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05)
제 333화
93화. 테마르의 두 번째 무덤(4)
그림자와 하나가 되었다. 검게 변한 몸은 어두우면서도 흐릿해 옅은 그림자가 서 있는 것처럼, 유령처럼 보였다. 손을 갖다대보면 쑥 빠져나가 통과할 것 같았다.
우뚝!
수호자가 걸음을 멈췄다.
역천의 기운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마력 역류라면 수호자가 8성이 아니라 5성의 마력만 운용할 수 있는 상태여도 절대 유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 역천은 현시대에도 마력 역류에 관한 마법사들의 상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대마법이다.
천 년 전의 인물인 그녀로서는 더더욱 괴이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플의 비기인가? 어린 나이에 대단한 마법을 쓰는군.]이글이글 불타는 눈썹이 씰룩였다. 상당히 거슬리는 듯, 잠시 멈춘 수호자는 역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업화를 이루고 있는 마력 일부가 붕괴되며 띠 형태를 이뤘다. 띠가 된 마력은 역천의 구체로 서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시간의 권능에 이어 새로운 압박이 더해지니 수호자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모양새였다.
또한 그사이에도 무라칸과의 힘겨루기가 계속 이어지는 중이었다.
영기와 불, 공간을 장악하려는 두 힘이 사방에서 치열하게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형세와 달리, 압도당하는 쪽은 사라가 아니라 진과 동료들 쪽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수호자에게 함부로 접근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인 관점에선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8, 9성의 마력과 오러로 이만한 위력을 내는 건 옛 룬칸델 특유의 힘을 감안하더라도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단순 비교로는 분명 진과 동료들이 그녀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맹약이 있기 이전의 순혈 룬칸델, 존재 자체가 기현상이나 다름없던 인물.
그중에서도 최강에 가까웠던 자.
‘부디. 싸움이 끝나기 전에 한 순간이라도 정신이 온전해지길 바랍니다, 사라 경.’
검을 쥔 진의 손아귀가 단단해졌다.
이내, 진의 몸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빠져나와 바닥을 검게 적셨다.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였다. 그것들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빠른 속도로 수호자의 근처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순식간에 분열된 그림자들이 수호자를 에워쌌다.
스걱, 사악!
수호자가 반사적으로 그림자들에 불의 검기를 쏘았다.
그림자에 물리적으로 타격을 입히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수호자를 둘러싼 그림자들은 잠시 일렁이기만 할 뿐, 계속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영검 제7식 그림자강습
7식은, 이름 그대로 영검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상대를 강습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그림자를 다룰 수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힘을 갖고 있어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검.
흐릿해진 진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들의 눈으론, 반투명하고 어둡게 변한 몸으로 돌진하는 진을 마주하는 것에도 현혹에 빠질 것이다.
몸이 아니라 어두운 검기가 쏘아진 것처럼 보일 만큼 빠른 속도였다.
그럼에도 수호자는 쇄도하는 진을 대수롭지 않게 쳐내려고 했다.
진이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에 이미 검을 휘두를 궤적까지 계산을 끝냈다.
코앞까지 거리가 좁혀진 순간, 두 사람의 검이 호선을 그렸다.
수호자의 검이 더 빨랐다. 보유한 오러의 총량과 부상을 떠나, 그녀가 일평생 이룬 검술은 여전히 초월의 영역에 닿아있었다.
불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검이 맞부딪쳤다.
아니, 맞부딪친 것처럼 보였다. 하나 수호자의 검은 허공을 갈랐고, 진은 그녀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수호자는 난데없이 후방에서 들어오는 시그문드를 마주해야 했다. 검게 물든 시그문드가 수호자의 등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경악한 것은 동료들이었다.
‘진 공자가…… 순간이동을 했어?’
순간이동.
동료들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면으로 돌진했던 진이 돌연 수호자의 뒤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 말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이 허공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은, 수호자를 둘러싸고 있는 다섯 개의 그림자들 때문이었다.
그 그림자들은 일종의 ‘문’이었다. 영검 7식 그림자강습을 펼친 진이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문.
진은 격돌의 순간 수호자의 정면에 놓인 그림자로 몸을 숨겼고, 다시 후방에 놓인 그림자로 빠져나와 검을 휘두른 것이다.
‘강습’, 예상할 수 없이 강력한 습격.
그건 그림자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자만이 펼칠 수 있는 속임수였다.
샤악-!
진의 검이 수호자의 등허리를 스쳤다.
정확히는 그녀를 가죽처럼 뒤덮고 있는 불의 끄트머리를 스쳤다.
십대기사였다.
시간의 권능에 불이 묶이고, 무라칸과 힘 싸움을 하고, 역천에 마력이 강제로 요동치는 와중이라 할지라도.
단 일격에 벨 수 있으리라고는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 영검에 이런 것이 있었지. 불쾌하구나, 가주의 검을 사용하다니.]진은 더 이상 자신은 지플이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불문곡절, 정신이 붕괴된 옛 영웅과는 입이 아닌 검으로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실더레이 경 때와 달리 문제가 있긴 하지만, 어차피 사라 경 역시 솔더렛의 안배다. 전승의 조건만 채우면 첫 번째 무덤에서 겪은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솔더렛이 남긴 모든 종류의 시험은 결국 같은 해답을 공유하고 있었다.
의지. 무인으로서,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가장 숭고한 가치. 그것을 증명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처음 영검을 깨우쳤을 때도, 미트라 대사막에서도, 첫 번째 무덤에서도 그랬다. 이번이라고 다를 이유는 없었다.
다섯 방향에서 진과 수호자의 검이 맞물리고 있었다. 진은 몸을 회전시키는 동작이 전혀 없이, 다섯 개의 그림자 속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반면 수호자는 정신없이 시그문드를 받아쳐야 했다.
그러나 겉보기에만 다급해 보일 뿐, 쉴 새 없이 몸을 돌리는 수호자의 눈빛이 바위처럼 단단했다.
공방이 빨라질수록.
두 사람의 검은 점점 더 단순한 형태가 되어갔다. 현란함이 아니라 단순함 속에 담긴 깊이의 싸움이었다.
어느 쪽의 검이 더 깊은가.
따진다면 당연히 수호자였다. 경지, 경험, 숙련도, 일체화. 재능이라는 천부적인 요소 단 하나를 제외하면, 진의 검술은 모든 면에서 그녀보다 아래였다.
[아깝구나, 소년. 룬칸델이었다면 세상을 구할 영웅이 되었을 것을.]수호자를 둘러싼 다섯 개의 그림자들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진이 밀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동료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그 광경을 보면서도 싸움에 끼어들 수 없다는 사실이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퀴칸텔이 부리는 시간의 권능도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퀴칸텔이 업화를 붙잡아둘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길어야 1분, 그마저도 구속력이 처음과 같지 않았다.
무라칸 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간의 구속력이 약해질수록 업화가 강력해지고 있으니, 그건 곧 팽팽하던 힘 싸움에 변화가 생긴다는 의미였다.
진은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목이 바싹바싹 마르고 있는 동료들과 달리, 진은 차분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업화의 마력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지켜보며 말이다.
‘시간의 속박이 약해진 만큼, 다시 대단한 위력을 보이기 시작했으나…… 업화를 형성하고 있는 마력이 전처럼 엄청난 밀도를 갖고 있지는 않다.’
수호자가 부리고 있는 마력의 흐름이 변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이유는 역천이었다.
‘몸 상태가 최상이었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역천으로 인한 마력 역류를 제어하면서 업화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지금은 아니었다.
다른 동료들은 아무도 업화의 밀도가 낮아진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룬칸델의 옛 마검 비기가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몰라 잔뜩 긴장하고만 있었다.
하지만 진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진이 가진 마법사로서의 눈.
그 눈엔, 업화의 불안정한 상태가 똑똑히 보였다.
‘사실상 업화는 역천이 시작된 순간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강제로 붙잡고 있지만, 곧 역류가 시작될 거다.’
수호자가 너무나 멀쩡히 싸우는 중이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은 그녀가 곧 역류에 빠질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물론, 역류가 시작된다고 해서 사라의 무위가 갑자기 쭉 떨어지진 않는다. 그녀는 분명 역류가 심화되기 전에 마력을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게 맹공을 이어갈 터였다.
딱 한 순간이었다.
마력 역류로 인해 그녀에게 빈틈이 생기는 것은.
‘사라 경이 역류를 바로잡기 위해 둔해지는 순간, 그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캉, 카각, 챙……!
영검 7식에서 파생된 그림자들은 이제 처음보다 거의 두 배가 넘도록 큰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만큼 진이 수호자에게 밀려 물러난 결과였다.
수호자가 여럿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듯.
진은 수호자로부터 시작된 여러 현상을 한꺼번에 살피고 있었다.
검을 쳐내고, 마력의 흐름과 밀도를 확인하고, 업화의 경로를 주의하고, 그녀가 역류에 빠질 순간을 계산하고.
시간의 속박이 유지되는 건 앞으로 20초 남짓.
그리고 진은 계산을 끝냈다.
‘5초 후.’
수호자의 역류가 시작될 것이다.
하나.
둘.
셋…….
큽!
수호자가 별안간 한 덩이의 시커먼 영기를 토했다. 진의 계산이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다.
맞붙은 이후, 진이 처음으로 전진 보법을 밟았다.
그림자강습이라는 속임수로 감추고 있던, 진짜 속임수를 준비한 채로.
시익-!
어두운 칼날이 수호자의 심장으로 떨어졌다.
수백 번의 공방이 오가던 중, 그녀가 겪은 첫 위기였다.
그러나 수호자는 역류를 제어하는 와중에도 진의 검에 반응하는 괴력을 보였다. 화염으로 물든 검이 올려쳐지며 시그문드를 쳐낸 것이다.
진의 노림수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수호자를 덮친 검이 시그문드 한 자루뿐이었다면, 실패였을 것이다.
[아.]수호자가 물러나며 진과 거리를 벌렸다.
그녀의 가슴팍에 시커멓게 일렁이는 칼날이 꽂혀 있었다. 그 틈으로 콸콸 영기가 쏟아졌다.
사라는 자신이 마력 역류에 빠지는 순간, 진이 승부를 걸어오리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라 할지라도 반응만으로 마지막 일격을 쳐내는 건 불가능했다.
[하하…… 당했군, 이 몸이.]영검 4식 가위.
진이 준비한 진짜 속임수. 사라가 예상하지 못한 단 하나는 그것이었다. 시그문드를 쳐낸 순간, 가위의 칼날이 그녀의 심장을 관통한 것이다.
수호자는 시야가 어두워지는 걸 느꼈다.
곧, 지독하고 고독했던 수호자로서의 사명이 끝나리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껏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는지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소년, 자신들이 지플로부터 끝끝내 지켜낸 후손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무엇하느냐? 어서 끝을 내라, 진 룬칸델.]수호자가 그렇게 말하자.
진이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검을 내질렀다.
“영광이었습니다, 사라 룬칸델 경.”
푹……!
다시 한 번 시그문드가 그녀의 가슴팍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