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63)
제 222화
84화. 불씨(1)
수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 말에, 검의 정원에 모인 이들은 꼭 번개가 코앞에 내리친 듯 움찔해야만 했다.
모두가 이 당당한 수배자를 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진을 보고 있는 사람들, 말하자면 원로를 포함한 순혈 룬칸델들과 가문의 권속들은, 지금보다 충격적인 순간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어찌 이리 당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두 거대 가문 모두에게 척살령이 내려진 주제에, 제 발로 사지를 찾아와서는.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저놈을 포박하라!
원로와 형제들은 한마음으로 그렇게 일갈하고 싶었다.
평소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지금 시론보다 먼저 입을 열어선 결코 안 된다고 말이다.
로사조차도 놀라운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시론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리고 그녀는 당연히 시론이 진을 베어버리리라 생각했다.
다른 순혈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듯이.
무라칸의 등에서 내린 진이 허리를 곧게 편 채 시론을 올려다보았다.
시론 역시 가만히 자신의 막내아들과 눈을 맞췄다.
감히 숨조차 함부로 내쉬지 못할 만큼 무서운 정적이 흐르는 와중, 누구도 부자父子의 의중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듯 진의 두 눈동자엔 광채가 가득했다.
반면 시론은 주름이 도드라질 만큼 깊은 눈빛.
그 눈빛은 시론이라는 거인이 생에 처음 겪는 진하고 뜨거운 감정을 감추고 있었다.
바로 장성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비의 심정.
나의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강인한 사내가 되어 끝내 나의 앞에 당당히 마주섰다는 기쁨과, 그것이 결코 아비로서의 기대심으로 인한 착각과 현혹이 아니라는 확신.
열셋의 자식을 낳았으나.
가슴 벅차도록 기쁘게 안았던 것은 루나뿐이었다. 그러나 루나는 끝내 그의 기대를 저버리고 왕좌를 포기했다.
그렇게 루나를 지나 열하나의 자식을 돌처럼 보았고, 마지막으로 진이 두각을 드러냈을 땐 작은 불씨를 보았다.
그리고 그 불씨는 이제 걷잡을 수 없는 화마火魔가 되어, 단 하나의 큰 불이 되어, 이곳 검의 정원을 뒤덮을 기세로 날아온 것이다.
검귀들의 성지를 모조리 불태울 기세로, 이 미적지근한 검의 무덤이 다시금 활활 불타오르도록!
장하구나.
시론의 짧고 강렬한 심정이 진을 포함한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지는 않았다.
몇 초가 흘렀고, 진 또한 시론처럼 기묘한 감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수천 명의 무인들이, 열한 명의 형제들이 근처에 모여 있지만, 마치 아버지와 단둘이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오직 아버지, 시론 룬칸델만이.
자신이 넘어서야 할 대상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이곳에 진보다 강한 무인은 많았다. 루나, 로사, 흑기사들 등…… 하나 그들은 자신이 언젠가 필연적으로, 반드시 넘어설 수 있는 인물들이라면.
아버지만큼은 아니었다.
그것은 필연이 아니라 운명을 거스를 정도의 의지가 수반되어야 하는 문제였다.
‘초월하고, 또 초월해서 넘어서겠습니다.’
각자 짧은 소회를 속으로 삼키는 부자.
먼저 반응을 보인 쪽은 시론이었다.
스르릉…….
말에서 내린 그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은 것이다.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선택 의식 때 진이 고른 바로 그 검. 초대 가주, 테마르 룬칸델의 애검 바리사다의 새하얀 칼날이 태양빛을 머금었다.
이윽고 시론이 기운을 끌어올리자 돌연 생도들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시론의 기운을 마주하는 것은 생도들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급 수호기사들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간신히 자세를 유지했고, 중급 수호기사들도 기운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속으로 악을 썼다.
감히 시론이 보는 앞에서 쓰러지는 건 아직 어린 생도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다.
토나 형제를 제외한 기수들, 흑기사와 집행기사, 상급 이상 수호기사, 원로들, 로사는 처음과 같은 얼굴을 유지했고.
진은 한껏 투기를 일으키며 반격할 준비를 했다.
‘온다, 아버지의 검이.’
아버지의 일검을 받을 수 있다.
처음 라프라로사에 다녀온 후 마음에 품은 자신감.
실제로 진은 구만 번의 죽음 끝에 투신 반의 일검을 막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전대 흑기사 바네사 올슨에게 그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으나.
지금 시론이 준비한 것은 분명 다른 성질의 일검이었다.
이를테면 평상시의 가벼운 종베기나 횡베기가 아닌, 시론 룬칸델이라는 반신이 이룬 업적의 무게가 담긴 일검.
그것은.
아주 천천히, 세 살 먹은 어린애라도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속도로, 그 누구라도 가볍게 한 걸음을 움직여 피할 수 있을 것 같이 느리게.
진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조차 없었다. 바리사다는 그저 서서히 가라앉는 범선처럼 점점 아래로 기울 뿐이었다.
그러나 그 검을 감히 누가 느리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경지에 이른 무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 시론이 펼친 검을 보면 단 한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기神技
신의 힘으로만 가능할 것 같은 영역.
인간의 상식과 자연의 섭리를 한참이나 벗어난, 무지막지한 검.
후우…….
바리사다가 두 뼘 앞까지 왔을 때, 진이 한 차례 깊게 숨을 골랐다.
이미 진의 온몸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근육은 단 한 덩이도 남김없이 팽팽히 당겨져 부풀었으며, 뼈와 피는 온통 오러를 머금어 단단해졌다.
그렇게 모든 힘을 끌어올리지 않고서는 이 느리고 변화무쌍한 검을 받아낼 수가 없었다.
스릉-!
시그문드의 창백한 칼날이 검집을 빠져나왔다. 칼날 속에 응축된 뇌기가 흘렀다.
진은 시그문드를 양손으로 쥐고 검신을 비스듬히 세웠다. 바리사다를 막을 수 있도록. 이제 두 검은 몇 초쯤 뒤 맞닿을 것이다.
격돌의 순간이 오기 직전까지, 검의 정원에 모인 이들은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진……!’
루나는 제 막냇동생이 과연 버틸 수 있을지를 걱정했고.
‘……아버지께선, 놈이 당신의 검을 받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다!’
조슈아는 불길한 마음에 치를 떨었다. 어느새 자신의 적수가 되어 돌아온 막내는, 분명 살아남아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밀 것 같았다.
대부분의 형제들은 조슈아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그래 봐야 막내, 그래 봐야 예비 기수, 그래 봐야 척살을 피하지 못할 시한부였던 막내가.
검의 왕좌에 도전하러 다시 이곳에 돌아왔고,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이다.
‘이 검을 막으면, 막내가 그간 벌인 일탈은 모두 그 무게가 가벼워진다……. 시론, 당신은 정녕 이 룬칸델을 혼돈의 불길 속에 빠뜨려야 직성이 풀리겠습니까!’
로사 룬칸델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녀 역시 자신이 배 아파 낳은 막내를 아꼈다. 조슈아 다음 대의 가주로는 더없이 훌륭하다고 여길 만큼.
일탈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혹 영기와 마법이라는 일탈을 저질렀어도 외부에 스스로 공개하지만 않았다면 반드시 조슈아 다음 가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탈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상, 룬칸델을 위해선 막내를 버릴 필요가 있다고. 로사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가주의 판단을 부정할 수는 없다. 룬칸델 가주의 의지는 반드시 절대적으로 실행되어야 하며,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
지금 자신이 가주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 상황을 뒤흔든다면.
그건 곧 조슈아가 가주가 되었을 때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 가주의 절대 권력이 지닌 의미가 퇴색된다는 의미.
그렇기에 하루라도 빨리 조슈아를 가주로 만들려고 했었다. 로사는 룬칸델이라는 거대한 모래성을 지키기에, 그보다 더 적합한 후계가 없다고 여기고 있으니까.
아니, 그 누구도 조슈아를 대체할 수 없다고 믿고 있으니까.
‘적이 많다. 룬칸델의 앞날은 어둡고, 후퇴할 곳은 없다. 그런데 왜 돌아가려 하는가…….’
로사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그 순간.
바리사다와 시그문드의 칼날이 맞닿았다.
톡…….
철과 철이 맞부딪치며, 알에 균열이 일듯 극도로 조심스러운 소리가 났다.
동작을 끝낸 시론은 검을 거두지 않고 있었고, 진은 실핏줄이 터져 시뻘겋게 변한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귀와 입술에서 선혈이 흘렀다.
바리사다에 담겨있던 기운이, 마치 열이 전도되듯 진의 몸속을 헤집고 있었다. 혈관 속에 해일이 번진 것 같았고, 뼈와 내장이 부서지는 끔찍한 감각이 이어지고 있었으나.
진은 꿋꿋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론의 기운은 이내 진의 몸을 한 바퀴 순환하고, 지상으로 번져나갔다.
쩌적-!
일순 지축이 흔들렸고, 딛고 있던 땅이 무너지며 힘없이 아가리를 벌렸다.
벌어진 땅에서부터 유전이 터진 듯 환한 빛이 끝도 없이 치솟았는데, 그건 모두 바리사다에 담겨있던 시론의 오러였다.
그 솟구치는 오러 속에서 안간힘을 쓰듯, 희끄무레하게 빛을 발하는 뇌전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진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검에 대항했는지를.
이곳의 그 누구도 각오하지 않고는 받을 수 없는 그 일검을, 룬칸델의 막내가 결국 버텨냈다는 사실을.
폭포처럼 쏟아지던 오러의 파동이 천천히 잦아들고 있었다.
시론은 여전히 서 있는 자신의 아들과, 그 뒤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흑룡에게 시선을 두었다.
‘과연, 훌륭한 수호룡이로군.’
‘망할, 지독한 아비로군.’
시론과 무라칸의 엇갈린 감상이 지나자.
커헉, 진이 한 움큼 검은 피를 토하며 잠시 중심을 잃었다.
아……!
그 순간만큼은 진을 사랑하는 쪽에 가까운 이들, 적대하는 쪽에 가까운 이들, 호기심을 가진 이들 모두 탄식을 내뱉었다.
쓰러지면 끝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쓰러지면, 룬칸델 척살 명부에 오른 진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을 터였다.
“크아악!”
검을 땅에 박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한 진이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악, 아아악!
진은 미친 사람처럼 주먹으로 제 가슴을 두들기며 계속 악을 써댔다. 이렇게 끝날 생각 따윈 없다는 그 처절한 포효에 검의 정원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진은 다시 일어서서 시론을 마주했다.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한 가닥 의식의 끈을 붙들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시론은,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잠시뿐이었으나 가까이에 있던 모두가 그 미소를 똑똑히 지켜보았다.
얼마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미소란 말인가.
진이라는 ‘마검사’가 검의 정원에 입성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음을.
시론이 직접 선포한 것이다.
루나는 하마터면 가슴이 벅차 울음을 터뜨릴 뻔했고, 진과 가깝지 않은 이들마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릴 지경이었다.
미소를 지우자마자 시론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기수 진 룬칸델을 의료진에게 보내도록 하라. 깨어나는 즉시 정식으로 기수 임명식을 진행하겠다.”
진이 쓰러진 것은 시론의 말이 끝난 다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