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85)
제 333화
117화. 누가 진짜 룬칸델인가(6)
“가주를 모욕한 죄는 죽음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흑검회의 원로 둘이 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은퇴한 지 오래되었다 할지라도 한때는 위명이 드높았던 기사들이었다. 형형한 오러로 물든 두 사람의 검이 날카로운 파공음을 일으켰다.
젊은 수호기사들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는 움직임이다. 검이 파고들어오는 공간은 절묘했고, 흔들리듯 이어지는 궤적은 쉽사리 읽기 힘들었다.
하나 진은 어렵지 않게 몸을 회전시키며 원로들의 검을 피해냈다. 코트 끝자락조차 스치지 못한 채, 원로들의 검은 무심히 허공만을 갈랐다.
일순 진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원로들은 등줄기에 살얼음이 뿌려진 것 같은 한기를 느껴야만 했다.
“제가 감히.”
그 목소리를 따라 홱 고개를 돌리는 원로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곧게 뻗어지고 있는 주먹과, 그 주먹이 뻗어지는 방향을 따라 압축된 공기가 일그러지는 형상이었다.
쩌엉-! 쾅!
원로들은 연타로 이어진 주먹을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자세가 무너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뒤꿈치로 땅을 긁으며 밀려난 원로들이 중심을 다잡기도 전에, 진은 또 한 번 그들의 얼굴로 주먹을 내질렀다.
맞으면 머리가 통째로 사라질 것이다. 흔적도 없이…….
원로들의 머리에 동시에 떠오른 생각.
피할 수가 없었다. 원로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 허무한 최후의 순간이 비굴하게는 보이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뜨는 것뿐이었다.
시야가 어두워졌다.
바로 앞에 멈춘 주먹 때문이었다. 석상처럼 굳은 원로들은 어떤 식으로든, 진이 베푼 자비에 답할 수도 없었다.
“모욕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까? 고작 몇 마디 말 따위로.”
주먹을 거두며 돌아서는 진.
“다음엔 멈추지 않을 겁니다.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지켜보는 이들 대부분은 그야말로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12기수의 무위가 대단하다고는 들었으나, 흑검회 원로 둘을…….’
‘검도 뽑지 않고 제압했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특히 가장 먼저 진에게 덤비려던 뮤와 앤은 거의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나한테 감사해야 해, 너흰 아마 안 살려줬을걸? 속삭이는 메리의 목소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헙, 웁!”
토나 형제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평소라면 누구든 그런 토나 형제를 나무랐을 터였다. 어디서 그런 덜떨어진 모습을 보이느냐면서.
아무도 토나 형제에게 쓴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다들 칼처럼 뇌리를 찌르는 충격에 말문이 막힌 것이다.
물론 대련장에 있는 모두가 그리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그만하고 돌아오게! 더 체면 구기지 말고.”
호법회의 수장, 린 밀카노였다.
그녀는 진에게 당한 원로들이 처음 목소리를 높일 때부터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자네들은 더 이상 원로회 소속이 아닐세.”
“호법회장님……!”
“그만. 아니면 정말로 12기수의 말대로 접시 물에 코라도 박고 뒈질 텐가?”
린의 눈동자가 예리해지자 결국 두 원로는 말없이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쓸데없는 말을 붙였다간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12기수.”
“예, 호법회장님.”
진과 린의 시선이 맞닿았다.
“기수라는 작자가 늙은이들 상대로 힘자랑이나 하는 꼴이라니, 썩 보기 좋지 않군.”
“제가 진짜로 힘자랑을 했으면 이 대련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텐데요.”
“언제나 패기가 지나치군.”
“힘자랑이라고까지 표현하기엔 제가 보인 것이 너무 소박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답하며 진은 머릿속으로 린에 대한 정보를 수정하고 있었다.
‘린 밀카노, 호법회장이면서 흑검회 소속 원로들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군. 전부터 조르덴 당숙보다 신경 쓰이던 인물이다.’
어느새 평온해진 린의 표정에선 어떤 속내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호법회장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는데.’
차후 가주가 되기 위해서 원로회의 지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물론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취를 이루고, 반대하는 원로들을 몰살하면 문제될 게 없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조슈아가 가주가 되기 전에 창성에라도 오르지 않는 이상 말이다.
‘지금은 호민회장님과 제드 숙부가 잠정적 아군이지만, 부족하다.’
린 밀카노는 어떤 인물일까.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잠시 의문이 떠오른 사이, 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박하다라. 그렇다면 한 번 제대로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스르릉…….
린이 부드럽게 검을 뽑았다.
“자네가 말한 지플을 이길 수 있다는 방법 말이야. 그건 아마 자네가 가진 마검사로서의 자질을 뜻하는 것일 테지. 내 말이 맞나?”
“맞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해보게, 힘자랑.”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건 자네가 어떤 것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좋습니다, 저는.”
진이 브라다만테를 뽑으며 뒷말을 이었다.
“룬칸델을 다시 마검사들의 이름으로 되돌릴 것입니다.”
무거운 침묵이 대련장을 짓눌렀다.
그러나 앞서 원로들의 망신이 있었으니 피라미처럼 굴지 않는 것일 뿐, 다들 이 오만한 12기수를 당장이라도 찢어발기고 싶은 얼굴이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으나, 내 귀엔 시끄럽도록 많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군. 방금 자네의 발언은 위대한 검가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정통성.”
브라다만테의 칼날에 마력이 뒤덮였다.
“이곳에 있는 룬칸델들 중, 제 앞에서 정통성을 말할 수 있는 분이 있을까 싶군요. 천 년 전, 룬칸델은 본래 마검사 가문이었습니다.”
그 사실은 가문의 비사로, 룬칸델의 모두가 다 아는 것이 아니다.
내막을 모르는 이들에겐 진이 그저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것에 불과했다.
“지플에게 패배한 후, 가문은 굴욕적인 맹약을 맺어 마법을 잃었고…….”
화르륵-!
이어 브라다만테를 휩싼 마력이 불꽃을 일으켰다.
“찬란하던 옛 역사는 지워져버렸으며, 끝내 룬칸델을 지킨 선조들의 이름과 긍지는 잊혔소.”
푸른 불, 테스의 힘과 어둠, 솔더렛의 영기가 칼날을 한 번 더 짙게 물들이자 곳곳에서 검을 빼드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룬칸델 마검들의 적자로서, 검의 신 솔더렛의 계약자로서, 선조들의 넋을 기리는 유일한 후손으로서. 천 년 전 룬칸델의 빛나는 의지를 이어받은 자.”
이어 진의 온몸이 맹렬한 화염으로 뒤덮이고, 두 눈동자에 불이 맺혔다.
린은 더 이상 차분한 얼굴을 유지하지 못한 채 더욱 단단히 검을 붙잡았다.
누가 감히 내게 정통성을 운운하는가.
누가 진짜 룬칸델인가?
깊은 울림이 대련장에 모인 이들의 폐부를 두들겼다. 진에게서 쏟아지기 시작한 옛 룬칸델의 기운이었다.
“이 불은 십대기사 사라 룬칸델의 것이다.”
룬칸델 마검 비기
업화業火 – 사라 룬칸델
별안간 대련장 한가운데에 화산이 폭발한 것 같았다.
진의 온몸에 새겨진 룬 문자를 타고 퍼지는 화염들이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이어지며 순식간에 대련장을 붉게 뒤덮었다.
그때, 기수들 중 가장 먼저 위기를 직시한 것은 룬티아였다.
늘 졸리고 권태롭다는 듯 굴던 그녀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린의 앞으로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호법회장님.”
“3기수……!”
“무례를 저질러 죄송합니다. 하나, 호법회의 질서를 위함이니 이해해주십시오. 수호기사들은 검진을 펼쳐 방어대형을 꾸려라.”
척, 척!
룬티아의 명에 따라 수호기사들이 검진을 펼쳤다.
다른 기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룬티아가 이토록 다급하게 움직인다는 것이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하게 한 것이다.
콰르르륵-!
업화를 이룬 불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룬티아가 조금만 늦게 나섰어도, 이 시점에 이미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검을 맞댄 수호기사들이 간신히 폭발을 막아내고 있었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쏟아졌으나 그조차 업화의 불길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무위가 부족한 자들은 벌써 졸도한 채 동료에게 목숨을 맡겨야 했고, 대련장 곳곳은 벌써 터지고 녹아 본래의 형태를 잃었다.
그러나 아직 마검 비기는 시작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서, 시퍼런 검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진은 자신이 펼친 업화를 사라의 일갈이라 여겼다.
천 년 전 선조들이 삶과 죽음 이후의 시간까지 바쳐 지켜낸 이름을 사용하면서, 감히 마검의 적자에게 정통성을 운운한 사실에 대한 벌.
불과 영기를 머금은 검기가 룬칸델들을 옥죄었다.
막으면 검이 녹았고, 피하면 그곳은 불의 장막이었다. 대부분의 수호기사들과 원로들은 그 장막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갖고 있지 않았다.
죽음.
이곳이 전장이었다면 그런 이들은 십여 초 내로 모두 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건, 초인의 반열에 오른 다른 무인들 덕분이었다.
기수와 원로회의 주축들, 그리고 집행기사들. 그들이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 죽음을 앞에 둔 자들을 지켜내고 있었다.
12기수가 펼친 옛 마검 비기의 위용에 충격을 받을 틈조차 없었다. 그저 한 사람도 죽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불길을 밀어내느라 다른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작열하는 업화에 중압의 힘이 깃들어있다. 한 맺혀 죽은 시체의 푸른 입술처럼 귀기 서린 청화가 룬칸델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수라장, 혹은 마경.
난무하는 불과 검들 속에서, 진은 한 번 더 이렇게 부르짖었다.
누가, 진짜 룬칸델인가!
룬칸델들에겐 그게 꼭 불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짐승이 떼 지어 우짖는 것 같은 비명조차 묻히는 와중, 진의 물음은 모두에게 똑똑히 전해지고 있었다.
점점 더 밀도를 더해가는 불.
화염 속에서도 유난히 빛나는 안광은, 단연 진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검은 룬티아를 향하고 있었다.
전부터 궁금했다.
루나를 제외한 기수 중, 최강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중 최강을 향해 전력으로 검을 뻗을 때,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화륵, 씨이익-!
불에 물든 브라다만테가 룬티아의 이마로 떨어졌다.
룬티아가 일격을 쳐내자, 그녀의 근처에 뭉쳐있던 불들이 튕겨나가며 곳곳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진과 룬티아의 시선이 부딪혔다.
“……너는 매번 날 너무 귀찮게 해.”
그러자 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게 싫다면 지금 제 목을 베시는 게 좋을 겁니다.”