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40)
제 333화
104화. 빚과 빚과 빚(8)
로사의 판단에 진을 잡아 죽일 듯 눈을 부라리던 원로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모두 불만스러운 눈치였으나, 감히 로사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원로회장 조르덴조차 반기를 들지 못했다.
룬칸델에서 가주의 명이란 그만큼 절대적이다.
가주 ‘대행’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가문은 예로부터 가주의 판단에 반기를 드는 자를 살려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사소한 문제에서든, 큰 문제에서든.
“예, 어머니. 명심하겠습니다.”
진이 가만히 로사를 올려다보았다.
회의실 상석에 왕처럼 앉아있는 그녀의 담담한 표정에선 딱히 어떤 감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아버지보다 오히려 어머니 쪽이 훨씬 상대하기 까다로운 느낌이란 말이지…….’
회귀 이후, 이상하게 진은 시론을 상대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생에선 감히 눈도 못 마주치던, 말 한 마디 섞어볼 수 없던 괴물 같은 아버지가 편해진 것은 새삼 생각해도 묘한 일이었다.
반면 로사를 마주하는 건 늘 쉽지 않았다.
로사에 대해선 시론과 마찬가지로 회귀 전의 기억이 그리 많지 않았다.
로사도, 시론도. 어느 시점부터는 진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인물 취급을 했기 때문이었다.
담뿍 애정이 담긴 말소리나 시선은 물론이고, 질책, 타박, 경멸스러운 눈빛, 훈육을 빙자한 폭언과 폭력…….
그런 것조차 겪어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명확한 기억’이라는 게 생기던 나이쯤부터는 말이다.
그저 한없이 무감한, 마치 정말 아무런 관계도 없는 행인을 볼 때의 차가운 눈빛.
전생의 진이 부모로부터 받았던 것은 그게 전부였다.
그나마 로사는 회귀 전, ‘쓰레기 진 룬칸델’이 추방당한 날 이틀이나 곡기를 끊어 감정을 드러냈다고 했었다.
그건 가짜였을까?
아니면, 본인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행동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지금의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는군.’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스승에 대한 정보? 사업체에 대한 소유권 일부? 설마 이 정도로 내가 가주 경쟁에서 물러나길 바라지는 않을 것 같고.’
이미 로사가 동부 5지역이라는 패를 꺼냈을 때에도 진은 물러나지 않았으니, 그들은 결국 어느 한쪽이 파멸할 때까지 싸워야 할 운명이었다.
잠시 고민되는 와중 로사는 더 이상 뒷말을 잇지 않고 회의장을 나서는 모습이었다. 큰 틀은 정해줬으니, 나머지는 알아서들 정하라는 듯.
후우.
조르덴이 한숨을 내뱉었다.
“네겐 늘 행운이 따르는군, 12기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원로회장님. 흑검회가 제 사업체를 위해 할 일이 많을 것 같군요.”
“언제까지 그 행운이 자네를 지켜줄지 지켜보도록 하지.”
“물론, 도와주시는 만큼 섭섭하지 않게 챙겨드릴 생각입니다. 너무 모났다고만 여기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공손히 고개를 숙였으나, 그 모습이 진짜로 예의 바르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르덴은 굳이 진에게 더 악을 쓰지 않고 회의실을 떠났다. 그래봐야 자신만 우스워진다는 걸 모르지 않는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형제들 대부분은 또 한 번 막내라는 인간에게 질려버렸다.
‘도대체, 막내는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 걸까? 어떻게 원로회장님을 상대로 이럴 수가 있지?’
‘한두 번 보는 게 아니라, 이제는 그냥 우리랑 종이 다른 건가 싶기도 해.’
토나 형제는 언제나처럼 두려움과 동경이 동시에 들어찬 시선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어머닌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분명 진을 견제하려는 눈치셨는데, 이건 놈을 비호하려는 모양새잖아.’
‘뭔가 뜻이 있으실 거다, 분명. 조슈아 오라버니와도 뭔가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고.’
뮤와 앤은 또 한 번 분노와 패배감에 빠져야만 했다. 막내가 생도일 때 죽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었다.
진에겐 그 마음이 훤히 보였다. 죽일 수 있을 때 자신을 죽이지 못해 아쉬워하는 누이들의 마음이.
‘어차피 조슈아가 내 계약을 탐내온 이상, 누님들은 무슨 짓을 했어도 날 죽일 수 없었을 텐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고.’
진이 뮤와 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들도 회의에 덧붙일 말이 없는 듯 곧 회의장을 떠났다.
룬티아는 이번에도 달리 말없이 지루한 듯 하품만 늘어놓았고, 란과 뷔고는 언짢은 기색이었다. 두 사람은 막내가 더 이상 가문에 큰 분란을 만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결심한 듯, 진이 회의실에 있는 이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밖으로 나가 검의 정원 안뜰을 걷는 동안, 진은 좀 전에 가장 먼저 회의실을 나섰던 로사를 마주칠 수 있었다.
그녀는 집사장 하인츠의 보고를 받고 있었는데, 무언가 중요한 문제인 듯 심각한 표정이었다.
하인츠.
그는 시론의 사람이다. 그 사실을 떠올린 진은 지금 그가 로사에게 올리고 있는 보고가 ‘흑해’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버지와 큰누님, 그리고 흑기사들에 대한 소식이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로사의 낯빛이 어두운 것이 마음에 걸렸다. 방금 회의실에서 진을 도우면서도 철저히 무표정이었던 로사였다.
진이 자연스레 다가가자(진의 방이 있는 방향이었다) 하인츠가 입을 닫았다.
“무슨 일이냐? 벌써 회의가 끝난 건가?”
“지나가는 길입니다. 조르덴 원로장이 자리를 뜨는 바람에 저도 할 말이 없어 나왔죠. 어차피 어머니께서 절 도우라 명을 내리셨으니, 실행할 수밖에 없겠지만 썩 좋아 보이진 않더군요.”
“그런가.”
“흑해에 대한 소식입니까?”
“네가 알 것 없다.”
“저도 기수입니다.”
“너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기수도 마찬가지다. 기수라 하여 가문의 모든 일을 알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
로사가 대답해주리라 기대를 하진 않았다. 어차피 흑해에 관한 문제는 나중에 루나를 통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진과 로사는 몇 초쯤 서로를 쳐다보며 말이 없었다.
“진.”
“예, 어머니.”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인가?”
고개를 끄덕이는 진.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뭐라?”
“어머니께선 방금 제 징계를 없애주셨고, 사업체를 보호해주라 명하셨습니다.”
“그게 어떻다는 것이냐?”
“제게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명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진이 생각하기에.
로사는 분명,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도 화장품 사업을 보호하면서 진의 이득을 배제시키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로사.
하하!
이어 로사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진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존재한다면, 네가 들어줄 수나 있단 말이냐?”
“빚을 지고 그냥 넘어간 적은 없습니다.”
“빚이라…… 그런 건 관계가 대등할 때나 허용되는 것이지. 너와 내게 해당되는 이야긴 아닌 것 같구나.”
“맞는 말씀이군요.”
“내 네게 무언가를 원해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갈 길 가 보아라.”
“알겠습니다.”
진이 목례하고 지나치자 로사가 그를 돌아보았다.
“막내.”
“예.”
“내가 원하는 것은, 룬칸델의 생존과 번영이다.”
담담하면서도 진솔한 목소리.
“제가 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자 로사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조금 다를 것이다.”
진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옮겼다.
방으로 가기 전, 먼저 메리와 디푸스가 입실해있는 의료원을 찾았다. 두 사람은 집사 페트로의 말대로 경미한 부상을…….
‘아니, 이게 경미한 부상이라고?’
아무래도 페트로가 잘못 전해 들었거나, 두 사람이 허세를 부린 모양이었다.
둘은 붕대와 부목을 온몸에 칭칭 감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그때 오라버니가 거기서 딱! 어? 파고들어서 틈을 벌었으면 내가 뒤에서 그놈들 모가지를 콱 따버렸을 거라고. 그럼 금방 끝났을 것 아니야?”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에잇, 더 잘했어야 한다고. 내가 오라버니 정도 무위였잖아? 두 배는 더 벌었어. 오라버닌 가끔 보면 힘만 세지 싸움은 좀 못하는 것 같단 말이야? 싸움은 뭐다? 머리로 하는 거라고, 머리로.”
“그래, 너 잘났다. 네 똥 굵어. 이게 기껏 앞에서 버텨줬더니.”
“그러니까 나였으면 두 배는 더 버텼…… 어어, 막내 왔냐?”
병상에서나마 쾌활하게 떠들고 있기는 했다.
두 사람의 꼴을 보니 어쩐지 빈손으로 온 게 미안해지는 진이었다. 과일이라도 하나 가져왔어야 하나 싶었다.
“좀 괜찮으십니까?”
“보다시피 아주 쌩쌩하다.”
메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보기에는 많이 다친 것 같은데요.”
“착각이야.”
“망령대 놈들이 그렇게 강했습니까? 두 분이 이렇게까지 다칠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만 있었다면 모를까, 집행기사 수준의 수호기사 오십여 명이 함께였다. 망령대가 대단해도 둘 정도는 압도적으로 찢어 죽였어야 옳은 그림인 것이다.
“뭐, 괜히 그것들 잡는다고 수호기사들 죽을까 봐 무리 좀 했다. 원래 내 결전기는 쓰고 나면 몸이 난리가 나기도 하고.”
결전기 화산의 변형.
메리가 그것을 펼치는 모습을 떠올린 진이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자폭기인 데다, 그토록 폭발적으로 오러를 터뜨리는 기술인 만큼 몸에 심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크크, 혹시 아냐? 우리 막내, 언젠가 날 이기고 소원으로 한 번 말해봐. 말만 잘 하면 이 누나가 가르쳐줄 수도 있다.”
“괜찮으니, 몸이나 얼른 나으십시오.”
“칫, 재미없긴. 누나랑 형 몸은 걱정 말고, 앞으로 네 친구들 어떻게 관리할지나 잘 생각해봐.”
친구들이란 작은 수인들을 뜻했다.
“일단 그들은 수호기사들이 내 안전가옥으로 보내놓은 상태다. 아마 회의에서 네 사업체를 보호해줘야 한다고 결론이 났을 테지만, 그래도 직접 관리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디푸스가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가문의 지원을 받는 건 좋으나, 모든 걸 맡겨서는 안 된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결국 주체는 여전히 자신이 되어야 했다. 흑검회나 수호기사들이 할 일은, 사업의 주인들이 아닌 사업체가 공격받는 것만을 막아주는 것이었다.
“생각해둔 것은 있나?”
“있습니다.”
“내 안전가옥의 위치를 알려주겠다. 네가 직접 인솔해서 데려가라.”
디푸스는 진이 생각한 방책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그 또한 자신이 간섭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비궁에 또 신세를 지게 될 것 같군.’
진은 작은 수인들을 비궁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묘인족의 결계가 사라진 이상, 작은 수인들에게 그곳보다 안전한 곳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묘인족들도 찾아보아야 한다.’
일단은 부디 전부 망령대의 손에 죽은 것은 아니길 빌어야 할 뿐이었다.
의료원을 떠나기 전, 진이 형제들을 돌아보았다.
“왜?”
“그냥, 고맙다고요.”
진이 나가자 메리와 디푸스가 서로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껌뻑였다.
“허허, 별일이네…… 쟤가 인사를 다 하고. 그치, 오라버니?”
디푸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두 사람은 막내가 떠난 자리를 한동안 그냥 쳐다보다가, 다시 망령대와의 전투를 의논하며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