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39)
제 333화
104화. 빚과 빚과 빚(7)
원로들의 눈동자에 한껏 분노가 서려있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당장이라도 사지를 다 찢어죽일 기세였다.
물론 감히 원로들의 말을 끊고 한 말씀 올리겠다 말한 진이 아니라, 지플을 향한 분노였다.
원로들 대부분은 진을 싫어하거나, 중립을 지키더라도 어느 정도는 진을 비호감으로 여기고 있으나.
그들은 평생을 룬칸델에 몸 바쳐온 무인들이다.
순혈, 방계, 하위 가문, 외부 세력 출신 모두 따질 것 없이 그 누구보다도 지플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가득한 이들이 바로 원로인 것이다.
수십 년을 지플과 싸워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로들은 대부분 지플에게 가족이나 동료, 연인을 잃은 기억이 있었다.
“말해봐라, 12기수!”
조르덴이 핏발 선 눈으로 소리쳤다.
“우선, 저로 인해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진 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필요 없는 소리는 치우고 본론만 말하게!”
“보복은 멈춰야 합니다.”
그 말에 원로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회의실에 있던 다른 기수들도 기겁하며 진을 쳐다보았다.
“뭐라!? 12기수, 지금 무슨 소리를……!”
조르덴이 성큼성큼 진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문자 그대로 코가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서, 위압적으로 진을 노려보았다. 다른 원로들도 제 귀를 의심하며 별반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의식은 하고 있는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책임질 수 있고, 합당한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이야. 안 그러면 이 자리에서 팔을 자르겠다.”
“제 팔을 노리는 분들이 참 많은 것 같군요. 하지만 진짜로 가져가신 분은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빈정대지 마라! 이 분위기에, 네 말이 과연 옳다고 생각하는가?”
“제 말을 끝까지 들었다면 원로장께서도 옳다고 말씀하셨을 겁니다. 제가 보복하지 말자고 한 것은, 어디까지나 물리적 보복의 이야기였습니다.”
“물리적 보복? 즉, 지플의 마법 제품 생산지를 치면 안 된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진이 눈 하나 깜짝 않고 대답하자 곳곳에서 탄식이 흘렀다.
어찌 기수가 되어 저런 망언을 할꼬, 이러니 밉보인 게지…… 쯧! 혀를 차는 원로들.
진은 그들을 보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본래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다들 나이가 들어 좀 흐려진 것인가. 이 좋은 기회를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시작하는 것으로 사용하겠다니.’
기가 막힌 건 원로들뿐만이 아니었다. 진 역시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들의 단순한 계획이.
“이유를…… 말해보아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빤하지 않습니까. 만약 그들의 마법 제품 생산지를 건드렸다가, 전면전이 시작되면 어쩌실 겁니까? 이길 수 있습니까?”
“뭣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지플을 이길 수 있습니까? 지금 당장 싸워서 놈들을 박살내고, 세상 전부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건 모두가 답을 알지만,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가주와 최강의 기수는 부재중이고, 전대 흑기사들과 흑기사 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 지플과 전쟁을 시작해봐야 피를 보는 건 우리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흑해로 떠난 룬칸델 최강의 검들이 본래 자리를 사수하고 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룬칸델은 지플을 이길 수 없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랬다. 시론 룬칸델이 창성에 오르고도, 막내아들에게 ‘내게 시간이 얼마 없다’고 말하고도 지플과 전면전을 치르지 않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니 잔뜩 화가 나서 실행하지도 못할, 혹은 실행해서도 안 될 이야기들을 할 때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지금껏 가만히 계신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 조르덴과 원로들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겠지. 다만 분노를 주체하기 어려울 뿐.’
꼭 애들 같았다. 어떻게든 상대를 엿 먹이고 싶어 미치겠지만 힘은 없는.
그래서 갈 길 없는 분노를 투정처럼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잘 어르고 달래서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 적의 최중요 시설들을 건드는 건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더욱이, 실제로 우리가 피해를 본 것은 단 하나도 없잖습니까?”
“피해가 없다고 말한 적이 없거늘, 어찌 알았느냐?”
“오는 길에 제 집사에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4기수와 7기수가 놈들을 죽였고, 우리 쪽은 경미한 부상만 입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죠. 게다가 방금 한 원로분께서 자칫하면 일반인이 다칠 수 있었다,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곧 일반인의 피해는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까?”
조르덴의 말문이 막혔다. 그 역시 진의 말이 옳다는 건 알고 있으나 이 얄미운 놈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 듣고 싶지가 않았다.
“따라서 놈들의 이번 공격은 오히려 우리 측의 대승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린 피해를 본 게 없는 대신, 지플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최정예 마법사들을 잃었으니까요.”
까드득!
조르덴이 진을 씹어 삼킬 기세로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 우리가 대승을 거뒀으니, 표면적으로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조르덴이 이토록 화가 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지플의 마법 제품 생산 시설들을 타격하기로 결정한 건, 언제든 날개를 꺾어버리고 싶은 진을 돕는 셈이었다.
그걸 알고도 기껏 분개해줬건만, 진이 초 치는 소리를 하니 부아가 치밀어 미칠 것 같았다.
“게다가 놈들도 바보가 아니다. 그깟 시설 몇 개 무너진다고 우리와 전면전을 치르기엔, 다른 세력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단 말이다.”
“그 말씀대로, 지플이 전면전을 펼칠 가능성은 희박하긴 합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고, 무엇보다도. 훨씬 효율적인 보복이 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무리한 도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더 효율적인 보복?”
조르덴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여론이 지플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겁니다.”
“하! 무슨 이야길 하나 했더니, 기껏 꺼낸 말이 여론전을 하자는 것이냐? 놈들은 우리 영토를 침범했건만, 펜대나 놀리자고……!”
예상한 반응이었다.
“원로장님, 진정하고 제 이야길 더 들어주십시오. 원로장님께서 꼴도 보기 싫은 저를 위해 싸우시려고 분노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가 결국 최선이라는 걸 원로장님도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말없이 진을 노려보는 조르덴.
“지플의 마법 제품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도 최근 그들의 마법 제품을 수입하지 못해 일반인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지요.”
성국 사건 이후 지플은 휴페스터 측에 마법 제품의 공급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어찌 암시장과 밀무역을 통해 생활 마법 제품들을 수입하고 있긴 하나,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지플의 생산 시설을 치는 건 여론을 다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 가문이 언제부터 그런 걸 따졌느냐마는, 이제는 필요성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세상의 최대 악당이 룬칸델에서 지플로 넘어가는 추세니까요.”
성국 사건 이후 지플의 이미지는 날이 갈수록 곤두박질을 치는 중이었다. ‘선한 지플’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린 것이다.
반면 룬칸델은 톡톡히 반사 효과를 보는 중이었다. ‘패도의 룬칸델’이라는 이미지는 여전하지만, 적어도 지플처럼 인간을 실험에 이용하거나 성국 같은 중립국을 함부로 건들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 모든 것은 당연히 진의 공로였다.
“이 추세에 흐름을 더하는 겁니다. 화장품 만드는 선량한 수인들, 예고 없이 그들을 학살하려던 지플, 멋지게 나타난 룬칸델. 모든 게 완벽하지 않습니까?”
“여론을 형성한다고 치고, 그걸로 지플에 어떤 보복을 할 수 있다는 뜻인가?”
“룬칸델에 좋은 여론이 형성되면 자연스레 제 화장품의 인지도가 높아집니다. 그건 곧장 판매 실적으로 이어질 거고, 제 사업이 커질수록 지플은 바보가 되는 겁니다.”
애초에 지플이 작은 수인들을 친 이유는, 화장품 사업이 ‘진 룬칸델’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플의 수배자가 버젓이 루테로 마법 연방에 얼굴 걸고 광고를 한 사실에 대한 보복인 것이다.
그런데 망령대를 투입했는데도 고작 12기수 ‘따위’의 사업체를 박살내지 못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지플에게 치욕적인 일이었다.
“이번에 4, 7기수가 했던 것처럼. 현 시간부로 제 사업체를 보호해주십시오. 그리고 가문 차원에서 지원을 시작해주십시오.”
“갈수록 태산이군.”
“가문이 제 사업체를 보호해주는 것이야말로 룬칸델이 지플을 더 확실하게 무시하는 그림이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엔, 자연스레 국지적인 전투들이 있을 겁니다. 지플을 직접 죽이는 건 그때 행하면 그만입니다.”
진이 미소를 짓자 어처구니가 없는 듯, 조르덴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도 진의 이야기가 옳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다만 진에게 말려든 기분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결국은 자기 배를 불리고 싶다는 뜻 같군. 그 빌어먹을 화장품을 팔아서!”
“맞습니다. 그런데 제 배가 부르면 룬칸델의 배도 부르는 셈이지요.”
진이 슬쩍 텔롯 쪽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진을 밀어주기로 해놓고서는, 어째서인지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호민회장께선 왜 가만히 있는 거지? 슬슬 적당히 나서주면, 원로회장도 못 이기는 척 물러날 것 같은데.’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진은 텔롯이 가만히 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하라.”
날카로우면서도 위엄 서린 한 목소리가 진의 의견을 긍정해준 것이다.
흑표범 로사 룬칸델, 진의 어머니. 그녀의 목소리였다. 로사가 입을 열자 회의실 내부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네 사업체를 보호해주겠다. 네 말대로 실리를 더 챙기는 쪽이 좋을 것 같군. 대신, 오늘 이후 가문은 네 사업체에서 나오는 수익의 2할을 갖는다.”
그러자 텔롯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속임수 없이, 매달 2할을 성실하게 바친다면. 내 최대한 자네의 사업을 도울 것이다. 유보에 멈춰있는 징계를 아예 없애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로사가 말한 2할이라는 수치는 이미 진이 텔롯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을 때 결정된 수치였다.
텔롯은 망령대가 작은 수인들을 습격했다는 비보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로사를 찾아가 그녀가 진에게 2할을 제시하도록 이야기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아울러 현재 유보 상태인 네 징계를 완전히 없애주겠다. 이건 네가 공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이라는 걸 명심하도록.”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
‘특히 어머니와 나 같은 관계라면 절대로, 이유 없는 호의 따윈 없다. 내게 뭔가 빚을 지우려고 하고 있군.’
진은 로사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