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62)
제 222화
83화. 검의 정원으로 돌아오다
“아야야…… 그 미친 것들하고 싸운 이후 아직도 가끔 어깨가 욱신거리는군. 딸, 이리 와서 어깨 좀 주물러봐.”
탈라리스가 왼쪽 어깨를 매만지며 앓는 소리를 냈다.
진의 예상대로, 그녀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미샤와 망령대가 서해에서 벌인 전투에 가담했었다.
그 전투로 인해 서해의 무인도 백여 개가 사라졌고, 일대의 해로가 막혔다.
6개월이 지난 아직까지도 근처 바다엔 영기와 한기, 마력이 뒤섞인 소용돌이가 끔찍한 풍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싸움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없으나 소용돌이 현상 때문에 세계 각국은 조사단을 보냈고, 그곳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소용돌이 속에 남은 영기와 한기, 마력 덕에 각국 조사단은 그곳에서 싸운 게 흑룡과 비궁주, 그리고 지플의 마법사들이라는 사실을 유추했다.
온 세상이 그 전투의 원인과 결과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비궁은 대외적으로 중립 세력이었고, 세인들에게 ‘솔더렛’은 주로 순혈 지플과 계약하는 신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진 이전(테마르 이후) 솔더렛의 계약자는 리올 지플을 포함해 대부분 지플에서 탄생했었다. 특히 리올의 압도적인 마법과 활약 덕에 솔더렛은 지플의 신이라는 통념도 강했다.
그런데 그들이 뜬금없이 서해 한복판에서 대전투를 벌였으니, 세상이 들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싫습니다.”
“흐응, 네 남편 될 녀석 돕다가 이렇게 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렇게 매정하게 나올 것이냐?”
“엄살이잖습니까.”
“엄살 아니거든. 진짜로 팔 떨어질 것처럼 아프단다. 숟가락 들기도 힘들고…….”
보오옹!
눈두꺼비 모트가 탈라리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시리스가 탈라리스에게 다소 차갑게 반응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 전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가 패배했다고 발표하신 겁니까?”
최근, 탈라리스는 기자들을 모아 ‘서해 전투’에 관한 공식 발표를 한 상태였다.
-지플과 흑룡이 반목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내가 그 전투에 참전한 건 그들이 내 땅에서 싸우고 있으니 영역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결과와 흑룡의 행방을 궁금해하고 있는데. 흑룡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며, 싸움은 지플의 승리였다. 그러니 더 이상 비궁에 대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전투가 벌어진 이유, 승자와 패자, 지플과 흑룡의 관계 등. 그전까지 세인들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지플이 입을 꾹 닫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탈라리스의 발표를 통해 모든 것이 밝혀졌다.
당연하게도 ‘승자는 지플’이라는 발언의 파급력이 가장 컸다.
지플은 가주가 직접 나서지 않았는데도 탈라리스와 흑룡을 꺾은 셈이 되었으니 진으로 인해 추락한 위세가 조금은 회복되었고, 비궁은 그 반대였다.
그리고 ‘진실’ 역시 반대였다.
“어머니는 그 미샤라는 흑룡과 함께 망령대 3인을 사살하셨잖습니까. 흑룡이 도주에 성공하자 지플이 먼저 물러났고요.”
“그 정도면 나 같이 대단한 사람한테는 진 것이나 다름이 없어. 흑룡까지 있었으니 최소 열 놈은 죽였어야 하는데. 하긴, 그렇게 많이 죽였으면 켈리악이 직접 비궁을 쳤을지도 모르겠군.”
“어머니께서 비궁의 패배로 발표하신 이후 온갖 잡것들이 우릴 무시하고 있습니다. 루테로 마법 연방의 무역꾼들은 벌써 서해 상인들을 상대로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런 놈들은 그냥 우리 딸이 적당히 팔다리 잘라서 상어 밥으로 주면 되지 않을까? 무사들한테 서해인들 보호 강화하라고 전하고.”
“한둘이어야지요.”
“다 죽여도 돼. 지플 기분 한 번 맞춰줬으니, 그것들도 사소한 책임은 묻지 못한다. 정치라는 게 이런 거거든, 딸. 어미 입장도 생각해주련.”
“서해에서만큼은 지플도, 룬칸델도, 비먼트도 설칠 수 없으면 좋겠습니다.”
시리스가 한숨을 삼키며 탈라리스의 곁으로 가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녀도 사실 탈라리스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했지만, 분한 마음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네가 그렇게 만들면 되지. 흐응, 시원하구나. 그나저나, 우리 사위는 언제쯤 돌아오려는지. 진짜로 죽은 건 아니겠지? 벌써 반년 째 감감무소식인데, 검만 달랑 발견되었으니 영 찝찝하단 말이야. 그 흑룡, 생각하니 너무하네. 기껏 도와줬더니 아무것도 안 알려주고.”
시리스는 대답 대신 창밖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비궁설화를 바라보았다.
* * *
또다시 시간이 흘러, 1799년의 2월.
룬칸델과 지플은 아직 수배령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진의 죽음은 소문을 넘어 기정사실이 되었고, 그토록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룬칸델의 막내아들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희미해졌다.
천문학적인 현상금을 노린 용병대도, 기사단도, 마법사들도 더 이상 진을 찾지 않았다.
기자들도 진과 관련한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으며, 가끔씩 선술집의 호사가들이나 음유시인들만이 진의 이름을 추억할 뿐이었다.
세계는 그가 없어도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진이 사라진 이후, 말하자면 진이 지플이라는 위선의 가면을 벗겨낸 이후, 킨젤로라는 새로운 거대 세력을 수면으로 끌어올린 이후.
세상은 분명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키히히히, 크흐흐흐흐흐. 뭐, 뭐? 살려달라고? 다시 말해봐, 이 버러지들아. 크큭. 난 네놈들 신념이 꺾이는 걸 볼 때가 가장 짜릿하더라고.”
“그래, 그래. 우리도 사실 너흴 살려주고 싶어. 그런데 어떻게 해? 이게 내 일인데.”
데이토나와 헤이토나가 한 무리의 포박된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작년 여름에 기수가 된 그들은 ‘지옥의 총아들’이라는 이명을 얻은 채 여러 임무에서 꽤나 뚜렷한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거 임무’, 특히 지플의 민낯이 드러난 다음부터 대놓고 활개를 치기 시작한 ‘지플 극렬 추종자’들을 죽일 때, 토나 형제는 그야말로 천직을 찾은 것처럼 활약을 펼쳤다.
“자, 우린 너희들 중 딱 한 놈만 살려줄 거야. 그 운 좋은 놈이 누가 될지는 우리도 모르는데, 아무튼. 살아남는 놈은 가서 친구들한테 전하는 거다. 우린 네놈들이 어디에 있든, 찾아서 바퀴벌레 짓밟듯 모조리 죽여 버릴 거라고.”
“바, 방금은 살려주고 싶다고 그러시지 않았습…….”
“키히, 키흐흑.”
“바퀴벌레는 말을 못 해. 바퀴벌레가 사람 말을 하면 안 된다고. 그런데 네가 말을 하면 내가 뭐가 되냐?”
스걱! 삭……!
“크어억!”
“끄아아악!”
대검과 사슬검이 극렬 추종자들의 몸뚱어리를 사정없이 베었다.
“아, 맞다. 한 놈 살려두기로 했는데…… 다 죽여 버렸네.”
“괜찮아, 헤이토나! 크흐흑, 또 잡으러 가면 돼.”
“데이토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이 새끼들, 분명 지플한테 직통으로 지원을 받는 게 확실한데…… 자살 테러 할 때 몸에 두르는 그 마력 폭탄이 어디서 나왔겠냐고?”
극렬 추종자들은 최근 휴페스터 전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테러, 납치, 선동 등 휴페스터 사람을 대상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키히(데이토나는 언제부턴가 누군가를 죽일 때면 미친 듯이 웃다가, 충분한 피를 보면 멎는 습성이 생겼다), 지플 놈들이 이것들을 돕고 있다는 증거를 잡아야 하지. 그게 우리 임무고.”
“그러려면 한 놈 살려둬서 그걸 추적했어야 하잖아.”
“괜찮아! 또 잡으려 가면 된다니까?”
“하긴, 저번에도 기껏 살려줬더니 튀다가 갑자기 독약 먹고 자살하긴 했지. 꼭 누가 조종하는 것 같단 느낌이 들 때도 있단 말이야, 인형처럼. 흠.”
“나도 그런 기분이 종종 들어.”
“일단 복귀하자. 으! 뮤, 앤. 그 망할 것들도 지금쯤이면 본가에서 대기하고 있으려나?”
“아마도? 하, 또 무슨 이유로 시비를 걸지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군.”
두 사람의 예상대로 뮤와 앤은 오늘 아침 검의 정원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룬칸델의 기수 전원이 검의 정원에 모여 있었다.
가주 시론 룬칸델, 그가 잠시 흑해를 빠져나와 본가에 머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어머, 이게 누구야. 토나 쓰레기들 아니야?”
“기수 됐다고 이제 우리랑 눈을 다 마주치네? 앞으로 빛 보고 살기 싫어서 그러는 거냐?”
뮤와 앤은 정말로 토나 형제를 보자마자 괜한 시비를 걸었다. 정확히는 시비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갈구는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토나 형제는 여전히 그녀들을 두려워했다.
“누, 누님들. 오랜만입니다.”
“왜 겁먹어? 우리 호박씨라도 까고 왔니?”
“아니, 아닌데요…….”
“풋,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지옥의 등신들아.”
“무슨 소란들이냐.”
그들을 지나치던 조슈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조슈아 오라버니.”
“방금 집사 하인츠에게 두 시간 뒤 아버지께서 도착하신다는 보고를 받았다. 쓸데없이 노닥거릴 여유 없으니, 다들 의장 갑옷 입고 도열 준비해.”
“알겠습니다.”
검의 정원에 있는 모든 이들이 시론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그가 검의 정원을 찾을 때면 화려한 병력 도열이 있었으나, 생도들까지 동원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시론의 이번 복귀에 담긴 의미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었다.
진이 사라진 이후 룬칸델과 지플의 냉전이 점점 심화되고 치닫고 있으니, 가주인 그가 직접 룬칸델의 일원들을 독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룬칸델과 휴페스터에 퍼진 불안감을 일시에 종식시킬 수 있는 인물이었다.
창성기사, 세계제일검이란 그런 존재였다.
두 시간 뒤, 도열이 끝났다.
루나, 조슈아, 룬티아, 디푸스, 란, 뷔고, 메리, 뮤, 앤, 데이토나, 헤이토나.
사밀에 있는 요나를 제외한 총 열한 명의 기수가 ‘흑검’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든 채 선두를 장식했다.
그 뒤로 원로들과 집행기사, 각 예하 수호기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생도들도 무기를 통일한 채 의장 갑옷을 입었다.
그러나 일반 병사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검의 정원엔 일반병이 없었다. 오직 기사와 예비 기사, 생도들만이 검의 정원 본대에 소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내, 시론의 행렬이 검의 정원으로 들어섰다.
“가주께서 입원入園하셨다!”
힘껏 발을 박차며 루나가 소리치자, 정사각형으로 도열한 기사들이 한 박자 늦게 발을 굴렀다.
“도열, 검무덤!”
“도열, 검무덤!”
이어지는 루나의 목소리에 기수와 기사들이 복명복창을 했다.
‘검무덤’이란, 룬칸델만의 특별한 도열 방식이었다.
검의 정원에 꽂힌 수천 자루의 검은, 가문 수호와 번영에 특별한 족적을 남긴 이들에게만 허락된 무덤이다.
각 기수와 기사들이 흩어지며 한 사람당 한 자루씩 검의 무덤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애써 짠 도열을 무너뜨리는 듯 보였으나, 이것이야말로 룬칸델 의장의 정수였다.
“충, 가주를 뵙습니다!”
“충, 가주를 뵙습니다!”
기수들은 기를 드높였고, 기사들은 검례를 올렸다. 마치 한 사람이 말하는 듯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
시론과 로사가 말에 탄 채 권속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뒤로 열 명의 현역 흑기사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훌륭하군, 납검하라.”
시론의 명령에 산 자들이 들고 있는 모든 칼날이 검집으로 들어갔다. 정원에 꽂혀있는 검들만이 햇빛에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시론은, 어째서인지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늘에서부터 무언가 검의 정원으로 다가오고 있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창성기사인 그만이 인지할 수 있었다. 루나와 흑기사들조차 알아챌 수 없이 먼 거리였다.
“이 노인을 환영해주려는 자가 또 있나보군.”
“가주,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로사, 그대도 무뎌졌구려. 꽤나 강대한 기운이 검의 정원으로 다가오고 있소. 아주 빠른 속도로 말이오.”
로사의 눈동자가 커졌다.
잠시 후, 루나와 흑기사들도 시론과 같은 것을 느꼈다. 다른 기수들과 상급 기사들은 그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가주님, 대공 방어를 준비해도 되겠습니까?”
루나가 조심스레 묻자 시론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것 없다, 1기수. 누가 찾아오는 것이든, 룬칸델 전체가 움직이면 우스운 꼴이 되지 않겠느냐.”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시론의 말이 옳았다.
지금 검의 정원은 세상 그 누가 오더라도 결코 어찌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시론을 포함해 룬칸델의 모든 전력이 굳건히 검의 정원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 ‘하나’로 추정되는 기운에 룬칸델 전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지나친 일이었다.
십여 초가 지났다.
검의 정원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거대한 흑룡이었다.
무라칸.
그의 그림자가 정원에 드리우자, 기사들은 간신히 속으로 탄식을 삼켰다.
얼마나 갑작스러운 상황이 펼쳐졌든, 시론 앞에서 경거망동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루나와 흑기사들, 그리고 일부 기수들처럼 특히 감각이 좋은 이들을 정말로 기겁하게 만든 것은, 흑룡의 등장이 아니었다.
시론이 말한 ‘꽤나 강대한 기운’의 주인이 흑룡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무라칸은 겉모습만 웅장할 뿐, 자신의 기운을 영기로 완전히 감추고 있었다.
펄럭, 펄럭……!
무라칸이 찬찬히 검의 정원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지상에 닿자, 그의 등에 타고 있던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검의 정원에 다가온 기운의 주인이었다.
새로 들어온 생도들을 제외하면, 검의 정원에 있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얼굴.
열아홉의 진 룬칸델.
그는 담담한 눈빛으로 제 아버지를 향해 검례를 올렸다.
“아버지. 예비기수 진 룬칸델, 수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