”
“전임인 드류 말라가 경은 은퇴했…….”
“드류였다면 내 인사를 받기 전에, 우선 그 계단에서 내려섰을 텐데 말이야.”
마울의 표정이 굳었다.
얼핏 보아도 그는 루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고, 지금으로선 상급자가 없으니 지플의 대표라고 할 수 있건만.
초장부터 완전히 하대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루나와 마울의 눈빛이 부딪히자 순식간에 광장이 팽팽한 긴장으로 물들었다.
군중들은 두 거대 가문의 기싸움에 압도된 채 숨조차 조심스럽게 내뱉고 있었다.
군중뿐만이 아니라 백야의 마법사들도 잔뜩 경직된 모습.
그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건 루나와 진, 무라칸 세 사람뿐이었다.
그들이 긴장하지 않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마울 헨서크, 누님을 상대로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저지르다니. 오늘이 지나면 또 백야의 2대장이 바뀌겠군.’
그는 루나에게 답하기 전에 우선 예의를 보여야 했다.
연배가 루나보다 높고 지플 소속이라 할지라도, 백야 2대장 정도의 지위로 감히 룬칸델의 1기수를 내려다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심지어 싸워서 이길 수도 없는 상대에게 실수를 한 것이다.
아예 조슈아는 눈에 형형한 살기를 담아 마울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은 싫은 상황 속에서도 루나에게 예를 차렸건만, 백야 2대장 따위가 실수를 저질렀으니 분노가 치밀 수밖에.
“마울 경. 내려오기 어렵다면 그 계단을 없애줄 수도 있소만. 1기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오?”
조슈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마울의 얼굴이 붉어졌다. 치욕과 패배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다행히 마울이 아주 어리석은 인간은 아니었다.
“……결례를 저질렀소, 루나 경.”
마울이 계단을 내려섰다. 코젝에 탑승하고 있던 다른 마법사들도 마울의 뒤를 따랐다.
사정을 잘 모르는 군중들로서는 도통 분위기를 읽기가 쉽지 않았다.
분명 세계 제일 가문은 지플이고, 그 다음은 룬칸델인데 어째서 마울이 모욕을 받고도 이토록 저자세를 보이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반면 평소 두 가문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 특히 귀족들은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대화를 할 수 있겠군. 한 가지 묻고 싶소, 마울 경. 그대의 부하들이 왜 이 기자를 공격한 것이오?”
“칼 지플은 가주의 명을 받아 이곳에 사죄를 하러 왔소. 지플의 4마탑주가 직접 목숨으로 죗값을 치르러 왔단 말이오. 저자는 그 사실을 함부로 곡해하여 지플을 모욕했소.”
“곡해?”
“내 경에게 실수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나, 경 또한 방금 지플의 일을 가로막은 셈이오. 가문과 가문의 일로 번지면 피차 좋을 것이 없으니, 디노라는 기자는 우리가 데려가고 싶소만.”
마울이 시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루나에게 짓눌려 굴욕적인 모습을 보인 것과 별개로 그가 지플을 대표하는 것은 여전했다. 어설프게 물러났다간 망신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그건 안 되겠군.”
“무슨 명분으로 안 된다는 것이오?”
“방금 듣지 못했소? 내 분명 이자에게 룬칸델의 사절단을 방문하라고 말을 했지. 즉, 디노 재글런은 현 시간부로 나의 손님이란 뜻이오.”
“이쪽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외다.”
“개인적인 문제라…… 룬칸델의 기수들을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말실수가 잦다고 생각되지는 않소?”
“물러나줄 수 없다면, 우리로서도 실력 행사를 하는 수밖에 없소.”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마울 본인은 물론이고,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백야가 루나와 조슈아를 어쩔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마울 경, 목숨은 소중한 것이오. 하늘에 떠 있는 쇳덩이는 지플에서 아마 그대의 목숨보다 더 소중할 것이고. 죽고, 부서져서 돌아가면 안 되지 않겠소?”
싸늘하게 미소 짓는 루나.
마울은 머릿속에서 수많은 계산이 오갔고, 죽을 맛이었다.
‘설마 저 기자의 폭로는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한 룬칸델의 계략이었나? 룬칸델에 정보가 어디까지 유출된 거지? 루나 룬칸델, 이 괴물과 지금 싸웠다간…….’
볼 것도 없이 전멸이었다. 애초에 전투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림이 나올 것이다.
코젝에 다시 탑승하기도 전에 전원 목이 베일 테니까.
전장이 될 만한 한지로 이동하고, 코젝에 탑승한 채 싸운다고 가정해도 승리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물러날 수는 없었다. 전멸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플의 위신을 지켜야 했다.
애초에 칼 지플을 데리고 이 자리에 온 이유가 바로 위신을 지키기 위함이 아닌가.
“두 분 다 진정하시지요.”
막 칼 지플의 치료를 끝낸 라니였다.
“룬칸델도, 지플도. 우리 성국보다 훨씬 강대한 힘을 가졌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두 분, 아직 우리는 폐하의 국장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이러시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마울에겐 라니의 말이 구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물러날 명분을 만들어주는.
그래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려는 찰나.
“하지만 룬칸델의 기수 분들께선 무척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하마터면, 애먼 사람을 처벌할 뻔했군요.”
“애먼 사람이라고! 이보시오, 라니 살로메. 가주께서 직접 4마탑주를, 친아들을 보내셨소!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아시면서도. 저깟 기자의 주장이 지플 가주의 결정을 욕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오?”
쿡.
진이 무라칸의 옆구리를 찔렀다.
‘왜?’
‘개소리 말고 꺼지라고 소리쳐.’
‘뭐?’
‘지금 누구 하나만 물꼬를 터주면, 난리 날 분위기잖아.’
마울이 라니를 윽박지른 순간부터 성국 신민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덮으려고 한다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지플이라는 손바닥은 능히 하늘을 가릴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 정도는 네가 하면 되잖아! 나 용이거든?’
‘내 목소리는 조슈아가 알아들을 것 아니야. 이목이 쏠릴 테니, 난 잠깐 저쪽으로 가 있을…….’
그 순간.
“닥쳐라! 더러운 지플 놈들, 끝까지 아율라께서 내리신 이 땅을 능멸할 셈이냐!”
한 여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여인은 다리가 불편한 듯 휠체어에 앉아있었고, 휴화산 문양이 큼직하게 그려진 로브를 입은 모습이었다.
‘내가 할 필요 없겠네.’
‘그러게. 적절한 시기에 도와주는군.’
여인을 따라 나머지 신민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성국을 위해 나선 기자를 죽이지 마라! 진상이 다 밝혀지기 전에 이럴 수는 없다!”
“죽일 것이면 우리도 죽여라!”
“룬칸델도 그런 짓은 안 한다!”
진은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문득 위화감이 들어 처음으로 소리친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던 것이다.
‘저 여자…… 어디서 봤지? 아니, 그냥 누굴 닮은 건가?’
물끄러미 여인을 쳐다보는 진.
시선을 느꼈을 리 없건만, 여인도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을 바라보았다.
나 잘했죠? 여인의 입가에 그렇게 묻는 것 같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기억이 났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
‘비슈켈, 그자의 여동생……!’
마르지엘라 이블리아노. 과거 룬칸델 외나무다리 파티에서, 비슈켈과 자신이 결투를 벌이도록 종용한 인물.
처음엔 분장을 하고 있어서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장난기 가득한 입술이며, 천진난만해 보이는 특유의 표정은 분명 마르지엘라였다.
-진 공자께서 약자를 상대로 너무하셨습니다. 저기 쓰러진 분은 우리의 친구잖아요.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예요? 오라버니, 이 동생은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나더러 진 공자와 결투를 하라는 것이냐?
-네, 오라버니께서 진 공자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셨으면 해요. 방금 진 공자가 보여 준 것보다 좀 더 명예로운 방식으로 말이에요.
당시 마르지엘라와 비슈켈이 나눈 대화도 떠올랐다.
‘바멀, 킨젤로는 당신을 도울 거예요. 그러니 우린 좀 봐줘요.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마르지엘라가 눈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입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