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64)
제 222화
84화. 불씨(2)
진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커먼 촉수 괴물이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악몽.
특히 얼굴에 달라붙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끔찍한 감각에 낮은 신음을 토했다.
“으으!”
간신히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자, 진은 악몽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냥, 냥냥!
무라칸이 그의 얼굴에 올라 꾹꾹이를 하고 있던 것이다.
“어째 익숙한 장면이다. 내려가, 좀!”
슬쩍 무라칸을 밀어내며 몸 상태를 살폈다.
‘멀쩡하군.’
룬칸델 의료진이 대단한 것도 있지만, 시론의 일검을 받고도 이토록 멀쩡히 깨어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진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형제들 덕에 어마어마하게 강해지긴 했어. 라프라로사에서의 수련이 없었다면 그 검을 받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을 테지.’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풍경이었다.
생도 시절 사용하던 바로 그 방.
잠시 후 인기척이 느껴졌다.
“깨어나셨습니까, 도련님.”
길리, 그녀는 진이 시론의 일검을 받아낸 직후 검의 정원으로 복귀한 상태였다.
그리고 생도 시절 늘 그랬듯 진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길리.”
“오랜만입니다.”
활짝 미소를 짓는 길리.
그들은 약 1년 2개월 만에 재회한 것이었다. 라프라로사를 빠져나온 직후, 진은 미샤와 무라칸만을 만났다.
“보고 싶었어.”
“저도요. 다른 동료들도 도련님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릅니다.”
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레 길리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없었다. 그녀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 박아둔 ‘쇠침’이. 룬칸델 의료진은 그녀가 복귀하자마자 쇠침을 제거했다.
길리가 괜히 쑥스러워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고생 많았어, 길리.”
“룬칸델의 유모라면 누구나 겪는 일인걸요. 전 도련님 덕에 예비 기수 유모 생활을 편하게 끝낸 편입니다.”
이내 길리가 진중한 눈빛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찬찬히 한쪽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기사 길리 맥로란은, 앞으로도 룬칸델 제12기수 진 룬칸델 경의 유모로서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다시 도련님을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진에겐 참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전생에선 자신 때문에 길리 역시 힘이 봉해진 채 추방당했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은 기수가 되었고, 그녀는 기수의 유모가 되었다.
가슴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맺히는 것 같았다.
‘이제 그 누구도 길리의 삶을 망칠 수 없을 거야.’
진이 감정을 억누르며 미소를 지었다.
“나 역시 길리가 내 유모라는 것이 가장 큰 영광이야. 어색하니까 얼른 일어나.”
“예, 도련님.”
펑!
무라칸이 인간으로 변신하며 길리를 일으켰다.
“이게 뭐 예쁘다고 우리 딸기파이가 이렇게 충절을 바치는지, 참. 딸기파이여, 이 무라칸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냐? 서운하구나! 이럴 수는 없느니라! 꼬마만 사랑하는 꼬마고, 난 그냥 아는 용이란 말이냐?”
“무, 무라칸 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물론 무라칸 님도 보고 싶었죠.”
“그렇다면 어찌 나한테는 이리 무감한 것이냐?”
“아니, 그렇지만 무라칸 님은 불과 일주일 전까지 티칸에서 함께 지냈잖아요?”
“그러니까 딸기파이의 말은, 나는 고작 일주일밖에 안 떨어져 있었으니까 그렇게까지 애타게 보고 싶지는 않았다. 이 말인가?”
“그게…… 그렇게 되네요?”
길리가 그렇게 대답하자 무라칸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일주일 떨어졌던 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무라칸과 길리는 여전히 연인 사이가 아니었다.
“흠, 흠흠! 아무리 그래도…….”
“야, 야. 넌 왜 뭣도 아닌 걸로 딸기파, 아니. 길리를 또 괴롭히고 그래? 그리고 여기가 티칸이냐? 그렇게 막 변신하면, 어? 안 된다고. 생도 시절처럼 나비 룬칸델로 지내야 하거든.”
“무슨 소리냐, 꼬마! 내가 네놈 수호룡인 걸 온 세상이 다 아는데, 왜 내가 고양이로 변신해서 정체를 숨기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되네? 그나저나, 길리.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어?”
“세 시간쯤 되었습니다, 도련님.”
“그래, 세 시간…… 뭐?”
진이 화들짝 놀라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시론을 위한 도열이 있던 게 정오 무렵이었으니, 여전히 쨍한 태양이 검의 정원을 뒤덮고 있었다.
‘고작 세 시간 만에 그만한 부상을 떨치고 일어났다고?’
-아주 흡혈귀가 따로 없군! 투신 형제의 피를 대체 몇 바가지나 가져가는 건지, 이것 참.
작년 수련 때 라프라로사에서 오투왕 보라스가 했던 말.
진은 이번에도 투신 반의 피를 수혈 받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반은 수혈할 때마다 ‘진기’를 넘기는 셈인지라 조금씩 약해졌으나, 진의 축복받은 육체와 광심장은 점점 더 강화되었다.
시론의 일검을 받고도 세 시간 만에 깨어날 수 있던 건 그런 연유였다.
“도련님이 벌써 깨어난 걸 알면 검의 정원이 또 한 번 뒤집어지겠군요. 의료원장은 어느 정도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만, 대부분 도련님이 최소 사흘은 깨어나지 못할 거라는 분위기였거든요.”
“그럼, 기수 임명식은?”
“가주께서 직접 명했던 만큼, 오늘 바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 가주님을 찾아뵙는 게 좋겠습니다, 도련님.”
길리가 옷장을 열었다.
옷장 속에 진을 위해 준비되어 있던 룬칸델 기수의 정복이 걸려있었다.
검은 코트에 금실로 화려한 무늬가 수놓인 모습.
코트를 꺼내 내미는 길리의 눈시울이 붉었다.
“도련님이 이걸 입으시는 걸 보니, 주책을 부리게 되네요. 다녀오세요. 아, 혹 시키실 일이 있으신가요?”
“음…… 무라칸 딸기파이나 하나 만들어줘. 오는 길에 어찌나 노래를 부르던지.”
“알겠습니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고친 뒤 복도로 나서자마자.
시선이 느껴졌다.
복도를 지나치는 하인들, 수호기사들, 생도들.
그들 모두가 진을 감히 대놓고 쳐다보지는 못했으나, 하나같이 궁금해 미치겠는 마음을 억누르며 흘긋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 지나가던 형제들이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뮤 누님, 앤 누님.”
뮤와 앤.
그들은 로사에게 기수 임무에 대한 보고를 올리러 가다가 진의 방 앞을 지나치던 참이었다.
흠칫!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며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누님들이 얼마나 빈정댈지 궁금하군. 아니, 옛날처럼 그렇게까지 무시하지는 않으려나?’
그녀들은 진을 쳐다보며 그대로 정지한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치 봐선 안 될 것을 본 사람들처럼 두 눈을 껌뻑이기도 했다.
‘벌써 깨어났다고?’
‘아버지의 그 검을 받고? 잘못 본 건가?’
서로와 진 쪽을 번갈아 쳐다보며 몇 번이나 확인하는 두 사람.
진이 헛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당연히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너…… 아니, 됐다. 가자, 앤.”
먼저 입을 연 것은 뮤였다.
인상을 찌푸리기만 했을 뿐, 진과 달리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언니?”
그 모습에 앤이 오히려 깜짝 놀랐다.
앤 역시 진을 보고 당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왕 마주쳤으니 한바탕 독설을 퍼붓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앞으로 자신들과 진은 제대로 서열 전쟁을 치르게 될 테니.
그리고 앤은 자신들이 패배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진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나, 일대일 결투 외에도 서열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많은 것이다.
“오늘 아침까지 수배자였던 놈이 기수 코트를 입고 있는 꼴을 보고 그냥 지나치자니, 무슨 소리야. 당장 찢어버리…….”
“그냥 가자니까.”
“진 도련님!”
뮤의 대답과 동시에 뒤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상대를 향한 반가움과 비굴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아부성이 강하게 배어있는 그 신비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토나 형제들의 유모인 ‘엠마 닐트로’였다.
그녀의 옆엔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리고 있는(이쪽도 진이 깨어난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토나 형제가 서 있었다.
“요 앞에서 하인들에게 도련님께서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막내 도련님께서 무사하신 모습을 보니…… 아이, 참. 내 정신 좀 봐. 이제 도련님이 아니라 12기수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굽신굽신거리는 태도를 보였다.
“하! 엠마 닐트로, 미친 것이냐? 기수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토록 함부로 끼어드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냐?”
“아아, 죄송합니다, 앤 아가씨. 그나저나 12기수께선 그야말로 장성을 하셨군요! 이 엠마는 언젠가 도련님께서 큰사람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답니다.”
그렇게 말한 엠마가 토나 형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어서 인사하라는 의미였다.
“마, 막내야. 반가워…… 잘 지냈어?”
“모, 몸은 좀 괜찮아? 아버지의 검을 막아냈잖아!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걸, 그, 그렇지, 헤이토나?”
“그럼-! 데이토나. 진짜 멋졌지?”
과장된 몸짓으로 횡설수설하는 토나 형제를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엠마의 판단력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엠마는 내가 가주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아니라고 생각해도 그렇게 믿고 싶겠지, 토나 형제가 붙잡을 만한 다른 끈이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내게 잘 보여서 토나 형제의 앞날을 밝히려는 속셈이로군.’
폭풍성 시절엔 기분 나쁘도록 노골적으로 자신을 관찰해대서, 한 번 경고한 적도 있었다.
그때의 엠마는 진에게 은근히 아부를 하면서도, 언제든 토나 형제보다 진의 급이 떨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진이 토나 형제보다 못난 사람이 되는 순간, 즉시 토나 형제에게 짓밟도록 시키거나 부하로 포섭하라고 지시를 내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엠마는 토나 형제가 왕권에 도전할 수 없다는 걸 진즉에 인정했고, 때문에 서열 전쟁에서 그들이 잘 살아남도록 도와줄 조력자를 찾고 있었다.
뛰어난 형제들은 토나 형제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뮤와 앤 같은 형제들은 날이면 날마다 토나 형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니 그녀로서는 참 답답한 나날이 이어지던 와중.
혜성처럼 진이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모두가 인정할 만한 강자가 된 채.
‘보아하니 뮤, 이 계집애는 앤 년보다는 머리가 좀 돌아가서 진 도련님을 더 이상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는 걸 느낀 모양새다. 크크, 망할 것들. 진 도련님 덕분에 나한테 망신 좀 당했지?’
큰 망신까진 아니더라도, 뮤와 앤이 말하고 있는 중 진을 믿고 끼어든 것만으로도 엠마는 고소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간 뮤와 앤이 토나 형제를 괴롭힌 것을 생각하면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판국이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한 마디만 거들어주십시오. 진 도련님!’
당연하게도 진은 이런 엠마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뭐, 이 검의 정원에서 처음으로 내게 붙겠다고 찾아온 점을 높이 사서. 작은 복수에 좀 동참해주도록 하지, 엠마. 어차피 토나 형님들은 이래저래 쓸 곳이 있을 테고.’
판단을 끝낸 진이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것들이 다들 미쳤나. 야, 엠마. 너 뭐야? 내가 물었잖아, 그딴 버르장머리는 어디서 배웠느…….”
“앤 누님,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다소 결례를 저지른 건 사실이지만, 엠마는 10, 11기수의 유모입니다. 가문에 오래 헌신한 인물이죠. 보는 눈이 많으니 너무 그러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진이 말을 끊자, 앤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