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09)
제 333화
94화. 과거의 조각 – 사라(3)
“진!”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동료들이 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진이 부러진 검과 영기 구슬을 제트에게 넘기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응, 괜찮아.”
후우우…….
진의 손바닥 위에 영기가 모여들었다. 어두운 영기는 곧 한 송이의 조화弔花가 되었다. 진이 그것을 바닥에 내려두며 묵례하자 동료들도 고개를 숙였다.
사라를 위한 애도. 무라칸과 퀴칸텔은 착잡한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운 기색이었다.
‘편히 쉬십시오, 사라 경.’
올망고는 여전히 바다 위에 서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망고가 권능을 부려 무형의 계단을 만들었고, 일행은 다시 그를 따라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래, 안에 있던 친구는 누구였나? 진 룬칸델.]해변에 도착하자 올망고가 물었다.
“사라 룬칸델 경이었습니다.”
[사라, 사라 룬칸델이라…….]몇 번이나 그 이름을 되뇌는 올망고.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올망고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없었다.
[뭔가 그립고 안타까운 감정이 들지만, 이상할 정도로 사라 룬칸델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군…… 지플이 그녀를 역사에서 지워버렸기 때문이겠지.]“사라랑 아는 사이였던 건 확실해? 조개의 신 양반.”
무라칸의 물음에 올망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는 사이였다.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마음이 아플 리 없잖나.]“그런데, 지플이 역사에서 그분을 완전히 지워버렸다면. 무라칸 님과 퀴칸텔 님의 기억 속에도 남아있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알리사가 말했다.
[지플의 역사 조작 능력은 완벽하지 않아. 놈들의 역사 조작이 완벽했다면, 나와 너희가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 권능으로 테마르의 두 번째 무덤을 다시 감추는 것도 불가능했겠지.]무라칸과 퀴칸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양반 말이 맞다. 그것들이 쓰러뜨린 적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것이야 늘 있던 일이지만, 한계가 있지. 그러니까 룬칸델 또한 마검사 가문이었다는 사실만 지워진 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이고.”
그 외에도 첸미의 마법서가 세상에 남아있던 것이나, 슈지엘 히스터의 마법서와 발레리아가 생존해있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하지만 불완전하다고 해봤자…… 나 역시, 무덤의 수호자들을 마주치기 전까진 실더레이와 사라를 떠올리기 어려웠어. 내 기억도 어느 정도 놈들의 마법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고, 이 제트는 얼른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요. 역사를 지운다니, 그게 정말 마법으로 가능한 일이란 말입니까요? 무슨 신도 아니고…….”
“인간이 가져선 안 될 거대하고 위험한 힘이다. 우린 그런 힘을 가진 자들과 싸워야 하고.”
퀴칸텔의 설명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방관자.
사라는 그녀를 그렇게 불렀으나, 지금의 퀴칸텔은 천 년 전과 달리 진을 도와 싸우고 있었다.
그건 그녀의 신, ‘올타’가 진의 싸움에 자신이 휘말리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세한 설명을 듣진 못했으나.
다들 퀴칸텔이 사라에게 가진 죄책감을 이해하고 있었다. 수호룡인 그녀는 인간처럼 ‘완전한 자유 의지’를 가질 수 없었다.
자신이 모시는 신의 선택이라면 아무리 싫어도 따라야 했고, 계약자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맹목적인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존재.
그게 수호룡이었다.
‘……하지만 무라칸은 테마르를 죽이려고 했었다.’
무라칸에게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을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꼬마.”
“어.”
“그래서 이번엔 기록 장치에서 뭘 봤냐? 한 번 이야기해봐.”
그러자 진이 올망고와 동료들을 한 번 쳐다보았다.
무라칸을 생각한 행동이었다.
“……다들, 잠깐만 자리를 비켜주십시오.”
올망고와 동료들이 군말 없이 자리를 비켜주려는 찰나, 무라칸이 손을 저었다.
“여기 있는 자들은 다 네 동료다, 꼬마. 나에 대해 뭔가 안 좋은 것을 본 모양인데 감출 필요 없어. 뭐든 네가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음…… 그럼 나라도 빠져줄까?]올망고가 슬쩍 눈치를 보자 무라칸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댁도 그냥 들으쇼. 솔더렛이 내게 한 마디도 안 남긴 건 서운하지만, 여하튼 댁도 내 옛 동료들과 긴밀했던 모양이니까. 테마르 녀석의 두 번째 무덤을 지금껏 잘 숨겨주기도 했고.”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본 것은, 네가 테마르를 죽이려던 모습이다.”
그 말에 모든 동료들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무라칸과 퀴칸텔은 담담한 반응이었다.
이어 진이 영상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시작하자 흥미롭고도 슬픈 옛 이야기에 동료들의 표정이 시시때때로 변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무라칸이 한숨을 내쉬었다.
“……테마르. 분명 나는 폭주한 녀석과 싸우다가 심장을 찔려 긴 잠에 빠졌어. 하지만.”
예상대로 무라칸은 ‘킨젤로의 단장’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흑해에 존재하던 정체불명의 탑에 대해서도. 그는 아예 사라, 파들러와 함께 그날 탑을 찾아간 기억 자체가 없었다.
“그 이상한 새끼와 흑해에 존재한 탑이 대체 뭔지를 모르겠군. 내가 기억하는 한 테마르가 그렇게까지 약해졌던 적도 없고 말이야.”
무라칸이 가장 의아해한 대목은, 너무나 손쉽게 자신에게 제압당할 뻔한 테마르의 모습이었다.
“킨젤로 단장, 내가 그놈하고 천 년 전에도 마주친 적이 있단 말이지……? 그냥 어디서 주워들은 것 좀 있는 마족인 줄 알았더니. 나와 뭔가 관계가 있는 마족이긴 한 모양이군.”
의외로 무라칸은 그다지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억에 문제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솔더렛이 기록 장치를 남겼기 때문이었다.
“내 망할 신이 굳이 기록 장치를 남긴 건, 내 기억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겠지. 아니, 확신이 있었을 거다. 차근차근 하나씩 되짚다 보면 그 시절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겠지.”
“그런데 무라칸.”
퀴칸텔이 말했다.
“왜?”
“영상 속에서 킨젤로 단장이 말했다는 표현 말이야. 그, 고아 어쩌고 하는 부분.”
“유복이 지나친 행운아로서 불쌍한 고아들에게 선의를 베풀려는 것이다. 그거?”
“그래. 그 표현, 어디서 들어본 적 있지 않나?”
“글쎄, 잘 모르겠는데. 밥맛 떨어지는 종류의 인간들이 상대적 약자들에게 자주 할 것 같은 말이긴 하군.”
“묘하게 익숙한 표현 같단 말이지.”
“마족 새끼들 쓸데없이 장황하게 말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잖아. 별것 아니겠지만, 신경 쓰이면 한 번 알아봐. 지금 활동하는 마족이 있나? 꼬마의 첫째 누이가 예전에 하나 벤 적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폭풍성 시절 루나가 진에게 생일 선물로 준 ‘펜던트’는 본래 마수왕 오르갈의 물건으로, 그녀가 한 마족을 처치하고 얻은 전리품이었다.
무라칸이 제트에게서 영기 구슬을 받았다.
“흠, 정말. 정말 싫기는 한데. 아무래도 미샤를 빨리 만나봐야겠다. 이 구슬이 뭐에 쓰는 물건인지, 네가 본 영상에 관해서도 아는 게 있는지 좀 물어봐야겠어. 아직 휴가 좀 남았지?”
“일주일쯤.”
“좋아, 바로 가자고. 피콘한테 들러서 사라의 검 조각을 줄 시간도 충분하군. 이보쇼, 조개의 신.”
[왜?]“고맙수다. 그 녀석 무덤 지켜줘서.”
무라칸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으며 인사하자 올망고가 어깨를 으쓱였다.
[됐어, 솔더렛의 부탁이니 당연히 들어줘야지.]“그래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요. 행여 지플에 발각되면 무슨 고초를 겪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러자 올망고도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어려운 일이었지. 그렇게 고마우면, 나도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말해보쇼.”
올망고가 또 한 번 진과 동료들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쿠키…….]“뭐?”
[그, 리트라 쿠키를 더 구해줄 수 있겠나?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는 맛이었다…….]“아이, 미친. 신이 돼 갖고 무슨 쿠키에 환장을 하고 앉았어! 그러니까 어? 나나 다른 사람들이 댁을 잡신으로 여기는 것 아니야. 물 위를 걷고, 그런 엄청난 봉인도 다룰 수 있으면서 말이야. 품위를 보이라고, 좀.”
[너도 어패류만 먹고 살아봐. 이렇게 안 되나.]“쿠키는 앞으로 정기적으로 사람을 시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올망고 님.”
그 말에 올망고가 눈망울을 반짝였다.
[정말이냐?]“물론입니다.”
[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조거비, 내 계약자도 넉넉히 먹일 수 있겠군. 내심 미안했거든. 나도 모르게 혼자 거의 다 먹어버려서.]진이 피식 웃으며 올망고와 눈을 맞췄다.
“그런데, 올망고 님.”
[응?]“세 번째 무덤의 열쇠는 누가 갖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 * *
진과 무라칸은 피콘에게 들러 사라의 부러진 검을 넘기고(그 역시 진이 두 번째 무덤에서 본 영상에 대해 달리 덧붙일 말이 없었다), 곧장 미샤를 찾아갔다.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반듯하게 차려입은 종업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두 사람이 미샤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곳은, 밀라 왕국의 한 최고급 주점.
‘장막’이라는 이름으로 영업 중인 이 주점은 철저하게 회원제로만 운영되며, 기존 회원의 추천이 없으면 입장조차 불가한 기묘한 곳이었다.
왕족조차 함부로 입장할 수 없었다.
룬칸델이나 지플, 비먼트 같은 세계구급 세력의 일원들은 가문의 상징이나 문양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조건 없이 입장이 가능하나, 진과 무라칸은 현재 변장 중이었다.
“그레이스 쉴즈 씨를 뵈러 왔습니다.”
대신 회원들 중에도 아는 사람이 극도로 적은, 주인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종업원의 태도가 대번에 달라졌다.
“주인님의 손님이셨군요.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종업원이 즉시 두 사람을 비밀방으로 안내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방 안엔 한 흑발의 여인이 앉아 홀로 낮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진. 그간 잘 지냈느냐?”
그레이스 쉴즈, 그건 미샤의 가명이었다. 그녀가 바로 주점 장막의 주인인 것이다. 장막은 그녀의 수많은 은신처 중 하나였다.
“미샤 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서해 전투 이후 처음 뵙는군요. 진작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없이 감사 인사 하겠다고 찾아왔다면 내가 흠씬 두들겨 팼을 거다.”
“헹, 하여간 성질머리하고는. 너 여기도 없었으면 포기하려고 했다. 은신처가 대체 몇 개냐고.”
그녀가 알려준 은신처들을 뒤지느라 이틀 동안 이동 관문만 스무 번을 넘게 탔다. 때문에 무라칸은 무척 핼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자마자 맞고 싶다고 몸부림을 치는군. 너? 너라고 했냐, 지금? 이리 와, 턱을 그냥 여섯 방향으로 돌려줄게.”
퍼퍽, 퍽!
다소 거친 인사가 오간 뒤, 진이 그녀에게 두 개의 영기 구슬을 내밀었다.
“쿠헥, 크흐억.”
무라칸의 입가에서 콸콸 핏물이 흘렀다. 멱살을 붙잡고 있던 미샤가 무라칸을 내동댕이치며 구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디서 났느냐?”
“테마르의 무덤들을 다녀왔습니다.”
“……자세히 이야기해보아라.”
피콘을 만난 날부터 이번에 올망고를 찾은 일까지. 진이 설명하는 내내 미샤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 또한 무라칸처럼 솔더렛이 테마르의 무덤이라는 ‘안배’를 남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진.”
“예, 미샤 님.”
“네가 가져온 그 구슬들은, 기록 장치다. 나도 이야기만 들어보았지,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로군.”
“이것들이 기록 장치라고요?”
“그래, 네가 본 영상은 그 기록 장치가 가동된 결과였을 것이다. 기록 영상이 불안정했던 건, 장치가 훼손되었기 때문이고.”
“고칠 수 있는 겁니까?”
진의 물음에, 미샤는 이렇게 답했다.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야, 미샤. 네가 못 고치면 어떻게 해?”
“진, 아무래도…… 아리아 아울하트. 네가 그 아이를 한 번 만나보아야겠구나.”
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미샤가 먼저 스승의 이름을 꺼낼 줄은 예상치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