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48)
제 333화
107화. 킨젤로의 방문(1)
도시 칼론.
주민들이 신기한 눈으로 대로를 걷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열 명의 수인과 두 명의 인간이었다.
베락트와 백랑족 전사들, 그리고 비슈켈과 마르지엘라였다.
칼론에선 갑옷 입은 기사들이 적게는 다섯, 많게는 수백 명씩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풍경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수인들이 걷는 건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베락트였다.
그는 걷는 것만으로도 마치 성채가 움직이는 듯한, 혹은 거대한 범선이 항해를 하는 것 같은 위압감을 풍겼다.
다른 도시였다면 베락트를 본 주민들은, 그에게 죄를 짓지 않았어도 불안감과 두려움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칼론이었다.
휴페스터의 심장이자 룬칸델의 본산.
칼론의 주민들은 외부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도시 칼론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였다.
그 어떤 거두도, 그 어떤 적도, 그 어떤 괴물도 칼론 내부에서 난동을 부릴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마음대로 검을 뽑고, 싸움을 하고, 승패를 갈라도 되는 것은 오직 룬칸델에 속한 자들에게만 허용된 일이었다.
“멈춰라.”
베락트의 무리가 검의 정원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다다르자 그곳을 지키는 수호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랑족 전사들의 입장에선 참으로 불경한 목소리였다. 감히 인간 따위가 백랑족의 대전사에게 이토록 고압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백랑족 전사들이 으르렁대려는 찰나, 베락트가 가만히 응축된 기운을 드러냈다. 얌전히 있으라는 명령이었다.
“왜 방문 계획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는가?”
“옛 친구를 만나러 오는 길에 그런 것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수호기사의 물음에 담담하게 답하는 베락트.
“입원해도 되는 것인지 확인할 테니 대기하도록.”
끝까지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그 기사의 경지는 7성이었다.
일반적인 기준에선 대단한 경지지만 베락트는커녕, 그가 이끌고 온 그 누구와도 싸움이 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수호기사가 당당한 것은 룬칸델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설령 상대가 지금처럼 엄청난 거물인지라, 결례를 따져 들어 목숨을 잃게 된다면 상대 또한 결코 살아서 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다는 믿음도 있었다. 베락트가 아니라 켈리악 지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한참 뒤, 병사들이 답을 가져와 수호기사에게 알렸다.
“입원을 허한다.”
백랑족 전사들은 그를 당장이라도 찢어발기고 싶었으나, 정작 베락트는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은 모양새였다.
오히려 그는 속으로 수호기사를 칭찬하고 있었다.
“옛날부터 생각한 건데, 인간족 중 그나마 쓸모 있는 것들은 죄다 룬칸델에 모인 것 같군.”
“룬칸델 기사들이 기개가 있긴 하죠, 베락트 아저씨.”
“흠! 물론 그중 최고는 우리 부단장이지만 말이야.”
베락트의 수모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검의 정원에 들어선 다음에도, 그들을 마중 나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한동안 멀뚱히 안뜰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해도 너무하는군. 대전사님, 아무리 우리가 갑자기 찾아왔기로서니. 이런 수모를 당하고도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쩔 거냐?”
“돌아가시죠, 애초에 인간 놈들하고 대화를 하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베락트가 고개를 저었고, 비슈켈이 그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우리 입장에선 이런 대우가 수모지만, 룬칸델은 우리가 말도 없이 이곳을 찾아온 것 자체가 굉장히 불쾌할 거요. 이 정도면 룬칸델치고는 환대나 다름없으니 가만히 있으시오.”
비슈켈이 대신 설명해준 내용이 흡족한 듯 베락트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부단장만 한 인간이 없단 말이지.’
또다시 한참이 지나 정원으로 나온 것은 30인의 집행기사와 로사 룬칸델이었다.
“옛 친구라, 우리가 그런 사이인 줄은 몰랐군. 베락트 시드리커.”
“오랜만이군, 로사.”
로사는 젊은 시절 베락트와 상당히 많은 결투를 치렀다. 승패는 동률이었고, 싸움이 있을 때마다 두 사람은 큰 부상을 입었다.
그때마다 서로의 목숨을 끊지 않은 건, 수인들과 룬칸델 사이에 쓸데없는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설마 소싯적을 잊지 못하고 검을 섞으러 온 것은 아닐 테고,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지?”
“그대의 자식에게 알려줄 것과 받을 것, 그리고 제의할 것이 있어서.”
“막내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렇다.”
“들어와라. 안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로사가 사람을 시켜 진을 찾았다.
그러나 곧장 베락트가 있는 응접실로 들어오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베락트가 네게 알려주려는 것과 제의하려는 것, 그리고 그가 네게 받을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지면, 그리고 그를 네가 마주했을 때 룬칸델에 이득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응접실로 오도록.)
하인이 전한 로사의 쪽지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는, 내게 알려줄 것과 받을 것, 제의할 것이 있다라.’
무슨 꿍꿍이지?
‘게다가 하인이 전한 바로는, 비슈켈과 마르지엘라도 같이 왔다.’
이블리아노 가문, 진이 예비 기수 생활을 시작한 무렵에 새로 가주가 된 비슈켈.
진은 당연히 비슈켈이 킨젤로의 간부로 있는 이유가, 이블리아노가의 부흥을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왔다.
이블리아노가는 본래 휴페스터의 대표적인 검술명가로 이름이 드높았으니 말이다.
‘그걸 위해선 룬칸델에 밉보일 짓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굳이 방문 요청도 없이, 킨젤로의 거물과 함께 검의 정원을 찾았다는 건. 비슈켈의 목적이 내 예상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혹은 룬칸델과 킨젤로 사이에서 저울질을 끝냈거나.
어쨌거나 당장은 베락트가 찾아온 목적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알려줄 것과 받을 것, 그리고 제의할 것. 그중 두 가지를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게 받을 것은 나침반, 혹은 저번 망령대 습격에 대한 빚일 것이다. 그거 말곤 킨젤로가 내게 요구할 만한 것이 전혀 없어. 내게 제의하고 싶은 건…….’
동맹.
진은 킨젤로가 자신에게 동맹을 제의할 것이라 판단했다.
‘성국 사건 때도, 얼마 전 작은 수인들을 구출할 때도. 킨젤로는 줄곧 내게 호의를 보여 왔다. 나는 그들의 나침반을 탈취하고, 암흑마법회를 괴멸시키는 등. 단 한 번도 우호적으로 군 일이 없는데도.’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 킨젤로가 자꾸 진에게 호의를 표하는 건 분명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지플과의 동맹이 깨졌기 때문이다.
그 동맹을 파기시키는 일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것도 진이었다. 마신석 파괴와 나침반 탈취가 두 세력 사이에 있던 신뢰를 부숴버린 것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깨질 동맹이었으나, 진이 그 시기를 한참 앞당긴 셈.
그 과정에 지플은 일방적인 손해만 본 반면, 킨젤로는 나름의 수확을 얻었다.
게다가 혜성처럼 등장한 바멀, 진 룬칸델이 끊임없이 지플을 엿 먹이고 있으니 킨젤로로서는 당연히 동맹 제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킨젤로는 진이라는 개인과 반쪽짜리 동맹을 맺고, 차후 진이 가문의 왕좌에 앉았을 때. 룬칸델이라는 거대 세력과 완전한 동맹으로 나아가면.
대업이 수월하게 완성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내게 알려줄 것은 대체 뭐지? 지플에 관한 정보?’
곧장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어떤 정보일지 짐작 가는 바는 전혀 없었다.
킨젤로의 목적이 명확해지면, 그리고 너와 베락트의 만남이 룬칸델에 이득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응접실로 오라…….
다시 쪽지 내용을 살피는 진.
계산을 끝내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라칸.”
“어.”
“가자, 응접실로.”
“엥? 나도?”
무라칸은 진이 로사의 쪽지를 받고 고민하는 동안 별다른 생각 없이 길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래. 킨젤로가 아무래도 내게 동맹을 제의할 것 같은데, 너도 같이 가는 쪽이 낫겠어.”
“왜? 그 베락트라는 놈이 난동이라도 피울까 봐?”
“그럴 리는 없지. 다만 어머니께 12기수 진 룬칸델과 솔더렛의 계약자 진 룬칸델은 다르다는 것을 알려드릴 필요가 있거든.”
“그럼 난 고양이인 척하련다. 인간 모습으로 있으면 괜히 그것들이랑 몇 마디라도 섞어야 할 것 같으니, 귀찮아.”
“그렇게 해.”
펑, 냐앙! 변신한 무라칸이 진의 어깨로 올랐다.
“12기수입니다.”
“들어와라.”
응집설로 들어서자 로사와 기사들, 베락트의 무리가 보였다.
정작 로사와 베락트는 담담한 얼굴이었으나 기사들과 수인들 사이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들이 뿜는 살기에 얼굴이 저릿할 지경인 와중.
그 속에서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 있는 마르지엘라가 단연 가장 돋보였다.
“저를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백랑족 대전사 베락트 시드리커 경.”
“그렇다. 우리, 구면이지?”
“초면입니다.”
진이 태연하게 말하자 베락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와 단둘이서 이야기하고 싶다만, 내 옛 친구가 그걸 허락해줄 것 같진 않군. 그러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예. 제게 알려줄 것과 받을 것, 그리고 제의할 것이 있다고 하셨더군요.”
“먼저 제의에 대해서다. 킨젤로에 입단해라.”
스릉, 스릉!
베락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집행기사들이 검을 뽑았다.
백랑족 전사들은 따라서 무기를 꺼낼 수 없었다. 피가 끓긴 하지만, 그랬다간 곧장 파국이라는 것쯤은 그들도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쳐라.
로사가 그렇게 한 마디만 하면, 베락트와 킨젤로 전사들은 이 땅에서 살아 돌아갈 수 없을 터였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죠.”
그 말에 일순 집행기사들의 눈썹이 움찔거렸고, 진은 곧장 뒷말을 이었다.
“단장 자리를 준다면 입단하겠습니다.”
“크하하하!”
베락트가 박장대소를 터뜨리자 응접실 내부에 강렬한 진동이 일었다.
“물건은 물건이로군. 과연, 로사 룬칸델의 뱃속에서 난 것이 확실해.”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한데, 내가 그 제안을 받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대답한 것이냐? 정말로 룬칸델의 12기수 지위를 포기하고 킨젤로에 입단할 생각이었는가?”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전개는 아니지만, 가문을 위해선 나쁘지 않은 선택처럼 느껴지는군요. 킨젤로가 3류 테러 단체가 아닌, 거대 세력으로 부상한 이상 룬칸델과 힘을 합치면 지플을 괴멸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일 테니까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진은 그들이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킨젤로에 입단할 생각 따윈 없었다.
“아쉽게 됐군. 부단장 직책까진 줄 수 있으니,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연락을 해라.”
진은 그 말에서 킨젤로의 정확한 의도 한 가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이건 어머니께 경고하는 것이다. 룬칸델이 나를 지나치게 견제하면, 언제든 파격적인 조건에 킨젤로로 빼낼 준비가 되어있다고.’
진으로서는 가만히 있다가 한 가지 보험을 얻은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용될 일은 없는 보험이지만, 로사로서는 진을 대하는 방향을 조금 더 생각할 수밖에 없을 터.
“제게 알려줄 것은 무엇입니까?”
그 순간.
진은 성국 사건 때처럼, 또 뻥긋뻥긋…… 입 모양으로 말하는 마르지엘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제가 알려드리죠, 진 경.’
로사와 수십 명의 집행기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감히 입 모양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세상에 그녀 한 사람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